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5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2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조회 수 1146 추천 수 0 2015.07.12 09:26:35

이 시리즈는 인도 신학교의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책자입니다.

인도 선교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5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2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교사의 개인의 삶과 관계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의 사명에 관계된 것입니다. 겸손, 종 된 자세와 순종은 선교사 개인의 영적 삶 강화에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 비전, 용기, 열정과 인내와 같은 다른 영적인 자질은 선교사가 섬기고 있는 현장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 모든 자질들은 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그 유용성에 있어 차이를 가집니다. 우리는 이런 성품들을 우리 주님의 삶과 사역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과거 다른 선교사들의 삶에서도 이 성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개인의 삶과 사역에 필요한 이 양측면의 자질들을 개발하여야만 합니다.

 

1. 담대한 믿음

선교사의 삶 - 믿음의 삶   

선교사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6). 우리 기독교인은 창조주시며 우주의 유지자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는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말씀 안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깨달음은 다음 말씀처럼 우리 크리스천 경험의 기초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크리스천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엡 2:8)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고 크리스천의 일생 전부가 바울이 말한 것같이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것이지, 보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고후 5:7)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사랑이시며 주재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격적인 지식에 기초를 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죄 때문에 그 형상은 왜곡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에게 그의 믿음을 둘 때 그는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빚어지고 나아가 그는 그 형상과 하나님의 사랑, 거룩함, 공의, 의와 같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속성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의 경건과 기독교 성품에 있어 가장 바탕이 됩니다.   

믿음 - 성령의 선물

성령의 선물중의 하나는 크리스천의 섬김을 위해 주어진 믿음의 선물입니다. (고전 12:9) “그것은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는 성령이 주신 능력이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확신을 유지하게 하게 합니다.” 선교 일선에 있는 각 사람은 이 믿음의 선물을 어느 정도 가져야만 합니다.

윌리암 버클레이는 이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믿음은 모든 일에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루시는 그 은혜를 붙드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거장인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신 일들이 진리라는 것과 그 분이 하신 말씀대로 행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확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 이 확신이 믿음입니다.” 뮬러의 믿음이 그의 사역에 기적으로 드러난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

목동 다윗의 예: 구약의 목동이었던 다윗의 생애에서도 이 담대한 믿음의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이름을 드높이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동일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높이며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악한 사탄을 물리치게 될 것입니다.

맥도널드는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갖지 않는 믿음 없이는 진정한 제자도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들은 먼저 반드시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신뢰해야만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예를 들며 그는 말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거장들은 인간적으로 연약했음에도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요구 조건은 충만한 믿음입니다.

성경은 스테반, 바나바와 다른 초기 사도들이 가졌던 충만한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런 믿음의 분량을 가졌던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행 27:25).

성경은 긴 믿음의 남성과 여성들의 목록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을 두고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터이니 말입니다.” (히 11:32) 이들은 온갖 환난과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과업을 기쁨과 확신으로 영접하며 말할 수 없는 역경을 직면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말합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히 11:37,38). 그 믿음은 아래 찬송가 작가의 말하는 삶에서 계속됩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선교일선의 사람은 반드시 믿음의 영웅이 되어야 하는데 이 의미는 그는 반드시 불가능속에서 모험을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반드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 9:23)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환언하면 그의 믿음은 반드시 위험을 무릅쓴 것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의 믿음은 연약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자 준비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과 교회에 불가능이란 단어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버클레이) 그 같은 믿음을 가진 선교사라야만 다음과 같이 노래 부를 수 있습니다.

 

믿음, 약속을 보는 강력한 믿음은

하나님 한분을 바라본다네.

불가능을 비웃으며

“그것은 이루어 질것이야” 외친다네.

 

라운드힐(Roundhill)은 다음과 같이 그 같은 믿음의 필요성을 지적합니다.

“만약에 믿음에 있어 모험이 없다면 믿음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도전이 단지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을 대하는 것이고 지나치게 지루한 임무가 아니라면 우리는 적절하게 우리 계획을 단순히 조정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것에 시도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위대한 선교사는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모험적인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위대한 일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불가능, 둘째는 어려움, 셋째는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과 사역의 좌우명이었습니다. 종종 우리는 ‘불가능’ 대신 ‘성취’로부터 일을 시작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불가능을 시도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윌리엄 캐리 또한 그 같은 믿음을 가졌고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했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었습니다. 존 엘리오트(John Elot)는 처음으로 미국 인디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의 노고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그는 “기도와 고난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있는 믿음을 통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세대에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성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은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가장 이겨내기 어렵고 가장 힘든 곳에 계시는 분”이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그는 25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12명 정도의 결신자를 얻기까지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불굴의 믿음은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그를 견디도록 하였습니다,

선교일선의 사람은 모든 것에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흡족하게 도울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도움이 그 시험에 견디도록 합니다. 선교사가 시종일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어떤 역경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9:33)

2. 비전

과업과 함께한 비전이 선교사를 만듭니다.

 

믿음은 비전을 가져다줍니다. 비전은 현 시점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것입니다. 난관과 낙담을 다룰 수 있게 하는 비전이 없이는 아무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선교사는 반드시 그의 사역에 담대하고 확장된 계획과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그 같은 믿음의 비전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같은 믿음의 비전만이 한 사람을 선교사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과업 없는 비전은 몽상가를 만들고

비전 없는 과업은 고역이며

과업와 함께한 비전은 선교사를 만듭니다. (오스왈드 샌더스)

 

믿음은 낙관과 희망을 줍니다.

믿음의 비전은 낙관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낙관주의자로서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길을 찾아냅니다. 선교 일선에서 선교사는 사람들이나 지역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2년 또는 5년 걸리는 믿음 프로젝트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친구 선교사 기도 연합(Friends Missionary Prayer Band)은 남부 구즈라뜨와 서부 마하라슈트라에 100번의 집회를 갖는다는 SWEEP(South West Enlarge Evangelistic Plan)이라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1980년에서 1982년에 걸치는 25개월의 기간내에 남부 구즈라뜨의 4개 지역과 서부 마하라수트라의 3개 지역내에 거주하는 9개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모험적인 프로그램이었고 인간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100회의 집회를 통해 4000명의 새로운 회심자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인도의 수억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쉽게 굴복치 않고 모험에 가득한 믿음을 요구하는 갖가지 신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거룩한 담대함

거룩한 담대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서 옵니다.

살아있는 믿음, 주권적이며 능력있는 하나님은 선교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거룩한 담대함을 줍니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 교육, 재능 또는 육신의 강건함에 기본을 둔 자질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정의한 것처럼 육신에 자랑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빌 3:1-9) 바울은 그의 육신을 자랑할 만한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리스도만 신뢰했습니다. 그 같은 순전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주었습니다. (빌 4:13)

거룩한 담대함은 성령충만함에서 나옵니다.

거룩한 담대함은 성령 충만한 사람의 결코 실패함이 없으시며 변개함이 없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에서 나오는 도덕적, 영적 용기입니다. 그 같은 사람은 성령이 지배하는 담대함을 갖고 있기에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압니다.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잠잠하고 침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성령에 의해 지배되고 안내되는 거룩한 담대함이 갖는 속성입니다.

세례요한은 그 같은 담대한 도덕적 용기를 가졌습니다.

용기란 “사람으로 하여금 확고부동함 또는 두려움이나 정신력의 침체가 없이 위험과 난관에 직면하게 하는 마음의 특성”이라고 정의됩니다. 세례요한은 그 담대한 도덕적 용기를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그는 사람들의 배경, 지위, 권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도전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권하여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선언했습니다. 세리들에게는 “지정한 세금 외에는 걷지 말라”고 말했으며 군인들에게는 “아무든지 협박하지 말고 거짓 고소하지 말고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도록” 말했습니다. 심지어 헤롯왕과 같은 정치 지도자들의 죄를 책망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했습니다.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요한은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세상은 더렵혀져서는 안 되는 도덕적 규범을 깨뜨리는 범하는 통치자에게 자기의 목숨을 무릅쓰고 항변하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용기 있게 진리를 말하는데 자기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용기는 영적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중에 최상위를 차지합니다. 이에는 도덕적 용기뿐만 아니라 자주 육체적 용기도 요구됩니다.”

거룩한 담대함이 있는 선교일선의 사람은 결코 혼자되는 것과 진리와 정의와 원칙을 위하여 심하게 따돌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심지어 이것이 소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안에서 소수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같은 상황 속에서 그와 함께 하십니다.

마틴 루터- 거룩한 담대함의 사람

용기는 사회, 종교에 변화를 가져오고 기존 구조들의 정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것, 반대를 직면하고 사람들이 싫어함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그 같은 거룩한 담대함의 사람이었습니다. 놀라운 용기를 가진 루터는 프로테스탄트 혁명을 시작하며 전 가톨릭교회와 맞섰습니다. 그는 종교 정치권력들에게 도전하고 전파했습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가톨릭교회의 교리들을 반대하는 95개조 강령을 제시하는 것은 커다란 담대함이 필요했습니다.

루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가 악한 사람들을 대할 때 그는 “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는 나의 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웜스의 의회에 출두하도록 부름을 받았을 때 위험을 경고받았으나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가서 당신의 주인에게 말하시오. 웜스의 의회에 수많은 대적이 기왓장처럼 깔려있다 하더라도 나는 들어갈 것이오.”

루터는 웜스의 의회에서 찰스 5세앞에 서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성경의 증거와 가장 명료한 추론에 의해 확신 하는 한 나는 나의 말을 철회할 수 없소. 왜냐하면 그의 양심을 거스려 말하는 것은 크리스천에 있어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오. 여기에 내가 섰고. 나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소.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의 거룩한 담대함의 비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그의 찬송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적대감에 직면하기 위해 필요한 거룩한 담대함

선교사는 그의 사역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직면하기 위하여 거룩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는 인도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를 대적하여 일하며 사역을 방해하는 많은 힌두 투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RSS 힌두 투사를 고발하려는 보고서를 들고 남부 구즈라트에 있던 다람푸르의 경찰서에 들어가던 날을 기억합니다. 성탄 영화를 상영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RSS 소속 청년들이 전기를 끊고 돌을 던지며 선교사들을 때리고 프로젝터에 손상을 입혔습니다. 저의 아내 쉐일라가 선교사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저는 경찰서로 가서 이를 고발했습니다.

다음날 경찰 경위는 저를 부르더니 조회서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앉아 있는 동안 네 명의 청년이 팔짱을 끼고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중한 경고후에 다음날 그들은 풀려났습니다. 그 사건후에 사람들은 우리를 존경했으며 그 후 몇 년동안 우리는 힌두 투사들과 별 문제 없이 지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성격을 가진 단체로 이루어진 다람푸르 지역에 몇 몇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담대함으로 어려운 상황을 대처해 나갔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명예롭게 하셨고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습니다. 충만한 도덕적 영적 용기를 가진 선교사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항상 어려움 가운데로 진격해 나갑니다.

 

사탄의 힘에 대적하는데 필요한 담대한 용기

그 같은 용기는 악한을 대면할 때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교사가 특별히 악마들과 악령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사이에 사역할 때 악한 세력들을 대적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거기서 그는 사탄과 대적하고 어둠의 악한 세력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악마의 간계를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여러분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엡 6:11,12)

     

선교 현장에서 적대적인 영력에 직면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선교사는 때로는 사탄의 얽매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고자 할 때 이에 대적하는 세력을 만나게 됩니다. 존 스코트는 이를 “모든 크리스천 개종은 악령이 어떤 사람의 생명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최고 상위의 능력이 이를 가능케 합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남부 구즈라트의 종족 가운데서 일하는 동안 일어난 몇 사건들이 기억납니다. 부족 언어로 ‘오자’ 또는 ‘바갓트’라고 불리는 지역 악령 주술사들은 마술을 행하고 토속 의약품들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통제력을 갖고 있습니다. 몇 사건에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모임에 참석하면 악령이 해를 끼치거나 그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당신네들 악한 세력들이 모임에 참석하기를 열망하는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는 대신에 직접 우리를 공격하도록 해라.”고 말하며 바갓트들에게 도전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를 해치는 마법을 행하도록 15일에서 30일정도 유예기간을 주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오자 또는 바갓트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악한 세력들을 만들어 모든 그의 마법을 시도했고 우리들은 악한 세력들이 힘을 잃고 우리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금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비참하게 실패했고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저주 마법이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항복하면서 그가 위대하신 능력에 도전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악한 세력보다 더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어떤 바갓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고 세례를 받았고 그 중 얼마는 동네를 떠났습니다. 선교일선의 선교사는 반드시 사탄의 세력에 대적하여 서는 거룩한 담대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4. 불타는 열정

선교사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믿음과 용기와 근접하여 열정이 있습니다. 선교일선에 선 사람은 다른 어떤 자질 보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 그의 왕국의 관심에 대한 열정, 복음화과 교회설립에 대한 열정, 가난과 억압 받는자에 대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열정은 선교사로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견디게 합니다. 이 열정은 낙담과 낙심의 때에 그의 사역을 붙들고 견디도록 할 것입니다. 이 열정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도록 견딜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딤후 4:7).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그의 관심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집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킵니다.”(요 2:17)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요 9:4).

 

열정-선교사의 기본 요구사항

맥도날드는 강력히 열정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만약 한 제자가 위대한 정신적 능력이 없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괄목할만한 육체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을 갖지 않는 자는 절대로 변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의 그의 심령이 구세주에 대한 시뻘겋게 불타오르지 않는다면 그는 정죄 받은 상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선교사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은 위대한 열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버트 모리슨은 “끈질기고 지독히 명확하며 격렬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전파하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찰스 스터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살기를 원하지만

나는 지옥의 마당에 구원을 위한 구멍가게를 열겠습니다.”

헨리 마틴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이방인 가운데로 가기로 결정된 것이 저의 마음을 깨뜨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이라고 영이 압박을 받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종이라기보다 한 덩이 하찮은 흙덩이 같은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하나님을 위하여 저를 불태우겠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고통가운데서 인도에서 7년동안 그의 주님을 섬긴후 31살의 나이에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아래의 수치들은 존 웨슬리의 위대한 구령 열정의 기록입니다. 그는 50년동안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대부분 말을 타고 22만 5천 마일을 다녔으며 죽는 순간까지 4만번 복음을 외쳤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삶의 열정, 영혼들을 위한 열정으로 소진되었습니다.

미카엘 그린은 그의 중요한 책인 ‘초대교회의 복음화’란 책에서 초대 기독교 교회를 움직이게 한 것은 복음화를 위한 열정이었습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교회가 시작된 첫 2세기에서 우리는 승천하신 주님의 발앞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자 하는 전도적인 열심과 노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우선권을 상기시키는 영원한 조언입니다. 복음화는 초대 기독교인들의 피로 이룬 생명이었습니다.”

낙심을 극복하는 열정

열정은 단순한 감정이나 확신이 아니고 낙심과 반대를 무릅쓰고 어떤 것을 성취하고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의 열의와 의욕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한 것에 대한 실천적 행동이며 그것에 따라 살려고 하는 진지한 열정입니다. 선교 일선의 사람은 주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성취하고 그 자신을 그 일속에 몰두하도록 하려면 이 자질이 필요합니다. 그가 열정에서 결핍될 때 조그만 문제마저도 그를 게으르고 쓸모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예를 들면 비가 오거나 햇빛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약한 열이 생기는 어떤 육체적 문제가 사역을 취소하는 그에게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그의 길을 갈 수 없으며 작은 결과에 만족할 뿐 결코 하나님을 위하여 엄청난 일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사역자들은 공산주의자의 열심과 열정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더글라스는 열정없는 크리스천들을 다음과 같이 꾸짖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진짜 비극은 많은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에너지, 열심과 헌신을 드려야 하는데 조금 헌신하면서 많은 것을 드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들이 종종 단순히 최소한의 것보다 더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20세기 교회의 수치는 공산주의자나 이단들이 크리스천보다 더 열정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성경 또한 우리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롬 12:11). 윌리엄 버클레이는 이 말씀에 대한 주석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는 열심에 있어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확실한 강렬함이 있어야 합니다. 무기력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안일한 삶에 자신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항상 선과 악의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제한되고 삶은 영원을 위한 준비입니다. 기독교인은 반드시 불타올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녹슬어 없어집니다.”

선교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타올라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영혼을 용융점에 유지해야 합니다.” 주님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 미적지근한 사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계 3:16) 선교일선의 사람은 열정을 지속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고 이것은 바울이 그가 “성령으로 불타오르라”고 한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 안에는 우리를 냉담하게 되는 미묘한 성향이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성령의 연료를 공급받아 우리를 뜨겁게 불태워야 합니다.

열정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식과 열정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잠언 19:2절입니다. “또 지식 없이 열심히만 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너무 서두르면 죄짓기 쉽다.” 선교사의 주님을 위한 열정과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 근거를 두어야 하며 성령의 방향에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5. 인내

사역을 시작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사는 그의 결심, 소명과 사역을 견지해야 합니다. 인내란 경주를 끝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딤후 4:7)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인내입니다. (빌 2:12-15) 아브라함 쿠퍼의 책 ‘경건의 연습’은 인내란 말의 근원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사용한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자신이 처한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에 견고히 서있는 것이다.”

선교사는 포기의 유혹에 저항해야 합니다.

선교사역 내부든 외부 이방인에게서든 사역현장에서 어떤 위험을 만났을 때 사역자들은 사역 자체를 포기하거나 사역지를 떠나고자 하는 유혹에 접하게 됩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사역자들은 기도하면서 그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선교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을 사역지에서 밀어내고자 하기보다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사역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때때로 사탄은 선교사들을 낙심시키는데 과거의 실패를 이용합니다. 낙심은 선교사들을 파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의 실패의 이면을 바라보고 인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명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내한 좋은 예입니다. 그의 실패의 목록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입을 열 수 없게 합니다. 그가 개척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심히 비틀거렸으며 감옥에도 수없이 갇혔고 탄 배가 좌초하기도 하였으며 매를 맞고 배반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고후 11:23-27) 이것은 패배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내하였고 오늘날 그의 사역은 실패하지 않는 성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실패를 잊는 법을 배웁시다. 왜냐하면 실패는 하나님의 최종 결론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후 4:1)

그리스도의 닮은 성품 두 장을 읽은 후 어떤 이는 마음가운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에서 자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영적인 자질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 자질들은 한 사람이 성령의 통제아래 자신을 둘 때 성령에 의해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 장에서 설명한 영적인 훈련중 하나인 개인 경건 훈련의 결과입니다. 그리스도 같은 성품에서의 성장은 또한 자기훈련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후반에서 이야기 될 혹독한 자기 훈련이 없이는 그리스도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이 없기 때문 입니다. 나중에 이 문제를 다룰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같은 성품을 가진 자들로 자라도록 아래와 같이 기도합시다.

길을 인도할 그 사랑,

아무것에도 당황하지 않는 믿음,

실망이나 피곤이 없는 소망,

그리고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을 저에게 주소서.

저로 흙덩이같이 갈아 앉지 않도록 하소서.

저로 주님의 땔감이 되게 하사 하나님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에이미 카르미카엘-

 


profile

[레벨:97]정용섭

2015.07.13 00:05:45
*.94.91.64

번역 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선교사의 사명이 절절하게 잘 녹아있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profile

[레벨:25]사띠아

2015.07.13 13:21:26
*.160.132.218

1년이 넘도록 글 한 편 올리지 못했는데
칼럼방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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