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9장 반대와 핍박에 직면하기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조회 수 1046 추천 수 0 2015.08.30 10:19:10
저자는 증보판에 선교현장의 박해의 원인과 그 대책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9장 반대와 핍박에 직면하기

히11:37-40 “또한 돌로 맞기도 하고 시험을 당하며 톱으로 몸이 잘리거나 칼날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옷을 삼아 두르고 다녔으며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고 온갖 학대를 받았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찾아다니며 지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여러가지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그들이 완전해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5:10-12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할 때에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전의 예언자들도 이런 핍박을 받았다.”

진실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 대한 박해와 고난은 성서의 가르침에 있어 새로울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카인의 시기로 인해 무죄한 피를 흘린 아벨에서 부터 밧모스 섬에 유배되었던 주님의 사랑하던 제자 요한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 때문에 박해받고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한 남녀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성서의 위대한 남녀는 모두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보다 고생하고 희생하고 죽은 이야기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에 있던 요셉, 광야의 모세, 궁전의 에스더, 로마 감옥의 바울 등 모두 “성공의 상급”보다 “그들의 신앙을 위한 고난”의 배지를 달고 서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영웅”이라 불리는 위대한 남녀의 목록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목록은 “단순히 성공 사례가 아닌 고난은 사람을 영웅으로 빚는다”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지금도 믿음의 영웅들의 반열에 추가되고 있는 현재 고난받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박해 
1. 믿음을 인하여 박해받은 모세: 구약의 모세는 가장 빼어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성서는 주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을 택하였는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성장한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당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된 메시야를 위해 받는 고난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장차 상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꾸준히 견디어 나갔던 것입니다.” (히 11:24-27)

2.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 히브리서 11장은 어떻게 믿음의 영웅들이 겪었던 고난과 고통과 핍박과 죽음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들은 죽은 가족을 다시 살아난 상태에서 맞이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부활을 얻기 위해 고문을 당해도 풀려나기를 거절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으로 맞았으며 사슬에 묶여 갇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돌로 맞기도 하고 시험을 당하며 톱으로 몸이 잘리거나 칼날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옷을 삼아 두르고 다녔으며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고 온갖 학대를 받았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찾아다니며 지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여러가지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그들이 완전해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히 11:35-40)
다음은 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당한 고난의 목록입니다.
  • 그들은 고문을 당하고 석방이 거절되었습니다.
  • 그들은 조롱받고 채찍을 맞았습니다.
  • 그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 그들은 톱으로 두 조각으로 썰어졌습니다.
  • 그들은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 그들은 사막에서 방황하였습니다.
  • 그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 그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앞서가신 이들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더러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신약의 박해
1) 박해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위한 우리 부르심의 일부분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르실 때 그 분의 이름을 위해 고통을 받도록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한 초청장을 주실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눅 9:23, 24)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인을 따르려고 결심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고난과 박해를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제자도의 기본 요구사항입니다.  

2) 박해는 크리스천 사역자가 되려는 우리 소명의 일부분입니다. 박해로 인해 받게 되는 크리스천의 고난은 제자로서의 부르심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선교의 부르심에도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직전 마지막 무대에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을 “순교자”로 부르셨습니다. (요 21:18-19) 사랑받던 제자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이 진리는 나아가 사도 바울이 받은 부르심에도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도록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그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내가 그에게 보이겠다.'” (행 9:15-16)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서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에 그가 당할 고난을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3) 바울의 개종이전에 스테반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스테반의 순교가 바울의 개종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울은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던 중 스테반을 죽이는 결정에 일부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테반의 영광스런 죽음은 바울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는 그 사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스테반이 있었기에 바울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래와 같이 말씀하실 때 이미 가르치신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 12:24)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성서에는 “번영” 교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그의 사람들을 축복하실때 이 축복은 크리스천을 고난으로부터 보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균형잡힌 크리스천 가르침은 고난 가운데 즐거워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같은 성서의 가르침은 새 신자들이 박해를 받게 될 때 중요한 것 입니다. 

4) 박해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에 대해 분명하고 자세히 가르치셨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할 때에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전의 예언자들도 이런 핍박을 받았다.” (마 5:10-12)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 믿음을 인하여 고난을 받아야 함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서는 말씀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뒤따라갔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 때문에 슬퍼하며 우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몸을 돌이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 앞으로 사람들이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 하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높은 산을 향해 '우리 위에 무너져라.' 할 것이며 낮은 산을 향해 '우리를 덮어라.' 할 것이다. 푸른 나무와 같은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데 마른 나무와 같은 너희 유대인들이야 무슨 일인들 당하지 않겠느냐?'” (눅 23:27-31)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시는 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으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더 많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박해: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을 열거한 후 저자는 믿음의 가장 크신 영웅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히 12:1, 2) 그리고 저자는 어떻게 주님이 미래가 당신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고난을 겪으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과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에게 어떻게 우리가 주 예수와 그의 고통들을 고려해야만 하는 가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죄인들의 이런 증오를 몸소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오.” (히 12:3)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53장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의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사 53:3-6)

왜 박해를?
인도에서 크리스천이 힌두 과격주의자들의 반대와 박해를 받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이유들을 살펴보고 그런 다음 부정적 이유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들의 가치관의 갈등입니다.: 크리스천 신앙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나누는 고유한 속성을 갖고 있고 그 속성은 곧 사람들을 개종하도록 초청하거나 개종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는 자신의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들을 개종시키는 일에 관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초기 사도들이 박해를 받고 예수님에 관하여 말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받았을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전파는 아래와 같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주님에 대한 복종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18-19)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그를 따르기로 한 결단은 사람들을 개종으로 인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나누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종은 우리 크리스천의 신앙이자 실천의 일부분입니다. 

존 스토트는 박해에 대해 “두 개의 융화할 수 없는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또한 마태복음 5:10-12절에 기초하여 어떻게 크리스천들이 박해를 직면해야만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자처럼 보복하거나 어린아이처럼 쌜쭉대거나 개처럼 자기연민에 빠져 상처를 핥고 있거나 금욕주의자처럼 암울하게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즐거운 척하는 가학주의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언제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기뻐해야만 함으로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도 ‘너무 기뻐 펄쩍 뛸 정도로’ 기뻐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지상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면 하늘에서 모든 것을 상급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박해는 진품의 증표이며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는 증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전은 박해의 결과로 오는 개종입니다. 힌두든 무슬림이든 우리의 비신자 친구들이 왜 자신들을 개종시키려고 묻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질문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또한 복음을 나누고 다른 이들을 개종하는 신앙이라는 것을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의 일부라 할지라도 다른이 들에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진리의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계속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동료들과 복음을 나누는 일이 계속되는 한, 개종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2. 이것은 사회 문화적 문제입니다.: 힌두 과격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 낙후되고 무지한 부족과 달릿뜨의 신분이 상승되어 힌두 상위 카스트 엘리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꼴을 못 봅니다. 지난 2천년동안, 특별히 지난 300년 동안 기독교 선교사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종족과 달릿뜨 공동체를 교육시키고 계몽시켜서 이들이 고양되고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여 사회 경제적 성장을 증대하도록 하는데 그 노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힌두 인민당(BJP), 국가자원봉사단(RSS), 세계 힌두평의회(VHP), 하누만의 군대(BD)로 대표되는 힌두 가족협회(SP)들은 이런 성장을 원하지 않습니다. 

에베 순더르 라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해의 도구는 예속된 대다수 공동체들의 자기 정체성을 깨닫게하고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권리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힌두 상위 카스트들은 이것을 국가 체재를 전복하는 반국가적인 일, 즉 크리스천들, 자발적인 사회 조직, 세속적인 폭력과 지식계급으로 간주하고 비판과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3. 이것은 경제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크리스천 선교의 노력은 부족과 또 다른 후진 공동체들의 경제 상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농노였지만 지금은 농노로서 일하는 것을 거절할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성장을  본질적인 속성으로 갖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내적으로 변화되면 외적인 삶도 변화되고 이것은 종종 사회 경제적인 발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세기 동안 이 불쌍한 사람들을 억압해 온 힌두 상위 카스트들의 화나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힌두 가족협회의 후원을 받는 무장단체들을 지원하는 부유한 지주들입니다.

개종의 문제는 단지 변명거리이며 박해의 진정한 이유가 아닙니다. 주된 이유는 힌두 상위 카스트 지주들이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그대로 농노 또는 경제적으로 노예 상태로 붙들어 두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기독교 선교 사역을 반대하고 복음전파자와 선교사들을 박해합니다. 

에베 순더르 라즈는 그의 글에서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개종의 쟁점은 기독교 교육기관을 공격하는 것을 은폐시키고 소위 재개종을 통해 힌두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부족들을 힌두화시키는데 있습니다.” 

4. 힌두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정치적인 파워 게임입니다. 힌두가족협회의 정치담당인 인도인민당(BJP) 항상 종교를 표를 확보하고 나아가 권력을 얻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이것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90년 아드바니가 ‘힌두다움’의 이념을 그의 정치 선전도구로 사용했을 때 이것이 먹혀들었습니다. 다수 힌두 인구는 그릇 인도되었으며 힌두다움 이념에 표를 던졌습니다. 결백한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정치 파워 게임의 희생양이 되어 박해를 받았습니다. 힌두 신문의 논설은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 공동체주의자들에 의해 촉발된 소수자(무슬림과 기독교)를 대적하는 폭력은 정치적인 동원을 위한 계획된 전략이었다.”

5. 크리스천들은 무슬림이나 시크에 비해 만만한 대상입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무슬림과 시크는 반복해서 자신들이 보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슬림 무장집단들은 힌두에 의해 자행된 모든 공격에 대해 보복을 합니다. 예를 들면 힌두 무장집단이 사주한 고드라주의 살해에 대하여 무슬림은 지금까지도 복수를 하며 죄 없는 힌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힌두는 아요디아의 모스크를 부순 것에 대한 커다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므로 힌두 무장단체들은 무슬림과 시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까지는 보복의 방법을 택하지 않는 기독교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문제이고 만 만약 박해가 지속된다면 크리스천들도 무장 체재로 전환될 수 있을 것입니다. 

6. 힌두인민당 정권이 직간접적으로 힌두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비록 힌두가족협회가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그들의 이념은 무슬림과 크리스천들을 대적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갑자기 크리스천 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게 된 것은 1998년 인도인민당이 정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것은 인도인민장 정권의 지원은 힌두 무장단체들이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도록 만들었고 특히 이것은 구즈라트와 마댜프라데쉬같은 주에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인도인민당의 주수상(현재 인도 수상-역자주) 나렌드라 모디의 주도하에 구즈라트의 박해가 가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가 일반 인도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아야만 합니다. 대다수 비신자들은 아직까지도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입니다. 그들 중의 다수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독교 신앙을 받아 들일 것입니다. 

7. 전국에 걸쳐 성공적인 복음전파와 교회 건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을 공격하는데 가담한 기관들은 인도에 기독교 교회의 성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힌두 무장단체의 일부는 그들의 조직된 연구를 통하여 인도내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구즈라트와 오릿사 두 개주에서 이것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구즈라트주의 당 지역과 오릿사 주의 카드말 지역의 조사를 통하여 기독교의 성장을 발견하였습니다. 

힌두 무장단체는 크리스천 신앙은 일반 힌두들에게 대단히 큰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부족과 하리잔(간디가 신의 아들이란 뜻으로 천민 계급을 일컫던 말-역자주)들은 힌두주의를 사랑하지 않고 신속히 기독교 신앙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잇습니다. 힌두 가족협회는 기독교는 힌두의 위협세력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힌두주의가 인도에서 조만간 소수 종교가 될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화나게 하고 그래서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이런 변화되어가는 상황속에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사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어떤 종류의 것(말과 표현)을 써야 하는가 주의해야 합니다. 최근 해외 선교단체는 그들의 이름을 ‘모든 창조 십자군’을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단체’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이름을 ‘그리스도를 위한 단체 또는 변환 단체’ 또는 다른 힌디나 지역 언어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반대와 박해를 직면할 준비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힌두 무장단체들이 우리가 어떤 이름을 쓰던 기독교 활동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힌두 무장단체들이 쓰는 방법들
1. 크리스천들을 반대하고 공격하도록 지역주민들을 선동하기: 일반 지역 주민들이 크리스천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조직적인 무장단체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엉뚱한 적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2. 지역 경찰에 위증 진술서 제출하기: 이것은 크리스천 사역자들을 괴롭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것 때문에 공격의 시기에 인근 경찰에 출두하여 그 고소에 등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경찰이 접수하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집요하게 그 고소를 등록해야만 합니다. 

3. 몇 몇 신자들을 공격함으로서 새신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기: 주된 목적은 공격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들과 선교사들은 신자들을 보호하고 용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4. 일부를 공격하거나 죽임으로서 크리스천 사역자들을 의기소침하게 하기: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을 피하기 위해 반대의 시기에 일시적으로 우리의 사역 진행속도를 둔화시켜야 합니다.  박해가 그치면 우리는 전력투구를 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차질을 받을 수 있지만 최후의 승자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박해의 결과들
  • 각자 다른 교단 선교단체가 전국적, 지역적으로 연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 카톨릭과 개신교가 지금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서로 더 깊이 이해를 하며 무장단체를 대적하고 정부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 선교 사역에 대한 더 큰 관심이 일반 신자들와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박해는 잠자는 교회를 깨웠습니다.
  • 더 강한 열정이 일선 사역자사이에 나타났습니다. 대다수의 복음전파자들과 선교사들이 도전으로서 박해를 받아들였습니다.
  • 기독교 종교가 인도의 주요 종교중의 하나로 인정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외국인 종교”가 아닙니다.
  • 인도의 일반인들이 박해에 관하여 듣고 현재 기독교 신앙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박해를 다룰 것인가?
1) 사람과 전후관계를 이해해야 하세요.:  선교사는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배경, 사회, 정치의 전후 관계를 공부해야만 합니다. 선교사는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때때로 반대는 복음을 향한 무반응의 표시입니다. 그런 상황하에서는 선교사는 좀 더 반응이 좋은 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겨야만 합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살며 그들의 확신을 얻기 위해 그들과 문화적으로 동일화 시켜야만 합니다.

2) 정부 당국자들을 존중해야 하세요.: 선교사는 마을에서 공개 집회를 갖기전에 마을의 지도자를 만나 허가를 구해야 합니다. 그는 또한 경찰을 포함한 정부 관리들을 접촉하여 공개집회에 관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박해의 시기에 관리들과 접촉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3) 새신자들에게 크리스천의 고난에 관하여 가르치세요.: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박해를 대면하도록 준비하십시오.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고난을 당해야 함을 그들로 알게 하십시오. 예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그들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4) 새신자와 고난을 기꺼이 당하십시오.: 선교사는 사람들과 고난을 함께 해야만 합니다. 선교사는 박해의 시기에 도망가기를 시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때때로 안전의 이유로 선교사 지도자 또는 목사가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항상 박해받는 사람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끊임없는 격려와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5) 대중의 문화, 종교적인 감정에 민감하세요.: 복음을 전파하면서 우리는 몰이해한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의 종교적인 감성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함으로서 오는 반대와 박해를 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진리를 말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지혜와 요령이 필요하고 사랑으로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복음의 유일성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는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감성을 상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적극적인 접근을 만들어야 합니다. 

6) 지혜롭게 대립을 피하십시오.: 반대와 핍박이 있을 때 선교사는 이를 대립으로 몰고가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소수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다수의 사람과 힌두 관료들과 대적하여 싸울 형편이 안 됩니다. 핍박이 올 때는 천천히 가는 것이 좋습니다. 겸손하게 원한을 갚고 정의가 실현되기까지 우리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7) 지역의 법을 따르십시오.: 선교사는 박해가 일어나자마자 지역 경찰에 초동보고서를 제출해야만 합니다. 조사에 있어 경찰과 정부 관료에게 협조해야만 합니다. 초동보고서를 작성하기를 거부하면 끈질기게 그것을 작성하도록 요청하고 그것이 등록되기까지 경찰에게 압박을 주어야 합니다. 

8) 대중의 지원을 받으십시오.:  선교사는 매일 물건을 구입하는 잡화상 가게의 주인, 우유 배달부, 은행원,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선생님 등 일반인들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핍박의 때 이 사람들은 우정 때문에 지원해 줄 것입니다. 몇 몇 정치관련 친구들이나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 특별히 무슬림 친구들을 확보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9) 새신자를 보호하기 위해 당하는 고난을 즐거이 감당하고 대적하십시오.: 새신자를 보호하는 것은 가장 큰 우선 순위입니다. 크리스천 사역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 댓갈 새신자들은 크리스천 사역자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들이 선교현장에서 고난을 겪을 때 서로 서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0) 기도하고 기도지원을 동원하십시오.: 일선의 선교사는 기도와 그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적, 전 세계 크리스천들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는 자신과 신자들을 주님의 손에 의탁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기도하고 “주님이 자신을 위해 싸우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모세에게 약속하셨듯이 선교사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가만히 서서 주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 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출 14:13,14)

우리의 시련은 커다란 기회입니다.
우리의 시련은 커다란 기회입니다. 너무 자주 우리는 그것들을 커다란 방해물로서 간주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모든 어려운 상황을 그 분의 사랑을 증명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길 중의 하나이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의 징조로 인정한다면 핍박은 안식의 하늘이자 말할수 없는 능력의 영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정 모든 구름은 무지개가 될 것이며 모든 산은 승천과 변형의 장소로 바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과거를 돌아본다면 우리중의 다수가 우리가 압박을 받고 사방이 막힘을 당하여 있을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친절한 일을 택하셨고 가장 부요한 일로 축복하셨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석은 종종 상복을 입은 종이 든 거친 상자로 우리에게 보내지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왕궁의 보석과 신랑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어둠속에서 그 분을 신뢰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섭리가운데서도 요동치 않는 확신을 가지고 그 분을 존중하십시오. 그러면 마치 독수리가 깃털을 새롭게 가는 것처럼 새로운 젊음과 능력이 그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오늘을 너머 볼 수 있다면,
모든 구름이 걷히고 어두움이 물러나리.
우리의 현재의 비통함으로 안달하지 않으리.
우리의 모든 슬픔은 곧 잊어버리리.
많은 기쁨이 당신과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아시는 것처럼 오늘 너머의 일을 알 수 있다면
어찌하여 가장 소중한 보배들이 사라지며 눈물을 흘려야만 하나?
어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오지 않겠는가?
어찌 칙칙한 길이 곧 밝음으로 인도되지 않겠는가?

언젠가 인생의 잘못은 시정될 것이라고 믿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핍박에 직면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
        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46:10)



profile

[레벨:97]정용섭

2015.09.03 21:43:16
*.94.91.64

인도에서 선교사로 산다는 건

박해와 순교를 실질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군요.

저자가 박해를 당하는 문제와 대처 방안을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네요.

저 책을 쓸 때의 상황보다 지금은 훨씬 좋아졌지요?

잘 읽었습니다.

profile

[레벨:25]사띠아

2015.09.04 17:57:41
*.160.132.218

작년 성탄때 정권을 잡은 힌두 과격주의자들이 두려워 일부 교회는 성탄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수도권 델리에 있는 큰 교회앞에는 무장경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것은 아직도 현재상황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70 인도의 길 델리의 사람들-서론 및 바띠아편 file [2] 2019-07-11 761
69 인도기독교사 크리스천과 민족운동 [1] 2019-06-03 400
68 인도기독교사 여성 및 아동교육의 발전과 기독교 선교단체 2019-06-03 255
67 인도기독교사 카스트 관습에 대한 기독교 선교단체의 태도 2019-06-03 438
66 인도기독교사 의료사업과 기독교 선교단체 2019-06-03 230
65 인도의 길 인도 수상 모디 청렴의 비결 file [2] 2018-10-13 693
64 인도의 길 인도인의 다양성 [2] 2017-03-14 876
63 인도의 길 우파니샤드와 붓다 [7] 2016-12-27 1976
62 인도의 길 바가바드 기따의 아들 간디 file [12] 2016-06-23 2116
61 인도의 길 인도에서 듣는 개성공단 중단소식 [6] 2016-02-16 1214
60 스탠리 존스 제8장 간디의 금식들 file [2] 2016-02-02 1725
59 인도의 길 모디가 이끌어갈 인도의 미래 file [2] 2016-01-08 1494
»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9장 반대와 핍박에 직면하기 [2] 2015-08-30 1046
57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8장 지속적인 헌신 - 2 [2] 2015-08-04 1047
56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7장 지속적인 헌신-1 [2] 2015-07-30 953
55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6장 모범적인 가정생활 [2] 2015-07-17 1308
54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5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2 [2] 2015-07-12 1146
53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4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1 2014-03-22 2603
52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3장 영성 훈련 2014-03-08 2327
51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2장 전적인 헌신 [2] 2014-02-27 2179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