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제8장 간디의 금식들

스탠리 존스 조회 수 1728 추천 수 0 2016.02.02 1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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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12쪽정도로 깁니다. 갈무리해서 읽으세요.


간디를 알려고 시도하는 서구인들이 가장 난색을 표하는 부분이 바로 그의 금식철학이다린리트고우경은 간디의 금식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


간디의 금식은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도덕적인 정당화가 있을 수 없다.”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하고 있다. 그러나 간디에게 있어 금식은 샤띠아그라하와 비폭력 사상을 지탱한 실천 도구이며 핵심이었다오랜 동안 간디의 금식을 상식의 도를 벗어난 이해할 수 없는 사상으로 여긴 동료들도 금식이 지성을 마비시켜버릴 만큼 놀라운 도덕적 마력을 가진 요체였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간디 스스로가 금식의 칼날이 날카롭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무차별성을 경고한 사실자체가 바로 금식 무기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하게 행해진 금식이 발휘하는 놀라운 힘을 입증한 간디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에 버금 갈 만큼 금식을 통해 가진 사상을 전반적으로 성취 해나갔다.


마하트마 간디는 도덕적 그리고 영적인 활동가였으며 금식은 여러 측면에서 탁월한 실천 전략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교도소에 간 것도 실천전략의 주요 요소 중 하나며 금식은 교도소에 가둔 권력자들의 마음과 양심을 압박하는 도덕적 힘이 되었다. 제국주의의 탐욕으로 인해 결백한 시민들이 수도 없이 무력하게 투옥되는 광경을 목도 하는 것은 참으로 애처롭고 살을 애는 듯한 아픔을 가져다준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수많은 무고한 남녀들이 수차례 기꺼이 교도소로 가야 하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관행과 사건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 모든 일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상은 간디의 실천정신을 말살하려는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제도에 대한 심판이다.


이 금식은 보다 도덕적으로 견기기 힘들고 옳지 못한 것들에 대한 한 사람의 깊은 통찰력과 주의 깊은 호소를 통해 비롯되어 진 것이다. 더불어 금식은 도덕적인 이슈를 드러내고, 한 사람의 고통 속에 결집되어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며 신속한 행동은 사람을 살리게 된다.

 

이제 문제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네가지 형태의 금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과로한 소화계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금식

이는 육체적 정화를 뜻한다. 혹자는 말한다. “우리 생명의 반은 먹는 것에 좌우되고 의사의 반은 환자들로 먹고 산다.” 금식은 우리가 먹는 양을 줄이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 중 하나다. 목적달성을 위한 가장 명백하고 단순한 방법이 금식이다. 무엇보다 건강에 아주 좋은 요소다.


2. 개인 영성 훈련의 의미로서의 금식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의 목적과 자기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금식을 했다. 절대자의 신성한 도구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절대자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좀 더 완벽한 금식을 취했다. 한 예로 힌두와 무슬림간 팽팽한 긴장과 폭동 사건으로 인해 무려 21일 동안 금식을 했다. 그러나 폭동 자체 때문에 금식하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긴장과 폭동들을 저지시킬 만한 힘이 없었던 자신에 대하여 금식을 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비협조 정책을 착수한 나는 비폭력주의에 대한 아무런 고찰 없이 다른 이들과 비협력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내자신조차 완벽하게 비폭력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만일 비폭력 사상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었다면, 오늘날 내 주변에서 격렬한 폭동을 목격하지 않았으리라. 나의 금식은 폭력이 일어나는 일에 대한 참회와도 같다. 나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내 자신을 질책할 뿐이다. 사람들에 대한 애원과 호소는 힘을 잃고 무력감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유일하게 기도를 들어 주실 절대자에게 복종하며 간구해야 해야만 한다.” 이는 절대자에게 보다 더 충성스러운 도구가 되기 위한 간디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정화를 의미하는 금식이다.


3. 도덕적, 영적인 이슈에 몰두한다는 점에서의 금식

굶주림의 시간은 목표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정신적 투쟁을 하는 동안 먹는 것을 중지한 상태를 뜻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던 놀라운 이슈도 예수 그리스도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왔다. 사십일 동안 이 이슈로 숙고하였고 그러한 끝에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가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더니 날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4:2) 주림은 어떠한 도덕적 이슈를 결정할 때 단행 되었다. 이것은 도덕적이자 영적으로 몰두 하는 가운데 취하는 금식의 형태이다.


4. 도덕적, 영적 자세의 변화를 위한 금식

이는 한 개인 또는 사람들의 도덕적, 영적 자세의 변화를 위해 우리가 취하는 금식의 형태다. 그러나 이 금식은 다소 사람들에게 정당하지 못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왜냐하면 도덕적 , 영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자들이 호전적이고 무자비한 자들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오히려 그들이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당신 자신 안에 끌어 안은 고통과 간절함의 호소로 당신이 사랑하는 그들의 도덕적 자세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잭 쁘라베쉬 체더는 말한다. 

비폭력주의자들의 주변 친구들과 이웃들 그리고 국민들이 부도덕한 삶을 포기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또한 모든 논쟁들이 결국 무익한 결론들로 치닫게 될 때 과연 비폭력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비폭력 사상을 실천하는 자(아힘사이트) 들은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결코 강제적인 변화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또한 거친 언어로 대해서도 안 된다. 가장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그들을 향한 온유하고 애정 어린 설득이다. 설득력이 어떤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비폭력 주의자들은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영적 자각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금식은 고통을 기꺼이 감내 하는 데서 더 강한 도덕적인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예라브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나는 교도소 마당에 놓인 간이 침대에 걸터앉은 그와 이 문제들을 나누었다

당신은 당신의 금식이 너무 강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렇소그는 매우 천천히 말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보였던 강압적인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매번 그 일을 생각 할 때마다 침묵하게 되는 것은 그의 말이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옳았다. 그리고 그것을 수년에 걸쳐 증명해 보였다.


나는 그의 금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이제야 깨닫고 있다. 정당하게 실행된 금식은 아주 강한 도덕적 힘을 가지며 사람을 다시 살리는 힘을 발휘 할 수 있다. 그의 금식은 항상 정당하게 행해졌으며, 결코 일관성 없는 무차별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마하트마가 금식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조언하고자 했을 때 나는 처음 이렇게 반응했다

,그 는 지금 전투에서 선제공격을 하고 있군요. 도덕적으로 비길 데 없이 뛰어나므로 오직 그만이 눈에 띨 수밖에 없는 것이로군요.”

그때 던진 말이 심술궂은 생각의 발로였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나의 태도역시 겸손하지 못했다는 것도. 그는 무차별적인 금식 사용에 대해 경고했다. 호소력 있는 금식은 금식하는 자의 살아온 삶과 섬긴 봉사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온전함과 사랑이 검증 받게 됨으로써 금식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함에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하트마는 금식하는 자들을 명령하듯 충고 하지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물론 자신도 그렇게 금식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기주의가 낳은 아무런 가치 없는 것들에 대항하여 우리는 당연히 금식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사땨그라히)은 교도소에 갇힌 자신들의 석방을 위해서나, 교도소에 있는 동안 특혜로 사면을 받게 되는 것 따위를 위해 금식해서는 안됩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마하트마는 진정한 정의 회복을 위해 금식했었는데, 이 내용은 하리잔(영인디아에 이은 간디 주필의 잡지:역자주)에 실리게 되었다. 불가촉천민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일하던 그때 금식은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는 금식이었다. 그러나 극히 사적인 권한으로 금식을 한 것이 아니라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한 모든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가 가진 특권으로 금식했다.


우리가 그의 금식들을 분석할 때 그것들은 이기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속죄의 의미를 띄고 있다

그는 말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기정화를 위해 금식을 시작했으며, 절친한 친구 딸이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위해서도 오랜 동안 금식을 했다.”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샤따그라하 투쟁에 동참했던 계약직 노동자들이 연루된 사건을 해결하고자 마하트마는 자신의 첫 공식적 금식을 시작하였다.


인도에서 첫 금식은 1918년 아메다바드의 직공들의 파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동기가 되었다. 간디가 3

동안 금식을 한 후에 방직 공장주와 직공들이 타협을 위해 찾아왔다(아메다바드의 방직 공장주와 직공들은 인도에서 가장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 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마하트마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쉬람이 강언덕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어서 1922년 폭도들이 무려 21명의 경찰들을 죽였던 차우리 차우라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금식을 했다. 19249월 고하트 폭동이 발생한 후 마하트마는 마울라마 모하메드 알리의 집에서 21일동안 금식을 했다. 그때 금식은 힌두와 무슬림의 공멸방지를 위한 기도의 형태였다


1932년에는 단체 보상제(Communal Award)에 대항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금식을 했다. 이 제도는 람사이 맥도날드 정부가 불가촉천민들을 차별적인 유권자로 구분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었다. 이 조직체가 세워진 의미는 마하트마가 언급했다시피 불가촉천민은 영원히 불가촉천민으로 남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곧 그들의 사회적 신분이 차별된 유권자로 완전히 굳혀져 버린 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이름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또한 불가촉천민들을 완전히 유권 차별자들로 고정시켜버린 힌두들의 이런 이분화 정책에 대해 불복했다뒤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그 금식은 뿌나 협정 서명을 통해 힌두들이 불가촉천민들에게 유권의 차별없이 높은 의석 수를 줌으로써 더욱 확실한 결과를 얻어내었다.


같은 해 마하트마는 감옥안에 있는 권력자들 조차 꺼려 하는 변소 청소부 일을 맡아 하기를 요청한 아빠 빠뜨와르드한과 함께 서로 마음이 통하여 금식을 했다. 목적은 변소의 청결을 위해 일하는 천민으로 분류된 청소부들이 자신들이 청소한 변소를 사용할 권리를 힌두 사회로부터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틀간의 금식이 끝나자, 권력자들이 변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19335, 자신 뿐 아니라 동료들의 육체적, 정신적 정화를 위해 21일 동안 금식을 했다. 뒤이어 1943년 사회 개혁자들이 조직한 사나타니스트(정통 힌두교도)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참회의 금식을 했다1939년 마하트마는 그가 태어난 고향 구자라트의 라지코트에서 발생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금식을 했다. 총독이 중재함으로써 화해를 조성했고 금식을 종료 시켰다


1943210일 무슬림 코쟈 공동체의 종교적 지도자인 아가 칸의 관저에 포로로 잡혀있을 때 3주간의 금식을 취했다, 이는 19428월에 발생한 폭동으로 인해 사회적 소동과 무질서를 야기시켰다는 이유로 정치범으로 붙잡혀 있던 그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 사건의 책임을 위한 금식이었다. 총독은 간디에게 책임을 물었고, 간디는 국가 지도자들을 도매금으로 붙잡아 들인 것과 타결을 위해 총독을 찾아가 면담을 신청 했지만 거부한 것에 대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가 금식을 시작하자, 정부는 그들의 손으로 그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석방할 것을 제안했다.


금식에 대해서는 나는 세가지로 나누어 언급하고자 한다.


첫번째 금식은 192512월 사바르마띠 아쉬람였고, 두 소년이 아쉬람에서 부도덕한 짓을 범했을 때이다. 그 때 그는 7일 동안 금식을 했다. 금식을 다 마칠 때 즈음 그는 소년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왜 내가 금식을 했는가? 거기에는 세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1) 처벌. 나는 쉽게 신체적 체벌 방법을 가할 수 있었다. 선생으로서 체벌할 권한이 있지만 이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신체적 체벌은 무익할 뿐더러 해롭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무관심. 나는 너희들의 운명을 멋대로 배버려 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관심은 나에게 호소력을 주지 못했다.


(3) 셋째로 사랑의 방법이었다. 너희들의 인격은 나에게 있어 거룩한 기대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의 삶, 깊은 사고, 너희들의 욕망과 충동 그리고 너희들의 부도덕한 것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자 한다만약 내가 너희들 중에 그 어떤 좋지 못한 행동 하나라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일(금식)을 해야만 하는 거지? 너희들을 처벌하는 것은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선생님들 중에 가장 선임자로써 금식으로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내 자신을 처벌하기로 했다. 그 동안 깊이 생각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나에게 확신 시킬 수 있겠니?


절망에 빠진 그 소년들에게 그는 공동체의 용서와 회복을 가르쳐 주었다. 학교의 총 책임을 맞고 있는 자의 권위로 손쉽게 용서할 수 있는 그런 게재가 아니었음에도 용서했다. 그것은 그의 피가 얼룩진 진정한 용서였다. 자신의 마음 속 깊이 그들의 죄를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함으로 속죄의 의미와 호소력으로 그들을 용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 그는 덧붙여 말한다.

"만약 나를 일컬어 인도에서 최소한의 고뇌를 가진 자라고 한다면, 그 말은 찬성이다. 그러나 만약 세상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한다면, 나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 소년들이 범한 죄와 같이 취급 해도 될 것이다. 나의 진정한 소망은 겸손한 삶을 통해 진리 되신 절대자를 가까이서 뵙는 것이다." 


자신의 보호아래 있는 어린 소년들의 죄를 자기자신 것으로 여겼던 7일동안의 금식은 간디의 생애에 있어 가장 그리스도와 근접한 기간이었다.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의 죄를 자기 것으로 여긴다는 것. 그것은 곧 십자가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해하고 계셨다.” 화해하기 위해 그는 나무에 매달려 자신의 육체 가운데 우리들의 죄 짐을 대신 지셨다. 그것은 우리 죄를 대신한 완전한 확증이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조명해 보인 마하트마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인도인 사회 개혁자(Indian Social Reformer)의 힌두 편집자는 당연한 듯이 말했다. “1세기동안 사람들과 돈의 자원으로도이루지 못한 크리스천의 사명을 마하트마는 짧은 동안 감옥 안에서 성취했다. 그 행동은 인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것은 선교사들에게는 가시와도 같은 고통스런 말이었으나 치료를 위한 고통이었다. 인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향했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그 일에 직접 힘쓰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렇다. 아마도 안개가 걷히고,” 대립이 없는 진정한 화합을 이룰 때, 겸손한 선교사들이 놓은 토대들(최소한 그들 중 몇은 사람들로 십자가에 관심을 갖게 한) 위에 쌓은 모든 인내의 수고를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라지코트 사태를 종결 시켰던 금식은 나를 놀라게 한 또 다른 금식중 하나였다. 마하트마는 그 지역에 민주정치 개혁 봉기를 위해 금식했다. 금식 중반에 그는 중재를 나선 총독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그리고 대법원장은 미히트마가 민주정치 개혁을 원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재판을 재정하였다. 그 금식은 거의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런던의 뉴스 크로니컬(News Chronicle)단순히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무저항 주의로 이룬 놀라운 승리다라고 기술함으로써 그 사건의 타결을 언급했다. 그것은 간디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너무도 민감한 그의 도덕적 본성은 그가 그의 사상과 혼합되어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금식을 취했다. 그의 금식은 지배자 앞에 도덕적 호소였다. 그리고 그는 중재를 나선 총독에게 애원을 했다. 그것은 법을 벗어난 행위였다. 이것에 대해 라지코트의 총리는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말했다. “당신은 여전히 그 재판에 매달리고 있소. 그 점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오”. 결국 마하트마는 그 재판을 포기했고 총독과 대법원장에게 심려를 끼친것에 대해 사과를 표했다. 그리고 재판이 없을 경우 사람들에게 항복하도록 총리에게 부탁했다.


나는 나의 실수를 인정한다. 금식이 끝나 갈 무렵 나는 이 금식이 이전에 취했던 금식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성공적인 성취 감을 안겨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폭력과 압제정치에 나의 금식이 큰 오점을 남겼음을 깨닫는다. 도덕적으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나의 금식은 반드시 타쿨 사힙(지배자) 에게 전달되어졌어야 했고, 만약 내가 그들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면 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그의 동지들에게 반대적인 취지에 입각하여 말한다.

 

그들 중 대다수는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아힘사에 대한 나의 요지는 사실 새로운 것이다. 그들은 내가 회개해야만 하는 아무런 결점이 없다고 여긴다. 내가 후견인으로 대우 받을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두려움과 염려들이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정화 실천운동, 모든 담대한 유산, 나아가서 사람들의 사회적 운동의 정신적인 힘에 대해서 거듭 촉구했다


간디의 나이든 누나는 그가 재판에서 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당황하였다. “말씀하세요 누님.” 간디는 말했다. “한 사람의 실수에 대한 고백 속에는 실패란 없는 법이오그 고백 자체가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확신만이 확신을 낳을 수 있다. 나는 내자신의 확신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잃었던 힘을 회복했다. 나의 고백을 통해 아힘사가 더 밝게 타오른 주권적인 능력 안에서의 나의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1939517일 하리잔)

우리는 오랜 고통의 시기의 끝에 서 있는, 그리고 고통을 통하여 승리를 거두고도, 기대했던 그 목적이 오점을 남겼다는 이유 때문에 과감히 그의 승리를 포기한 이 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영국의 한 기사는 말했다. “그의 수동적인 사상은 권력적인 정치와는 대조를 이루는 아주 흥미로운 이슈다.” 권력 정치 안에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결국 당신 이 갖고 있는 지배권의 종국이다. 그러나 간디의 그 유례없는 사상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결과 보다는 목적에 대한 계획과 동기를 더 중히 여겼다. 그는 만약 당신이 옳은 계획을 잘 이루어가면 당신은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의 한 거대한 사업체 경영 간부가 서비스 동호회들에게 순회하며 연설하고 있다.

옳고 바르게 행하라. 그러면 항상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다. 도덕적 존재 가치는 오직 자체로 보증할 수 있다.” 

그러나 마하트마는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반복해서 연습 했으며 승리가 눈앞에 보일 때 까지 그것을 훈련했다. 이것은 영혼의 목욕을 한 후에 당신이 느끼게 되는 도덕적 상쾌함의 극치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여기 인도 도시의 창가에 앉아있다. 그리고 높게 치솟아 있는 가파른 감옥의 담장이 앞에 놓여 있다. 감시 경찰들이 밤 낮 없이 누비고 다닌다. 감옥 내부에서는 사람들을 강제로 선하게 개조 시키는 일을 꾀하고 있다. 그것은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아주 값비싼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75%가 결국 나갔다 다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헛수고다. 그들은 고통을 줌으로써 그들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하트마는 자신이 몸소 고통을 수반함으로써 그들을 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금식을 통한 마하트마의 강압적인 실천에 쇼크를 받은 척 하고 있는 모든 이기적인 문명의 형태로부터 여전히 우리는 탄압과 압제를 배우고 있다. 그것은 강압적인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가 불순종함으로 상처를 입은 곳에서 도덕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강하게 바로 잡으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강권적으로 우리들을 다시 살리시고 새롭게 하심이다. 그래서 간디의 금식은 사람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있었다. 단 한번의 금식에서도 끝까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을 얻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선한 것들로 갑옷을 두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독창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가지 의문점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금식이 정치적 공갈과 폭력이라고 말했던 총독 린릿트 경의 말이다. 그것은 19428월에 있었던 폭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금식을 마쳤을 때이다. 이것에 대해 마하트마는 말한다.


"정치적인 공갈의 형태라는 당신의 그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 쪽에서 볼 때 내가 정의를 위해 당신으로부터 확실히 패배를 당한 것은 대법원에 하나의 호소거리가 되었소. 만약 내가 그 고통스런 시련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나는 나의 결백 가득한 신념으로 법정에 설 것입니다. 후손들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지배권자의 대리인이 되어 당신과 나 사이를 심판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금식을 통해 나라와 인류를 위해 공헌하려 애쓴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추대 하게 될 것입니다.”(194327일자 편지)


만약 어느 누군가가 독립을 위한 인도인들의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간주하고 정치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 금식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정당치 않는 그릇된 일이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간디가 했던 탁월한 도덕적, 영적 투쟁으로 그 투쟁을 이해한다면, 그 의미는 훌륭한 것으로 사용되어질 뿐 아니라 가장 극찬할 만하고 깨끗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인류역사의 시종을 살펴볼 때 한 나라로 존재 한다는 것은 그 국가가 폭력을 거부해 왔고 국가 자체가 고통을 끊임없이 고통을 수반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비록 목적한 것을 잃었을지라도 승리의 방법을 얻었다면 승리한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할 지라도 결국 그 영향력은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당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매우 고귀한 것이라면 당신은 고귀한 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10:5-6)


만약 누군가 당신이 빈 평안을 받는다면 잘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받지 않는다면 당신이 빈 평안은 당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당신은 평안을 축복하였으므로 당신은 누구보다도 평강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는 그가 취한 수많은 금식들 중 한 금식을 마쳤을 때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나는 승리한다 그러므로 나는 끝까지 승리한다.” 비록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깊은 철학이 있었다. 우리는 태어 날 때부터 늘 습관처럼 나눠주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주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미워하게 되면 우리는 증오에 찬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하트마는 그의 그의 금식들을 통해 사람들을 속죄의 선한의지를 주었고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마침내 선한 의지의 사람, 마하트마, 위대한 영혼의 사람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인생의 절정에서 했던 마지막 두 번의 금식은 방법에 있어서 매우 거대한 영향력을 주었으며 그리고 가장 분명한 것이었다. 캘커타와 델리 두 장소에서 그는 기적을 이루어 냈다. 나는 금식 전에 바로 그 두 장소에 있었다. 캘커타에 있는 내 방에서 죽음의 기운이 가득 뒤덮인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도시는 폭동이 남기고 간 증오의 상처로 곪아있었다. 정기적으로 언론들은 계속해서 그 폭동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마하트마는 캘커타가 결전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 인도의 미래가 이런 상황에 묶여 있었다. 그것도 인도의 최고의 도시가


간디는 폭동이 일어난 그 지역의 중앙에 매우 가까운 한 무슬림 집에 머물고 있었다그곳에서 일어났던 폭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힌두들은 전 무슬림 수상 수라와디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곳에 간디가 와서 머물고 있으므로 그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시민들 일부는 수라와디가 동석할 때는 거침없이 돌을 던졌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간디가 힌두들이 역행하듯 죄를 범하는 장소에는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을 던졌다. 돌덩이가 날아오는 한복판을 간디는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시민들을 향해 말했다.


내 시체를 가져가기 전에는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마하트마를 향하여 빗발쳤던 돌 세례는 결국 그를 죽이느니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라고 울부짖던 한 경찰관에 의해 멈췄다. 그의 외침은 마하트마 앞에서 폭발하는듯한 시민들의 분노가 일순 가라앉고 그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대리인들이 나서야 할 것이 제안되었다대표자로 나선 불 같은 젊은이들이 왔는데, 그들은 논쟁을 하며 마하트마에게 참으로 극악한 자들처럼 날뛰었다. 그러나 그들은 승복하듯 떨어져 나갔고 결국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마하트마가 옳다.” 거기 모인 대표단들의 고백이었다그 논쟁에 대해 물었을 때 간디는 그들이 반복했던 마하트마가 옳다.”라는 말을 사용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혈기 왕성한 젊은 대표단들의 무리는 같은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은 변화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고통 받았던 잔악성을 마하트마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상처를 붕대로 싸맨 힌두를 데리고 와서 보였다. 마하트마는 붕대를 벗기고 그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그 사건이 진행되는 내내 붕대에 감겨져 있었다. 마하트마의 초자연적인 통찰력과 도덕적 관용은 그들의 얼버무리는 논쟁과 문자 그대로 위선에 찬 모습들을 과감히 벗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마하트마는 그들의 만약 그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죽기까지 금식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정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72시간이 지나자 그 두 진영의 사람들이 왔다. 그리고 같이 할 수 없는 그들의 각각의 공동체와 삶을 보장해 주는 조건에 동의 했다. 이것은 주 장관의 지시아래 이루어졌다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람들이 폭동 때 사용했던 무기들, 칼자루에서부터 총따위들을 마하트마의 발 앞에 다 가져와 내려 놓았다는 것이다.


그 모든 상황은 하룻밤사이에 완전히 바뀌었다. 평화가 서서히 쓰라린 사람들의 가슴속에 젖어들었다. 그 당시 군 총독이었던 마운트배튼경은 이 기적적인 상황에 관련해 잘 단련된 5만의 군사병력도 해내지 못한 일은 마하트마가 해냈다. 그는 평화를 안겨다 주었다. 그는 폭력을 일망타진한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그리고 끝이 났다. 어림잡아 2년의 세월이 흘러 캘커타는 평화의 도시가 되었고, 마하트마의 영적인 힘에 의해 승리를 얻게 되었다.


캘커타의 투쟁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나 델리의 투쟁은 더 대단했다.

19481월 내가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소리는 "당신은 지금 시민 전쟁의 한가운데 있습니다.”였다. 그 당시 싸움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엄청난 긴장감이 나돌았다.


델리는 인도의 공동체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중심부였다. 도시는 참으로 짐스러운, 증오로 가득찬 고통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간디는 이 증오스러운 죄악의 구렁텅이와 인도 전체를 더럽히는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졸업인 협회(Graduates Association)거리의 청소부가 되라.”고 통보한 것처럼 인도의 수도를 청소하기 위해 스스로 청소부가 되었다. 그는 델리에서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죽을" 결심을 했다. 둘 다 해야 하는 경우로 판명되었다. 그는 힌두들과 무슬림의 협정을 극구 성립시키기 위해 8가지 핵심요소를 고안하여 작성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죽기까지 금식을 자초했을 것이다.


8가지 핵심요소는 모두 무슬림들에게 호의적인 것이었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카와쟈 박티야의 영묘에서 매년 있는 공진회를 마땅히 짧게라도, 행사를 열고 그리고 무슬림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2. 최근의 폭동 후 힌두 사원이나 주택지로 바뀌어 버린 델리의 117개의 무슬림 사원이 특별 지역에 있는 비 무슬림에 의해 무슬림 사원으로 다시 복구 되어야 한다.

3. 무슬림들이 이전에 주요하게 분포되어있는 무슬림 지역인 캐롤박, 섭지 만디 그리고 빠르간지 등에 아무런 위험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

4. 힌두들은 파키스탄으로 강제 이동된 무슬림들이 만약 델리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하게 될 때 그들이 돌아오는 데 있어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

5. 무슬림들이 아무런 위험 없이 철도여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

6. 무슬림에 대한 경제적 불매동맹이 없어야 한다.

7. 델리의 무슬림지구에 사는 비 무슬림과의 화해와 조화는 두 거주자들의 재량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8. 55크랙(55억루피)을 파키스탄에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


무슬림들에게는 모두 만족스러운 것이었으나 힌두에게는 분명한 부담이 되는 8개 조항을 걸고 진행하는 절대절명의 금식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무슬림과 힌두들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마하트마는 생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에 평화를 위한 도박이 있었다면, 이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힌두들이 거부하거나 우물쭈물하기라도 한다면 어찌 된단 말인가? 그는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 할 뿐이었다. “목적과 수단이 과연 옳은 것인가?”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결과는 절대자 되신 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의 방법과 목적은 과연 옳았다. 그리고 그는 민족의 가슴에 화살을 아주 똑바로 겨냥했다. 그는 도덕적 양심으로 민족의 심장을 심층부터 뒤흔들었다. 다양한 공동체의 대표들이 6일째 되는 날 모였고 평화조약에 서명을 했을때 그것은 일례적인 평화조약의 형태가 아니었다. 단지 공식적인 법 문서 효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힘을 의미했다. 새로운 정신이 인도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인도에는 평화가 임했다. 당신이 그 평화의 기운을 느끼고 알고 있듯이, 그것은 완전한 휴전을 의미한다. 이제 인도에는 실제적인 평화의 분위기가 흐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장 병력들이 가할 수 있는 육체적인 억압과 압력 그리고 여러 회담과 압박의 기운이 맴도는 협약, 설득하는 언변으로 짓누르는 위압적인 모든 연설들 이 모든 것으로도 해내지 못했던 것을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두 번의 금식을 통해 이루어 냈다. 그는 모두에게 평화를 안겨 주었다. 그것도 인도의 가장자리가 아닌 심장부에 위치한 캘커타와 델리에서 말이다. 인도의 미래를 위한 전쟁을 그 두 곳에서 치룰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 지역은 동 파키스탄 국경선에 위치하고 있고 다른 한 지역은 서 파키스탄 접경부근에 있기 때문이었다그 두 곳은 인도의 미래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를 끌어 안고 있는 지역이었다위엄에 찬 노병은 평화를 위해 79세의 나이로 마지막 생애에 장대한 두 전쟁터(성령과 육체의 선한싸움)에서 싸웠다. 그는 또 다른 위엄찬 노병으로서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나의 갈 길 다 마치기까지


이 두 전투는 그의 삶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가치였다그리고 그가 살아있을 때 그 두 투쟁을 위하여 한 사람의 순교자로 죽는 것 외에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았다. 그의 순교자 정신은 그의 생의 모든 투쟁에 영예를 안겨 주었고 확증을 부여하였다악과 병폐, 그것은 그가 그의 긴 생애전체를 두고 싸워야 했던 것이었고, 그의 삶을 통해 싸워야 했던 전적인 일들이 그를 순교자로 만든 것보다 더한 반전은 결코 없었다. 결국 그는 악을 그의 노예로 만들었다. 그것은 탁월한 승리였고 완전한 힘이었다.


감옥 너머 흙과 바위더미로 쌓아올린 요새가 보이는 인도의 벨라리에서 나는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 요새는 바위들을 사면으로 꼭대기까지 쌓아 올려있다. 그것은 마치 인도의 주권을 위해 투쟁했던 긴긴 세월의 역사를 묘사 있는 듯하다. 한 힌두 왕이 처음 패권을 잡았고 그리고 그는 다른 힌두 왕에게 공격당하고, 그는 무슬림 정복자인 하이데르 알리 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와서 그를 도왔다. 그는 강행군으로 와서 모든 포위 세력을 풀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소유 삼아 점령하고 말았다. 프랑스 공병대가 그 성을 견고하게 쌓는데 그를 도왔다.


그 이후, 영국군이 들어와 하이데르 알리와 티뿌 술탄을 패배 시킨 후 그 성을 차지 했다. 세계대전 동안 거대한 “V”마크는 그 성벽 위에 그려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전 도시가 알리스의 세력을 입증하듯 그들의 충성심의 상징인 “V”자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V”자는 지워지고, 중앙의 아쇼카 전륜이 그려진 새 인도, 간디의 인도의 깃발인 3색기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군사력은 교체되고 다른 세력에 소멸되며, 또 그 세력은 다른 세력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리고 비폭력의 방법이 쇠퇴한 성을 새롭게 세움으로써 결국 인도는 독립의 깃발을 쟁취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와도 같은 것인가? 이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살아 남게 하는 가장 막강한 힘, 진리와 비폭력의 힘, 그리고 대의를 위해 고통을 참아내는 정신적인 능력인가?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진리와 비폭력에 대한 의문이 십자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방어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26:52)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누구도 제외 없이 모두라는 사실이다역사가 그것을 하나의 계속되는 고통으로 확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사실이고 또한 그 누구도 예외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폭력의 결과였다.


나아가서 진리에 대한 화제의 문제로 이를 위하여 내가 세상에 왔나니 곧 이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8:37)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빌라도는 냉소적으로 묻기를 진리가 무엇이나?”였다. 그는 오로지 힘과 군사력에 흥미를 갖고 있었을 뿐 진리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진리에 대한 뜻을 포기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진리를 증언 했던 그 사람(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진리를 위한 그 비폭력주의의 증인을 매장했다. 다시 살아난 그는 빌라도의 왕국을 포함해서 살육과 공포가 깔려 폐허가 된 왕국들의 땅 한복판을 거닐고 계신다. 그리고 파멸에 놓인, 스스로 파멸을 자처한 그 땅들을 위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신다. 옛 것은 좌절되고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도 부서져 나가고 있다. 이미 우리의 교훈을 통해 배우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두 가지 놀라운 손을 갖고 계시다. 은혜의 손과 심판의 손이다. 만약 우리가 은혜의 손에 붙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판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심판의 손, 그 어려운 것을 우리가 기필코 다시 잡아야만 하는가?


간디는 과연 우리의 마지막 경고의 대상인가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외침의 대상인가?

간디는 세상을 십자가로 향하도록 부르고 있다. 비 기독교인들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그들이 활동하며 편집해서 매일 발매되는 간행본 The Pioneer가 델리 금식이 끝나고 서둘러 시사풍자 만화에 힌두와 무슬림의 무릎 위에 있는 간디를 묘사했고, 그리고 높이 솟은 십자가 뒤로 피어 오른 무지개를 표현했던 것으로 보아 그것은 일시적이고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가 현세에 부딪친 문제들을 십자가를 적용시키고 있다고 여겼다. 하이드라바드의 무슬림 도시에서 마하트마 간디의 죽음은 힌두들과 무슬림들이 행렬 수송차로 그의 화환 사진을 십자가와 함께 그 위에 매달고 행렬 수송차로 운반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어떠한 연결 점을 찾았고, 그리고 십자가의 힘을 보았다.


이 힘은 마하트마와 같은 위대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 어디서든 그 힘이 실제로 사용되어질 때 운동력을 발한다. 총명하고 재능있는 한 인도 소녀가 서양에 가서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접하고 익히고 얻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술 마시는 습관까지. 모든 것이 그녀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마하트마의 제자이고 의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바뀌기까지 금식을 시작했다. 그녀는 달라졌다 그리고 안전하게 예전으로 돌아왔다.이에 대해 그녀는 나의 친구에게 "누군가 나를 구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한 영향력 있는 방법이다. 누군가 그들의 삶 속에서 그 방법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배워서 사용할 때 그것은 곧 그들의 사랑하는 자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보다 널리 효과적으로 쓰여지게 될 것이다.


내가 참석한 모임 중에 누군가 일어나 독재자들의 전성기 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푸른 셔츠를 입은 드 볼레라

쫓기어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네

갈색 셔츠를 입은 히틀러

추락의 길로 달리고 있네

검은 셔츠를 입은 무솔리니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네

이 세가지 모든 찬사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마하트마 간디를 위하여

 

그것은 참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서양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몇번이고 되풀이 해서 나는 청중들에게 말해야 옳았을 것이다 "간디를 비웃지 마시오, 그는 그의 나라의 아버지가 될 것이요 마치 워싱턴이 우리나라의 아버지인 것처럼 말이요”.


나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를 위한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간디가 그의 민족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인류역사상 새 시대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짧은 몇 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되었던 그 시의 구절들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은 말을 타고 인류의 거대한 사건들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으로서의 고정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눈 깜짝 할 사이 지나는 세월 속에 그들 셋 모두 역시 사라져 버린 존재들이다. 무솔리니 그리고 히틀러는 그들이 세운 왕국의 거친 돌 틈바구니에서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맞이한 자들이다. 드 볼레라는 비교적 유순한 성격의 소유자 였기에 그의 말년은 길었다.그러나 그 역시 힘의 세력에 의해 사라진 존재다.

 

오로지 간디만이 그들과는 달리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웠고, 그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더 나아가서 그의 명성은 온 세계에 알려졌다. 최근 공식적인 모임에서 시험장 감독인 한 영국 판사는 마하트마 간디의 죽음 만큼 전 세계를 뒤 흔들어 놓을 만한 놀라운 사건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고 말하였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 거들어 했다  나 또한 그와 같은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무슨 일인가? 그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왜 그 작은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와 같이 뒤집혀 진동하고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아무런 전율 없이 우리가 수년동안 전세계를 뒤흔든 이 사건으로 요동하고 있단 말인가? 어찌 된 영문인가? 그것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인도를 다시 그리고 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우리는 간디의 삶과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교훈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은 간디기념관에 있는 간디의 일생을 그린 벽화의 일부분으로서 2016.1.16일촬영했습니다.


profile

[레벨:97]정용섭

2016.02.02 22:00:53
*.94.91.64

스텐리 존스의 눈으로 간디를 보니

더 새롭게 다가오는군요.

그것은 예수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보였던 강압적인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오

간디가 저런 말을 했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간디는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예수를 더 깊이 이해했군요.

간디를 잘 이해하려면 인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스텐리 존스의 말도 인상 깊네요.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글이군요.

profile

[레벨:25]사띠아

2016.02.10 19:29:27
*.160.132.218

아쉬시 난디라는 인도 심리학자가 쓴 '친밀한 적'이라는 책에서는

간디가 사띠아그라하라는 영국 항쟁운동을 진행해가는 동안

영국의 중류층 기독교인들의 덕을 많이 본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디 자신도 인도의 아힘사(불살생) 교리도 있었지만

산상수훈으로 인하여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간디같이

부분적이지만 매순간 확신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아직도 저는 삼위일체의 신비와

윤회와 업(業)과 중도의 길 언저리에서

청동거울을 닦고 닦아 비추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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