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봉곡교회 주일예배는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바다였다.

12년 6개월 동안 담임하셨던 목사님의 고별예배였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에 교우들은 물론 온 동네가 슬퍼했다.


목사님 부부에게는 첫 담임 목회지였고, 젊음을 바친 사역지였으며,

4살, 5살, 그리고 뱃속의 아기로 이곳에 온 세 자녀들에게는 풍성한 유년을 선물한 이 지역을

 지난 주일 예배를 마지막으로 떠났다.

한 사람의 삶의 자리는 떠날 때 비로소 명징하게 드러나는 걸까.

우리 부부와는 같이 지낸 시간이 짧지만 긴 세월을 함께 한 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곳에서 그간 목사님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가늠이 된다.


지난 주일 예배는 목사님이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들과 동네 할머니들까지 합석해

예배당이 가득 찼다.

예배가 낯선 할머니들이  조심스럽게  "오늘 교회 가도 되요...? :하고 물어오셨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사는 게 무료하고 지겹다는 교회 밖의 노인들의 얘기를  듣고 목사님이 설립하게 된 행복 학교에서

목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가며

한글을 깨우치고 산수를 익히고 노래와 수영을 배우는 노인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쌀자루를 들고, 또는 손수 농사지은 콩을 선물로 가지고 교회에 오셨다.

만 3년을 함께 지낸 우리 부부도 이렇게 아쉬운데 12년 넘는 세월을 함께 한 그분들이야 ...


우리 부부가 이 동네에 정을 붙인 것도 봉곡교회와 목사님 사모님의 덕이 컸다.

김치공장을 나와야 했을 때, 셋집을 알선해 주신 분도, 목사님이셨고

 교인들과 함께 손수 이사짐을 날라주셨다.

헌 집에서 건져 온 흙 묻은 마룻장을 닦아주시던 기억, 비좁은 닭장 속에 들어가 알 낳는 상자를 집어 넣어주시던 모습...

근엄한 목사님의 모습을 벗어던진 이웃같이 친근한 모습이었다.

친구같이 다정했고 소박했던 사모님은 눈이 유난히 맑은 분이었다.

나이가 한참 아래였지만 정말 내가 본 사모님 중 단연 최고였다!

교인을 아우르는 따뜻함이라든지,  주일학교  교사로, 매주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온 교우들의 생일을 챙기고,...

성가대로, 힘든 내색없이 목회를 돕는 걸 보면서

정말 우리목사님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싶을 정도였다.

특히 성가대 소프라노 파트의 메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모님이 없는 성가대를 상상할 수 없다.

그런 목사님과 사모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 팔이 뚝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은퇴할 때까지, 아니 은퇴 후에도 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 세상과의 작별도 이렇게 느닷없이 올 것 같다.

옆에 있는 인연들을 소중히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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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렵게 교회건축까지  하시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예쁜 교회당을 완성해 놓고 떠나시다니...!

예배시간에 성가대는 목사님을 위한 축복송을 준비했는데 목이 메어 애써 연습한 곡이 엉망이 되었다.

12년 6개월의 세월을 담은 동영상이 성가와 함께 나가서 망정이지 ...


떠나는  목사님 사모님께, 주일학교 아이들을 포함한 전 교인들의 편지를 화일에 담아 감사패와 함께 드렸다.

목사님 사모님과 일일히 포옹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며 울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한동안 교회 뜰에서, 성가대에서, 또 교회 밖에서, 마주치던 두 분의 미소가 그리울 것이다.

목회사역이 거창한 신학적 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신실한 삶인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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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목사님을 따라  몇몇 교우들과 함께 다녀왔다.

완주에 있는 교회인데

예배당도 우리 교회보다 더 크고 안정되 보여 그나마 위로가 된다.

부디 그곳에서 목사님 사모님께서 의연하게 흔들림 없는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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