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1.일


아침.

주일이다. 티비로 전해 듣는 바깥세상은 코로나19로 비상이다.

전염병이 점점 더 큰 불안을 야기하고 사람들 발을 묶어놓은 것이다.

주일예배도 폐쇄되었다고 한다. 병원의 종교실도 이미 닫힌지 오래다.

친구들은 사는 게 사는게 아니라는 위트성 문자를 보내오고.. 

갇힌 느낌이 더 한 것은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바깥세상 같아 보인다.

코로나19로 들끓는 세상을 보며, 암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을 보며  

인간문명이 가져온 그늘이 얼마나 큰 지를 실감한다.


어젯 밤 잠을 잘 잔  남편은 아침에 컨디션이 좋다.

그걸 보니 나도 가뿐하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같이 널뛰는 게 보호자의 심정이다.

소독치료가 끝나고 아침 운동 후 

머리도 감겨주고 씻을 수 있는 만큼 몸도 씻겨주었다.

 남편을 씻기며 참 여러가지 생각이 오갔다.

든든한 대상, 내 울타리, 나의 가장 큰 안식처 였던 사람을 

 아기 다루듯 씻겨주어야 하다니..

울적해야 마땅한데 참 신기하게도 묘한 기쁨이 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남편에게 챙김을 받기만 하고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심정적으로, 자잘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부부사이에서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입장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다.

 남편은 스스로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해줄 것이 별로 없고 나는 늘 받기만하고...

은근 자존심이 상한 나는 한 때 이런 질문까지 했었다.

'하느님, 저 사람과 나를 엮어주셨을 때는 

뭔가 서로 줄 게 있어서가 아니었나요?

그런데 왜 나는 받기만 하지요?  자존심 상해요! "

나도 주고 싶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었다. 오래도록...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만회할 기회를 주시다니...

 옷을 갈아 입혀주어야 하고

약을 발라주어야 하고,  몸을 씻겨야 하는 이 상태...

 남편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게 기쁘다.

" 어렸을 때 어머니 말고 당신 몸을 이렇게 씻겨 준 사람 없었지?"

"응."

순진한 아이처럼 남편이 대답한다.

그 순간 내가 속으로  씨익 자족의 미소를 지은 줄 남편은 몰랐으리라.

남편을 씻기고 나도  샤워를 한 후 모닝커피를 마셨다.

나는 차를 마시는데 옆에 있는 남편은 못 마신다.

나는 밥을 먹는데 남편은 바라보기만 한다. 

먹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혼자 먹는다는 게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게 그토록 고마운 일이었는지... 몰랐다.


오후.

창밖으로 보이는 병실 밖에는 봄기운이 감돈다.

잔잔한 휴일 오후다.

사람들이 휴게실에 나와 따사로운 햇살을 쬐며 앉아있다.

티비를 보는 이, 조는 이, 전화로 소근거리는 이...

환자복을 입은 이들은 저마다 몸 어딘가에 붕대를 감고 앉아

한결같이 무감각한 표정들이다. 병마가 이들의 감정마저 갉아먹은 듯.


따뜻한 햇살을 쬐면 왠지 회복이 빠를 것 같아서 애써 양지 쪽에 남편을 앉혔다.

그리고  잠이 든 남편 옆에서 머튼의 일기를 읽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순연하게 하느님을 따를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그러면서도 영혼의 깊은 우물을 길어낸 듯한 청량한 문장에 감동하면서...!


옆 침상의 환자가 퇴원을 한다. 며칠사이 동병상련의 정이 들었는데

축하하는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다.

병원에서는 욕망이 참 단순해진다.

완치나 그런 큰 결과보다는.

우선 먹을 수 있는 환자가 부럽고, 

퇴원하는 환자가 부럽고, 

항암을 안해도 된다는 환자가 부럽다.

 

부인은 남은 김치와 오렌지를 주고 간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거제도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한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작별을 하며 부디 거뜬히 병을 이기고 건강하게 살아가길..진심으로 기도하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는 곧 새로운 환자분으로 채워졌다. 

창원에서 온 남자분인데 몇가지 검사를 위해 혼자 입원했다.


오후가 되면서 남편의 컨디션이 곤두박질한다.

또 다시 기분 나쁜 통증이 시작된다. 마약성 진통제 투여.

그러면  잠시 후 머리부터 뜨뜻한 기운이 퍼져가면서

뾰족한 진통이 세모가 되고 둥글어지다가 무디어진단다.



밤.

병실의 밤은 일찍 온다.

8시 반 경이면 잠자리에 든다. 

입이 말라하는 남편 옆에 빨리 대령할 수 있도록 여러 장의 젖은 거즈를 준비해두고 잠을 청한다.

오늘 밤 통증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를!

보호자용 간이 침대에 누웠다.

쪽잠을 자는 것이 불편하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안락하진 않아도 자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간이 침대의 좁은 폭도 내 몸과 딱 맞는다.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밥도 잘 먹는 편이다. 남편은 물도 못 마시는데  이 무신 조화인지.. 

이 상태로라면 한달은 끄덕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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