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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하는 교회 식구가 있어 손을 보탰다..

늘 그렇듯이 김장하는 날은 가까운 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일손을 더한다.

한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들도 오시고, 귀촌한 여인들도 모여들어 시끌벅적한 게

시골의 김장철 풍경이다.

할머니들이 무우채를 써시는 동안 씻어 놓은 배추 꼬다리를 따는 일,

알타리 무를 다듬는 일, 커피와 수육을 준비하는 일 등은 젊은(?) 아낙들의 몫이다.

 

김장은 배추 맛과 양념속이 관건이다.

알맞게 속이 찬 가을 배추는 대체로 고소하다.

문제는 양념이다.

대량의 양념속을 간이 맞게 버무리는 일은 쉽지 않다

고춧가루는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마늘이나 갓, 젓갈의 양이 맞게 들어가는지 등등.

많은 양의 김치를 할 때는 동네 어르신들의 훈수가 가장 좋은 교과서다.

이 분들은 대충 눈대중만으로 다 아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김장한 햇수만 해도 베테랑이 아닌가.


-간이 어떤지 좀 봐주세요,

-시방은 좀 짭짤해야 혀, 그려야 낭중에 간이 맞는겨..

-고춧가루 더 넣어~!

-찹쌀풀이 좀 묽죠?

-아녀, 찹쌀풀이 묽어야 고춧가루가 잘 불어, 괜찮여..

이런 저런 훈수를 두시는 어르신들 옆에서 김장 짠밥이 한참 모자란

우리들은 커피도 타 드리고 수육도 삶고 뒷수발을 한다.

준비가 끝나면 함께 둘러앉아 배추 속을 넣는다.

하하호호 수다와 웃음도 같이 버무리면서. 주인장은 끼어들 틈도 없다.

그리고 푹 삶아진 수육을 갓 버무린 배추속을 얹어 싸먹었다.

고소한 노오란 배추속과 얼큰한 양념에 얹어 먹는 구수한 수육 한 점...!

김장하는 날이면 빼놓을 수 없는 별미가 아니던가.

수육의 맛에 저마다 탄성들이 터져 나온다.


절인 배추에 양념이 다 입혀지면 김치통에 차곡히 넣는다.

족히 100포기는 넘을 듯한 양이다.

후한 주인장은 커다란 김치통에 한 통씩 담아준다.

마다하지 않고 넙죽 받아왔다. 김치 냉장고에 넣으니 우리집 김장이라도 한 듯 뿌듯하다.

올해는 이웃들이 주는 김치만으로도 넉넉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서의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일만이 아니다.

어르신과 우리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이기도 하고,

그분들의 오랜 경험을 전수 받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치를 담으며 이웃의 정도 함께 주고 받는다,

그리고 이토록 실하게 배추와 무, 마늘 파 고추 등을 풍성히 내 준 하늘과 땅에

햇살과 바람과 비와 이슬에 감사하게 된다.

 

이런 김장 문화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겨울 먹거리 준비로 면면히 내려오던 우리만의 연중 행사가 김장이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해마다 겨울이 되기 전에 김장독을 묻고

수백 포기의 김치를 채워 넣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아파트가 보편화 되면서, 그리고 주문만 하면 입맛대로 배달되는 편리한 시대로 접어들면서,

집집마다 떠들썩한 한 해의 마지막 축제인 김장 풍경이 사라져 간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밭에서 배추를 뽑아 절이고 씻고 양념속을 만들어

엄청난 양의 김치를 만드는 작업이 여기서는 건재하고 있다니..., 고맙다

동시에 이런 김장 풍속도 우리 시대를 끝으로 마지막 풍경이 될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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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다 원고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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