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1)

조회 수 442 추천 수 0 2019.10.26 19:07:44

장로

장로는 교회의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자다. 그가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가 2절과 3절에 나온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라. 2)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 하지 말고 자발성으로 하라. 3)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본이 돼라. 당시에도 문제가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원과 수녀원에는 왜 그런 이들이 없겠는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항목이 재미있다. 아마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재물을 모은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그 사람이 반드시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기 때문에만 벌어지지 않는다. 선의로도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재정 장로와만 아는 비밀 계좌를 열었다고 하자. 교회가 어려움에 떨어지거나 선교할 일을 대비해서 현금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수십억, 수백억이 쌓일 수 있다. 재정 장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그 재정을 사사롭게 사용할 수 있다. ‘기꺼이하라고 말한 걸 보면 교회 지도자들은 사례비보다는 소명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세 번째 항목은 오늘에도 아주 실감 나는 이야기다. 권위주의에 떨어지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교회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자기주장에 특히 강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주장이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교만

벧전 5:5절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충고다. 사실은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이가 젊다기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인 장로와 대비되는 뜻으로 젊은이라고 한 것 같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거꾸로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주신다는 것이다. 교만과 겸손은 교양처럼 보이기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건 착각이다. 교만은 소위 원죄에 해당한다. 어거스틴은 죄를 휘브리스’(교만)이라고 규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모르 수이’(자기 사랑이라고 했다. 교만한 자의 특성이 자기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죄를 자기 집중, 자기 연민(나르시시즘)이라고 규정했다. 다 통하는 개념들이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삶의 방식, 또는 그런 기질을 가리킨다. 자기를 중심에 두기에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 심리학이나 철학은 자기에게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긍정 심리학이다. 이게 죄인 이유는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은 생명에서 소외된다. 자기를 확인하려고 재물과 사회 지위에 집중한다. 재물이 늘고 신분이 높아진다고 해서 사람이 만족하는 게 아니다. 집착할수록 공허도 비례하여 더 깊어진다. 생명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교만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순전한 기독교> 192쪽 이하에서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말한다. 그 내용은 발췌 방식으로 요약하겠다.

 

성도덕은 기독교 도덕의 중심이 아니다. 중심은 교만이다. 성적인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등은 교만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악마는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

교만은 다른 이들의 교만과 경쟁 관계에 있다. 다른 악은 우연히 경쟁적으로 되지만 교만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교만은 단순히 무언가를 더 가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옆 사람보다 더 가져야만 만족하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얻어도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람과 사람을 본다.

기독교인인데도 교만한 사람은 상상 속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기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악마를 따르는 것이다. 덜 나쁜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을 이용하기에 생기지만 교만은 지옥에서 곧장 온다. 다른 악들에 비해서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교만을 통해서 인간적인 유혹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만이라는 독재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악마는 우리를 순결하고 절제하며 용감하게 살도록 허락한다.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지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역겨운 사람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말을 하든지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예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걸쳐서 겸손한 사람이 되기 힘들 것이다. 교만이 몸에 뱄다. 무엇인 교만인지도 모른다. 교양으로 겸손을 위장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매우 곤란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18:9-14) 비유 앞에서 우리의 생각은 복잡하다. 실제로는 바리새인처럼 살고 싶어 한다. 실제로 자기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자기를 높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바리새인처럼 살면서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칭찬한 세리와 자기를 동일시한다. 기독교인의 심리가 이중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닐는지.

어떻게 실제로 겸손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다른 뾰족한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그것의 하나를 나는 앞에서 순교 영성이라고 말했다. 순교 영성을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게 좋다. 삼위일체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그 세례 의식이 반복이라 할 성찬식의 참된 의미 안으로 구도 정진으로 태도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이미 죽었기에 자기는 없고, 예수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에 지금의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인 빵과 포도주로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는 무엇이 더 우리에게 필요하겠는가. 이런 세례 영성과 성찬 영성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다. 이런 신앙 경험은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기에 우리는 순례자처럼 푯대를 향하여 천천히, 그러나 치열하게 좌고우면 없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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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하늘연어

2019.10.27 16:54:24

오늘 말씀은 골백번 읽고, 묵상하고, 통곡해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고, 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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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5]정용섭

2019.10.27 22:54:46

예, 저에게도 찔리는 구석이 많습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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