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됩니다.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리스도교 진리를 여기서 선포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바로 성전이라고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직접 통치하는 세상이기에 더는 성전이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광에 휩싸여 있기에 영광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는 마치 태양 빛 아래서 촛불을 켤 필요가 없는 거와 같습니다.
오늘의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당을 직접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말은 하지 않으나 성전 개념을 교회당에 끌어다 붙이는 건 분명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성전이라고 불러야 교회의 구심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후자에 무게를 더 두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이후로 성전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더는 하나님께 제사를 바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사를 바치는 게 아니라 예배를 드립니다. 양을 잡거나 비둘기를 잡아서 피를 뿌리는 방식으로 죄를 용서받는 게 아니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습니다. 교회당을 구약의 배경에서 설명하려면 성전(temple)보다는 회당(synagogue)이 더 어울립니다.
고전 3:16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롬 12:1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두 구절을 근거로 보면 구약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지리적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리 몸에, 우리 인격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의 태도야말로 참되고 영적이면서 합리적인 예배입니다. 교회당은 이런 영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잠시 사용한 공간일 뿐입니다.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예배도 바울이 말하는 ‘영적 예배’로서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성찬식에 함께 참여하는 현장 예배를 소홀하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만 영적인 예배의 본질만 놓치지 않는다면 온라인 예배도 오늘 시대에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 온라인 교회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는 저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신학자들과 현장 목회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