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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갑자기 눈높이에서 진한 붉은색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색깔이 보일 철이 아니기에 자세히 보니
장미 한 송이가 ‘철없이’ 피어있었다.
모든 나무와 풀이 색을 잃어가는 지금
저렇게 붉디붉은 원색을 홀로 찬란하게 펼치는 몸짓은
철없는 게 아니라
‘자신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용기’인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걸쳐서 한 잎 두 잎 껍질을 벗듯
자기의 모든 잎을 떨어내고 며칠 지난 오늘 아침
테니스장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자
반대쪽 가지에,
그러니까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방향의 가지에
이전보다 더 또렷하고 더 붉은 장미꽃이 달린 게 아닌가.
‘예기치 못한 기쁨’(C.S. 루이스)이 연달아 찾아오다니,
쓸데없는 걱정, 미움, 무시, 자랑질은 다 버려도 된다는
그분의 친절한 속삭임이다.
와! 눈이 확 맑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