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31 한 분 하나님(1)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서기관은 앞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한 분이신 그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그 하나님은 성서가 말하는 바로 그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에서 절대자로 따르는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 대상은 없습니다. 없는 것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위의 정답을 기독교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서 공동체 밖의 사람들을 모두 싸가지 없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독점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마땅한 자세가 아닙니다.
성서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이 따르는 그 신(神)도 역시 한 분 하나님의 한 모습은 아닐는지요. 그들의 신 경험이 생명 지향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생명 창조자이며,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배제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이 다원주의나 상대주의에 빠져도 좋다는 뜻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너무 협소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를 믿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구원론적 능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과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적극적인 차원과 소극적인 차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그 사건은 그를 명시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소극적인 차원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작은 자아의 구주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대답속에 그것을 펼쳐지는 꽃내음이 아닐런가 정리해 봅니다.
오늘 날씨는 조금 쌀쌀하다고 하네요.
가리운 구름 속에 따사로운 햇빛이 가끔식 비취때말다 종전의 차가움을 잠시나마 잊어 버립니다.
활기찬 하루가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