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섭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63세 서울 사는 평신도입니다.
최근에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설교비평에 관한 글과 책을 읽게되었습니다.
비평에 대한 여러 비평들을 보면서 문제 제기해주신 정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바른 교회<=>바른 목사님<=>바른 설교<=>목사님과 성도의 바른 삶...이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을 바르게 설교하는 것은 목사님들 몫이지만
바른 설교는 평신도에게는 바른 성경읽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초보적인 설교방법 용어들(=저에게는 성경읽기방법)에 대하여 여쭙고자합니다.
1. 설교는(=성경 읽을 때는)"성경 텍스트를 말해야" 한다
2. " "성경 텍스트를 해석해야" 한다.
3. " 성경텍스트를 "역사비평적으로? 읽어야"한다.
4. 설교 할 때(성경 읽을 때) "신앙의 강화와 신앙의 심화" 는 무엇을 뜻하는지..
위 4 문장,용어의 의미를 꼭 좀 알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크신 기쁨되기를 간절히빕니다.
참 감사합니다.
PS. 정목사님, 혹시 평신도의 성경읽기에 관하여 권면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용섭목사님,
바쁘실텐데 귀한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화,심화는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ㅠㅠ 사실은...
"설교할 때 성경텍스트를 말하고 해석해야한다" 이것은 겨우 알뜻말듯하구요
"성경텍스트를 "역사비평적으로"읽어야한다"는 말은 아주 모르겠습니다.ㅠㅠ
혹시라도 시간 있으시다면 때 답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최근에는 1주일째 미가서를 한권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심화의 시선에서 읽어보기 같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위기 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시선이 너무나 소중해 보이는 성경책 같습니다.
2)예, 역사비평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말은
성서 문헌이 공중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하라는 뜻입니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바울의 말을
당시의 가부장적 문화와 상관없이 읽거나,
위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바울이 충고를
당시 로마제국의 양면성을 고려하지 않고 읽으면 오해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144000이라는 숫자도 역사적 배경에서만 의미가 있지
신천지처럼 문자적으로 읽는 건 시를 신문보도로 읽는 것처럼 큰 착각이지요.
1) 세상의 감동적인 이야기와 힐링캠프에서 필요한 이야기가 설교의 주를 이루고
성경은 그것의 보조수단으로 떨어지는 잘못을 피하자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설교가 교장 선생의 훈화 수준으로 떨어지면 곤란하는 겁니다.
한걸음 님은 기독교를 진지하게 대하는 분처럼 보이는군요. 주님의 평화가....
한걸음한걸음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설교 행위와 성경 읽기는 한걸음 님이 생각하듯이 같은 작업입니다.
4번에 나오는 믿음의 '강화'와 '심화'의 차이만 설명하면 되겠지요?
두 용어를 제가 사용하긴 했지만 교회 생활 현장에서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로 겹치는 부분도 적지 않기도 하고,
이미 한쪽으로 생각이 굳어져 있으면 다른 쪽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강화는 이미 주어진 답을 실천하는 데에 집중하는 태도이고,
심화는 이미 주어진 답을 표지석 삼아 더 궁극적인 답을 찾아가는 태도입니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이 있다고 합시다.
강화는 살인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는 것이고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현상에서 볼 수 있어요.)
심화는 단지 살인 행위만 보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삶의 깊이를 찾아가는 겁니다.
(예수는 형제에게 욕하는 것마저 살인 못지 않는 잘못이라고 말씀했어요.)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신앙은 강화에 치우치는 것이며,
경제 윤리의 사회적 책임까지 뚫고 나가는 신앙은 심화라 할 수 있습니다.
압축적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강화는 신앙의 답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몰입하는 태도이고,
심화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에게 집중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를 탐색하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