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지난 호에 하소연한대로 베를린에서 꼬박 이틀간의 운전 끝에 겨우 도착한 로마에서 방을 구하지 못하고 한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일찍 간단하게 빵으로 요기하고 나폴리를 향했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힌다는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 항구는 필자가 한창 낭만을 좇던 사춘기 시절에 자주 불렀던 ‘산타 루치아’의 바로 그곳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해변로를 따라 걸었지만 전날의 피곤과 빨리 로마로 돌아가서 숙소를 잡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겹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냥 평범한, 시야가 확 트인 항구라는 느낌밖에는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주변 주택가, 시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 보니 사는 게 형편없다는 게 대번 눈에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도 역사적인 장소를 몇 군데 가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건 로마에 가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반나절 관광으로 나폴리는 끝내고 로마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로마의 볼거리를 죽 엮을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이 그곳에서 머문 시간이 겨우 2박3일 뿐이었으며, 그것마저도 사실은 주마간산 격이라 할 정도로 그곳에는 볼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유럽에 오래 있던 사람들이 주는 충고가 있다. 경치를 보려면 스위스를 제일 마지막에 보고, 고대 유적과 유물을 보려면 로마를 제일 마지막에 보라고 말이다. 그 두 나라를 보고나면 다른 유럽의 경치와 유적들은 시시해 보인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크기로만 본다면 중소도시에 불과한 로마는 시 전체가 유적과 유물이라고 해도 허튼소리가 아니다. 어디를 가나, 어디를 보나 2천년 전의 건축물과 유적지가 지천이다. 아직 건재한 것도 있지만 훨씬 많은 부분은 파손된 것들이다.
그 짧은 시간에 로마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면 결국 우리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 볼거리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미 여름에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서 독일과 스위스의 몇몇 박물관을 거친 우리는 어린 딸을 위해서 그런 것을 제외했다. 물론 우리 같은 어른들도 교양인 흉내를 내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순수한 감상을 위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는다는 건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다. 결국 우리는 로마를 대표하는 곳을 우선적으로 선정했다. 로마 교황청이 있는 베드로 성당,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 판테온, 트레비 분수가 그것들이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날(2000년10월2일, 월) 아침 베드로 성당을 제일 먼저 찾았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성인 축성식이 성당 광장에서 있었다. 그 행사가 끝날 때까지 성당출입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축성식을 구경했다. 행사 전용 자동차를 타고 집무실에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망원경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관광객들의 수다도 듣고, 광장의 진정한 주인이라 할 비둘기 떼와 둘째 딸의 노는 모습도 보면서 대략 2시간을 그렇게 보낸 것 같다. 한 가운데 높이 25.5m, 무게 350t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는 이 광장은 4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다고 한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는 284개의 원기둥이 있고, 상부에는 140개의 성인상이 서 있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훔쳐(?)온 게 아닐까 모르겠다.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이집트, 라틴 아메리카 같은 곳의 유물들을 거의 약탈하다시피 가져왔으면서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유물이 보존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맞는지 틀리는지 헷갈린다.
기원전 27년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건축된 판테온은 철근 콘크리트를 쓰지 않은 돔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고대 로마의 건축공학이 어느 정도로 발전했는가를 이 판테온 안에 들어가면 실감할 수 있다. 로마 사람들의 건축공학의 힘은 콜로세움 앞에서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72년 베스파시아누스이 황제의 명령으로 시작해서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완성된 콜로세움은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원형 경기장이다.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 없이 세웠다는 사실은 그런 공학에 문외한인 필자에게 불가사의였다. 그러나 콜로세움이 완공된 다음 3백년 이상 그 안에서 벌어진 폭력을 생각하면 이런 건축물에 대한 놀라움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검투사를 대신해서 굶주린 맹수들과 싸우거나, 심한 경우에는 염소 가죽을 덮어쓰고 맹수들의 밥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문명의 야만성을 본다. 인간은 힘을 바르게 쓸 수 없도록 ‘던져진 존재’들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죄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힘없이 사는 게 우리에게 바람직한 삶의 형태는 아닐까?
우리는 로마에서 많이 걸었다. 로마가 차를 타고 다니면서 구경할 만큼 넓은 공간이 아니기도 했지만 단지 유명한 볼거리보다는 그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 우리에게 훨씬 중요한 것을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드로 성당에서 앙겔로 성, 판테온, 트레비 분수, 크비날레 궁, 이어 스페인 광장에서 포볼로 광장까지, 그곳에서 다시 베네치아 광장으로 큰길과 골목길 가릴 것 없이 누비고 누볐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산책로는 스페인 광장에서 동편으로 그리 멀지 않은 바르베리니 광장으로부터, 이 광장 중간에 있는 트리토네 분수가 좀 유명한데, 약간 커브를 틀면서 보르게세 공원으로 올라가는 ‘베네토 거리’였다. 우리는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처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면서 그 길을 산책했다. 그곳에서 아주 평범한 로마 시민들의 일상을 보는 것이 명성이 자자한 고대 건축물을 보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로마의 제국주의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사진설명
위: 로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로마 시대의 유적, 로마 광장
아래: 스페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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