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예술과 문화는 자본을 먹고 꽃을 피우는가? 이탈리아의 화려한 중세기 문화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남부에 비해 아주 월등했던 북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이를 대표하는 도시인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가 모두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를 지나치면 이탈리아 여행의 진수를 놓치는 꼴이라는 아는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여 르네상스 예술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인 우리는 최소한 교양인으로서의 덕목을 채울 목적으로, 또한 그곳이 베네치아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2000년 10월4일(수요일) 로마에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피렌체에 가까이 이르자 알프스 산맥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높고 낮은 구릉이 많이 나타났다. 도시의 명성치고는 도로 조건이 좀 후지다는 느낌으로 마지막 고개를 넘어서자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기로 넘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의 한 도시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언덕 위에서 도시를 한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주차한 다음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 틈에 끼어 한동안 전형적인 중세 도시의 분위를 맛보았다. 피렌체의 첫 인상은 붉은 색깔의 카펫이 깔려 있는 어떤 거대한 저택의 거실을 보는 듯했다. 거의 4,5층의 높이의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채우고 있었으며, 몇 군데에 역시 붉은색 지붕의 성당 건물이 두드러져 있었다. 가까운 쪽으로 별로 크지 않은 아르노 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을 가로지르는 몇 개의 다리가 놓여있었고, 멀리 병풍 같은 산들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호텔 예약 없이 로마에 왔다가 그렇게 고생한 경험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역시 예약 없이 피렌체에 갔기 때문에 우선 숙소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곳에도 물론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장 급 여관을 골라잡았다. 이 여관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깨끗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반(半)지하로 꾸며진 식당의 분위기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열다섯 평가량의 공간에 식탁이 적절하게 배열되어 있었고, 손님들이 필요한 만큼 접시에 담아 먹을 수 있도록 빵, 커피, 주스, 과일, 요구르트 등이 한쪽 편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평범한 여관의 아침 메뉴라는 건 요란스러운 게 없다. 식탁에 둘러앉은 몇몇 여행객들, 그들의 대화에서 울려나는 각국의 언어, 접시와 잔이 부닥치는 소리, 작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아침햇살 등등, 이런 모습과 소리가 생존의 기쁨과 평화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피렌체에 도착한 날 우리는 여관에 짐을 풀자말자 관광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당일치기로 우선 피사(Pisa)를 다녀왔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는 피렌체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아이들에게 기념사진이라고 찍어준다는 생각으로 좀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차를 몰았다. 아주 작은 시골 마을처럼 보이는 피사에 들어서자 그림으로만 보던 피사의 사탑이 두오모 성당, 세례탕 건물과 함께 나타났다. 이렇게 한적한 마을에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서게 된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피사의 사탑은 곧 무너질 것 같아 보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이 탑의 기울기가 심해서 와이어로 붙들어 매어 놓고 있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피사의 사탑은 1117년에 착공했다가 지반 침하 문제로 중단되었다가 결국 1350년에 54.5m의 8층탑으로 완공되었다고 한다. 철근 콘크리트 없이 돌과 석회만으로 쌓아올린 탑이 저렇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버텨내고 있다는 게 신기해보였다.
어린 딸들을 데리고 피렌체를 관광한다는 건 그렇게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피렌체 관광의 중심인 성당 건물과 미술관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 순례를 빼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여관 로비에 비치된 피렌체 지도를 한 장 짚어들고 아르노 강변을 따라 천천히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을 향해 걸었다. 우리는 한나절 반 동안 거의 이 시뇨리아 광장을 중심으로 숨바꼭질하듯이 맴돈 셈이다. 이 시뇨리아 광장은 13-14세기에 정치의 중심무대가 된 곳이라고 한다. 이 광장 남족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고, 동쪽에 베키오 궁전이 있고, 거기서 북쪽으로 몇 블록만 가면 두오모 성당이 나온다. 이 시뇨리아 광장이 명실상부 피렌체의 중심인 탓인지 관광객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이다. 우피치 미술관을 입장하려는 긴 행렬 뒤편에 자리를 잡고 느긋한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도 별로 행렬의 길이가 줄어들지 않았다. 미술관 입장객을 제한하는 제도 탓에 이 기다림이라는 게 ‘세월아 네월아’였다. 광장에서 펼쳐지는 볼거리도 우리의 인내심을 더 이상 자극하지 못했다. 우피치 미술관 안에 있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미켈란젤로의 “성가족”을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우리의 허영심을 뒤로 하고, 두오모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반적으로 대리석은 흰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두오모 성당을 벽면을 채우고 있는 대리석은 흰색만이 아니라 핑크, 녹색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1296년에 착공되어 1371년에 본당이 완성되었고, 106m의 대원개(Cupola)는 143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 원개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취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우리는 이 두오모 성당 내부와 지하, 그리고 그 주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으며, 밤에도 일부러 다시 찾아와 르네상스의 종교적 분위기를 다시 맛보았다.
피렌체에서도 우리는 주로 걸었다. 강, 다리, 관광객, 관광객의 얼굴을 그려 파는 거리의 화가들, 기념품 노점상, 골목길, 광장의 넵튠 분수, 하늘과 도시 색깔을 보면 걸었다. 그리고 짬짬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간단한 쇼핑을 하며, 르네상스의 본거지를 마음속에 어렴풋이 담아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진설명
위: 피사
아래: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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