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텐부르크 궁전

얼마 전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국가 원수를 환영하는 의전 행사가 티브이 화면에 비쳤다. 한번은 독일 수상(혹은 베를린 시장?)이 마련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의 행사였으며, 다른 한번은 대통령이 마련한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서 열렸던 행사다. 대통령의 의전 행사는 원래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베르뷰 궁전에서 열려야 하지만 그때는 수리 중이어서 대신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서 열린 것 같다. 베를린에서 아주 동떨어진 외곽지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브란덴부르크 문과 연방의회 건물, 또는 훔볼트 대학 건물이 있는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은 외면적으로 볼 때 별로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프로이센 제국의 정취가 남아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특히 내가 매주 월요일마다 베를린에서 교포 목회를 하던 목사들과 만나서 테니스를 치기 위해 슈판다우에 갈 때마다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이 자리하고 있는 간선도로 ‘슈판다우어 담’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곳이 개인적으로 인상깊이 남아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베를린에서 지낸 일년 동안 이러저런 일로 계절에 따라서 너덧 번 들렸던 것 같다.
샤를로텐 궁전 주차장은 다행스럽게 무료였다. 돌로 바닥을 깐 주차장과 궁전의 앞마당 사이에는 평범하게 생긴 철구조의 담이 있는데, 그것은 단지 자동차가 앞마당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 아니었다. 이 철구조로 된 담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매우 정성 들여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여러 문양과 문장이 황금색으로 도금되어 있었고, 그런 것을 매달고 있는 가로 세로 격자 모양의 철구조는 녹색을 띄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잘 어울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궁전 앞마당이 나오고, 그 가운데 말을 탄 동상이 서 있는데, 아마 이 궁전을 짓게 한 프리드리히 대제로 생각된다. 프로이센의 초대 왕인 프리드리히 1세는 아내인 소피 샤를로테를 위해 여름 별장용으로 이층 학교 건물처럼 보이는 로텐부르크 궁전(Schloß Scharlottenburg)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 궁전은 1695년에 처음 건축된 다음에 1790년까지 두 번에 걸쳐 증축되었다고 하는데 소피 샤를로테 왕비가 실제로 이곳에서 여름을 보낸 시기는 1695-1699년이라고 한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자라고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단지 아내의 별장용으로 건축했다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아닌가 하는 점은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 지극했는지, 아니면 아내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약점이 잡힌 것인지, 아니면 아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기의 권력을 민중들에게 과시한 것이지 잘 모르겠지만 역사가 흐른 지금은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철책의 중요한 문양과 문장이 황금색인 것처럼 궁전도 전체적으로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물론 지붕은 독일의 거의 모든 건물이 그렇듯이 붉은 색이다. 그런데 이 궁전의 특색은 로마네스크 형식의 둥근 돔 지붕이다. 베를린의 돔이나 가톨릭 성당, 그리고 겐다르멘마크트 광장에 있는 극장이나 위그노파 교회당 천정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궁전의 이 둥근 돔은 하늘색이고, 그 첨탑에 춤추는 듯한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동상이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색깔은 다른 문양과 마찬가지로 황금색이었다. 현재 궁전 내부는 프리드리히 1세 부부가 사용하던 침실과 집무실이 보존되어 있고,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진열한 방과 여러 그림을 진열한 방들로 꾸며져 있다.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프리드리히의 면모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 내부를 구경하는 데는 사람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3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특히 프리드리히 대제 때 베를린의 도자기 공업이 발전했기 때문인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도자기가 상당히 많았다.
입장료를 내야하는 궁전 내부보다는 그 뒤편 공원을 산책하는 게 우리에게는 훨씬 즐거운 시간이었다. 길가에 면해 있는 작은 정원보다는 뒤편에 훨씬 넓은 정원이 있는 일반 주택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샤를로텐부르크 궁전도 그 뒤편으로 보기 좋게 정돈된, 매우 넓은 정원이 있었다. 숲과 꽃, 호수, 그리고 정원을 끼고 흐르는 베를린 운하가 적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배우기 시작한 갓난아이와 함께 소풍 나은 젊은 부부, 인생의 황혼기를 산택하며 보내는 노부부,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 나무와 꽃을 손질하는 정원사, 호수 위의 오리와 물새, 운하를 관통하는 유람선과 요트 등등, 이런 그림들이 샤를로텐부르크 뒷마당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 딸들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우리는 걷거나 조깅하면서 그 정원에서 보낸 시간들은 꿈속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다. 베를린의 다른 공원도 비슷했지만 샤를로텐부르크 공원도 역시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선 벼룩시장이나 어떤 특별한 축제가 아닌 한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걸 볼 수가 없다. 작은 돗자리 한 장만 있으면 샤를로텐부르크 정원의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서 하루 종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다. 배고프면 궁전 한 귀퉁이에 있는 식당에서 사 먹든지, 아니면 가까운 큰길가로 나가 간이식당에서 값싸게 먹고 다시 오면 된다.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서는 정기적으로 연주회가 열린다. 우리는 포스터만 보고 한번 가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그만두었지만, 베를린 사람들은 역사의 숨결이 고즈넉하게 담긴 이런 곳에서 열리는 고급스러운 연주를 감상하고, 시원한 정원에 나와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설명
<위> 궁전의 왼편 귀퉁이에서, 그 당시 고1인 큰딸.
<아래> 궁전 정면에서, 그 당시 초4인, 작은딸.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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