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뢰첸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식당은 중국 레스토랑과 맥도널드라고 한다. 중국집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중국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 세계로 펴져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생존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 그리고 중국 음식의 맛이 괜찮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맥도널드가 개발, 판매하고 있는 페스트후드는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을 뿐만 아니라 값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빠른 속도로 전 세계 요식업계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큰 도시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도 맥도널드와 이런 유사 체인점들이 서넛 들어선 걸 보면 호불호는 불문하고 멀지 않아 우리의 식탁문화 자체도 이런 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 사람들은 삼시 세끼, 밥과 국과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어야 무언가 먹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에, 여러 식구가 사는 집에서 주부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부터 설쳐야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는 우리의 여성들도 나름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일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우리도 빵 몇 조각과 커피나 우유 등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유럽 사람들처럼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하는 쪽으로 식탁문화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아침을 왕처럼 먹으라는 말이 있지만 유럽 사람들은 아침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반이라는 뜻의 영어 ‘breakfast’는 ‘깨뜨리다’(break)와 ‘단식하다’(fast)의 합성어인데, 억지로 풀어본다면 단식을 깬다는 뜻이다. 단식을 깰 때는 많이 먹는 법이 아니다. 독어의 조반 ‘Frühstück’는 형용사 ‘이른’(früh)과 명사 ‘조각’(Stück)의 합성어인데, 결국 이른 조반을 한 조각으로 때운다는 뜻이다. 그들이 그렇게 조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조사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그런 정도로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속사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모르겠다.
우리 집도 조반을 빵으로 해결하는데, 거의 시간이 들지 않아서 편리하다. 누구든지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커피를 끓여놓기만 하면 식빵을 구워 치즈와 쨈과 슬라이스 햄을 곁들여 먹으면 그만이다. 먹는 시간만 따지면 10분이면 충분하고, 커피 끓이고 빵 굽는 데 5분, 경우에 따라서 과일 먹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30분이면 해결된다. 간혹 대화하느라 1,20분이 더 소요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길어봐야 아침에 일어나서 40분이면 준비와 먹는 것까지 모든 게 오케이다.
요즘도 아침 식탁에서 빵을 씹으면서 독일에서 먹던 ‘브뢰첸’(Brötchen) 맛을 떠올리곤 한다. 하양의 빵집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주로 먹는 파리바게트는 구할 수 있어도 독일의 빵 브뢰첸은 구할 수 없어서 좀 아쉽다. 브뢰첸은 빵이라는 뜻의 독일어 ‘Brot’에 축소형 후철 ‘-chen’가 붙은 단어인데 독일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빵이다. 물론 브뢰첸만이 아니라 그 이외에도 그 사람들이 만들어 먹는 빵은 다양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빵이라고 부르는 그런 빵은 별로 인기가 없고, 오히려 여러 잡곡이 많이 들어간 빵이 인기가 높다. 심지어는 알곡이 그대로 씹히는 느낌의 ‘검은 빵’도 그들이 즐겨먹는 빵이다.
브뢰첸의 모양은 보통 크기의 사과를 반으로 잘라 놓은 것과 비슷하다. 브뢰첸의 겉은 불기에 노출되어 특유의 노르스름한 색을 띄면서 딱딱한 편이고, 속은 흰색을 띄면서 부드럽다. 빵의 모양이나 색상, 또는 질감은 그렇다 치고, 우리가 빵을 먹을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냄새와 맛인데, 우선 브뢰첸이 풍기는 빵의 고유한 냄새는 다른 빵을 압도한다. 나는 여기서 5년 전에 맡았던 그 냄새를 정확하게 묘사할 자신이 없다. 반죽한 밀가루를 가장 적당한 온도의 불에 구웠을 때 무슨 냄새가 날는지 상상해보시라. 브뢰첸에서 분출되는 냄새는 어릴 때 밀밭 사이를 지나면서 맡았던 밀 익는 냄새 같다고나 할는지. (태양열에 익은 밀을 다시 불에 구워 먹는 걸 보면, 우리 인간은 불을 먹고 사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빵집 옆을 지날 때마다 이 브뢰첸 냄새와 커피 향이 나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여기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그렇지만 맛이 바쳐주지 않았다면 냄새만으로 우리가 그 빵을 즐겨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브뢰첸은 반죽할 때 약간의 소금을 넣은 듯, 간이 베어 있을 뿐이지 그 어떤 첨가물도 없이 오직 밀가루만으로 깊은 맛을 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당시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브뢰첸을 먹는 방식까지 설명해야겠다. 우선 빵 칼로 중간을 잘라 두 장의 얇은 빵 조각으로 만든다. 한 조각에는 자기 취향에 맞는 치즈를 적당하게 바르고, 다른 조각에는 잼을 바른 다음, 다시 합쳐서 커피를 곁들여 먹으면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잘라낸 조각을 각각 먹기도 하지만 이런 데서도 실용적인 걸 찾는 나는 둘을 합쳐서 편하게 먹었다.
아직 브뢰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 빵이 냄새와 맛, 더 나가서 입안에서 씹히는 그 감촉까지 그렇게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늘 신선하게 유통된다는 데에 있다. 다른 빵들은 대개 며칠 전이나, 아니면 그 전날 밤에 굽혀지지만 브뢰첸은 당일 새벽부터 굽혀진다. 매일 아침마다 빵 가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은 갓 구워낸 브뢰첸을 사러온 사람들이라고 봐도 된다. 브뢰첸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빵이 서민적이라는 사실이다. 한 개에 200원짜리 두개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일단 먹을거리에서 평등이 이루어진 게 아닐는지. 우리 가족은 베를린에서 지내는 일년 내도록 그 어떤 빵과도 비교되기를 거부한 자신만의 세계를 간직한 채 사람들의 눈과 코와 입에 쾌락을 선사하고 있는 브뢰첸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브뢰첸, 치즈, 커피의 조화는 맛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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