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파리까지


베를린에서 프랑스 파리까지의 거리는 물경 1천1백 킬로미터다. 기분 같아서는 하루 만에 해치울 수 있었지만 프랑스 국경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독일의 서부 도시 뮌스터에 조카 내외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중간 기착지로 삼았다. 베를린에서 뮌스터까지는 460km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도로사정으로는 먼 거리로 느껴지겠지만 독일의 ‘아우토반’에 속도제한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쉬엄쉬엄 가도 겨우 4시간 거리이다. 2000년 7월19일(수) 늦은 오후에 뮌스터에 도착한 우리는 조카 내외와 함께 오랜 만에 중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파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새로운 기분으로 뮌스터를 떠났다.
대충 계산해보니 파리까지 넉넉잡고 700km만 가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가는 길에 벨기에의 브뤼셀을 들리는 것도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점심때쯤 차를 몰고 브뤼셀로 들어갔다.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실 브뤼셀만 둘러본다고 하더라도 이틀 정도는 잡았어야했는데, 이렇게 지나가는 길에 무슨 구경이란 말인가. 부리나케 한두 군데만 들리고 우리는 쫓기듯 빠져나가야 했다. 브뤼셀 다운타운으로 들어갈 때는 간단했는데, 빠져나오는 길은 뒤죽박죽이었다. 차들이 밀리기도 했지만 도로 표지판이 독일에 비해서 형편없는 탓에 한참 헤매다가 거의 저녁나절이나 되어서 ‘유로 19번’ 고속도로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 고속도로만 따라서 중간에 거의 쉬지 않고 300km를 달렸다. 속도제한 때문에 아무리 시간을 아껴도 한계가 있었다. 파리 외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밥 먹을 시간을 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게 말이다. 밥 먹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 엄살을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분들이 있겠지만 우리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 가족 중에는 (누군지 밝히지는 않겠지만) 식사 시간을 넘기기만 하면 신경질을 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나도 가능한대로 우선 식당을 찾아볼 생각도 하긴 했지만 우리가 머물러야 할 야영지를 찾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브뤼셀에서 서너 시간을 써버린 게 실수였다. 혹시 앞으로 이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일정에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쓰는 호기를 부리지 마시라.
제 시간의 저녁밥은 일단 포기하고 야영지를 본격적으로 찾기로 했다. 지도를 통해서 대충 방향을 잡아놓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느 도로를 타고 가야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프랑스어로 된 도로표지판도 역시 우리에게는 낯설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 영어 실력도 형편없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알아도 프랑스어로 대답한다는 풍문을 들은 터라 가능한대로 본토 프랑스 사람보다는 외국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짐차를 운전하고 있던 흑인을 보고 손을 흔들어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지도를 보여주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며, 아무개 야영장을 찾아가는 데 어떤 길로 가면 되는가 하고 물었다. 자신들도 외국인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 흑인은 다행히 친절했다. 그는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하면서 파리 외곽순환도로 입구까지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다시 느긋한 마음으로 파리의 순환도로 우편을 따라 운전하면서 파리의 외곽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순환도로 나들목 번호를 정확하게 찾아 빠져나간 다음에도, 몇 번이나 물은 다음에 우리가 목표로 한 야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저녁 10시는 족히 지나서야 야영장에 도착했던 것 같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자리는 남아있었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안내 요원이 지시하는 곳에서 짐을 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차를 운전하느라 피곤한데다가 배는 고프지, 날은 이미 어두웠지, 빨리 텐트를 쳐야지, 몸과 마음이 쫓겼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땅이 딱딱해서 텐트 고정 받침대를 땅속에 박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텐트 쪽을 보니 독일어를 사용하는 젊은 연인이 사이좋게 쉬고 있었다. 그들에게 망치를 빌려 받침대를 두드려 박고, 두 딸들의 도움을 받아 텐트를 모두 설치하고 나니 거의 밤 11시가 다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밥 먹는 일과 씻는 일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버너로 밥을 지어, 베를린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 저녁 식사를 해야겠지만, 이 시간에 그런 건 불가능했다. 라면 끓일 기력도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으니까. 그렇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사무실 옆에 딸려 있는 간이 슈퍼마켓에서 아무 먹거리라도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빵이 있었다. 우리는 불이 없어 어두운 텐트 앞에서 ‘땀에 젖은’ 빵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뮌스터의 조카 집에서 빵을 먹었고, 점심도 브뤼셀에서 빵을 먹었는데, 늦은 저녁도 역시 빵으로 때운 셈이 되었다. 나는 먹기 위해서 산다기보다는, 좀 처연하긴 하지만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쪽이기 때문에 빵으로 하루의 생명을 연장한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구 네 명 중에서 한 사람만 이 빵을 먹지 않고 있었다. 앞서 저녁 식사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기분을 상해하던 그 사람이었다. 아무리 옆에서 “먹어둬! 이것만 해도 어디야!” 해도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았다. 먹지 않겠다는 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두 딸과 함께 그 사람이 약 오를 정도로 맛있게 빵을 먹었다. 아, 긴 하루였다. 뮌스터에서 파리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달려와서 아담한 텐트로 잠자리를 마련하고 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은총인가. 다행히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사람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호호거리며 파리 구경에 따라나섰다.

사진설명
위: 브뤼셀 시내 어디 쯤에서
아래: 노트르담 성당 뒤편을 배경으로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