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8

다윗왕조의 존재근거

기타 조회 수 19242 추천 수 115 2006.08.06 23:27:18
성경본문 : 사무엘하 7:1-17 
http://wms.kehc.org/d/dabia/06.08.06.MP32006. 8.6. 삼하 7:1-17
다윗왕조의 존재근거

예루살렘 다윗 궁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40 여명의 왕들 중에서 다윗을 능가하는 왕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후손이라는 점에서도 다윗의 권위는 온 세계를 뒤덮고도 남을 겁니다. 지금 한국교회 목사들과 신자들도 모두 다윗을 신앙의 모범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요?
다윗이라는 인물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일개 시골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의 위대한 장군 골리앗을 눕힌 이 사건으로 다윗은 일약 사울의 부마가 된 뒤, 결국 이스라엘의 대권을 잡았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사건은 다윗이 자기의 부하 장군인 우리야의 부인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 부인의 이름이 밧세바인데, 그녀를 통해서 얻은 솔로몬이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다윗을 이어 왕이 됩니다. 일종의 왕자의 난이라 할 수 있는 왕권투쟁에서 솔로몬이 최후의 승자가 될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인 밧세바와 나단 선지자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예루살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언자 나단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을 평정한 다윗왕은 나단에게 이렇게 조언을 구합니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궁에서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모셔 둔 채 그대로 있소.”(삼하 7:2b) 나단은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단은 그날 밤에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5-16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윗이 나단에 조언을 구하던 그 시기가 언제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절 말씀이 그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야훼께서 사면의 원수를 다 물리쳐 주셨으므로 다윗왕은 궁에서 마음 놓고 살게 되었다.”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과 싸웠습니다. 사무엘상에 자세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도 모두 죽었고, 사울의 중요한 부하들도 다윗에게 포섭되었습니다. 이제 다윗에게는 정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셈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원주민인 여부스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성 이름을 다윗성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명실상부하게 팔레스틴을 평정한, 제대로 된 왕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터를 잡은 다윗은 유다 바알라에 있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 와중에서 사람이 죽는 불상사가 일어나서 당분간 이 일이 유보되기는 했지만, 결국 법궤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날 얼마나 기뻤던지 다윗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 때문에 아내인 미갈에게 핀잔을 받기는 했지만 법궤를 모시려는 그의 마음만은 인정받을 만 했습니다.
법궤를 모시는 것으로 다윗이 풀어야 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왕권을 완전히 확립했으며,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영토분쟁에서 승리했고, 이제 종교적인 차원으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으니까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역사에 다윗이 없었다면 근동의 수많은 제국들에 의해서 해체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윗 왕조의 성립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그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것입니다.
법궤를 가져오긴 했지만 다윗은 뭔가 마음이 꺼림칙했습니다. 2절 말씀에서 실토하듯이 법궤가 휘장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단에게 조언을 구하는 중입니다. 다윗의 이런 태도를 좋게 보면 야훼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본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묶어두기 위한 정략적 발언인지 모릅니다.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예루살렘은 원래 여부스 족이 살던 곳이었으며, 정복한 후에도 역시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필요했겠지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아주 복잡한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 같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노회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 보도된 다윗의 행동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만이 아니라 다윗 이야기를 직접 기록한 구약성서 기자들의 마음도 아주 복잡했을 겁니다. 다윗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 고민이 오늘 본문에서도 발견됩니다.

목동 다윗
나단은 다윗의 말을 듣고 구체적인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단의 이 말은 다윗을 높이는 것처럼 들리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너, 잘났으니까 마음대로 해봐!”라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상대방의 생각이 마음에 들 때만이 아니라 들지 않을 때도 짧게 대답하는 법입니다. 나단의 말이 다윗에게 반드시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나단이 한 마디 툭 던져놓고 돌아간 날 밤에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곧 다윗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야훼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나 야훼의 말이라고 하고 이렇게 일러라.” 나단이 들었다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야훼 하나님은 송백으로 지은 집을 원하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나단에 준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 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겨 보살피게 한 어느 영웅에게 어찌하여 나의 집을 송백으로 지어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다음에 미디안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는 회막이었습니다. 천과 나무로 만든 이동식 제사 장소였습니다. 그 회막의 가장 중요한 공간에 법궤가 모셔졌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큰 궤짝입니다. 그 안에 십계명이 새겨진 돌,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정치력이 확고한 기반에 올라선 상태에서도 법궤가 여전히 휘장, 즉 회막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다윗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야훼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송백으로 지은 성전이 곧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왕조 전통과 예언자 전통 사이에 불거지는 갈등을 봅니다. 왕들은 야훼 하나님을 어떤 공간 안에, 자기를 위해서 안전하게 가두고 싶어 했지만 예언자들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야훼는 왕처럼 송백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모든 세상을 그의 거처로 삼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위해서 송백의 성전을 짓겠다는 바울의 발상은 기특하기는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입니다.
2) 나단은 지금 큰소리치고 있는 다윗이 원래 목동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예언자 나단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금 다윗은 레임덕에 걸린 왕이 아닙니다. 한창 끗발이 높은 왕입니다. 그런 다윗에게 나단은 “당신, 원래 목동 출신 아니냐?” 하고 말합니다. 누구나 자기의 약점이나 열등감을 지적하면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을 위해서 멋진 성전을 건축하고 싶다는 다윗 앞에서 그냥 건너뛰어도 될 만한 말을 나단은 굳이 내뱉습니다. 밧세바 사건(11장)에서 다윗을 크게 책망하는 나단(12장)의 성질은 원래 천성적이었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지금 나단은 다윗에게 시비를 거는 게 아닙니다. 야훼 하나님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없습니다. 아무리 만인지상의, 무소불위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야훼 하나님 앞에서 일개 목동에 불과합니다. 좋게 보면 순진한 목동이지만, 나쁘게 보면 건달에 불과합니다. 나단은 다윗을 향해서 그걸 깨달으라고 말하는 중입니다. 송백 성전 운운하면서 자기가 왕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생각하지 말고, 주제를 파악하라는 말이겠지요.
목동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야훼 하나님 덕분입니다. 8절에서 나단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나는 양떼를 따라 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 내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삼았다.” 다윗을 영도자로 삼기 위해서 야훼 하나님은 다윗의 원수들을 쳐 없애셨고, 그의 이름을 떨치게 했으며,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나 야훼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11b) 이제 다윗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자신이 야훼 하나님을 위해서 송백 성전을 만들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그리고 그런 생각에 숨어 있는 얄팍한 계산이 모두 들통 난 셈입니다.
그러나 나단은 다윗에게 수모를 주려는 건 아닙니다. 그의 예언은 결국 다윗 왕조의 번영에 놓여 있습니다. 예언의 마지막 문장을 보십시오.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16절) 다윗 왕조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의 가문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믿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단의 예언대로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 안에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남북으로 분열되었지만, 그래도 다윗의 권위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반면에 일반 역사에서 다윗 왕조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했고, 로마에 의해서 초토화 했습니다. 세속 역사에서 다윗 왕조가 왜 이렇게 심하게 흔들렸을까요?

하나님의 징계
우리는 정치 공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성서 신앙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다윗 왕조의 위기는 그의 후손들이 행한 죄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반석 위에 세우신다고 예언한 나단은 하나의 단서를 달았습니다.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나는 사람이 제 자식을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듯 치리라.”(14b)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등,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나라가 갈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 등극한 거의 모든 왕들이 무능력하고 부패했습니다. 하나님이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신 것입니다. 다윗 왕조에 대한 야훼 하나님의 매와 징계는 지난 2천5백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매와 징계가 가혹하게 계속했다는 건 그들의 죄가 끊이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우상숭배를 말하나요? 사회적 불의와 분열인가요? 어떤 이들이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것인가요? 오늘 우리는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도 못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죄는 단지 파렴치한 행위만이 아니라 훨씬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본질적인 죄가 우리 삶에 나타날 때는 매우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죄는 인간 삶을 파괴하고 증오심을 키우는 실체로 나타납니다. 야훼 하나님은 그런 죄를 매와 채찍으로 다스리십니다.
요즘 레바논을 공격한 이스라엘이 한 나라만 제외하고 온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레바논에 본부를 둔 헤즈블라 무장 단체가 포로로 잡아간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을 석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격에서 실제로 희생당하는 이들은 헤즈블라 군인들이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입니다. 수천 년 동안 박해를 받아오던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형편을 제가 모두 아는 게 아니지만, 이런 일들도 역시 하나님의 매와 채찍을 불러올 수 있는 죄가 아닐까요?
말씀을 정리합시다. 나단이 다윗에게 주는 예언의 내용은 아주 분명합니다. 다윗 왕조의 존재 근거는 다윗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야훼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사람은 성공하면 그게 자기의 능력인 줄 알지만 성서는 그걸 부인합니다. 오직 야훼 하나님만이 그걸 이루시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하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왕조의 존재근거라는 나단의 예언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가르칩니다. 첫째, 다윗이 목동 출신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기반이 근본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둘째, 현재 우리 삶에 나타나는 죄가 존재근거까지 허물어버린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을 토대로 할 때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며,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죄를 극복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얻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운명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맡기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profile

바우로

August 07, 2006
*.126.215.212

요즘 이스라엘의 깡패짓거리를 보면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자신들이 나치독일과 일본-흔히 유대인박해하면 나치 독일을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도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으로 박해받았습니다.-에서 당한 박해는 생각 못하는 것일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공지 기타 설교 퍼가는 분들께! [30] [3] 2007-02-16 68261
248 대림절 거룩한 길이 열린다! [8] 2007-12-16 14197
247 대림절 희망의 하나님 [8] 2007-12-09 13719
246 대림절 영적 각성 [19] 2007-12-02 14077
245 성령강림절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 [4] 2007-11-25 10583
244 성령강림절 기쁨에서 평화까지 [14] 2007-11-18 11132
243 성령강림절 거짓 예배, 참된 예배 [7] 2007-11-11 15564
242 성령강림절 혼합주의 신앙을 혁파하라! [13] 2007-11-04 14304
241 성령강림절 말씀을 수호하라! [9] 2007-10-28 10563
240 성령강림절 이 사람의 믿음 [12] 2007-10-21 12180
239 성령강림절 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7] 2007-10-14 11645
238 성령강림절 일상의 종말론적 지평 [10] 2007-10-07 10584
237 성령강림절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관해서 [9] [1] 2007-09-30 17219
236 성령강림절 하나님도 생각을 바꾸시는가? [5] 2007-09-23 10478
235 성령강림절 인간화해의 길 [9] 2007-09-16 11382
234 성령강림절 윗자리와 끝자리 [13] 2007-09-09 12592
233 성령강림절 정의로운 안식일 [6] 2007-09-02 10976
232 성령강림절 믿음의 완성 [26] 2007-08-26 15133
231 성령강림절 혁명은 시작되었다. [27] 2007-08-19 11852
230 성령강림절 우리는 하나다! [9] 2007-08-12 10800
229 성령강림절 그리스도를 통한 만물의 화해 [17] 2007-08-05 11644
228 성령강림절 마리아의 영성 [8] 2007-07-29 12658
227 성령강림절 하나님과 계명 [4] 2007-07-22 10983
226 성령강림절 나의 자랑 예수의 십자가 [13] 2007-07-15 13327
225 성령강림절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 [9] 2007-07-08 11782
224 성령강림절 벌과 복 [3] 2007-07-01 12764
223 성령강림절 참된 생명의 길 [14] 2007-06-24 11662
222 성령강림절 두려움과 하나님 찬양 [6] 2007-06-17 12678
221 성령강림절 야훼의 불 [5] 2007-06-10 9837
220 성령강림절 무슨 희망인가? [11] 2007-06-03 12187
219 성령강림절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8] 2007-05-27 14105
218 부활절 목마른 사람을 위한 복음 [8] 2007-05-20 11756
217 부활절 누가 내 어머니인가? [16] 2007-05-13 15414
216 부활절 믿음은 가능한가? [30] 2007-05-06 13793
215 부활절 다비타 쿰! [11] 2007-04-29 12184
214 부활절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 [8] 2007-04-22 10746
213 부활절 구름 타고 오십니다! [10] 2007-04-15 11563
212 부활절 평화의 복음, 부활의 능력 [4] 2007-04-08 12885
211 사순절 하나님의 법정으로 가자! [8] 2007-04-01 11862
210 사순절 마리아의 나드 향유 [11] 2007-03-25 17598
209 사순절 만나가 멎는 날 [11] 2007-03-18 12460
208 사순절 영적 긴장감 [18] 2007-03-11 14323
207 사순절 실패의 길을 가자! [9] 2007-03-04 13486
206 사순절 떠돌이 아람인의 후손 [15] 2007-02-25 12528
205 주현절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2] 2007-02-18 12435
204 주현절 죽은 자의 부활과 오늘의 삶 (고전 15:12-19) [37] 2007-02-11 15968
203 주현절 시몬의 하나님 경험 [21] 2007-02-04 12970
202 주현절 예레미야의 소명 [11] 2007-01-28 15771
201 주현절 카리스마의 영적 원리 [5] 2007-01-21 16365
200 주현절 포도주 사건의 실체와 의미 [20] 2007-01-14 19247
199 주현절 그리스도의 비밀, 교회의 비밀 [5] 2007-01-07 15720
198 성탄절 솔깃한 말, 터무니없는 말 [7] 2006-12-31 12943
197 대림절 두 여자의 만남 [1] 2006-12-24 14405
196 대림절 그 날이 오면... [4] 2006-12-17 13944
195 대림절 영광과 찬양의 삶이란? [3] 2006-12-10 14272
194 대림절 “사람의 아들”이 온다. [2] 2006-12-03 14644
193 대림절 새로운 세상이 온다! [2] 2006-11-26 15015
192 기타 야훼 찬양! (욜 2:21-27) [3] 2006-11-19 13314
191 기타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희망 [2] 2006-11-12 15693
190 기타 욥의 하나님 경험 [6] [1] 2006-11-05 14685
189 기타 율법의 길, 복음의 길 [1] 2006-10-29 13722
188 기타 창조계를 벗삼기 [3] [2] 2006-10-22 11528
187 기타 신앙적 일상과 재림신앙 [2] 2006-10-15 17509
186 기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2] [2] 2006-10-08 19603
185 기타 고난 받는 그리스도 [2] [2] 2006-10-01 15181
184 기타 사람 차별 마시오! [1] [2] 2006-09-24 19913
183 기타 창조 영성 [4] [2] 2006-09-17 15102
182 기타 성만찬 공동체 [2] [1] 2006-09-10 22990
181 기타 예배로서의 삶 [5] [1] 2006-09-03 19338
180 기타 다윗의 통곡 [1] 2006-08-27 21773
179 기타 하늘생명의 밥 [1] 2006-08-20 17901
178 기타 예언의 성취 2006-08-13 16123
» 기타 다윗왕조의 존재근거 [1] 2006-08-06 19242
176 기타 현재의 고난, 7월30일 2006-07-30 16442
175 기타 하나님 나라의 전복성 2006-07-16 16886
174 기타 거룩한 두려움, 7월9일 2006-07-09 13530
173 기타 생명이 죽음을 삼키다, 7월2일 2006-07-02 18873
172 기타 민중의 소리와 하나님의 통치 [2] 2006-06-25 10624
171 기타 마음의 장애를 넘어 [4] 2006-06-18 14527
170 기타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 2006-06-11 13778
169 기타 마른 뼈와 야훼의 영 [1] 2006-06-04 15209
168 기타 사랑의 계명과 기쁨 [1] 2006-05-21 13681
167 기타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1] 2006-05-14 11680
166 기타 가족의 그리스도론적 정체성, 5월7일 [2] 2006-05-07 12100
165 기타 하나님의 자녀, 4월30일 [1] 2006-04-30 13230
164 기타 자유를 향한 부르심 [4] 2006-04-23 9918
163 기타 살아계신 주님 [5] 2006-04-16 13060
162 기타 숨어있는 평화의 왕 [7] 2006-04-09 10443
161 기타 영원한 구원의 근원 2006-04-02 12747
160 기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4] 2006-03-26 11648
159 기타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의 부활 [4] 2006-03-19 15695
158 기타 믿음의 실체 [6] 2006-03-12 13204
157 기타 해방과 자유 [2] 2006-03-05 13292
156 기타 그리스도의 얼굴의 빛 [5] 2006-02-26 11186
155 기타 새로움의 원천, 2월19일 [2] 2006-02-19 12266
154 기타 하나님 나라의 감춤과 드러남, 2월12일 [3] 2006-02-12 13061
153 기타 사도 바울의 자유 [2] 2006-02-05 13626
152 기타 예언 전통 앞에서, 1월19일 2006-01-29 11040
151 기타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것, 1월22일 [2] 2006-01-22 14798
150 기타 믿음의 토대, 1월15일 [3] [1] 2006-01-15 10706
149 기타 하나님의 창조와 말씀, 1월8일 [1] 2006-01-08 11509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