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

임마누엘 예수

대림절 조회 수 11461 추천 수 32 2007.12.23 15:22:20
설교듣기 : mms://wm-001.cafe24.com/dbia/071223.mp3 
성경본문 : 마태복음 1:18-25 
mms://wm-001.cafe24.com/dbia/071223.mp3임마누엘 예수
2007.12.23 (마 1:18-25)

처녀탄생 설화

오늘 우리는 아주 까다로운 성서말씀을 만났습니다. 남자와 동거하기 전인 한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여자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했을 때의 나이가 그 당시 유대의 풍습에 따르면 대략 열서너 살 정도 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사실로 드러나면 율법에 따라서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요셉은 마리아가 그렇게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런 소문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파혼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남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드리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로 하라는 말까지 일러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요셉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질문해보세요. 요셉은 지금 두 가지 사태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동거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임신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현실이며, 후자는 비현실입니다. 전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후자는 개인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최소한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대개 전자에 무게를 두고 판단하겠지요. 그런데 요셉은 오히려 후자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에 따라서 마리아와 파혼하지 않고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낳기 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이 묘사하고 있는 요셉은 인간적으로 덕이 많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믿음도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가 보통 사람 같았으면 심한 배신감으로 마리아를 용서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임신을 했다는 것은 그 당시에 가장 수치스러운 스캔들로 인정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걸 그냥 용서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마리아를 용서하고 조용하게 파혼하는 것으로 일을 정리해도 썩 괜찮을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그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랐다는 건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말이 안 됩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마리아 사건으로 마음이 어수선해서 자기가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믿음이 좋은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 요셉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요셉의 인간성과 믿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본문을 읽으면서 무언가 찜찜한 생각이 드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처녀가 임신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냐, 하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천사가 나타난 꿈 이야기를 전한 다음에 즉시 23절에서 구약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7:14절입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는 이미 18절에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이어서 꿈에 나타난 천사의 입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전체는 처녀 마리아의 임신 사건을 전제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마태복음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는 걸까요? 그렇게 믿고 신앙생활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바르게 믿고, 기독교 신앙의 중심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질문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여자의 난자와 남자의 정자가 결합하지 않고도 생명체가 가능하다는 말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으니까요.
성탄절을 바로 앞에 둔 오늘 대림절 넷째 주일에 제가 여러분의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건 지혜롭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독교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하게 하는 게 저의 책임이니까 동정녀 탄생에 관해서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마가복음과 요한복음, 그리고 바울의 편지는 왜 이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을까요? 동정녀 탄생을 전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도 전체 탄생설화와 연관해서 한번만 언급할 뿐이지 그 이후로는 이에 대해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곧 동정녀 탄생은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반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모든 성서가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사도신경이 동정녀 탄생을 언급하고 있다면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권위를 허물 생각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역사적으로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동정녀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성서말씀을 읽을 때 핵심과 형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대 시대에 육체적인 아버지 없이 태어난 위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플라톤으로부터 알렉산더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인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서기자들도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성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말씀이지요.
복음서와 사도신경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진술의 핵심은 동정녀에 있는 게 아니라 마리아라는 여자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허공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성서가 기록되던 초기 기독교에서 이 마리아 문제가 다루어진 이유는 예수님의 인간성을 부정하려는 이단들이 나타났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지주의에 속하는 가현설론자들은,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 단지 신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는 그들에게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은 어딘가 불편했던 것이지요. 교부들은 이들을 이단으로 척결했습니다. 교부들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갖고 사신 분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몸을 가지신 분은 당연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여자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다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사도신경은 고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동정녀 탄생을 예수님의 탄생설화에 적용할 것뿐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동정녀이라는 고대인들의 독특한 표현에 호기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전체 기독교 신앙의 틀 안에서 본문이 말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사건에 개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8절도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으며, 사도신경도 “성령으로 잉태하사”라고 했는데, 이런 구절이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이 없지만 예수 사건, 즉 그의 탄생과 공생애와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전체 운명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사건에서도 유사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하고 배타적인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쓴 마태복음 기자는 바로 그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그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동정녀 탄생 표상을 단순히 빌려온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인가?

이제 우리의 질문은 하나님이 개입한 예수 사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태복음은 천사의 입을 통해서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남자 아기의 이름을 예수로 하게 했습니다.“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21절) 예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말로 바꾼 것으로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또는 야훼는 우리의 구원이라는 뜻도 됩니다. 마태복음은 이어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해서 임마누엘이라는 뜻을 보충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두 단어 즉 구원자라는 예수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이 결합했습니다. 구원은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 구세주이십니다. 구원한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를 전제합니다. 만약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에게는 예수님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오늘 본문에서 마태복음은 ‘죄’에서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죄는 단순히 우리가 행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구원받아야 할 어떤 상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습니다. 육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당연히 구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간혹 난치병을 고치시면서 “네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치료하기만 하신 게 아니라 그 당시 율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을 종교적 업적에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결국 영적으로 병들게 했기 때문에 죄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탄생할 때 이미 예수님의 사역이 제시된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21절)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죄로부터의 구원을 단지 병에서 놓여난다거나 율법에서 해방된다는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런 것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구원입니다. 우리의 병이 치료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병이 들고, 늙어서 죽습니다. 율법에서 벗어나서 평화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우리는 다시 죄책감과 불안에 빠집니다. 구원은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의 ‘임마누엘’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행하신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일어난 놀라운 일들은 모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징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병이 낫는다거나 살림살이가 좋아진다는 사실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수단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방식이 아니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과자를 주듯이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과자에 있는 게 아니지만 아이가 그것을 통해서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과자를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게 구원이라는 말을 우리는 훨씬 엄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고, 공생애 동안 메시아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이 세상과 함께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몰트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말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바로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 사건입니다.
우리는 성탄이 다가오면 평화롭고 감미로운 성탄 찬송을 부릅니다.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그런 모습에서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찬송을 부르면서 동시에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모습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앞의 모습에는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고, 뒤의 모습에는 하나님이 떠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마리아의 품이나 십자가가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신 장소입니다.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만이 아니라 극한의 불안과 슬픔이 있는 곳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에 겨워할만한 형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얼마나 공허한 일일까요?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살만한 형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마틴 루터가 예수님이 지옥에 계시다면 자기는 지옥을 택하겠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때가 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2천 년 전 마태가 전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읽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일어난 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더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그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실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구원의 날이 기대됩니다. 우리가 그 어떤 말로도 다 묘사할 수 없는 그 온전한 구원의 날이 더욱 가까웠으니 우리가 어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혼을 앞둔 신랑과 신부처럼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임마누엘의 예수를 노래합시다. 아멘!

profile

[레벨:18]愚農

December 23, 2007
*.239.233.100

온땅에 기쁨과 생명이 가득찬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profile

[레벨:0]권오수

December 24, 2007
*.236.84.144

샬롬! 죄송합니다. 죄가 정목사님에 대하여 잘 몰라서 묻습니다. 정목사님은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으시나요? 핵심과 형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핵심이 아닌 것은 거짓말(꾸며서 하는 말)을 말해도 되나요? 동정녀 탄생이 설화라면 역사적인 기독교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많은 기적과 결정적인 부활 사건은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인정합니까? 또 어디까지가 설화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입니까? 그것을 누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profile

[레벨:6]ldg

December 24, 2007
*.159.80.102

정말 충격이로군요 저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 마리아에서 났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닐 수있다는 말씀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목사님 대답해주세요..
profile

[레벨:1]모리스

December 24, 2007
*.99.212.133

목사님의 설교를 읽다보니 지난주에 읽은 마커스보그가 쓴 책이 떠오르더군요. 보그도 동정녀탄생을 역사적으로 사실적인 것은 아니나 다른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참되다는 의견을 피력하더군요...
내일은 즐거운 성탄절이어서 오늘 설교는 후딱 읽고 갑니다.
여기 들르시는 모든 분들도 평안하시기를...
profile

[레벨:20]신완식

December 24, 2007
*.40.227.138

권오수 님과 ldg 님께~~~
제가 잠시 끼어 들겠습니다.
한가하실 때 성경 몇 군데를 찾아봐 주시겠어요?

(1) 마태복음 2장 23절에 보면 '나사렛이란 동네에......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게 될 것을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다는 말씀인데, 구약을 샅샅이 뒤져도 이런 언급은 없답니다.

(2) 누가복음 24장 13절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한 촌으로 가면서' 라는 언급이 있지요? 재미있는 점은 엠마오가 지금 어디를 말하는 건지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학설이 다양합니다. 대체로 학자들은 누가의 거리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3) 구약 요나서에 따르면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지냈습니다. 그런데 요나서 2장에 나와 있는 <요나의 기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참 흥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기도문 속에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머물러 있는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관주 성경을 가지고 한 번 검토해 보세요. 요나의 감사 기도에 나오는 상당수의 구절들은 시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당히 유사한 표현들이 않습니다.

이런 예들을 하나하나 들자면 한이 없을 것 같군요. 동정녀 마리아 탄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대신 이런 단순한 예를 든 것은 성서를 읽으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해서입니다.

복된 성탄 되세요~~~
profile

[레벨:0]엉클캐빈

December 24, 2007
*.118.81.76

저도 사실은 위에 댓글 다신 권오수 님이나 ldg님 처럼...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터라,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데요. 정목사님과 신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두분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깊이 묵상하여 진리를 깨닫는 한주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profile

[레벨:1]산가람

December 24, 2007
*.146.132.118

목사님. 기쁜 성탄되시길 빕니다. 다른 모든 분들도...
낮고 비천한 곳으로 기꺼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요즘입니다.
그 기쁨을 넉넉히 누리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잘 읽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그리고 알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당시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척결하려했던
우리 기독 선배들의 노력이 눈물나게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본질에 동의합니다.
근데, 저는 여기 동의하다 이단되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ㅋㅋ

제 생각과 제 공동체의 갭을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 문제가 아니어도
이런 갭을 느낄 때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 생각에 저건 진리가 아니다 싶으면서
이 공동체에 하나님이 계신걸까? 의심하면서
아니 저들이 하나님을 알기나 하는걸까? 괴로와하면서
저는 그곳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저들의 절절한 외침 안에 들어 있으면서
저들을 의심하게 되는 건 정말 고통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잘난 맛에 내 잘난 체에 빠진 교만이 아닐까?
저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 라는 자책에 빠지게 되면 저는 정말 전의를 상실합니다.
다들 이런 갭을 느끼신 일이 없으신가요?
정목사님께선 처음부터 (어려 신앙 생활 처음 하실 때 부터)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신건 아니잖아요
저흰 다 주일학교 선생님 말씀이 무조건 진리다 생각하고 자랐거든요
그러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그러다 느끼는 이 차이를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그냥 교회를 떠날 순 없잖아요?
거기다 남편이 여기 있는걸요.ㅋㅋ
남편이 문제의 본질에 동의한다해도
남편이 속한 공동체에 특히 부목사로 속한 공동체에서 다른걸 말할 수는 없잖아요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결국 제가 해결하고 제가 이겨내고 제가 걸어가야 한다는 걸 압니다.
정목사님이 어떤 답을 하실지 대충 짐작은 하면서 그냥 한번 해본 소리입니다.^^
투정이죠 뭐
이래서 어른들이 아는게 병이다 하셨나봅니다.(농담)

정말 완전하 신,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입니다.
오리겐이 그 예수의 나신 날을 로마 황제가 태어난 것처럼 축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그 거룩 안에 들어간 낮아진 기쁨을 충만히 누리고 싶습니다.
profile

[레벨:95]정용섭

December 24, 2007
*.181.51.93

권오수 님, ldg 님,
네 설교가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군요.
여기서 변명을 길게 할 수는 없구요.
성경무오설 문제는
당신 믿어 안 믿어 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는 거지
거기에 담긴 고대인들의 주술적인 세계관을 믿는 건 아니거든요.
예컨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명을 우리가 지금 받아들이지 않구요,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는 말도 그래도 받지 않아요.
기적은 믿느냐 아니냐 하는 것도 오 엑스 식으로 답할 수는 없는 거지요.
저는 기적을 믿는답니다.
여기서 기적을 뭐라고 말하는지를 또 설명해야겠지요.
동정녀 사건만 놓고 본다면
제가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 진술을 다르 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 텍스트 자체가 다른 걸 말하기 때문에 다르게 해석하는 거랍니다.
저는 성서를 해석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명실상부하게 살아나니까요.
해석학이 바로 관건이랍니다.
동정녀에 대한 두 복음서의 진술, 즉 그 텍스트가
초기 기독교의 복잡한 전승사적 과정을 통해서 나온 거에요.
그 과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해석학의 기초지요.
권오수 님이 부활을 말씀하셨는데,
동정녀와 부활을 전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사건이랍니다.
복음서와 신약성서는 부활 없이는 세상에 출현할 수 없었어요.
동정녀는 없어도 복음서와 서신의 형성에 결정적인 문제는 없는 거랍니다.
신약성서는 부활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동정녀는 어떤 궁극적인 사실을 말하기 위한 종속변수이지요.
특히 헬라 지역에 기독교를 변증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일종의 변증적 수사라고할 수 있지요.
자꾸 말이 뱅뱅 도는군요.
오늘은 이만 들어갈까 합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기뻐하며,
그 기쁨이 형제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profile

[레벨:95]정용섭

December 24, 2007
*.181.51.93

산가람 님,
정곡을 찔렀군요.
<당시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척결하려했던
우리 기독 선배들의 노력이 눈물나게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그거에요.
그게 역사에요.
지금 이 생생한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진리 투쟁을 벌여야 한답니다.
교부들의 후예답게요.
아자!!!!
profile

[레벨:8]동그라미

December 24, 2007
*.24.68.39

권오수님 ldg님 안녕하세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책 한 권을 소개하겠습니다.
"새로운 눈으로 보는 성서" 바오로딸 에서 나온 책입니다.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이라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정녀 탄생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많은 크리스챤에게 예민한 문제이지요
저는 읽고나서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감을 경험했답니다.
profile

[레벨:1]신학도

December 25, 2007
*.103.96.76

성서의 텍스트 그리고 주변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학적으로 제게 큰 도움된 글이네요. 감사^^*
물론 의문 나는게 없냐</>있지요! 하지만 그 정도로 저에겐 시급하진 않슴다 ㅋㅋ
profile

[레벨:0]엉클캐빈

December 25, 2007
*.11.225.236

정목사님의 댓글 중에 이 표현..."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명실상부하게 살아나니까요." 예수님 생일인 오늘은 이 표현이 제 고백이었으면 좋겠습니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실상부하게 살아나기를... (밤에 일찍 잤더니 새벽에 일어나서..이러구 있습니다. ㅋㅋ 다른 분들은 아니겠지만 제겐 엄청 새벽이랍니다. 으흐흐 )
profile

[레벨:2]둘로스

December 30, 2007
*.232.236.146

성탄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하지만, 동정녀 탄생에 대한 의문은 복잡해 집니다. 비록 동정녀 탄생이 핵심 메시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성서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다른 많은 부분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주술적, 신화적 세계관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서 비슷한 사건이 설화라는 보증을 어떤 근거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질문입니다.
<궁금1> 동정녀 탄생이 고대 세계관에 기초한 설화이므로 결국 예수님은 정확하게 남녀의 인간관계에 의해서 태어났다는 의미인가요?
<궁금2> 영지주의의 가현설에 대항하기 위해 믿음의 사람들이 동정녀 탄생이야기를 만들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라면 왜 그 이야기가 마태에 의해 기록되어졌을까요? 영지주의는 적어도 마태 이후에 나온 사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궁금3> 한편 자연스런 탄생의 과정을 거쳤다면 성령으로 잉태하사라는 해석자체가 모호해집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그렇다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탄생 또한 성령으로 탄생되었다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요?
<궁금4> 마리아와 천사의 대화의 해석 문제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가능하다고 보아야하지 않는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7,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 '하나님이 이르시되(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시 33:6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히 11:3
<궁금5> 성서의 모든 언어가 신화적, 주술적 세계관에 지배하에 있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그 시대 정황은 아닌가? 오히려 그 시대 문화와 정황을 뛰어넘는 작품이 성경이 아닐까요? 누가는 역사학자이고 의사로써 이 일에 다른 사도들보다 더 신중했을텐데요..고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시대 세계관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시대와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종교가 되려면 그 시대를 뛰어넘는 새 창조물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의 개인적인 결론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기적(표적)이 나타나야 한다. 동정녀 사건이 신앙고백의 교리는 아니다. 그것을 믿는가 안믿는가에 따라서 구원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못하실 일이 없다. 상식적으로 과학적으로 안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학은 언젠가 무너진다. 과학이 밝힌다해서 그것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손가는대로 씁니다. 양해하시고 다분히 여러분들과 반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선 제가 마이너리티가 되네요 -_-
profile

[레벨:95]정용섭

December 31, 2007
*.181.51.93

둘로스 님, 동정녀 탄생에 관해서 질문하셨군요.
이런 질문은 성서관과 계시론, 창조론과 종말론 같은
기독교 신학 전반에 걸친 해명을 통해서 대답되어야 하기에
이런 대글로 논쟁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겠군요.
다비아 어딘가에,
특강, 또는 온라인강의 여성신학에 이 주제를 담은 글이 있을 테니
시간이 될 때 찾아보시지요.

1. 예수는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통해서 태어났나?
그걸 부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나 그런 게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니까
논쟁의 중심으로 삼을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남녀의 성관계는 생명탄생의 전제라는 점에서 거룩한 행위가 아닐까요?

2. 영지주의는 마태복음 형성 이후에 등장?
그건 더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영지주의가 복음서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아주 명백한 사실이지요.
요한복음이 전형적인 예이구요.
마태복음은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기록된 것이기도 하고,
그 당시는 신플라토니즘의 영향 권에 놓인 시대이니
영지주의와 교부들의 투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아야겠지요.
무슨 사상이 어느 한 순간에 탁 튀어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영지주의는 이미 헬라 철학의 뿌리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지요.
그리고 동정녀 탄생 문제는 헬라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독교 변증의 상황에서
나오게 된 것이라는 사실도 눈여겨 두어야 합니다.

3. 성령으로 잉태하사에 관해서
모든 생명의 탄생은 성령의 활동입니다.
성령은 바로 생명의 영이시거든요.
물론 사도신경과 마태복음의 성령 운운은 그런 차원이 아니긴 합니다.
예수 탄생의 독특성을 말하려는 것이지요.
요한복음은 예수의 신성을 탄생 이전인
창조 시간으로 소급하고 있어요.
신학적 사유가 복음서에 각각 작용한 거지요.

4.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가 갖는 진정성 문제
이 문제는 동정녀 탄생과 별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군요.
누가복음 신학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을 뿐이지요.

5. 성서의 역사 초월성에 대해
그렇습니다. 성서기자들은 역사를 초월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초월적인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은 역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서,
바하는 분명히 역사를 초월하는 곡을 작곡했지만
고전주의 장르를 충실히 지켰습니다.
헨델은 바로크 음악이라는 장르 안에서
역사 초월적인 곡을 쓴 거구요.
성서를 읽을 때 무엇이 초월적인 것이고
무엇이 역사적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결론: 과학과 기적에 관해서
저도 둘로스 님과 마찬가지로 과학만능주의자가 아니랍니다.
기적을 부정하는 사람도 아니지요.
동정녀 탄생이 과학적으로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성서와 신학이 동정녀를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을 뿐이에요.

2008년, 행복하소서!
profile

[레벨:2]둘로스

December 31, 2007
*.232.236.146

답변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글은 이어지는데 댓글에서 나누자니 죄송스럽네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한편으로는 충분한 이해가 되지 않고 또 목사님의 답이 어떤 전제를 가지신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솔직한 제 심정이라서..
다시 제 사족을 달자면..
1. 남녀간의 육체적 관계가 신성한 관계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만약 예수의 탄생이 인간의 육체 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예수님은 사생이겠군요.
요셉은 끊고자 했으니 자신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것이고요.
마리아의 정숙한 태도와 그녀의 신앙고백을 보아서 결혼을 앞둔 여인의 한 순간의 실수라고 보아야 하나요?
그런 예수의 탄생을 신성한 탄생으로 여기기 위해 마태가 설화를 작위적으로 편입시켰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지나친 비약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성경을 믿을 수 있는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가 있을지요..
진리가 아니면 과장해서도 안되고 꾸며서도 안되야한다고 봅니다.

진리가 진리가 되는 이유는 사상과 이론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시대를 넘는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영지주의의 탄생
물론 요한서신을 보면 영지주의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바울 서신에도 나오고요. 어느 사상이 한 시대에 갑자가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예수와 관련한 영지주의 사상은 예수님에 대한 지나친 열심으로 인해 기독신앙과 관련되 사상이지 마태처럼 유대인을 대상으로 성서에서 영지주의의 이론을 끌어오는 것은 원저작자의 의도에서 상당히 벗어난 추측이라고 생각됩니다. 신학자들은 마태의 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지면상)

3. 성령의 권능
모든 생명의 탄생이 성령의 능력과 권능의 역사라면 예수님의 탄생에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은 굳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추상적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태어났다고 기록만 되지 않았을 뿐..

4.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
남자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남자와 육체관계가 없다는 뜻으로 보편적으로 해석합니다.
오히려 예수 탄생에 있어서 일반적인 신적능력이 부여된 자연적 관계를 넘어서는 초자연적 신적 능력이 임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같은데요..오히려 증거가 된다고 보여집니다.

5. 세계관적인 한계..
저도 인정합니다. 그들의 언어와 역사, 상황의 옷을 입고 주님은 자신의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성육신 자체가 그것을 대표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진리는 세월이 흐를 수록 명백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데로 진리는 역사적사실에 기초해야하고 분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탄생설화로 접근한다면 부활설화도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현재 인간의 이성과 이해로 해석되어지지 않는 모든 사건을 신화적 세계관의 한계다라는 이유로 접근 한다면 어떤 것이 분별하는 기준이 될까요?

잠자고 방치했던 지적 자극을 주셔서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복된 새해 되세요..
profile

[레벨:26]돌파구

February 29, 2008
*.11.222.162

예수님의 탄생은 시간과 공간 밖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안으로(시간과 공간안으로),의지를 갖고 개입하신 사건이 아닌가요?
profile

[레벨:26]돌파구

February 29, 2008
*.11.222.162

오늘의 시대에 맞는 성경을 쓴다면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22 사순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26] 2009-04-06 14552
321 사순절 그날이 오리라! [12] 2009-03-30 10197
320 사순절 구원의 신비와 선한 일 [11] 2009-03-23 10670
319 사순절 무엇이 구원의 표적인가? [13] 2009-03-16 11229
318 사순절 약속의 하나님 [29] [4] 2009-03-09 11098
317 사순절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22] 2009-03-02 12635
316 주현절 창조의 빛, 인식의 빛 [15] 2009-02-23 14549
315 주현절 바울의 두려움 [12] 2009-02-16 9086
314 주현절 예수와 귀신 [44] 2009-02-09 10461
313 주현절 무죄한 피 흘림에 대해 [9] 2009-02-02 8733
312 주현절 가난한 사람들 [9] 2009-01-25 8344
311 주현절 무화과 나무와 하늘 [9] 2009-01-19 8937
310 기타 설교 퍼가는 분들께! [26] [3] 2007-02-16 50231
309 주현절 성령과 세례에 대한 질문 [6] 2009-01-13 9658
308 성탄절 크게 기뻐하라! [11] 2009-01-05 8630
307 기타 생명 상실의 두려움을 넘어서 [2] 2009-01-01 7589
306 성탄절 종이냐, 자녀냐 [26] 2008-12-29 9328
305 성탄절 하나님의 영광과 아기 예수 [8] 2008-12-25 9936
304 대림절 하나님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 [7] 2008-12-22 7760
303 대림절 광야의 ‘소리’를 넘어 [18] 2008-12-15 9182
302 대림절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8] 2008-12-08 9171
301 대림절 마지막 ‘때’ [11] 2008-12-01 8687
300 성령강림절 깨어 있으라! [10] 2008-11-23 12078
299 성령강림절 광야의 복된 삶 [14] 2008-11-17 9181
298 성령강림절 하늘나라 주인의 셈법 [19] 2008-11-09 11186
297 성령강림절 거룩한 하나님의 질투 [5] 2008-11-02 9865
296 성령강림절 형제관계의 자리로! [11] 2008-10-26 7894
295 성령강림절 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28] 2008-10-19 15152
294 성령강림절 재림의 주, 구원의 주 [9] 2008-10-12 7631
293 성령강림절 생명이란 무엇인가? [25] 2008-10-05 9808
292 성령강림절 하나님과 정의 [6] 2008-09-28 8314
291 성령강림절 믿음의 위험성 [9] 2008-09-21 8703
290 성령강림절 만나 전승에 관해서 [9] 2008-09-14 8037
289 성령강림절 두려움과 믿음 [6] 2008-09-07 9501
288 성령강림절 율법과 사랑 [9] 2008-08-31 9349
287 성령강림절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것 [9] 2008-08-24 10982
286 성령강림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8] 2008-08-17 7980
285 성령강림절 인간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구원신비 [4] 2008-08-10 9771
284 성령강림절 예수와 유령 사이에서 [9] 2008-08-03 11001
283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얼굴 [8] 2008-07-27 10782
282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 [10] 2008-07-20 12468
281 성령강림절 하늘나라와 예수 [23] 2008-07-13 13011
280 성령강림절 말씀은 성취된다 [10] 2008-07-06 13474
279 성령강림절 율법을 넘어서 [2] 2008-06-29 12641
278 성령강림절 경계를 넘어서 [5] 2008-06-22 13115
277 성령강림절 이삭의 하나님, 이스마엘의 하나님? [8] 2008-06-15 22169
276 성령강림절 하나님과의 평화가 답이다 [6] 2008-06-08 14610
275 성령강림절 의인과 죄인에 대한 질문 [3] 2008-06-01 16507
274 성령강림절 대재앙 앞에서 [8] 2008-05-25 15661
273 성령강림절 삼위일체의 하나님 [6] 2008-05-18 20829
272 성령강림절 영적인 사람 [11] 2008-05-11 17849
271 부활절 간질병과 믿음 (마 17:14-20) [8] 2008-05-04 19493
270 기타 메시야니즘의 기초 [1] 2008-05-01 14262
269 기타 참된 안식 [1] 2008-05-01 13818
268 부활절 사랑과 계명 [7] 2008-04-27 13851
267 부활절 하늘이 열립니다! [4] 2008-04-20 13096
266 부활절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17] 2008-04-13 11054
265 부활절 세례 받으라! [3] 2008-04-06 9515
264 부활절 보이지 않는 현실성 [19] 2008-03-30 11789
263 부활절 부활의 오늘과 내일 [15] 2008-03-23 12443
262 사순절 하나님을 찬양하라! [34] 2008-03-16 13686
261 사순절 살리는 영 [10] 2008-03-09 11648
260 사순절 구원의 현실 [9] 2008-03-02 11002
259 사순절 하나님과의 다툼 [13] 2008-02-24 13229
258 사순절 믿음이란 무엇인가? [11] 2008-02-17 14692
257 사순절 악마의 유혹 앞에서 [14] 2008-02-10 12760
256 주현절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7] 2008-02-03 13215
255 주현절 캄캄한 땅을 비추는 빛 [4] 2008-01-27 10945
254 주현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2] 2008-01-20 9571
253 주현절 하늘이 열리다! [5] 2008-01-13 9823
252 주현절 야훼의 영광과 빛 [11] 2008-01-06 9805
251 성탄절 예수는 예언의 성취! [5] 2007-12-30 12109
250 성탄절 성탄에 참여하는 길 [18] 2007-12-25 13330
» 대림절 임마누엘 예수 [17] 2007-12-23 11461
248 대림절 거룩한 길이 열린다! [8] 2007-12-16 9682
247 대림절 희망의 하나님 [8] 2007-12-09 9155
246 대림절 영적 각성 [19] 2007-12-02 9772
245 성령강림절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 [4] 2007-11-25 8033
244 성령강림절 기쁨에서 평화까지 [14] 2007-11-18 8713
243 성령강림절 거짓 예배, 참된 예배 [7] 2007-11-11 12025
242 성령강림절 혼합주의 신앙을 혁파하라! [13] 2007-11-04 11121
241 성령강림절 말씀을 수호하라! [9] 2007-10-28 8436
240 성령강림절 이 사람의 믿음 [12] 2007-10-21 9603
239 성령강림절 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7] 2007-10-14 9427
238 성령강림절 일상의 종말론적 지평 [10] 2007-10-07 8116
237 성령강림절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관해서 [9] [1] 2007-09-30 13276
236 성령강림절 하나님도 생각을 바꾸시는가? [5] 2007-09-23 8464
235 성령강림절 인간화해의 길 [9] 2007-09-16 8740
234 성령강림절 윗자리와 끝자리 [13] 2007-09-09 9297
233 성령강림절 정의로운 안식일 [6] 2007-09-02 8103
232 성령강림절 믿음의 완성 [26] 2007-08-26 11545
231 성령강림절 혁명은 시작되었다. [27] 2007-08-19 9328
230 성령강림절 우리는 하나다! [9] 2007-08-12 8496
229 성령강림절 그리스도를 통한 만물의 화해 [17] 2007-08-05 8435
228 성령강림절 마리아의 영성 [8] 2007-07-29 9354
227 성령강림절 하나님과 계명 [4] 2007-07-22 8252
226 성령강림절 나의 자랑 예수의 십자가 [13] 2007-07-15 9593
225 성령강림절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 [9] 2007-07-08 9232
224 성령강림절 벌과 복 [3] 2007-07-01 8466
223 성령강림절 참된 생명의 길 [14] 2007-06-24 9090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