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리더십에 반(反, 또는 叛)하다.
 
<’반하다’는 말을 혹시 오해할지 몰라 한자를 덧붙입니다. 이 때의 ‘반’은 反, 또는 叛 입니다.>
 
6. 인문학은 경영 도우미인가?
 
먼저 다음 책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도록 해보자.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찾다.> (전 3권)
<맹자 경영학>
<동양고전에서 리더십을 만나다.> (김진수)
[기타 수십 권의 책들 - (생략)]
 
공통점은 무엇일까? 위에 열거한 책들의 공통점은 세가지이다.
하나는 인문학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시작은 인문학의 침체를 거론하며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며 비분강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저자들 나름대로 고뇌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 비분강개의 기색이 책의 중반쯤 가다보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는 데 또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런 책들의 종착역은 뜻밖에도 경영학이다.
 
그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인문학을 경영학의 하부구조로 집어 넣어버리고, 마치 그 길만이 인문학이 살길인 것처럼, 경영학, 리더십, 처세술로 포장을 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문학입니다, 라고!,
 
그래서 그들이 처음에 주장하는 인문학의 세 갈래 - 문학. 철학. 역사- 는 경영을 야무지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자료로 군데군데, 분칠을 하고 사용될 뿐이다.  
 
조직의 효율화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조선왕조의 역사는 그 사례를 제시해주는 것으로 사명을 다한다. 리더십의 모범사례로서 청나라 황제들은 화려하게 등장한다.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말씀은 처세술의 잠언으로 각색되어 나타난다. 그런 과정에서 역사의 맥락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역사에서 흑백을 가리는 것은 필요없다. 그저 승리자의 뒤꽁무니만 따라가면, 경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울 수 있기에, 역사는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철학? 철학은 이익을 많이 낸 다음에, 그 부끄러운 과정을 교언영색으로 호도하여 설명하는 아주 적절한 도구가 되었다. 철학은 그래서 부끄러운 경영의 부끄러운 이윤창출에 아낌없는 지원세력이 되어, 그들의 정명(正名) 세탁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래서 그런 철학자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받은 만큼 준다는 논리에 따라, 몇십만부 팔리는 책들로 명성과 실리를 챙기고, 그들의 회사에 이름있는 명강사로 강의료도 겸하여 받으니, 이름하여 누이 좋고 매부좋은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어떤 일이 생길까?
인문학에 무언가 있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한 두 번 들어본 독자들은 세번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두 가지 방향으로 반응할 것이다, 그 한가지는 아, 인문학은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왜곡된 인문학의 모습을 머리 속에 담게 될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문학이 별거 아니구나, 결국은 경영학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인문학으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면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인문학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라 하면서 인문학을 경영 도우미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권하노니, 굳이 인문학을 거론하지 않고서도, 경영학은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학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인문학도 경영학도 반거충이 만들어 버리는, 어쭙잖은 인문학 부활을 외치지 말고, 인문학은 그저 인문학이 알아서 하도록 놓아주시는데 어떨지?
 
제발, 부탁하노니, ‘가지고 놀다가 그냥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라도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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