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리더십에 반(反, 또는 叛)하다.
 
<’반하다’는 말을 혹시 오해할지 몰라 한자를 덧붙입니다. 이 때의 ‘반’은 反, 또는 叛 입니다.>
 
7. 몰상식 반이성의 시대에 ‘예수’와 ‘공자’는 무엇인가?
 
시절이 참 수상하다. 어처구니 없다. 상식은 사라지고, 상식을 지탱해야 할 이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걸 어찌 아누?
 
이 땅에서 예수, 그리고 공자가 취급받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와 공자는 그래도 우리 인류 역사상 상식을 담보하고, 이성을 보전할만한 존재들로 스승이라 불러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들의 주장을 이 반이성의, 몰상식의 시대에 갈고 닦아 펼쳐 보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당연히 그래야 할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히려 제철 만난 메뚜기처럼 시세에 편승하여, 예수와 공자를 빙자하여 제 배들만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과연 이 일을 어찌할꼬?
 
예수의 이름을 거룩하게 이 땅에 펼쳐야 할 소위 성직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리더십이란 미명하에 얼기설기 처세술화하여 성전에서 팔아먹고 있으며, 공자의 뜻을 새겨 펼쳐야 할 소위 학자들은 시세에 아부하며 가진 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공자, 노자를 왜곡하여 팔아재끼고 있으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이러한 시세에 따끔히 충고해야 할 제정신 박힌 사람들은 제 한 몸의 보신을 위하여 쥐죽은 듯 숨어, 그저 학자연(然)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으니, 이 또한 통탄할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사람에게 영적리더십은 없다>는 제목하에 예수의 가르침을 처세술로 포장하여 팔아먹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 바 있으나, 역부족함만을 느낄 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중에 공자, 노자의 말씀을 몇 자 읽어보니, 이 또한 같은 경로를 거쳐 공자와 노자를 욕보이고 있는 세태가 개탄스러워 몇 자 적어, 공자를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들의 심지를 세워보려 한다. 이런 세태가 교계에 침투하여 교회가 리더십 처세술을 주창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교회의 리더십 장사가 제법 쏠쏠하다 싶어 보여 그들도 공자를 엮어 팔아보려 했는지, 저간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지금은 서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면서 교회 안팎에서 그러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그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 이 편 글의 제목에 이르기를 '예수와 공자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인가?’ 라고 언술한 것을 나무라지 마시라, 처세술 장사치들에게 예수와 공자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처세술의 기막힌 재료로써 기능하는 존재이기에 그 ‘무엇’(thing)인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이 그리 나오게 된 것, 헤아려 주시기를!
 
그들에게 예수와 공자는 무엇인가?
처세술이란 상품(product)를 제조하는데 아주 쓸모있는 재료일 뿐이다. 게다가 그 재료로서 내세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명목상의 가치도 훌륭하니, 더 좋지 아니하겠는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