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하고 기도(企圖)하라 / 벧전 3:7, 눅 6:12,
올해의 사자성어. - 전미개오’(轉迷開悟)
‘교수신문’에서는 해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여, 한해의 소망으로 삼고 있는데, 올해에는 ‘전미개오’(轉迷開悟)라는 말을 꼽았습니다. 교수신문 관련기사에 다음과 같은 해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의미는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는 것”이라며 “2013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가자”고 밝혔다.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는 “올 한 해 동안 있었던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가자는 의미에서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도상호 계명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은 거짓된 세력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들의 헛된 욕망을 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망에서 깨어나 현재를 바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올해 바람 첫째. – 기도(祈禱)하고 기도(企圖)하라
그처럼 사람들은 한해의 바람을 사자성어로 표현하여, 마음에 담아보는데, 나 역시 무언가 의미있는 어떤 것을 꼽아 그런 바람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문득 우리말 ‘기도’라는 말이 여러 의미가 있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우리 말 ‘기도’는 다음 세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 (祈禱) :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것
기도 (企圖) : 어떤 일을 이루려고 꾀함. 또는 그런 계획이나 행동.
기도 (氣道) : 호흡할 때 공기가 지나가는 길. 콧구멍, 코안, 인두, 후두, 기관, 기관지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기도 (祈禱) pray, 기도 (企圖) attempt, try, 기도 (氣道) the respiratory tract. Airway, air duct 입니다. 모두다 다릅니다. 뜻도 다르고 단어 자체도 다릅니다. 한자와 영어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 언어로 하면 이런 동음이어의 세 단어가 연결되지 않지만, 오직 우리나라 말만 같은 발음이라 한 가지 단어를 발음할 때에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가 연상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런 동음이어 세 단어를 앞에 두고 생각하다가 문득 예수님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세우기 전에 기도하던 모습 말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다음에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려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였으니”(눅6:12) 라는 구절로 보아, 예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企圖) 때에 기도(祈禱)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기도(祈禱)하고 기도(企圖)하라”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올해 바람 둘째. – 기도확보( 祈禱確保)
성경에는 또한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베드로 서신에서 언급한 기도는 분명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祈禱)임이 분명한데, 그 기도를 기도(氣道)로 바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기도(氣道)가 막히면 곧바로 죽게 되므로 기도확보(氣道 確保)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도 막히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기도가 몸이든 영적이든 막히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따릅니다. 몸에서 기도(氣道)가 그처럼 중요한 것처럼, 우리 믿음생활에서 기도(祈禱)를 그런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살기 위하여는 기도확보(氣道 確保) 가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기도확보(祈禱確保)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확보라는 말, ‘확실히 보증하거나 가지고 있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단어는 그냥 보통의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디. 서두에 말씀드린 ‘기도확보’라는 말, 호흡할 때 공기가 지나가는 길이 막히면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를 당한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기도확보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확보라는 말은 의미있게 쓰입니다. 예컨대, ‘비상식량 확보’, ‘경쟁력 확보’, ‘정보화 사회에서는 새로운 정보의 확보가 중요하다’, ‘예산이 확보되다’, ‘전문 인력이 확보되다’는 식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확보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 그 앞에 나오는 목적어가 보통의 것이 아니라 특별히 확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 역시 그처럼 확보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확보해야 합니다.
이런 동음이어의 세 단어들을 연결하여, 올 한해 나의 바람을 첫째는 “기도(祈禱)하고 기도(企圖)하라”, 둘째는 ‘기도(祈禱)를 기도확보(氣道 確保)하듯이 확보하라”로 삼아보았습니다.
교수신문에서 꼽은 것처럼 ‘전미개오(轉迷開悟)’, “2013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가’기 위해, 막히지 않도록 우리들이 기도를 확보해서, 그 기도로 기도하면 어떨지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기도 (祈禱), 사람과 나 사이에는 기도 (企圖), 자기와 자신 사이에는 기도 (氣道)가 필요한 것이네요!
구분하고 구별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오목사님,
전주에도 눈이 많이 왔을까요?
여기는 아침까지 소복히 쌓였던 눈이
양지것은 많이 녹았더라구요.
그래도 날씨는 좀 매섭네요.
목사님, 저는 올해 묵상집을 하나 구해서 읽고 있는데요.
<말씀, 그리고 하루>라고요.
부제는 '헤른후트 기도서 284판'이라고 되어 있네요.
말씀이 구약/신약 서너 편 나오고요. 특이사항은 짧은 기도문이 딸려 있어요.
기도문이 참 좋네요.
오늘(1/21)기도는 파울 게르하르트 기도문이네요.
예수는 나의 영광, 영예, 아름다운 빛이십니다.
그 분이 내안에 없다면, 하나님 면전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나는 고열 속에 있는 밀랍처럼 즉시 녹아내릴 것입니다.
목사님, 올해도 더욱 건강하시고 귀한 글 많이 많이 올려 주세요.
예, 여기도 눈이 많이는 아니지만, 왔습니다.
오랫만에 눈이 와서, 아침에 다소 당황했는데 그다지 문제는 없는
아주 예쁜 눈이 되어서
모두들 (저만?) 기뻐했습니다. 교통에 문제가 없기에 그랬습니다.
예전에 아침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정지하여 신호를 기다리는데, 그만 그 앞에서 신호를 받아 회전하여 오던 차가 미끄러져서 제 차를 받았습니다
그 때 처음 그런 사고를 당했는데, 상대방이나 나나 어쩔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저 당황하기만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눈은 아주 예쁘고 귀여운 눈이지요.
라라님은 저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게 만드는 아주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계십니다.
지난 번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게 하시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책을 소개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지난 번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다보니 길희성의 <보살 예수>까지, 그리고 에리히 프롬의 <존재와 소유>를 다시 읽게 되더군요.
이제 라라님의 그 책, 한번 살펴보렵니다.
댓글 주신 것, 정말....(여기 말로 한다면) 겁나게 감사드립니다.
더욱더 건강하시고, 평한하시기를.....
앗, 오목사님,
제가 위에서 묵상집이라고 말씀 드린 건
읽을거리가 있는 책이 아니고, 고저 수첩맨치로
작은, 말 그대로 묵상집인데요?^^
즈이들 흔히 보는 매일묵상, 혹은 생명의 양식류같은,
다만 성서해설이나 간증이야기가 전혀 없어요.
사실, 저도 이거 받아보고선
에게게.. 이거 다이어리 아냐?그랬다닌깐요.
그래도 듣기로는 본회퍼가 옥중에 계실 때도 이 묵상집을 애독하셨다고 들었어요.
**
글구.. 제가 목사님께 본의 아니게 책 소개를 해 드렸었나봐요.^^
저는 그냥 목사님과 대화할라고 말씀 드린건데..^^
목사님께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 사상/길희성>을 읽으셨군요.
저는 이 분하면 루돌프 오트의 <성스러움의 의미>를 번역하신 분으로 기억이 되서요.
이 책이 저한테는 아주 강렬했거든요.
에크하르트는 더더구나 잘 모르지만, 제가 작년에 몸살 앓으며 읽은 건
김순현(감리교목사님)의 번역으로 나온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네요.^^
읽으면서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글 내용이 어려워서 죽는 줄 알았고,
제가 진짜 아는 게 없구나 하는 부끄러움에서 죽는 줄 알았고요.
그런데, 후자의 부끄러움은 저를 참 자유하게 했어요. 아, 아는 게 없는 것도 복이다하고요.^^
참 우습지요? 그런 배짱이 저를 감히 에크하르트를 읽게 한 것 같아요. 목사님,
아까 서울에 다녀왔는데, 차창너머로 어찌나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지,
반갑고 고마워서 속으로 인사를 했어요. 고맙다. 나의 햇볕들.. (재밌지요?^^)
평안하세요.
에크하르트, 어렵습니다, 정말.
말씀하신 길희성의 책을 읽고, 게르하르트 베어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었는데
저에게는 길희성의 책이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쉬었다는 말은 베어의 책이 요령부득이라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중에, 어느 것은 납득은 되는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기 편한 것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에리히 프롬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존재와 소유, 그리고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더 확실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열매를 맺으려 노력을 해도, 나쁜 나무라면 그게 불가능한 것이고
좋은 나무라면, 좋은 열매가 저절로 되는 것, 그런 것
그의 설명을 따라가 보니 더욱 심도있게 이해가 되더군요.
그러나 아직도 안개같이 떠 있는 부분, 더 공부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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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현의 책도 이번 기회에 읽어 봐야겠습니다.
라라님 덕분에 공부 더욱 하게 되니, 감사합니다
네.. 목사님 올 한 해 기도확보를 기도하겠습니다.^^
밥은 챙겨먹으면서 내 영혼의 생명줄인 기도는 뒷전일 때가많았네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약한 의지마저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