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텍스트에 천착하는 인문주의자 정용섭 목사를 만나다

<복음과 상황> 2010년 5월 호와 6월호에 실린 인터뷰

 조직신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설교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설교학자들도 하지 못했던 ‘설교 비평’이라는 생소한 새 영역을 개척하고 그 기초를 확고히 다져 놓은 인물이 있다. 바로 정용섭 목사다. 정 목사는 한국교회 대표적인 설교자들의 설교를 ‘탈역사적이다, 성서의 도구화다, 아마추어적이다’라는 노골적 비평을 주저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응축된 글로 기독교 지성의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 고단했던 설교 비평을 끝내고 이곳저곳 강의를 다니면서 다시 성경 읽기에 천착하고자 잠깐의 휴식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멀리 경북 경산을 찾았다. 인터뷰는 정지영 기획실장(새물결플러스)이 진행했다.

 

정용섭 목사의 신앙 이력

 

정용섭(이하 ‘정 목사’): 아침 일찍부터 멀리 이곳까지 오려니까 힘들지요?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찾아와 주어 고맙습니다.

정지영(이하 ‘정 실장’): 길은 멀었지만 남쪽으로 내려오니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 목사 : 그래요? 다행입니다. 하지만 독서와 관련되어서는 달리 해 줄 얘기가 없어 어떨지 모르겠네요.

정 실장 : 신학 책을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설교 비평으로 많이 알려진 목사님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 같은데, <복음과상황>에서 목사님을 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복상 지면을 통해서도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더 좋겠고요. 목사님의 신앙 이력이 궁금한데요. 인터뷰를 위해 자료를 찾아봤지만 목사님의 신앙 이력에 대해 특별히 언급된 글이 없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 목사 : 그런가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신앙 이력이라는 게 글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부분이 많아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군요. 우리 가족 이야기부터 짧게 하는 게 필요할 듯하네요. 어느 시기냐에 따라 약간 다르긴 한데, 우리 가족은 모두 8명으로 형제는 육남매였어요. 형 둘, 누나 둘, 그리고 제가 넷째, 여동생 둘이 있어요. 친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고, 곧 새어머니가 들어오셨지요. 제가 중학생이 될 때쯤 새어머니께서 장사를 하다가 망하게 되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암튼 가족들이 어디로 간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다들 피난민처럼 살았지요. 참 어렵게 살았던 기억밖에 없어요.

정 실장 : 그런 배경이 있으셨군요. 처음 뵙는 분에게 불편한 부분에 관해 질문한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정 목사 : 괜찮습니다.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것들 모두 저를 형성한 기억들이니까요.

정 실장 : 신앙생활은 어떠셨나요? 신앙생활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 같은 것들이 있으셨는지요?

정 목사 : 글쎄요. 초등학교 때는 동네 형들 따라서 몇 번 교회에 나간 적은 있는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아요. 정식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성탄절 즈음이에요. 학교 채플 시간에 목사님의 강권으로 나가게 되었지요.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시진 않았지만 교회에 가지 마라 제지한 적도 없으셨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지요. 집보다는 교회가 저한테는 편하게 다가왔는지 몰라도, 한번 교회에 나간 다음에는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던 것 같아요. 고등부 학생회장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신학대학교에 진학을 했죠.

정 실장 :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신학교를 가셨다면, 고등학교 때 극적으로 회심을 경험했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후에 목회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되어서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데요.

정 목사 : 저는 양쪽 다 아닌 것 같아요.(웃음) 물론, 아까 말한 대로 중학교 때 목사님의 강권으로 교회에 나가면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사명감이 있어서 신학교에 간 건 아니에요. 사명감을 뭐라고 정의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명감은 아니었던 거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은 있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일반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됐어요. 그런데 신학교를 가면 교회에서 지원을 해 주니까 가게 된 거죠. 당시는 서울 천호동 성결교회를 다녔어요. 그래서 성결교 교단 신학교인 서울신학대학교에 갔지요. 청소년 시절의 저에게는 그렇게 신학교에 가는 것 말고 다른 기회가 없었던 거죠.

정 실장 : 소위 회심 체험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성결교가 교단적으로 그런 체험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정 목사 : 그런 획기적인 사건도 없었어요. 특별한 사건으로 하나님을 경험했다기보다 점진적으로 나의 사유가 깊어졌다고 할까, 폭넓어졌다고 할까요. 통전적 인식의 변화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군요. 물론, 그런 부분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하늘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하니 말이죠. 한편으로는 그런 것에 대한 일종의 냉소적인 마음도 있었어요. 지금도 한국교회가 화끈한 경험들을 많이 강요하죠? 한번에 하나님을 만나 신앙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건 감상주의, 미국 근본주의적인 부흥주의의 결과물이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아니에요. 간혹 사람들이 제 책이나 글을 보고 글 참 잘 쓴다는 얘기도 하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느냐 하는데 사실은 부끄러울 뿐이죠. 깊은 내용이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정용섭 목사의 독서 편력

 

정 실장 : 보통 예상했던 것과는 참 다른 삶을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듯한 선비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말이지요. 그래도 지금과 같은 지도적인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어려서부터 여러 훈련을 거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목사님의 신학과 신앙을 형성시킨 시기가 이때부터가 아닐까요?

정 목사 : 중고등학교 때는 그냥 열심히 다녔을 뿐이에요. 하지만 신학교 때부터 꾸준하게 인문학적 훈련을 받았던 것 같아요. 신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기독교 사상>을 사서 봤어요. 등록금 내기도 힘들 때인데 그런 걸 사서 봤지요. <창작과 비평>도 띄엄띄엄이지만 꾸준히 사서 봤어요. 함석헌 선생님의 <씨의 소리>도 빌리거나 사서 읽곤 했어요. 또 우주물리학에 관한 책들, 예컨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들도 저의 지적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어요. 물론 <세계문학전집> 같은 인문학적 책들을 틈틈이 읽었어요. 우등생처럼 공부하진 않았고,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필요한 공부를 (의도하진 않았지만) 계속하면서 그런 세계가 조금씩 넓어진 거죠. 내가 나를 판단할 때는 여전히 미숙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깊이 있게 전달되는 게 아닌가 해요. 물론,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열심히 봐오긴 했지요. 대학에 가서도 그랬고요. 특히 출판사 창비에서 나온 소설책은 많이 읽긴 했지요.

정 실장 : 문학 도서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그리스도인과 문화의 관계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 특히 목회자들이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을 충분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용적 독서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소설류는 거의 외면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 목사 : 그렇죠. 소설은 인간의 실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구원론과 연계되어 있어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성서 텍스트에서 구원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성서의 언어가 신문이나 역사책, 과학책에서 사용하는 ‘사실 언어’처럼 표면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 언어라기보다는 문학에서 사용하는 시어(詩語)처럼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영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언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해요. 그래야만 성서에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영적인 감수성을 열어 놓아야 해요. 제가 목회자들에게 강조하는 거지만, 설교자는 모두 영적 시인들이며, 영적 예술가예요. 젊었을 때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밤을 새는 게 얼마나 좋은 경험인가요? 한 권 읽고 나면 정신세계가 한 단계 올라가는 기분이 들잖아요.

정 실장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면, 태생적으로 성결교, 특히 우리나라 성결교 분위기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체험 중심적인 데 비해 목사님이 경험하신 훈련들은 이런 것들과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시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함석헌 선생의 글과 백낙청 선생 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성인들은 많지 않았겠지만, 보수적인 신학 풍토에서 발아된 신학교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책 등을 보신 걸 보면 말이지요.

정 목사 : 누구한테 영향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신학교 다닐 당시에 대한 기억으로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학위를 받은 교수님도 한두 분 정도였고, 강의 내용도 천편일률적이어서 학문적으로 존경할만한 분도 없었다는 것,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사표를 삼을 만한 분이 없었다는 것 정도예요. 1970년대에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의 개인주의적이고 탈역사적인 학문을 아무런 해석학적 작업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의할 뿐이었어요. 진짜 없었는지 내가 신학 공부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였는지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분은 없었어요. 신학교 강의를 통해서 나는 인간, 세계, 하나님을 폭넓게 배운 게 아니라 건조한 교리 체제만, 그것도 매우 개인주의적인 교리만을 배웠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스승이 없더라도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만났을 때 저절로 그것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좋은 책 한두 권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탐구하게 되지 않겠어요? 인간 삶에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구도, 수행이라는 게 있잖아요. 진정한 깨우침은 누군가에 의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이 중요하죠. 진리의 영, 생명의 영인 성령이 여기에서 움직이시는 거죠.

정 실장 : 신학교에서 목사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지적인 자극을 주는 수업이 있으셨는지요? 교과서 외에 특별히 챙겨보신 책이 있으셨나요?

정 목사 : 그런 게 특별히 없어요. 박사 학위를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의 계시론’으로 받았지만 훨씬 나중 일이고요. 학부 때는 교수님이 정해 준 거 따라가고, 알아듣는 말을 해 주면 재미있어 하는 정도였죠. 신학대를 졸업하고 M.A.(신학석사) 과정을 밟았는데, 사실 그때도 학위를 받아야 했던 개인적인 형편 때문에 한 거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한 게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는 불쌍해요. 신학에 눈을 뜨게 해 준 분이 없어요. 그래서 요즘 젊은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그런 얘길해요. 교회 생활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이죠. ‘한스 큉의 교회론’으로 석사 논문을 썼는데, 큉은 에큐메니컬한 교회론을 보여 줘서 좀 관심이 있었죠. 사실 해방신학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학교 분위기상 공부를 대놓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솔직히 말해서 학부 때나 대학원 때는 신학이 뭔지도 몰랐어요.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따라가기 바빴지요.

정 실장 : 그런 상황에서 유학을 가신 게 굉장히 의외입니다. 유학도 그런 상황과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생기는데요?

정 목사 : 네, 유학 생각도 없었어요. 생존이 급급했어요. 어디서나 살아남아야 했거든요. 어떤 친구들은 신학교 졸업하는 즉시 대학원에 갔는데 나는 그저 몸을 맡길 거처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어디든지 가야 했죠. 마침 대구의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를 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갔어요. 그 교회 대학부에서 활동하던 반주자가 지금 집사람이에요. 장인어른은 장로셨고 장모님은 권사셨는데 결혼 반대가 심하셨죠. 목사도 싫으셨겠지만 자기 딸은 피아노 전공하러 유학 가야 한다고 끔찍하게 반대를 하셨죠. 암튼 먼 외지에서의 교회 생활에 건강도 많이 나빠져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1년 만에 교회를 그만두고 서울신학대학 M.A. 과정에 진학했어요. 군목 가기 전에 3년이라는 기간이 비었는데 2년이라는 공백기 동안 다시 서울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교회 활동도 한 거지요. 그리고 군목 2년 차에 결혼을 했고요. 내가 제대하기 몇 개월 전인 1983년 2월에 집사람이 독일 쾰른으로 유학을 갔어요. 저는 제대 전에 서울 어떤 큰 교회 부목사로 가기로 했는데 집사람이 유학 생활이 힘들다면서 한국에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마지못해 제가 독일로 갔죠. 얘기를 하다 보니 내 의지대로 한 게 별로 없네요.(웃음)

정 실장 : 그렇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대목이기도 하군요.

정 목사 : 암튼, 쾰른에 가서 독일어를 공부했어요. 거기에는 신학과가 없어서 철학과에 적을 두었어요. 집사람은 학위가 먼저 끝나서 2년 만에 들어왔고 나 혼자 뮌스터에 가서 지도교수를 만나 박사논문 계획까지 했고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요. 결혼한 남자가 혼자 있는 것도 그렇고, 인생을 학문에 걸 만큼 역량이 없다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2년여 만에 보따리를 싸서 들어왔어요.

정 실장 : 목사님이 독일에서 돌아오신 때가 30대 초반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와서도 공부를 계속하셨죠? 판넨베르크를 전공하기 전에 다른 신학들도 본격적으로 접하셨을 것 같습니다.

정 목사 : 한국에 와서는 대구에서 가까운 달성군 현풍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마침 계명대 신학과 박사 과정이 생겨서 들어갔어요. 그때 헤르만 쿠터(Hermann Kutter), 레온하르트 라가츠(Leonhard Ragatz),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r Blumhardt) 등 소위 종교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쪽의 종말론, 하나님나라운동을 공부했어요. 물론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신정통주의 신학도 즐겁게 공부했고요. 판넨베르크, 몰트만도 공부를 했어요. 두 사람 모두 역사를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아요. 차이는 있지요. 몰트만은 역사의 실천이라고 한다면 판넨베르크는 역사 해석이죠. 좀 다른 이야기인데, 저는 신학공부를 겨우겨우 했어요. 나도 내 한계를 잘 알아요. 특출한 게 없고요. 어디서나 두드러지는 게 없고 다만 꾸준하게 하지요. 설교 비평을 4년 가까이 썼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사실 그것 때문에 위장병도 얻었어요.(웃음) 암튼 인내심 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닌가 해요.

정 실장 :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후 여전히 성결교에서 목회를 하시면서도 신학은 독일 신학을 향하고 계셨다고 볼 수 있겠군요. 웨슬리 전통에 서 있기는 하지만 성결교 신학 자체는 미국에서 발흥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인데, 잠시 다녀온 독일 신학에 어떻게 천착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정 목사 : 우리에게는 고유한 영성이 있어요. 이 영성 혹은 영혼은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명의 가장 심층에서 작동하는 힘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영혼은 어떤 것에 볼모가 되는 게 아니라 근원적인 거예요. 성결교 풍토 안에 있었지만 내 영혼은 늘 진리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성결교에서 부흥 강사 분들이 말하는 거 들으면 시시했어요.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옛날 얘기해 주는 정도였죠. 그런 건 잠깐의 호기심을 갖게 할 수는 있겠지만, 신앙을 견인해 주는 근원적 힘이 아닌 거예요. 청교도 영성도 나는 그런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하인리히 오트(Heinrich Ott),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칼 바르트, 마르틴 루터, 이런 쪽으로 가면 깊은 물을 마시는 기분이에요. 이건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갈 수밖에 없어요. 놀라운 거죠. 이런 게 진리의 힘이 아닐까요? 거칠게 말해서 성결교라고 하는 특징이 유럽의 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나온 도덕주의적 영성의 흐름인데요. 그것이 미국에서 조나단 에즈워즈(Jonathan Edwards)라든가 찰스 피니(Charles Finney), D. L. 무디(Moody) 같은 부흥 운동과 맞물려서 폭발적으로 미국의 독특한 신앙 유형으로 자리 잡은 거예요. 저는 이런 신앙에 만족할 수 없었던 거지요. 더 존재론적인 신앙의 세계가 필요했다고나 할까요. 그걸 독일 신학에서 맛볼 수 있었던 거지요.

정 실장 : 개인적이고 경건주의적인 신앙이 우리나라 성결교의 전반적 흐름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흐름이기도 하죠.

정 목사 : 그렇죠! 그런데 제 입장에서 볼 때 그런 것은 우리가 진리에 대해 열려 있기만 한다면 볼 수 있는 한계인 거예요.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다원화된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인에게 유럽과 미국에서 2세기 전에 유통되는 것을 그대로 먹이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아이가 컸는데 어렸을 때 입었던 옷을 입히는 억지스러운 거예요. 제가 이런 얘길 설교 비평에서 한 거예요. 한국에서 설교 명망가로 활동하는 분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더군요. 물론 모든 분들이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요. 해방신학의 우리나라 버전인 민중신학(民衆神學)도 나는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2000년 기독교 역사가 면면이 가져온 역사로 돌아가자는 거죠. 그게 교부 신학인 거예요. 그걸 판넨베르크한테서 배웠어요. 그는 볼수록 참 매력적인 신학자예요. 그는 4세기까지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해요. 설교가 바로 그런 것이죠. 오늘 우리는 기독교 신학과 영성을 보편적 언어나 개념을 통해 변증해야 하기 때문에 판넨베르크 신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심 신학이 아닌가 하는 거죠. 자연과학과의 대화도 몰트만보다 더 근원적으로 하고, 헬라 철학과도 그렇게 하고요. 목사들이 판넨베르크 신학을 설교에 바로 접목할 수는 없더라도 보편사적 차원에서 사유할 수 있는 해석학적 훈련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안 하고 신자들 닦달하는 데만 마음을 쓰니 안타까운 거죠.

정 실장 : 많은 분들이 목사님을 성서 읽기, 대구성서아카데미와 곧바로 연관해서 생각하는데, 하루 방문자가 1000명이 넘는다고 하는 다비아(www.dabia.net)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정 목사 : 2000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만 1년 동안 독일 베를린으로 안식년을 떠났어요. 누가 보내 준 건 아니고 교회에 사표를 내고 대구 가톨릭대학교 피아노과 교수인 아내가 연구년을 얻었기에 딸 둘과 함께 유럽에 가서 여행을 했어요. 거기에서 돌아와서 일반적인 목회는 그만하고 책 쓰고 번역하고 강의하는 쪽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큰 틀에서 말하면, 소위 Q.T식 성서 읽기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거지요. 내 삶의 문제를 말씀 한 구절에 비춰 해석하고 적용하는 건 성서를 자의적으로 도구화하는 데 불과한 거거든요.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 일반 신자들의 성서 이해를 바로 잡는 것, 양쪽 모두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대구YMCA에서 모임을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빌립보서를 1년 반 정도 매주 공부했어요. 지금도 대구성서아카데미에서 수요일마다 그런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인문학적 관점을 설교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 설교자들과 모였죠. 그게 아카데미의 시작이지요.

정 실장 : 다비아의 사역 내용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의 서재’라는 코너도 근본적으로 성서 읽기와 책과 독서를 통한 영적 성장이라는 목적에서 다비아의 목적과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 목사 : 한일장신대에 계셨던 김영민 교수의 인문학적 통찰과 관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조금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인문학이란 인간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노력,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성서는 인간의 삶이 중층적으로 녹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고요. 그런데 그런 걸 빼고 적용, 예화, QT식 성서 읽기로 인간에게 종교적 위로를 주는 것 정도로 성서를 대우하는 것, 성서를 실용화하고, 도구화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서 텍스트가 정작 말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성서 텍스트,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은 실증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은폐의 방식으로 말하는 건데, 설교자들이 성서 자체를 말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성도가 듣고 싶은 말만 해요. 그래서 어떤 텍스트를 갖고 얘기하든지 결과는 똑같은 거예요. 기도하자, 찬송하자, 예배하자, 전도하자, 봉사하자 같은 천편일률적인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이를 극복시킬 수 있는 것, 즉 은폐된 성서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훈련이 인문학적 사유, 인문학적 읽기인 거예요. 소위 강해 설교라는 것도 텍스트를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해석이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 성서를 읽으면 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큰 착각이에요. 노자의 <도덕경>도 한자 조금 알면 볼 수 있지만 노자의 사상은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이 보면 또 새롭게 해석해요. 음악·고전·성서 등, 이런 명작들은 아는 만큼 보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안에 진리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성서 안에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숨어있는 거예요. 즉, 종말에 가서야 확연하게 그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생명 사건이 거기에 있는 거죠. 그러니 그걸 해석을 해야 하는 거죠. 해석하지 않고 실증적 방식으로, 무조건 신자들이 은혜받는다는 미명하에 전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정리하면, 첫째로 강단에서 성서 텍스트가 선포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둘째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복하기 위한 실험의 장(場)으로서 다비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실장: 독자를 위해 인문학적 성서 읽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동일한 말씀을 강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 목사: 그럴까요? ‘인문학적 성서 읽기’란 한국교회에 굉장히 낯선 개념이에요. 원래는 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인문학은 세상에 속한 인간적 학문이고, 성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서가 인문학 책들과 똑같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어쨌든 문학․역사․철학—소위 문사철—이 세 분과를 전통적인 인문학이라고 하는데, 이 세 분과는 삶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 가는 사람의 무늬(人文) 그리고 묘(妙)의 지극함 즉, 즉 삶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차원에서 서로 긴밀히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장자와 노자의 사상이 문학이자 철학인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이 인문학에 담겨 있는 인간 삶의 흔적과 무늬와 묘가 고스란히 성서에도 담겨 있기 때문에 인문학적 훈련 없이 성서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학이자, 역사이자, 철학의 형식을 빌려 성서에 계시된 보편적인 생명 경험과 예수 부활에 토대한 기독교의 생명 경험은 결국 해석되어야 하는데, 이 시각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훈련이 인문학적 사유이고, 이를 통한 성경 읽기가 제가 말하는 ‘인문학적 성서 읽기’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라는 책에 보면 산티아고라는 목동이 연금술을 배우려고 길을 떠납니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연금술사가 산티아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요. “사막의 모래 한 알이 우주다.” 연금술이라는 것은 납을 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소통할 수 있는 보편 언어를 습득하는 거라고 말이죠. 성서 텍스트를 우리가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서언어의 존재론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제가 말하는 인문학적 성서 읽기와 같은 맥락이지요.

정 실장: 인문학에 대한 목사님의 강조를 ‘인간에 대한 이해’, ‘실존에 대한 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슐라이어마허나 소위 구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한 인간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둘 사이는 신학적으로 충분히 구별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칼 바르트가 구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결별한 것처럼 말이죠.

정 목사: 정확한 지적이에요. 제 사상이나 생각들이 명확하게 자리를 잡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제가 말하는 인문학적인 사유란, 인간을 이해하면 하나님이 보인다는 차원은 아니에요. 인간 실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론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곧 하나님인 것처럼이요. 하나님은 나라와 계시로 존재하는 분이에요.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계시론에 관계된 이야기들입니다.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과 인간 역사에 하나님의 구원 통치가 일어난다는 걸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죠.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게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죠. 이런 점에서 저는 심리학적 인간 이해에 근거한 설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느 글에도 썼지만 교회 목사들이 상담 목회 같은 걸 하는 건 우습다고 생각해요.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하나님의 구원 통치에 집중해야 해요. 목회 상담은 인간 심리를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일종의 과학이잖아요. 기독교의 인간 이해에는 과학의 범주만이 아니라 더 근원적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정 실장: 인문학적 성서 읽기와 관련해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가장 적실한 학문, 즉 인문학적 사유를 추구하는 것이 종교적 차원, 기독교 신학과 접맥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인데요. 다시 말해 인문학과 신학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정 목사: 신학을 말 그대로 신에 대한 언어라고 한다면 인문학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인간 삶의 무늬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 할 수 있어요. 한쪽의 중심이 신이라면, 다른 한쪽은 인간이어서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양쪽 모두 신비와 묘의 관점에서 비슷한 길을 간다는 점은 상통하지요. 둘을 굳이 구별한다면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에 묘의 존재론적 우위성을 둔다면, 인문학은 인간의 삶 자체에 묘의 존재론적 우위성을 둔다는 것 정도 아닐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과 세계 전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신학은 인문학과 대치되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지요.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 신비를 마음에 두는 신학이나 인간 삶의 묘를 존중하는 인문학이나 신비와 묘에 사로잡힌다는 점에서 비슷한 운명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 실장: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과 신학, 특히 조직 신학 공부를 강조하셨군요.

정 목사: 그렇죠. 평소에 인문학적 사유와 함께 조직 신학에 대한 공부도 강조한 이유가 그것이에요. 예컨대 하나님은 역사 초월적인 존재시고 예수님은 역사 내재적 존재시니까, 양쪽은 다른 존재잖아요. 그런데 이게 하나가 된다는 삼위일체의 신비, 이런 세계 속으로 차츰 차츰 들어가는 것, 성서를 해석하는 차원에까지 들어가는 것이 조직 신학 공부인데, 그런 훈련들이 되어 있어야 성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지요. 성서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는 역사 비평과 함께 신학의 역사, 교회 역사, 인간 삶을 이해하는 인문학 공부, 그리고 기독교 전체에 대한 체계를 바로 세우는 조직 신학 공부를 균형 있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게 되겠지요.

정 실장: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교회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정 목사: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삶의 지극한 묘까지 계량화하는 시대, 하나님의 존재 신비까지 처세술의 비법으로 도구화하는 시대잖아요. 제가 설교 비평에서 주로 지적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값싼 실용성에 따른 성서의 도구화 문제였지요. 일반 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겠지만 특히 교회의 경우,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실용주의가 가미된 미국식 복음주의가 이런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실장: 인문학 특히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이와 관련해 추천할 만한 책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정 목사: 김영민 선생의 에세이 식 철학책이 많아요. 그분은 참 독특한 글쓰기를 하는 분인데요, 외국 학자들의 철학을 그대로 수입해서 가르치는 기존의 철학 공부를 넘어서려고 한 분이에요.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등을 포함해 이분의 책을 여러 권 애독했어요. 신문이나 잡지에도 글을 자주 기고하셨는데 한국 인문학계, 철학계에 귀한 분이었죠. 이분의 책을 통해 인문학이 무엇이냐를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서양 철학자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마르틴 하이데거예요. <존재와 시간>을 포함해 하이데거의 중요한 저서들은 꼭 읽어야 해요. 그분 책을 직접 읽기 힘들면 하이데거의 사상을 기독교식으로 쓴 하인리히 오트의 <존재와 사유>도 좋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Sein) 같은 개념이 무척 흥미롭지요. 그분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Seiende)과 존재의 차이를 알게 됐지요.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시도하는 게 좋아요. 그 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이 자기를 때릴 때가 있어요. 책 읽기에서 그거 하나만 건지면 된다고 봐요. 동양에서는 노자, 장자의 영향을 받았어요. 2000년에 독일 베를린에 있을 때 신학 쪽으로는 판넨베르크의 책을 번역했고, 한자도 공부할 겸 장자의 책도 읽었어요. 읽고 쓰기도 하면서 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도(道)에 관해 공부했어요. 하이데거의 존재, 노자나 장자의 도, 기독교가 말하는 성령. 이게 개념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용섭 목사의 서재 이야기

정 실장: 이제는 서재를 둘러보면서 가지고 계신 책들과 독서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서재는 잘 정리되어 있는데 생각했던 것에 비해 책은 많지 않군요.

정 목사: 수년 전까지 따로 사용하던 연구실에 책이 어느 정도 있긴 했는데, 연구실을 접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젊은 목사님들이나 신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정 실장: 어려운 이야기들을 했으니 이제는 좀 쉬운 질문을 드려야 할 순서인 것 같아요. 책은 주로 어디서 구입하시나요? 한참 배우실 때 어렵게 공부하셔서 책을 보기 쉽지 않으셨다고 하셨는데, 헌책방도 많이 다니셨을 것 같아요. 독서는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하고요.

정 목사: 네, 학교 때는 청계천 헌책방에 종종 갔어요. 책값이 싸다고 하지만 그래도 돈이 있어야 사지, 주로 구경만 했죠. 전 계획적으로 하는 게 별로 없어요. 독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시간 되는 대로 해요. 요즘은 서울에서 교회로 모이고 있어서 정기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이용해 주로 책을 읽어요. 최근에는 오스카 쿨만의 <기도>를 읽고 있어요. 역시나 무척 좋더군요. 예전 예배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어거스틴의 기도문 등을 자주 읽고 있어요.

정 실장: 책이나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보통 선물로 책을 하시거나,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곤 하는데 그런 책들로는 어떤 책들이 있나요?

정 목사: 선물은 잘 안 하고, 하게 되면 제 책을 주곤 하지요. 지금은 제 책이 몇 권 나와서 제 책을 홍보하고 있어요.(웃음) 말한 대로 저한테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자주 있는데, 아예 홈페이지에 올려놨어요(본 인터뷰 말미에 정 목사가 추천하는 도서의 목록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추천하는 책은 아무래도 내가 전공한 독일 개신교 신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판넨베르크의 <사도 신경 해설>이에요. 이건 정말 필독서죠. 그리고 게하르트 에벨링의 <신앙의 본질>도 있는데, 이런 책은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이에요. 칼 바르트가 말년에 쓴 <복음주의 신학 입문>도 읽어야 하고요. 이 책은 칼 바르트의 신학적 특징을 잘 드러내는 책인데, 말씀신학, 변증법적 신학, 위기신학 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책이에요. 이런 책읽기를 통해서 바르트를 그저 따라하는 게 아니라 그의 신학하는 방법, 사유 방식을 배우는 게 중요하겠지요.

정 실장: 칼 바르트의 책은 ‘개신교 신학 입문’으로 번역했어야 맞겠지요. 영어로 ‘Evangelical’을 뜻하는 독일어 ‘에방겔리쉐’는 로마 가톨릭을 의미하는 ‘카톨리쉬’와는 다른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를 의미하니까요.

정 목사: 맞습니다. 이 책은 바르트가 말년에 쓴 작품이에요. 노 대학자가 이제 에베레스트의 높은 산정에서 자신이 지나온 신학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개신교 신학의 중심을 이야기하는 책이죠. 이 책은 목사라고 한다면 책상 위에 놓고 가까이 대해야 합니다.

정 실장: 에벨링의 책을 포함해서 목사님이 추천하신 책들 가운데 절판된 책들이 많습니다. 헌책방 순례를 취미로 삼고 있는 저한테는 즐거운 이야기지만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분들한테는 좋지 않은 소식인데요.

정 목사: 그런 현상은 정말 아쉬운 일이죠. 번역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정말 반성해야 해요. 해외 선교사는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내면서 전문 번역가는 안 키우고 있거든요. 선교사 보낼 비용으로 번역가를 지원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저도 번역을 해 본 경험이 있어 조금 알지만 우리나라 번역 환경이 굉장히 열악해요.

정 실장: 책을 좀 보면서 이야깃거리를 끌어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행본에 비해 유독 일반 잡지가 눈에 띄는데, 주로 어떤 걸 보시나요?

정 목사: <창작과비평>․<녹색평론>․<기독교사상> 등을 꾸준히 보고요. 주간지로는 <시사인>․<한겨레21>, 일간지는 <한겨레>를 봅니다.

정 실장: “한 손에 성경, 한 손엔 신문”이라고 했던 바르트를 충실히 따르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마르틴 루터의 전집도 눈에 띄는군요.

정 목사: 언젠가 영남신대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읽혔어요. 대구성서아카데미에서도 방학 때 고전 읽기를 하면서 루터를 같이 읽었어요. 세미나에 참석했던 학생들로부터 루터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요.

정 실장: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와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의 신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한국 개혁주의에서는 루터파 신학을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는 개혁주의 신학과 대비해 덜 신학적이고 더 인간론적인, 아래로부터의 신학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견해의 후유증으로 개혁주의가 원치 않는 피해를 받는다는 평가와 함께 루터 신학에 대한 올바른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고 있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대목이란 생각이 듭니다. 강독 모임을 따로 하시나요?

정 목사: 학교 강의 말고 예전에는 ‘고전 읽기’ 모임을 따로 했어요. 혼자 눈으로 책을 읽는 방식이 아니라, 단체로 차례대로 윤독(輪讀)하는 방식의 책 읽기 모임이에요.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2시간 읽고, 점심 1시간 쉬고, 오후에는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총 6시간을 독서에만 쏟는 그런 모임이었지요. 몇 해 전에는 1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에 <조지 폭스의 일기>를 읽었는데 34~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에어컨 없이 그저 선풍기 바람으로 버티며 읽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런 책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요.

정 실장: 이영희 선생님 책과 백낙청 교수 회고록도 있네요. 목사님의 독서 취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목록들인 것 같습니다.

정 목사: 문학적으로나 정치적 견해 차원에서 내가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창비(구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책들은 일부러라도 사 주려고 해요. 사회를 보는 안목은 창비가 나와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정 실장: 신학자이시고 설교자이신데도 주석이 빈약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 게 눈에 띕니다. 서재에 있는 거라고는 <국제 성서 주석>뿐이군요. 설교에 다른 주석들은 사용하지 않으시는지요?

정 목사: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이 주석만 참고해요. 제가 게을러서 많은 주석집을 읽지 못하지만, 한글로 된 주석으로는 이 책이 최고인 것 같더군요. 그렇지만 제가 큐티식 설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듯이, 많은 분들이 성서 텍스트로 들어가는 작업은 하지 않고 적용만 하는데, 설교자가 바르트의 표현대로 성도들에게 “성서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 주려면 성서 주석은 꼭 필요해요. 칼뱅 주석은 역사 비평을 거치지 않았지만 근원을 뚫는 힘이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신학적 마인드와 신학적 훈련이 없으면 성서주석만으로는 많은 걸 놓치게 됩니다. 등산할 때처럼 차근차근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야겠지요.

정 실장: 서재를 둘러보면 신학자이신 걸 단박에 알 수 있게 경건 도서류는 거의 없고 신학도서가 주를 이루는데, 한국교회에서 많이 읽히는 경건 도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목적이 이끄는 삶>이나 <로이드 존스 강해집> 같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에 대해 불만이나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요. 실제로 릭 워렌이나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신 적도 있지요?

정 목사: 불만이라기보다는 관심이 없어요. 릭 워렌의 설교는 건전한 미국 중산층을 양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지 복음이 아니거든요. 더 나가서 <긍정의 힘>의 조엘 오스틴은 완전히 처세술이고요. 청교도 류의 책들은 18~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종교적 감수성에 의존해 있어요. 주로 사람의 죄의식을 들춰내고, 도덕적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강조하기 때문에 탈역사적인 또는 몰역사적인 도덕주의로 흐를 위험이 높아요. 저는 그런 책을 읽느니 차라리 일반 책을 읽으라고 말해요. 제가 자주 추천하는 책 중에, 가만 있자, 어디 있더라. 여기! D.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라고 합니다.

정 실장: <월든> 같은 책들은 교회에서 소개되는 것 자체가 드물고, 최근에는 생태 신학과 관련해 보수적인 분들에게 오히려 호되게 비판받기 쉽지요.

정 목사: 그런 게 우스운 거죠. 저자의 사물에 대한 태도를 읽으면 되는데 그걸 놓치고 무슨 무슨 사상가라고 매도해 버리는 건 정말이지 우스워요.

정 실장: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습니다. 책이나 독서, 신앙에 관련해 <복음과상황>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정 목사: 책이나 독서, 신앙에 관해서라…. 아무래도 ‘인문학적 성서 읽기’ 얘기를 다시 꺼내야겠네요. 인문학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인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道)이라 할 수 있는데요. 우리는 인문학의 주류인 문학, 역사, 철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고고학, 언어학, 더 나아가서 예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이 남긴 흔적, 무늬들을 추적해 봄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얼마간이나마 손에 잡을 수 있게 되지요.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으며, 얼마나 숙명적이며,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그 실질을 명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신앙의 극단적인 추상성을 피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복음과상황> 독자들이 심층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책 읽기를 했으면 해요. 신학이나 경건 도서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문, 사회, 과학 분야까지 아우르는 책 읽기를 통해서 인간 이해를 탄탄히 하고, 종말론적 하나님나라에 영적 시선을 집중하면서 역사 해석과 변혁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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