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하이데거의 철학사적 자리

철학적신학 조회 수 4706 추천 수 1 2015.01.14 09:41:07

주- 여기에 올리는 글은 2004학년도 2학기 영남신대 신대원에서 개설된 <철학적 신학>(부제: 하이데거 철학의 기독교적 해석) 강의안이다. 안타깝게도 당시에 한 학기만으로 이 강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개설되어야 강의가 더 충실하게 보충되고 오자도 교정될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혹시 읽다가 잘못된 부분이 보이면 대글을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이런 데 관심 있는 다비안들을 위해서 10년도 넘은 강의안을 이렇게 뒤늦게 올리게 되었다. 주요 교재는 하인리히 오트의 <사유와 존재>(김광식 역, Denken und Sein). 이 책은 신학도나 기독교 영성의 깊이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필독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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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철학사적 자리

 

 

관념론

 

유럽 철학은 18세기 말부터 19세 초에 관념론(Idealismus)의 시대로 접어든 이후 두 세대 동안 독일 관념론의 꽃을 피웠다. 이 관념론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 철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난 수천 년간 전개되었던 모든 철학 논쟁의 토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계속해서 현대철학과 사유에 영향을 끼쳤다. 이 관념론 논쟁은 과연 이 세계를 규정하는 어떤 관념이 있는가, 아니면 이 세상은 오직 물질뿐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이데거의 철학사적 자리를 모색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 독일 관념론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시대적으로 볼 때 20세기의 하이데거 철학의 토대가 아무래도 19세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과 아울러 이 관념론 철학이 기독교의 입장에서 가장 친근한 사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념론 시대에 주로 활동하던 철학자들은 피히테, 셸링, 슐라이에르마허, 헤겔인데, 이중에서 관념론 철학을 집대성 한 인물은 아무래도 헤겔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헤겔의 관념론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 우선 관념론’(Idealismus)이라는 용어와 그것에 연루된 철학사적 배경을 잠시 검토해보자.

Idealismusidea는 분명히 플라톤 철학을 연상시킨다. 25백년에 이르는 유럽 철학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생각과 주장은 근본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거칠게 표현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실질들을 규정하는 어떤 근원적 세계가 실제로 있다는 의미이다. 플라톤이 그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 그 사상사적 배경을 여기서 충분하게 풀어내기는 힘들지만 우리가 헤겔의 관념론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상식적인 차원에서 접근해볼 필요는 있다. 우리 앞에 가장 확실하게 놓여 있는 것은 분명히 어떤 관념이 아니라 물질과 현상이다. 나무, , , 그리고 계절의 변화, 사랑, 분노 같은 것들이다. 이런 사물과 현상을 단지 그렇게 늘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더 이상 철학적인 사유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태를 조금이라고 세밀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많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의 감각적 인식에 들어오는 이 모든 사물과 현상은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계절이 바뀌고 우리가 늙어 죽는다. 헬라인들이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 시나브로 그 비밀을 벗어내고 있는 우주 세계도 역시 계속해서 시작과 사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플라톤은 영원한 그 무엇이 어디에 있다고 유추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무상한 것들을 출현시키고 유지시키며 다시 거두어들이는 그런 절대적이고 영원한 세계가 곧 이데아이다. 이것은 일종의 실체론적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유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플로티누스의 일자 개념에 근거해서 기독교의 신론을 전개한 것은 타당하다. 최문홍은 <세계철학대사전>관념론항목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데아를 참된 실재라고 하면서 만물이 변천해가는 현상계와 영원불멸하는 이데아계의 두 세계를 설명한 플라톤과 또 모든 사물이 생성 유전하는 것은 만물의 근본인 일자에 있다고 설명한 플로티노스도 철학사상 고대유심론의 대표자인데, 이러한 경향을 오늘날에 와서는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라고도 한다.(교육출판공사, 79,80)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 반해서 데모크리투스는 만물을 원자의 기계적 작용이라고 보았으며, 에피큐로스도 데모크리투스의 주장을 약간 변경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만물의 근원이 물질이라는 주장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결국 이들에 의해서 관념론과 대칭되는 유물론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또한 만물의 근원을 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이들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데모크리투스의 원소에 담겨 있는 실체론과 전혀 다른 맥락의 사유를 전개했다. 즉 만물의 근원은 어떤 고정된 실체(Substanz)가 아니라 운동과 변화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과정철학적인 주장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연결될 수 있는 것 같지만 이 양자는 전혀 다른 틀에 놓여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명백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헤라클레이토스의 운동은 그것 자체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운동 개념이 데모크리투스의 원소론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원소론은 기계론적인 세계이해지만 생성과 유전은 훨씬 영적인 세계이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제를 좀더 단순화해서, 플라톤의 이데아와 데모크리투스의 유물론은 중세기의 실재론유명론에 의한 보편논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이름으로만 남는 것인지에 대한 보편 논쟁에서 전자의 주장은 실재론(Realismus)으로 후자의 주장은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us)으로 규정되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하기락 선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논쟁은 보편자(Universalia), 이를테면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eidos)가 같은 개념적 본질의 존재론적 위에 관한 것이다. 이 논쟁에서 실재론과 유명론이 분열 대립되어 실재론자들은 개념적 본질을 이루는 보편자가 실재라고 주장하고, 유명론자는 개별적 사물만이 실재이고 보편자는 개별물을 지시하는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는 인식론적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문제였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제기된 실재론을 근세의 인식론적 실재론과 구별하기 위해서 개념실재론이라 부른다.(교육출판공사, 세계철학대사전, 844).

 

이 보편논쟁에 의해서 계속된 이 주제는 결국 헤겔을 중심으로 한 합리주의적 관념론과 꽁트를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적 실증주의에서 일단락된다고 보아야 한다. 객관적 실체로 인식되는 플라톤의 이데아는 중기의 실재론을 거쳐서 헤겔의 절대정신 안에서 정리되었으며, 늘 이런 인식과 대립해 있던 데모크리투스의 유물론은 중세기의 유명론을 거쳐서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결합한 꽁트의 실증주의 안에서 정리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주로 헤겔의 관념론을 다루려고 한다. 왜냐하면 헤겔의 관념론이 그 이후 모든 철학 사조의 나들목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이 세계에 드러난 현상의 근원을 전혀 다른 차원의 절대적인 세계에서 찾아보려는 주장과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 사이에 얽히고설킨 논리를 따라가는 일은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니까 접어두기로 하고 이제 헤겔의 관념론이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서양철학사의 논쟁이 헤겔을 기점으로 전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이데아와 보편적 실재론이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집대성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런 우주론적인 담론이 약화되었다는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주로 서동익의 설명에 기대어 헤겔의 관념론 문제를 간단하게 다루겠다.(위와 같은 사전, 1229)

우리가 헤겔의 철학적 특징을 상식적인 차원에서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절대정신의 변증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역사는 절대정신이 변증법적으로 자기를 현시하는(계시하는) 자리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그가 말하는 절대정신은 플라톤의 이데아까지 소급될 수 있지만 그 세계가 변증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실체론적 형이상학과는 구별된다. 즉 절대정신은 영원한 실체로서 변하지 않는 이데아가 아니라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도식으로 완성되어가는 어떤 세계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이미 완료된 절대적인 세계라고 한다면 헤겔의 절대정신은 역사의 진행에서 그 절대적인 것이 나타나야할 어떤 세계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의 입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과 대립을 종합하고 통일시킨 철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은 관념(Idea)이 곧 인간의 주관적 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이며,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은 관념이 인간 의식의 주관적 경험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작용하는 세계로 설명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은 서양철학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의 변증법 안에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은 지양된다.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서 서동익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철학은 이성개념(절대자)의 체계이며, 이성개념은 과정이다. 모든 이성개념은 원래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정립은 반드시 부정되고, 부정한 것을 또 다시 부정함으로써 훨씬 포괄적이고 높은 단계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처음의 두 모순개념은 제삼의 개념의 계기가 된다. 곧 정립, 반정립, 종합의 3단계의 발전 과정에서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아주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이를 새로운 형태로 살려서 보존한다.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함께 간직하는 새로운 긍정도 아직 완전한 전체적인 진리일 수가 없고 다시 그 반대자로 전화(轉化)하고, 또 이것과 저것은 새로운 통일의 단계로 자기내복귀(自己內復歸)된다. 이렇게 절대자가 자기를 자각하는 과정이 다름 아닌 변증법이며, 3단계의 변증법으로 구성된 것이 곧 그의 철학체계의 전체이다. ‘현실이 곧 이성이 되는 절대자가 영원한 로고스인 자기 자신에 있어서(an sich) 전개하는 학이 논리학이고, 그 절대자가 외적 존재의 형태로 자기를 외화(外化)하는 것이 곧 자연이고, 그 자연인식이 자연철학이 된다. 다시금 이 절대자가 그 외화에서 자기로 돌아온 존재양식을 전개한 것이 그의 정신철학이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은 19,20세기에 인류 정신과 예술,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사람의 철학자에게서 극단적 좌파로부터 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이 파생된 것은 헤겔의 경우가 거의 유일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놀랍게도 마르크스주의는 헤겔 철학의 대표적인 좌파라 할 수 있다. 왜 헤겔 철학이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견지할 수 있었을까? 그의 변증법적 역사관이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지적한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철학에 유물론적 역사관을 적용시킴으로써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가능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반기독교적인 반향이 헤겔 철학에게서 출현했다고 해서 그의 철학을 우리가 부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헤겔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서 사랑이 완전하게 발현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의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그에게 빚진 바가 적지 않다. 비록 그에게 종말론적인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진보사관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역사로서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을 변증하려 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인간학의 시대

 

19세기 전반기를 독일의 관념론이 지배했다고 한다면 이제 19세기 후반기는 인간학이 지배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말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으로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헤겔의 근본 취지와는 달리 인간의 역사의 중심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판넨베르크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인간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라는 호소는 특히 좌파 헤겔주의를 가리키는 일종의 암호였다. 그런데 이런 방향 전환은 이들을 뛰어넘어 헤겔 이후의 철학적 상황에서 일반적인 특징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철학적 흐름의 밑바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이나 절대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 자체가 세계와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토대로 간주된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기점에 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한 사유로 축소된다는 사실도 핵심으로 작용한다.(신학과 철학, 349)

 

어쩌면 이에 대한 책임을 헤겔에게만 돌릴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이미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에 의해서 증명되고 제시된 천동설로 인해서 우주에 대한 인간학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심겨졌을 뿐만 아니라 뉴턴에 의한 기계적 역학도 이에 한몫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다윈이 1859<종의 기원>에서 증명한 진화론은 이런 인간학적 토대를 고착화했다. 교회에서 주장하던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라 인간을 자연의 산물로 증명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 빠블로프(1849-1936)의 조건반사 이론도 역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을 조성하는 게 큰 역할을 했다. 만약 생물학적 인간론이 완벽하게 논증될 수만 있다면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본다거나, 따라서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로 보는 주장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19세기 후반은 이런 주장이 큰 힘을 발휘했으며, 따라서 신학은 이런 인간학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에 기울어졌다. 이 시기의 신학적 특징을 가리켜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 또는 문화 개신교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위에서 19세기 후반기의 서양의 역사가 인간 중심으로 방향을 잡게 된 책임을 헤겔에게 돌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보기에 따라서 상당한 부분에서는 그에게 책임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그의 변증법적 역사관은 여전히 계몽주의의 낙관론적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역사가 이상향을 향해서 진보하고 있다면 여기서 인간에 대한 낙관론도 강조될 수밖에 없다. 헤겔이 거기까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와 인간에 대해서 낙관적 견해를 갖는다면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바로 헤겔의 역사관과 기독교 종말론적 역사관 사이에 차이가 있다. 물론 헤겔의 역사이해가 인간에 의해서 진보된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변증법이 아무리 정립과 반립의 지양을 통한 또 하나의 새로운 정립이 세워진다고 하지만 결국은 뉴턴의 기계적 역학과 마찬가지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축소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내가 소상하게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도에서 접어두고, 다만 헤겔이 기독교 신학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좋은 뜻으로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역사관을 피력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자리만 확대되었다는 사실만 지적하기로 하자.

어쨌든지 이제는 관념론에 의해서 유지되던 하나님과 절대자에 대한 관심은 숙지고 대신 인간에 대한 관심이 서양 철학에서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인간 중심의 철학도 여러 갈래가 있다. 생철학, 실증주의, 실존주의. 그중에서 우리는 허무주의적 실존주의자라 일컬어지는 니체를 핵심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판넨베르크가 말했듯이 니체는 헤겔 이후 반()기독교적이고 무신론적 경향을 보인 철학사에서 가장 심층적이고 수미일관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또한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니체만큼 기독교의 근본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뿌리 채 흔들었던 철학자가 별로 많지 않다는 점도 우리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말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의 중심에 서야만 했다. 철학의 토대를 가장 철저하게 인간학에 정초시켰던 니체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기독교가 말하는 유신론적 형이상학의 부실한 토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하나님이 없는 허무를 말하는 니체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하이데거의 사상을 검토하면서 차츰 밝혀지겠지만 양자 모두 있음없음을 날카롭게 대비시킴으로써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심층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어쨌든지 신학을 공부하는 우리로서는 니체와 하이데거가 우리의 기본적인 하나님 인식의 토대를 허물고 있지만 그런 허무는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근본적인 것이 건설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허물어내는 부분은 우리 기독교가 역사적 왜곡되거나 덧칠된 부분이다. 그것이 바로 잡히고 벗겨지게 되면 기독교 신학은 당연히 제 자리를 찾거나 최소한 잘못된 길을 벗어날 수는 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sche, 1844-1900)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목사였던 니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한 탓인지 기독교 안에서 니체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이 상당한 정도로 왜곡되거나 그의 인격에 대한 악의적 소문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니체가 말년에 정신병에 걸려 죽은 것이 기독교를 비판한 결과라고 주장할 정도이다. 그의 개인적인 운명이 아무리 불행했다고 하더라도, 또한 삶의 과정 자체나 인격적인 부분에서 괴이쩍은 요소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한 인간 전체를 매도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니체의 발언을, 사실 그가 집필한 주요 저작들은 시적인 운율로 되어있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은 형식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다른 생각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미이며, 또한 설령 비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니체가 주장하고 있는 핵심은 무엇인가? 그는 기독교 사상으로 토대가 잡힌 유럽의 모든 정신과 문화를 해체하기 위해서 신과 이성을 부정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일종의 무신론이며 동시에 허무주의인데, 이 두 가지 특징은 공속적인 관계에 있다. 모든 존재와 체제의 최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신을 부정할 수 있다면 그 신에 의해서 구성된 사회질서도 역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신의 죽음은 결국 허무주의로 진행되는 단초인데, 여기서 말하는 허무주의는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기 위한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긍정을 위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니체가 신을 부정했다는 사실을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이미 그 당시에 기독교의 신론은 그 정당성을 상당히 상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니체는 그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포이에르바흐가 기독교의 신관을 이론적으로 파괴한 것을 매우 명백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계몽주의와 칸트의 이성 비판을 통해서 하나님과 형이상학은 증명할 수 없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신의 자리를 이론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그 시대적 변화를 니체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미친 사람을 등장시켜서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소리쳤다. 나는 당신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살해했다. 당신들과 내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살해한 자들이다”(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2, 125).

다른 하나의 관점은 이렇다. 그는 신이 없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말했다. 무신론은 아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니체는 그런 입장이라기보다는 인간에 의해서 신이 폐기처분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신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아야 한다. 과연 18,19세기의 기독교가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할 만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위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진화론 같은 격변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교회가 여전히 선악 이원론에 머물고, 기독교 신앙을 도덕주의와 동일시한다거나 외적인 권위주의에 안주하는 등, 성숙의 시대에 접어든 세상에 비해 정신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 중에서 니체가 집요하게 문제를 삼은 것은 교회의 도덕주의였다.

니체는 1887년 여름에 집필한 한 논문에서 기독교의 도덕은 세 가지 관점에서 허무주의로부터 인간을 지킨다고 피력했다. 첫째, 기독교 도덕은 인간에게 절대가치를 주었다. 둘째, 기독교 도덕은 세계에 완전의 성격을 부여했다. 셋째, 기독교 도덕은 인간에게 절대가치를 알게 했다. 이를 통해서 기독교 도덕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무시하거나, ()생명의 입장을 취하거나, 깨달음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을막아냈다는 것이다.(Nachgelassene Fragmente 5, 71). 사실 니체의 지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독교가 성숙한 세계 앞에서 도덕적 가치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칸트가 신의 자리를 윤리적 실천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안에서 이런 도덕의 강조가 결국 인간의 자학으로 이어졌다는 데에 있다. 신성(神性)에 대립해 있는 죄책감은 기독교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점에 달했다.(도덕계보학 1, 20). 또한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에게 충실하려는 전제조건으로서 자학에 대한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니체에 따르면 바로 무신론이 이러한 종교적 노이로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이다(도덕계보학 2, 20). 기독교인들이 도덕심과 그것의 불가능성 사이에서 일종의 노이로제 현상을 보인다는 것은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성적 욕망과 자학 사이에서 파괴되어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좁은 문>이나 <여자의 일생> 같은 소설에서 우리는 그 당시 교회가 강요하는 도덕심과 인간의 구체적인 삶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에서 둘째 형인 이반의 입을 통해 그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삼형제 중에서 둘째인 이반과 셋째인 알료사(?)가 그 작품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불가지론적 무신론자인 이반은 어느 날 수도승인 동생 알료사에 대심문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재림한 예수가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민중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자 러시아 정교회에서 그를 구속했다. 어느 날 밤에 최고 승정이 아무도 몰래 예수를 찾아온다. 당신의 나라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니까 빨리 돌아가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일 민중을 시켜 당신을 죽이겠노라고 한다. 인간학적 인식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던 19세기의 기독교는 퇴행적인 종교로 간주되었던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반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때문에 나의 입장권을 반납하려고 서두르고 있는 거야. 내가 성실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 일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해버리는 것이 나의 의무겠지. 그래서 나는 결국 반납하겠다는 거야. 알료사, 난 하느님을 거부하는 게 아냐. 하느님에게 나의 입장권을 공손하게 되돌려드리는 것뿐이야.”

  

 

니체는 이 문제를 <도덕계보학> 세 번째 논문에서 금욕주의와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기독교의 금욕적 이상은 생명과 적대적이라는 말이다. 특히 현재의 삶을 부정함으로써 피안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성직자들의 생각에 이런 금욕적 이상이 두드러진다. 여기서 성직자는 신자들의 죄책감을 공격함으로써 사죄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니체는 이런 금욕적인 이상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금욕적 이상은 결국 허무주의적이라고 한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증오, 더 나아가 동물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는, 또한 감각에 대한 혐오와 이성에 대한 혐오, 그리고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모든 외면, 변화, 진행, 죽음, 소원, 요구를 멀리하려는 요구, 이런 모든 것은 무에 대한 의지를 달성하고 반생명적인 의지를 달성하려는 것을 의미한다.”(도덕계보학 3, 28). 우선 니체의 논리는 크게 잘못이 없다. 어떤 점에서 인간의 생명 의지라 할 수 있는 열정과 욕망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신자들에게 자학과 금욕의 방식으로 접근되었다는 점에서 결국 허무주의적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조론과 구원론과 종말론은 결코 인간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훨씬 역동적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니체의 기독교 비판은 그 당시의 역사적 교회나 그와 비슷한 교회에만 해당된다.

그가 분석한 신은 죽었다”, 또는 무에 대한 의지는 모든 근원을 허물어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허무를 통해서 훨씬 긍정적인 세계를 추구한다. 하나님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회귀를, 선과 참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 심연을 거쳐 웃은 인간의 내재적 삶으로 대치시켰다. 도대체 허무주의가 어떻게 생명을 긍정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정리하면 이 문제가 해명될 것이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기성질서의 몰락을 촉진시키고 권력의지를 통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계기를 그 속에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사용하는 허무는 양가(兩價)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기독교의 도덕주의적 체계의 해체이며,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로서 새로운 생명의 건설이다. 이제 헤겔 이후 철저하게 인간학적 방향으로 기울어진 서양 사상사의 흐름에서 가장 극단의 길을 걸었던 니체의 질책을 우리가 좋은 뜻으로 받아 새긴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판넨베르크의 해석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대목을 정리하자.

 

니체가 무신론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그가 프로테스탄트의 참회적 경향을 혐오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데, 이 사실을 직시해야만 니체가 자신의 지적인 의심의 날카로움을 단 한 번도 근대 무신론을 증명하는 작업이나 또는 그 사회적 조건들을 향해서 시도하지 않았다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이해될 것이다. 그가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았던 정직의 덕은 그에게 사실상 매우 일방적으로, 또한 부분적으로 추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앞서 암시되었던 것처럼 설명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니체가 기독교에 대해서 비방했던 그 거울이 비록 깨진 것이라 해도 감사해야만 한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종교적 경건이 그릇된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충고에 대해서 눈감으면 안 된다. <중략> 니체에 의하면 세계를 부인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신경증적인 현상인데, 이런 것이 기독교 안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되면 안 된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포괄적인 자기와 세계 긍정이라는 바로 그 순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자기 긍정과 세계 긍정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창조 신앙에 들어 있다. <중략>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와 그것의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인 완성은 하나님이 예수의 변용을 통해서 자신의 창조를 확실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재의 세계를 아무에게도 양도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전환해 버리는 게 아니라, 땅에 충실 하라는 차라투스트라의 요구와 전반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판넨베르크, 신학과 철학, 385,386)

 

하이데거와 실존철학

 

니체를 다룬 것으로 이제 하이데거를 공부하기 위한 기초가 마련되긴 했지만 니체와 하이데거를 포함하면서 키에르케골과 싸르트르, 야스퍼스 등, 분석철학과 더불어 현대철학의 두 조류로 일컬어지는 실존철학일반에 대한 검토가 약간 필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의 철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을 실존주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하이데거가 결국 실존철학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일반적 견해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약간의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앞서의 관념론에서는 idea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절대세계로 작용했지만 실존철학에서는 인간이 그런 절대세계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개별적인 존재 근거를 확보한다. 그게 곧 실존(實存)이다. 이런 실존에 근거한 철학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실존철학자들의 생각은 각양각색이다. 유신론적 실존철학이 가능하고 무신론적 실존철학이 가능하다.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인간의 종교적 실존을 강조한다. 불안과 절망에서 비약해서 신에 대한 절대적 귀의와 신앙에 의해서 유지되는 종교적 실존이 최고 단계라는 것이다. 싸르트르의 실존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행동적 실존이며, 인류의 해방과 책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실존이다. 이런 점에서 싸르트르에게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기 때문에 사회 속으로의 앙가주망이 바로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도대체 실존철학이 말하려는 핵심이 무엇인가? 한문으로 실존(實存)실제로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 라틴어가 의미하는 것과는 약간 뉘앙스를 달리한다. ‘실존’(exsistentia)이라는 단어의 뿌리인 라틴어 동사 existereex(...으로부터)sistere(존립하다)의 합성어이다. 무엇으로부터 나와서 실제로 존립한다는 뜻이다. 이런 라틴어의 의미를 살리려면 실존이 아니라 탈존이라고 이름 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지 실존의 어원적 의미는 밖으로 나와서 존립한다.”이다. 실존철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정치적, 종교적 권위나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 근거를 명백하게 의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 이전에 인간은 어떤 절대적인 힘에 숙명적으로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지만 실존주의에 의해서 인간의 독립적인 존재 근거가 확보된 셈이다. 흡사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중심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여성을 밖으로 존립하게 한것과 비슷하다. 과연 인간이 자기에게 밀려드는 운명을 헤치고 고유하게 실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인간이 서야할 자리를, 특히 개체로서의 인간이 서야할 자리를 또렷하게 확보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업적이 있다 하겠다. 예컨대 고독, 불안, 모순, 두려움 같은 경험들은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 실존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영역들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직면함으로써 인간은 인간이 될 수 있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도 이런 부분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모세, 이사야 등등, 성서의 많은 인물들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실존했다는 점에서 실존철학과 기독교 신앙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이데거는 이런 실존철학자들과 어떤 점에서 상통하고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가? 그가 인간 실존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실존이 자신의 철학적 토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드러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현존재(Dasein)인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의 철학적 체계에서 실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끊임없이 존재망각의 현실 속에서 기초존재론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그의 철학이 인간적 착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학적 착상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결국 실존은 그의 철학을 특징짓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가 기독교의 신론과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확언하기 어렵듯이 하이데거의 철학을 실존철학이라고 해야 옳은지 아니면 존재철학, 또는 본인이 주장하듯이 현상학적 존재론이라고 불러야 옳은지 단정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이 수업이 진행되면서 정리될 테니까 이런 정도에서 접어두자. 끝으로 다음과 같은 판넨베르크의 조언을 참고하기로 하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는 자기의 의도와는 달리 철학적 인간학으로 수용되었으며, 이런 점에서 아주 독특한 효과를 거두었다. 하이데거 자신이 이 책에서 한번도 현존재의 완전한 존재론를 핵심문제로 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존재의 완전한 존재론이 철학적 인간학에 대한 존재론적인 자리매김으로서 불가결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현존재 분석은 현존재의 특수한 존재 양식을 끌어내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이로써 존재 일반의 의미가 분명하게 해석되지 않은 애 말이다. 이것은 출판되지 않은 이 책 제2권에서 다루어져야만 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존재를 존재자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으로 반성하는 데서 존재와 시간초월적으로다루는 작업은 뒷날 하이데거에 의해서 이러한 과업에 별로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 포기되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존재와 시간>에서 다루어진 작업이 이 책을 철학적 인간학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데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게 아니었을까?(신학과 철학,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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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또다른세계

2015.01.14 11:18:46
*.97.40.191

아침에 다비아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최신 등록글을 보고 순간 홈페이지에 에러가 난 줄 알았습니다.

매일 접하는 패턴과는 달라서 과거 강의안들이 링크됐나~ 했습니다. ㅎㅎ


안그래도 현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둘째치고 박찬국교수님의 강독도 쉽지가 않아서

오트의 사유와 존재를 들었는데...뭐 결과는 역시나 헤매고 있는 상황입니다~ㅎㅎ

목사님, 혹시 하이데거의 책을 잠시 뒤로 하고 오트의 책을 목사님의 강의안과 먼저 읽는 것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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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1.14 23:00:50
*.94.91.64

ㅎㅎ 강의안을 도배했으니 에러라 할만 하군요.

일단 이 강의안을 오트의 책과 같이 읽는 것도 좋아보이네요.

성과가 어떨지는 내 책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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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15.02.08 00:10:10
*.250.36.155

정 목사님..

철학이나 신학에 대해 잘 몰라서 그냥 교정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만 말씀 드리려구요.

페이지로 나오는 글이 아니라서 좀 어렵네요.

아무튼..

"인간학의 시대"로 시작하는 글 맨 아래 문단

"어쨋든지 이제는.." 로 시작하는 문장 중간 쯤 "하나님과 절대자에 대한 관심은 숙지고" 요거가 뭔지 모르겠구요..

다음 니체에 대한 글 중에서..

"니체는 1887년 여름에.." 문단 둘째 줄.. "둘째, 기독교 도덕은 세계에 완전의 성격을 부였다."

니체 마지막 문단 다섯째 줄.. "기독교는 기독교의 종교적 경건이 그릇된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충고에 대해서 눈감으로면 안된다."


오늘 읽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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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2.08 23:10:26
*.94.91.64

아이구 모래알 님,

꼼꼼하게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숙지고.... 기운이 떨어져 약해지다.

부였다.... 부여했다.

눈감으로면... 눈감으면

두곳만 교정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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