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순결

조회 수 7389 추천 수 0 2017.12.11 21:13:16

혼전순결

 

일전에 대학 2학년 여학생이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의 쪽지로 긴 글을 나에게 보냈다. 질문이기도 하고 상담이기도 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내 설교를 들어보라고 해서 매주 설교를 듣는 중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꽤나 신뢰하고 있는 딸인가 보다. 질문의 핵심은 혼전순결이 절대적인 규범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은 남자 친구와 종종 성관계를 나누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불편하다고 한다. 남자 친구는 자신이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믿을만하고 자기를 정말 소중하게 여겨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문제가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또래의 기독교 청년들에게 절실하다면서 내 대답을 듣고 싶다 했다. 당장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정리가 되면 대구성서아카데미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어제 서울에 다녀오면서 기차 안에서 정리한 글을 여기 올린다.

이런 문제는 목사가 아니라 성상담 전문가에게서 답을 들어야 할 것이다. 평생 목회와 신학공부만 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현실감 있게 대답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주제다. 그래도 질문한 학생은 나름 기대를 했을 것이고, 나도 평소 신학이 단순히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삶의 능력이라고 말했으니 용감하게 대답에 나서야겠다.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여러 번에 걸쳐서 강의한 여성신학’(feminist theology)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성경에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없다. 당시에는 이걸 당연한 것으로 보고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성에 관계된 다른 이야기는 제법 많다. 성경에는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자녀들과 성경을 함께 읽을 때는 그런 대목을 건너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주로 율법을 다루고 있는 레위기에 나온다. 근친상간, 동물과의 교접, 간음, 동성애 등등이다. 그 외에도 많다. 아버지의 아내를 범한 사람이나 아들의 여자를 범한 사람 등에 대한 규정도 나온다. 정말 이상한 상황도 나온다. 결혼한 남자가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야 한다. 동생이 원하지 않을 때는 아주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해결해야 한다. 요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서 가끔 보듯이 명예살인이 레위기에 나온다.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21:9). 불륜의 당사자도 다 죽이라고 한다. 무당도 죽이고, 우상에게 자식을 바친 자도 죽여야 한다. 이런 대목을 비기독교인들이 읽으면 뭐라 할는지.

성경의 성 윤리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당시는 가부장제가 절대원칙이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된다.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의 소유물이다. 여자와 아이들은 인구수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의 처분은 전적으로 남편이자 아버지에게 달려 있다. 유부녀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였다. 그래서 이를 엄중하게 다뤘다. 지금의 윤리적 관점은 이와 다르다. 여자가 남자의 소유가 아니기에 불륜은 도덕적인 문제는 될지언정 법적인 문제는 안 된다. 오늘날 성 결정권은 아무에게서 침해받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는 전혀 감을 잡기 힘들다. 예컨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성관계를 나누게 되는 시대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도 없다. 더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남녀 성관계를 통해서 자식을 낳지 않는 시대가 오면 인간의 성욕과 성 능력은 점차로 쇠퇴할 것이다. 성이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진화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길게 설명했다. 이것이 혼전순결 문제와 간접적으로 연관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겠다. 들은 이야기다. 어느 여고에서는 혼전순결 서약을 단체로 시킨다고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런 보도가 신문에 종종 나왔다. 사춘기 여학생들이 그런 서약을 맺고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키게 한다는 것이다. 코미디다.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순결서약이라니,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게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서약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 약한 아이들의 마음만 불편하게 하고, 나에게 질문한 학생처럼 죄책감만 늘어나게 할 것이다. 성 엄숙주의에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개방적인 네덜란드에서 성폭력이 훨씬 적고, 낙태율도 훨씬 적다고 한다. 남고에서는 그런 세리모니가 없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그게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순결이라는 단어가 여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들이 군 입대 통지서를 받으면 친구들에 의해서 홍등가에 가서 총각딱지 뗀다고 한다. 남녀 포함해서 결혼 전에 성관계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을 요즘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퍼졌다. 이제 그만 뜸을 들이고 사랑하는 이성과의 혼전순결이 과연 지킬만한 가치인가에 대한 질문에 직답을 해야겠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내 대답이다. 순결은 지키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는 실제로 간음한 것만이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했다. 간음 자체를 평가했다기보다는 사람의 이중성을 짚은 것이다. 성 관계는 두 사람의 가장 내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서로 간에 억압적이지 않고, 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들이 판단할 문제다. 그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더 깊이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만 아직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피임을 철저하게 할 것이고, 실수로 임신했을 경우에는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낙태하지 않을 각오를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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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인자무적

2017.12.12 10:16:59

사랑의 숭고한 의미를 나름 정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론 자녀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그를 위해 던질수 있다면 사랑한다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남용되어서는 안될 숭고하고 거룩한 말이라고 저 나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면 진정 사랑한다면 다른 것들은 부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설레임, 기쁨, 유희, 순간의 쾌락 등과 같은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는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면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러나 책임이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 온다면 고민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성과의 교제에서 섹스는 불가결일수도 있으나 필요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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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7.12.12 12:07:13

21세기의 여성지성이라고 일컬어지던 루 살로메는 "사랑은 망아와 아집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사랑은 포장된 이기일지도 모릅니다.<이하 자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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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0]새하늘

2017.12.12 18:45:54

참 무거운 주제입니다.

공감이 가면서도 인정이 잘 안되네요.

지금의 남자가 미래의 남편이 아닐 수도 있고,

사랑했다는 꼬리표 하나로 평생 짊어 간다는 구닥다리 윤리로 설명이 안됩니다.

때론 마음으로 깊이 간직하는 것도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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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12.12 20:55:24

어렵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한 주제라서

서로 일치된 의견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두 가지 사실은 분명해보입니다.

1) '순결서약' 수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 인간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기독교 윤리는 이 문제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레벨:3]차르붐바

2018.04.13 06:22:51

저는 작은교회의 부목사로서

정용섭목사님께서는 참으로 용감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청년들의 이런 문제... 안타깝게여기면서도 솔직한 해답을 찾아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금을 넘지 않게 애써야 했으며 금을 넘지 않으니..청년들도 시원한 해결을 받지 못했습니다.


금을 그 어느누구도 의식하지 않으시고 옳다고 생각하면 넘으실 수 있는 목사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그런데 이 금은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금일까요.. 사람이 세워 놓은 금일까요..


저는 아직도 결론을 못내리겠습니다. 


목사님의 말씀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일부청년들은 이런 목사님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쾌락을 사용하는 좋은 핑계로 여기며 방종의 기회로 삼을까봐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한편 또 생각해 볼것은  법으로는 남녀의 관계를 규정할 수 없지만

데이트폭력이나 몰카등으로 인해 하룻밤 쾌락에 대한 댓가를 혹독히 치르는 것들을 보면


성관계라고 하는 것은 가급적 정말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그와의 결혼을 통해 가지는 것이 

제일 안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언제나 목사님의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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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8.04.13 21:11:13

차르 목사님,

반갑습니다.

2천도 더 오래된 성경에서

오늘의 잣대로 딱 들어맞는 성윤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항목도 사실은 마찬가지지만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경험을 한 사람이

자기 시대에는 자기 시대의 언어와 개념으로

생명의 길을 찾아야 하니

부단히 해석학적 훈련을 받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을 오늘의 역사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변증해야 할 목사의 사명을 잘 감당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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