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경험은 어둠이다.

조회 수 5963 추천 수 114 2004.07.01 15:13:04
하나님 경험(1).

어쩌다 한낮 의자에 앉아서 깜빡 졸다가, 다시 잠에서 깨는 그 순간에 아주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아마 꿈과 현실의 중간쯤 되는 의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짧은 순간에 내 의식은 영원과 현재 사이를 수없이 오간다. 천년 전과 천년 후,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티끌로 존재하는 내가 있는 셈이다. 아!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시간 안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사물과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생각과 더불어 시간과 존재의 신비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곤 한다. 이런 경험이 단지 낮잠을 깨는 흐릿한 의식의 순간에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 담 밑을 걷다가 그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꽃향기, 또는 된장찌개 냄새를 맡을 때도 내 의식은 아찔하다. 어디 그것뿐이랴. 내 몸이 지구의 중력을 느낄 때, 신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어떤 순간에, 먹구름을 보거나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고 그 소리를 듣다가 나는 현실을 망각하고 어떤 아득한 세계와 그 힘에 휩싸이곤 한다. 이런 아득한 경험을 언어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즉 내 인식의 범주를 뛰어넘기 때문에 나는 어둠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나님 경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거나 또는 그 하나님에 대한 해명인 신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명백하게 인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이유는 성서의 증언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라 거의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작은 것이기 때문인데, 신학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흡사 호랑이가 남긴 몇 가닥의 털만 보고 그 호랑이를 인식해야 하는 경우처럼 성서의 증언은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기에는 턱없이 빈약하다. 더구나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그 자료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는 결코 없다. 여기서 간접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간혹 구약성서에서 야훼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예언자들의 진술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문학적 수사일 뿐이지 사실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양자의 존재 양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에서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는데 반해서 하나님은 그런 범주를 벗어난다는 말이다. 노자가 말하는 '道可道 非常道'라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언어와 개념 안에 들어가 버린 도라고 한다면 것은 참된 도가 될 수 없듯이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파악된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서가 이미 이런 사실을 증거한다. 욥기서는 믿음이 좋았던 욥이나 욥과 논쟁을 벌였던 친구들의 모든 논리가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부질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예언자들이 증언하려는 바도 자신들의 역사에 개입하는 야훼의 힘 앞에서 입을 다물라는 것이지 야훼 하나님을 자신들이 파악했다는 게 아니다. 자신들의 인식론적 범주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오랜 역사 경험에서 깨달은 구약성서 기자들은 결국 인간의 역사를 초월하는 새로운 역사가 도래해야만 구원이 완성된다는 묵시사상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는 신약성서도 역시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서 벗어난 것들이었기 때문에 놀랄 뿐이었다.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의 약속으로 인해서 예수 사건은 결정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뛰어넘는 사건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이 성서 기자들의 인식 안에 제한 받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하고 따질 분이 있겠지만, 분명히 그 말이 그 말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그분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본질을 언급했을 뿐이며, 그 본질이라는 것도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속성으로 해명되고 있다. 아래와 같은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아빠에 대해서 설명해보라고 했다면, 아마 업어주는 분, 과자 사 주는 분, 대충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런 대답이 이 아빠라는 존재의 정체와 본질을 모두 해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아빠가 철학자이거나 예술가이거나 시인이라고 한다면 그 대답은 그 유치원 아이의 작은 경험에 불과하지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아이의 대답에는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확실한 경험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진리,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분적인 진리이다. 이 아이의 생각이 깊어진다면 아빠의 세계가 자기의 경험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론적 범주를 뛰어넘는 그 신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어둠에 휩싸인다. 이 어둠은 내 인식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의 힘 앞에서 느끼는 일종의 무(無) 경험이다.  (2004.4.30.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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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8.12 17:45:21

하나님 경험은 어둠이다?
어둠 속에 감춰진 하나님은 우리를 미약한 작은 존재로 만드신다.
어둠속에 길을 헤매이며 우는 아이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모습은 정말로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과 감동을 준다.
그리고 슬픔의 눈물이 아닌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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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윤만호

2009.07.03 21:40:31

위 글중에 "성서의 증언은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기에는 턱없이 빈약하다." 는 부분에 꼬투리를 잡고자 하는 건 아닌데요,........................ 

 

"하나님은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방식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시며,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완성된 상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란 견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요?

 

(좀 더 나아가 우리는 현재의 성경한권으로 족하다. 원문의 비평적 연구나 추가적 반복적 현대어 번역본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많은데요)

 

그리고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는 바인데, "경전"이라 할만한 추가 계시가 요한 계시록이후에는(신약성경의 채택 이후에는) 없는 것인지, 있어서도 안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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