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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현절 |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은 현현절(顯現節)이라고도 부른다. ‘현현’이라는 ‘나타남’을 뜻하며, 이 말은 처음에 인간에 도움을 주는 신들의 출현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주현’은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 세상에 등장하셨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현절을 ‘빛의 절기’라고도 한다. 이는 빛 되신 주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이 빛의 절기는 이미 대림절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대림절 절기에 첫 주부터 마지막 넷째 주까지 차례대로 네 자루의 초에 불을 붙이는데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탄절은 이 빛의 절정이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죄와 어둠과 죽음의 이 세상에 구원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 전체가 주현절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주현절 절기는 일반적으로 주현절인 1월6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聖灰)수요일(또는 재의 수요일) 전까지 계속된다. 부활절의 시점에 따라서 주현절의 주일 수가 매년 달라지는데, 금년(2011년)에는 1월9일부터 3월6일 주현절 후 마지막까지로 아홉 번의 주일을 맞는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서방교회와 달리 1월6일을 성탄절로 지킨다.
주현절을 맞아 참고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짚자.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력을 대체로, 거의, 또는 철저하게 외면한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만 고른다면 한국교회의 영성이 “예수 영접”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종속변수로 떨어져도 좋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만 일방적으로 매달릴 경우에 신앙의 성숙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부부가 한 평생을 살면서 처음 만나서 사랑에 빠진 경험만 확인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창조의 하나님, 생명의 근원인 성령과 연관되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런 배움의 한 과정이 교회력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스승) &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자) >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는 우측 천사와 세례 요한을,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좌측 천사와 예수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주현절 휘장 성화
<그리스도의 세례 - 헨리 지미라즈키(Henryk Hector Siemiradzki)>
이 그림은 헨릭 지미라즈키(Henryk Hector Siemiradzki)의 '그리스도의 세례' 입니다.
이 화가는 국내에 별 자료가 없었는데요, 그렇다고 듣도보도 못한 무명화가는 절대로 아니어요.
폴란드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19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는데요,
위의 그림에서도 그의 고전주의적인 경향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아주 치밀한 의도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미라즈키의 그림을 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와 대각선 구도로 나뉜 두 세계입니다.
좌측 하단의 세례 요한이 서있는 검푸르게 물결치는 이 땅과
우측 상단의 거룩한 영적 세계의 저 하늘.
우리가 가끔 우스게 소리로 말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고 말이지요.
화면 그대로의 건널 수 없는 그 극명한 세계의 해결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을 지미라즈키는 묘사하였습니다.
또한, 복음서의 표현대로 비둘기같은 성령과 하늘의 소리,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그 시작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점점 드는 생각이 이 세례 장면만이 이러한 것이 아니라
이로부터 시작해서 예수께서 다니신 그 걸음마다 이런 영적 광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발을 보십시오. 순결하신 그 분은 험하게 검푸른 땅에 서있고
주의 길을 예비한 요한의 거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함께 하시며 아니, 그 분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십시오. 팔을 벌리면 십자가 상의 모습이며,
저 모습대로 수의에 싸여서 무덤에 누워있는 광경까지 그려집니다.
지미라즈키가 택한 예수님의 포즈는
십자가와 죽음, 그 부활까지 연결하게 하는 탁월함이 있어 보이는군요.
사실 세례 요한도 다른 어느 그림보다 더 사실적이고 의미심장합니다.
그의 거친 삶과 신실함, 그것을 알기에 누구보다도 예수의 삶을 바라보는 자의 모습이며,
또한 그의 지팡이는 마치 다음 주자에게 건내는 바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유니스' -
http://dabia.net/xe/church_seoul/334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