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101편, 제관식 선포문

조회 수 963 추천 수 0 2010.08.06 10:23:13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0년 8월4일, 저녁 8시, 시편 101편

제관식 선포문

시편 101편은 다른 시편에 비해서 영적인 깊이가 떨어져보인다. 여기에는 개인이 겪는 삶의 한탄도 없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갈망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고백도 없다. 1b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는 구절이 나오지만 그냥 지나가는 투이고, 전체적인 맥락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101편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시편의 성격보다는 잠언의 성격이 강하다.

구약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시편 101편은 유대의 왕 즉위식에서 사용되던 선포문이라고 한다. 요즘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통령이 읽는 취임 선서와 비슷하다. 이 시편을 선포하는 자가 왕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은 자기와 함께 살게 할 사람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6절)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명예(완전한 길)를 얻는다.(6절) 그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추방할 권력도 있다.(8절)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왕에게만 해당되는 이 선포문을 왜 시편에 포함시켰을까? 이스라엘은 소위 신정일치의 국가였다. 왕과 제사장이 구분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종교 국가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왕의 일은 곧 백성 전체의 일이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매우 미묘하다. 다른 경우는 접어두고 유럽의 기독교 역사만 봐도 그렇다. 원래 기독교는 로마 제국과 별로 상관이 없었다. 몇몇 황제들은 기독교를 박해했다. 이런 갈등의 단초는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에게서 엿볼 수 있다. 빌라도의 관심은 국가의 안정이었다. 그것을 헤치지만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용납했다. 그러나 예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 문제는 결국 하나님 나라와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유럽에서의 기독교는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선포한 밀라노 칙령에 의해서 그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기독교는 더 이상 로마 제국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온갖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들어 있다.

시편 101편이 시편 모음집에 들어온 것은 이스라엘이 신정국가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이 시의 내용이 이상적인 군왕의 표상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놓여 있다. 아마 후자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이 시편의 표제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했던 왕인 ‘다윗의 시’라고 한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정치를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정치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요소는 많다. 이런 점에서 바른 신앙 정치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3명의 장로 대통령이 나왔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것이다. 핵심은 1절이 말하듯이 그들에게 ‘인자와 정의’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인자와 정의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인자는 품어주는 것이며, 정의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다. 인자를 베풀어야 할 때와 정의를 세워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옆에서 아무리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마지막 결단을 지도자가 내려야 한다. 고독하고 위태로운 결단을 바르게 내리기 위해서 지도자는 진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는 구절이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어떤 사본은 이 구절을 “진리가 나와 함께 머물리이다.”고 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완전한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한다. 완전한 정치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편이 공식적인 선언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 과정이 큰 잘못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은 그런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문>

 

고독을 바라는 이유

                                     토머스 머튼

 

당신이 나를 여기에 부르신 것은

내가 특정 범주에 속하는 자로 자처할 수 있는

꼬리표를 달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은 내가 아무 것도 사색하지 말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나를 사색의 차원 너머로 올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무엇이며 어디에 있고 왜 있는지를 항상 알아내려고 한다면

수도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나는 수도생활을 큰 연극으로 꾸미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모든 것을 원하셨으므로

내가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을 일체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뒤로 버티고 서서

나한테서 당신에게로 어떤 것이 건너간 것처럼 생각한다면

나는 불가불 당신과 나 사이의 간격을 볼 것이고

거리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를 죽이는 것은 바로 그 간격, 그 거리감입니다

이것이 내가 고독을 바라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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