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2편 녹취록- 야훼 하나님의 주권

조회 수 1801 추천 수 0 2010.01.04 23:41:47

시편 2편 강해-야훼 하나님의 주권

 

예, 오늘 우리가 같이 읽고 배울 기도문은 성 어거스틴이 드린

기도를 올바로 드리게 하소서”그것입니다. 먼저 제가 읽겠습니다.

 

오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시여,

나로 하여금 기도를 올바로 드리게 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하시며,

주님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주님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자들까지도

멸망하기를 허락치 않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눈이 아주 아름답다고 보는 이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악의 근원이 아니시기에

주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좋사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진리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에게

악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창조한 이 우주는

사악한 면이 있어도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완전하게 됩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

선과 악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절대적이 부조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존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존재하고 있사오니

주님이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의

비열함, 사악함, 오류에 의해서도

주님은 침해당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진리를 알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와 지혜의 아버지시여,

참되고 완전한 생명의 아버지시여,

복과 선과 미와 지성의 빛이 되시는 아버지시여,

우리를 조명해주시어 깨닫게 하소서.

우리를 주님께 되돌아가도록 권고하시는

약속의 아버지시여,

주님을 불러 기도합니다. 아멘.(『독백록』1,2)

 

아멘! 이런 깨끗하게 정리된 기도문들은 우리가 두고두고 배워야 될 신앙선배 기도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평소에 너무 중언부언 할 때가 많습니다. 늘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조르듯이 그렇게 반복해서 원하기만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 성숙한 기독교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겁니다. 오늘 여기 어거스틴의 기도가 바로 우리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제목은 제가 앞서 말씀 드렸으니까 생략하고요. 내용만 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리겠습니다.

오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시여,

나로 하여금 기도를 올바로 드리게 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하시며,

주님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주님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자들까지도

멸망하기를 허락치 않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눈이 아주 아름답다고 보는 이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악의 근원이 아니시기에

주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좋사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진리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에게

악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창조한 이 우주는

사악한 면이 있어도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완전하게 됩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

선과 악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절대적이 부조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존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존재하고 있사오니

주님이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의

비열함, 사악함, 오류에 의해서도

주님은 침해당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진리를 알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와 지혜의 아버지시여,

참되고 완전한 생명의 아버지시여,

복과 선과 미와 지성의 빛이 되시는 아버지시여,

우리를 조명해주시어 깨닫게 하소서.

우리를 주님께 되돌아가도록 권고하시는

약속의 아버지시여,

주님을 불러 기도합니다. 아멘.

맨 첫 번째 단락에 마지막 줄 ‘주님은 무로부터 이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무(無),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은 있는 세계만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까지 주인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있는지 없는지를 사실 분간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식, 깨닫는 것이 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세계를 보고 삽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있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무, 모든 세계를 다 통괄하시는, 다스리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나중에 죽어서 몸이 썩잖아요? 없어지잖아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없는 그 세계까지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무로부터 우리를 창조하셨듯이 몸이 없어지는 세계에 간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생명을 약속하시고, 또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하십니다. 오늘 여기 어거스틴의 기도는 우리들에게 참 신앙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우리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도 그렇고 아주 중요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 다음 대목도 중요하지요? 우리는 보통 악한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거스틴의 이 기도문에 따르면 악까지, 우리가 악하다고 보는 것 까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고 하는 겁니다. 악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무슨 결함으로 볼 수 있어요. 그건 잘 못된 것은 분명하지요. 그건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것 까지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창조가 결국은 아름답다’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 마지막 대목에 이렇게 기도문이 나오는군요. 마지막 단락 4째줄에 우리를 조명해 주시어 깨닫게 하소서, 조명, 빛을 비춰주신다는 뜻입니다.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영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요.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성령이 비추어서 알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성만 있으면 아는 것 같지만 그런 아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지성이 아니라 신앙적인 말로 영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진리의 빛이신 성령이 우리를 깨닫게 하는 능력, 그것을 우리가 영성이라고 하는데요? 성령이 우리를 조명해 주시면 우리가 그런 세계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도 이해하고 이 땅위에서 사는 삶의 의미도 이해하고 죽음 이후에 희망에 대해서도 우리가 잘 알아서 살아 갈수 있도록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깨닫는 게 아니라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생각하는 것마저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분의 조명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음의 세계 속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 우리 진실한 마음으로 이러한 기도를 우리가 드려야 되겠습니다. 다시한번요.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문을 다시 한번 낭독하겠습니다.

 

오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시여,

나로 하여금 기도를 올바로 드리게 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하시며,

주님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주님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자들까지도

멸망하기를 허락치 않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눈이 아주 아름답다고 보는 이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악의 근원이 아니시기에

주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좋사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진리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에게

악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창조한 이 우주는

사악한 면이 있어도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완전하게 됩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

선과 악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절대적이 부조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존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존재하고 있사오니

주님이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의

비열함, 사악함, 오류에 의해서도

주님은 침해당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진리를 알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와 지혜의 아버지시여,

참되고 완전한 생명의 아버지시여,

복과 선과 미와 지성의 빛이 되시는 아버지시여,

우리를 조명해주시어 깨닫게 하소서.

우리를 주님께 되돌아가도록 권고하시는

약속의 아버지시여,

주님을 불러 기도합니다. 아멘.

 

예, 오늘 우리가 같이 나눌 본문 말씀은 시편 2편입니다. 네, 이 시편도 역시 기도문입니다. 기도문, 시편 시를 통해서 운율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문입니다. 오래전 히브리의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한 2500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우리는 동일한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기도문인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교독해서 읽겠습니다. 제가 이제 1절 읽습니다.

 

1.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대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 부은 자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 미며

3.    "이 사슬을 끊어버리자!"

       "이 멍에를 벗어버리자!" 한다마는

4.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가

5.     드디어 분노를 터뜨려 호통치시고

        노기 띤 음성으로 호령하신다.

6.   "나의 거룩한 시온 산 위에

      나의 왕을 내 손으로 세웠노라."  

7.    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의 칙령을 들어라.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 노라.

8.   나에게 청하여라.

      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

9.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10.   왕들아, 이제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신을 차려라.

11.    경건되이 야훼께 예배 드리고

        두려워 떨며 그 발 아래 꿇어 엎드려라.

12.   자칫하면 불붙는 그의 분노,

       금시라도 터지면 살아 남지 못하리라.  

       그분께 몸을 피하는 자 모두 다 복되어라. <공동번역성서>

 

<참고> 개역개정

 시편 2편

 

 1.어찌하여 이방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  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오늘 시편 2편의 제목을 정한다면 “야훼 하나님의 주권” 이렇게 정할 수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시편은 우리가 아까 어거스틴의 기도문을 읽으면서 보았듯이 몇 연으로 나누어집니다. 4연으로 나뉩니다. 제1연은 1~3절, 제2연은 4~6절, 제3연은 7~9절 ,제4연은 10~12절까지입니다. 1절에서 3절에서, 시편기자가 이 땅에서 정권을 잡은 이들의 그러한 권력투쟁, 보통 우리가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하지요? 흙탕물에서 서로 싸우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을 묘사해서 결국 그것은 자기들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다, 그러한 뜻으로 이 시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금 아마 이 본문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1절에도 보면요. 나라들이 술렁대고 민족들이 헛일을 꾸민다는 말은 보통 이런 겁니다. 그 당시 고대사회에서 왕이 죽으면 다른 귀족들이 군주? 봉건주라고 하지요? 왕 밑에 있는 사람들이 왕이 죽은 다음에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서로 권모술수를 쓰고 그렇게 하는 일들을 얘기합니다. 그 어떤 정세가 격변 할 때에 힘을 잡아 보려고 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행동들, 그런 것들을 가리켜서 술렁대고 헛일을 꾸민다, 이야기 합니다. 지금 우리도 선거를 앞에 두고 정권도 바뀌고, 복잡하지 않습니까, 이런 흐름하고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 그것을 지금 시편기자는 야훼를 거스른다,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을 거스른다 얘기했는데요. 기름부음 받은 자는 이스라엘의 왕을 이야기 합니다. 그 당시에 고대인들이 왕 그리고 예언자, 제사장 이런 사람들을 기름 부었거든요? 특별히 그림 부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러한 뜻으로 그런 지위에 올라갔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왕을 대항해서 서로 여러 나라들이 싸우는 그런 모습들을 가리켜서 야훼를 거스른다, 기름 부은 자를 거스린다고 이렇게 얘기 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들이 참 문학적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미며 얘기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자기를 나타내려고 우리가 들썩거리는 것 같아요. 영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우리가 안정되지 못하고 조그만 일들로 인해서 흔들리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거기에는 저도 그렇게 크게 벗어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 어쨌든 작은 일들로 걱정도 하고 이러저런 일들이 있어요. 왜 그럴까?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참된 의미에서의 평화, 이런 것들이 필요 할 텐데요. 우리는 그런 면에서 참 간사하기도 하고 약삭빠르기도 하고 중심도 없고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왕들도 들썩거리고 음모를 꾸민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정확한 진술인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4~6절까지 또 하나의 연으로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4.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가 웃으신다는 뜻이지요? 가소롭다는 뜻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인간처럼 소리를 내서 웃고 하시는 분이 아니죠. 그분은 우리와 전혀 다르게 존재 하시는 분이기 때문예요. 다만 이 시인은 문학가이기 때문에 시인들은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어떤 생각처럼 바꿔서 설명하는 거지요. 이렇게 하나님이 4절에서 가소롭다고 웃으시다가 거기서 끝내지 않고 5절에 가면 분노를 터뜨려서 호통을 치신다, 그러니까 그 웃음이 경우에 따라서는 분노로 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하도 그 뭇왕들의 일들이 허황된 거구요. 도저히 용납되지 못할 때 그 하나님이 노기 띤 음성으로 호령하신다고 시편기자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3번째 연은 7~9절까지입니다. 여기 7절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7.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의 칙령을 들어라. 이게 인제 스스로 왕이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시편 2편은 왕 즉위식 때 부르는 합창이라고 합니다. 그 왕을 세우시고 그리고 야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내용이 7절 후반절부터 이렇게 9절까지 나오겠습니다. 너는 내 아들 이렇게 하지요. 하나님에게 직접 아들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구절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표현하는 구약의 증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통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생물학적인 아들과 아버지 그러한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가 있는 분이다 그러한 의미지요.

 

어쨌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앙이 구약성서는 바로 이 구절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8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8.나에게 청하여라. 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 9.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네, 하나님이 아들로 삼으신 분이 이 세상 모든 왕들을 다스린다. 9절 질그릇처럼 철퇴로 부수어라” 이렇게 표현 되어 있는데, 이것도 문학적 표현이지요. 그러니까 그 분의 힘이 아주 강력하다 그런 뜻입니다. 네, 여기에서 3연, 7~9절까지도 왕 즉위식 때 부르는 합창이긴 합니다만 그냥 겉으로만 보면 이 왕이 대단 하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왕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는 겁니다. 왕의 그런 권위라고 하는 것은 왕 스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야훼 하나님에게서 있는 거 거든요? 야훼 하나님이 칙령을 내리신다, 선포하신다, 이런 생각이 시편기자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칙령, 그 분에게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뜻이지요. 마지막 제 4연은 10~12절까지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왕 즉위식에 사용된 그러한 찬송, 합창의 가사입니다마는 그러나 왕이 주제가 아니라 사실은 야훼 하나님이라고 그랬어요. 마지막 연에서 그걸 더 집중적으로 더 모아서 설명합니다. 야훼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지요. 10절 보면 이렇습니다. 10.왕들아, 이제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신을 차려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제 왕을 세우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스라엘의 왕을 세워서 다른 나라 왕들이 이스라엘 왕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은 앞에서 담고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결국은 모든 왕들은 야훼 하나님에게, 그쪽으로 마음을 두어야 되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에게 자기의 모든 힘들이 나온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 그렇게 말하잖아요? 깨달아라, 정신 차려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세상의 왕이 된 사람들은 정신 차리라고 해도 그렇게 잘 안 합니다. 조금만 자기가 어떤 그 권위가 주어지면 굉장히 교만해지거든요? 지금 이렇게 시편 기자가 왕들아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들아, 부자들아, 권력을 가진 자들아 정신 차려라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깨닫지도 정신을 차리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참 이상한 거예요. 인간의 본성 자체가 죄라서 그런지 인간은 교만합니다. 죄는 교만이니까요. 교만은 휘브리스(hybris:헬)라고 하는데요. 그게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그런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지요. 참, 왕들과 통치들 위치로 올라가지 않은 것을 우리는 오히려 감사하고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위치로 가게 되면 그 권위에 자기가 사로잡혀서 절대 겸손하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기가 힘듭니다. 네, 오죽했으면 지금 시편기자가 왕들과 통치자들에게 정신 차려, 이 녀석들아! 이렇게 말하겠어요. 정신 차려서 해야 될 일은 그렇게 말합니다. 경건 되이 예배를 드려라 하는 거지요. 예배를 드려라,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고 해서 늘 그냥 형식에 따라서 찬송, 기도 성만찬 형식에 따른 기도에 따른 반복해서 드리라는 뜻 보다는 그 이어서 주신 말씀이 참 중요한 겁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뜻이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예배는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린 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보통 worship이라고 하는데요. worth라고 하는 말하고 ship이 붙었어요. worth는 가치 있는 거거든요? 하나님에게 최상의 것을 드린다는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린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아주 진실하게 겸손하지 못하다면 하나님에게 우리의 생명을 바친다고 하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그건 예배라고 할 수 없겠지요. 예, 그 이어서 주신 말씀이 그런 점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자세입니다. 하나는 두려워 떨며, 또 하나는 발 앞에 꿇어 엎드리라고 하는 겁니다. 두 개 다 비슷한 뜻이 있는데, 앞에 두려워 떨면 그 내면의 상태를 얘기를 거고, 우리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라 라고 하는 것이지요. 정말, 이러한 하나님만이 생명(?)택권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적인 그러한 어떤 힘들요, 오히려 그것이 더 우리 두려움의 대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것을 잃어 버릴까봐 우리는 불안해할 때도 많이 있고 말이지요. 두려워 떨며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정말 종처럼 덜덜 떨어라 벌을 받을 까봐 그렇게 공포 속에 떨고 있어라 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는 숨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 두려움은 그러니까요. 거룩한 두려움이에요. 이게 공포하고 두려움하고는 다른 겁니다. 보통 우리가 귀신을 만날 때 이건 공포예요. 내가 암에 걸렸다, 이건 공포예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것은 이런 공포가 아니예요. 자기 전체 실존이 그대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그러니까 아, 불꽃같은 눈으로 본다고 하는 표현처럼 하나도 숨길 수 없다면 정말 그 앞에서 두려움인건데요. 그걸 가리켜서 우리는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종교적인, 좀 신학적인 용어로는 그걸 누미노제(Numinose)라고 합니다. 누미노제, 루돌프 오트(Rudolf Otto, 1868~ 1937)가 쓴 책 <거룩함 Das Heilige>이라고 하는 책에 그 용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두려움을 알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게 신기한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완전히 드러났다고 하는 사실,

 

예를 들자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스랍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서 하나님 경험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나는 죄인이다, 내 입술을 숯불로 지져 달라 그러한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경험들이거든요? 혹은 또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는 가시떨기 나무아래서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신발을 벗듯이 그러한 경험들, 거룩한 두려움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러한 경험들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 이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내면의 상태 그건 아주 절대적인 것을 만났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어떤 내면적 세계라고 한다면, 발아래 꿇어 엎드려라 라고 하는 것은 외면적 태도를 얘기 하겠지요. 그것도 뭐 연관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발아래 꿇어 엎드리는 것, 자기를 가장 낮은 데로 놓는 그런 자세, 이게 정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기독교 영성의 부분입니다.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일들 가운데서도요. 우리가 좀 이상하게 되는 게 이 바리새인들은 굉장히 종교적이고 세련된 사람들인데, 그들보다도 죄인들 이런 사람들이 더 예수님하고 더 많이 통했어요.

 

이거는 바로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인 면으로는 종교적인 데가 있었는데, 마음이 낮추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과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가장, 아예 땅 바닥에 놓고 사는 삶, 자기를 낮추는 그런삶이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 가톨릭의 그 신부들 사제 서품 받을 때 보면요. 그런 순서가 있어요. 어떤 순서에 가면 신부들이 땅 바닥에 딱 이렇게 엎드립니다. 완전히 이렇게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합니까? 불교에서도 그런 의식이 있어요. 어느 길을 성지순례 할 때 그냥 걸어가지 않고 몸을 던져서 갑니다. 몸을 쭉 엎드렸다가 손바닥 끝 간 곳까지 가고, 서너 발 가고 또 엎드리고, 이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삼보일배(三步一拜)라고 하는 것들도 있고요. 그런 것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흙처럼 낮춘다고 하는 겁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내면적으로 거룩한 두려움을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며 동시에 삶의 자세에서도 발아래, 땅 아래 엎드리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는 것은 비굴함이 전혀 아니에요. 이건 부끄러움이 전혀 아닙니다. 이건 불안도 아닙니다. 이럴 때만 우리가 자유로와질 수 있어요. 이게 진정한 의미에서 예배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편기자는 12절에서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우리들에게 전합니다. 하나는요. 그 분의 분노예요. 12절 전 반절에 그렇게 얘기합니다. 불붙는 그의 분노, 금시라도 터지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건 긴말,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인간 앞에서 이렇게 분노하고 그들을 없애려고 하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이것도 하나의 하나님의 참된 권능을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는 그러한 성격을 얘기 합니다. 분노, 그게 한 속성이구요. 두 번째는 그 밑에 있는 데로 다음과 같습니다. 그 분께 몸을 피하는 자는 다 복되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건 반대되는 것이에요. 분노와 복, 이겁니다. 물론 여기서 성서기자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복에 초점이 있지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분노를 내고 징벌하시려고 하는 마음이 크시겠습니까, 그건 가능한대로 하지 않으시려고 하는 거지요. 그러나 결국 악은 의와 함께 있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의 정의로움에 의해서 심판을 하시려는 것이고 아주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에게 몸을 피하는 자는 모두 다 복되다 그렇게 약속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잠시 우리가 여기서 살다 가지요. 참 시간이 엄청나게 빠릅니다. 이제 지예가 3월 28일에 독일에 가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독일에 유학 갔던 그러한 때가 기억납니다. 83년 9월인가 제가 갔습니다. 집사람은 1월인가 갔구요. 저는 군목 제대하고 가는 바람에 좀 늦게 갔습니다. 벌써 25년이 흘렀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이렇게 지나간 것만큼 지나가면 또 한 번 지나면 제가 80살이 될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땅위서 화살이 지나가듯이 우리가 삽니다. 이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시간을 지배하시는 분이시고 앞서 어거스틴의 기도문을 설명했을 때 말씀 드렸듯이 무(無), 없는 무까지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 피난처시지 어디에 있겠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 왕들아 정신 차려라, 깨달아라, 그 분에게 몸을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길게 되새기시면서 그 분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고 그 분 안에서만 참된 복 생명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이번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아멘! 예,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과 앞서 드린 어거스틴의 기도 등등을 우리 같이 마음에 새기면서 주님께 한 2분여동안 묵상으로 마음속으로 마음을 집중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묵상기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봄기운이 완연한 이 절기에 저희로 하여금 주님 앞에 머리 숙이고 거룩한 두려움으로 말씀을 같이 나누면서 기도드릴 수 있도록 인도 하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듯이 오직 당신께 몸을 피한 자가 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힘과 질서와 제도와 그런 것들에 우리 마음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시고 시간 너머까지 통치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 피난처시며 우리 복의 근원이심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들에게 이러한 모든 것을 잘 깨달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성실하게 살며 세상에서 그 어떤 것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하는 저희들 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넘칠 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 어거스틴 『성 어거스틴의 기도』선한용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2004

로돌프 옷트,『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길희성 역, 분도 출판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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