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122편, 예루살렘의 샬롬

조회 수 708 추천 수 0 2011.02.23 23:08:33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2월23일, 저녁 8시, 시편 122편

예루살렘의 샬롬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시편 122편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이 노래의 역사적 배경이 기원전 4세기나 5세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편을 읽어야 한다. 당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했을지는 불문가지이다. 그들에게 세계는 흑암과 같았다. 지진, 화산폭발, 전염병, 전쟁, 일식, 자연재해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가 얼마나 큰지, 하늘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비는 왜 오는지, 그들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 대한 앎이 지금의 유치원생보다 못했다. 따지고 보면 웬만한 물리적 사실과 지질학적 사실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도 근원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인식은 근원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그 안에 있는 궁과 성전에서 자신들의 실존적인 불안을 극복하려고 했다. 다른 모든 것들은 흔들리지만 그것만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예루살렘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던 도시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가나안으로 이주해 왔을 때도 예루살렘과는 상관이 없었다. 아브라함 후손들이 이집트로 이주해서 3백여 년간 살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살던 원주민인 여부스 족을 몰아냈다. 그 장본인은 다윗이다. 이는 마치 영국의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 사람들이 북아메리카로 이민을 가서 거기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과 비슷하다. 예루살렘은 천연요새라고 한다. 타고난 전략가이지 장군이었던 다윗의 눈에 예루살렘이야말로 자기 왕조를 세우는데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고려가 평양을, 이씨조선이 서울을 수도로 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찬양은 일종의 폭력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 셈이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이런 찬양을 따를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시편 12편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오늘 우리가 시편 122편을 읽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숭배를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방식으로 그들이 추구한 ‘샬롬’(평화)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시인은 고대 이스라엘의 독특한 세계관에서 살던 사람이다. 고대인들이 대개 천동설을 믿고 있었듯이 나름의 민족주의적 세계관 안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것은 그가 샬롬을 하나님의 통치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독자들은 구약성서에 결탁되어 있는 고대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인 세계관과 본질적인 하나님 신앙을 구분해야 한다. 세계관은 일종의 그릇과 같다. 그릇에 담긴 음식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오늘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무엇이 평화인가? 오늘의 세상은 성서 시대의 세상보다 평화를 더 담보하고 있는가?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평화 공동체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 많은 영역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인데, 여기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평화의 근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명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교 교리는 이를 정확히 제시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궁극적인 평화라는 점을 전제한다. 하나님과의 불화는 죄가 원인이다. 그 죄는 불순종이고 교만이고 자기연민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이 문제는 물질소유, 도덕행위, 심리치료로 해결이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길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대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능하게하신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서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죄를 받고 참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을 길이 열렸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실이 오늘 어떤 차원의 현실성에서 진리인지를 해명해야만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07 86편, 영혼의 탄원 정용섭 2010-04-07 939
106 85편, 구원의 하나님 [1] 정용섭 2010-04-01 808
105 124편, 여호와는 우리 편 정용섭 2011-03-12 544
104 123편, 하늘에 계시는 주 정용섭 2011-03-03 547
» 122편, 예루살렘의 샬롬 정용섭 2011-02-23 708
102 121편, ‘나의 도움은 어디서’ 정용섭 2011-02-18 907
101 120편, 평화를 위한 기도 정용섭 2011-02-11 844
100 119편, 복이 있음이여! 정용섭 2011-02-02 1032
99 118편, 여호와는 나의 구원 정용섭 2011-01-22 1125
98 117편, 여호와 찬양 정용섭 2011-01-13 818
97 116편, 감사의 노래 [3] 정용섭 2011-01-06 979
96 115편, 여호와 신앙과 우상숭배 정용섭 2010-12-23 1116
95 114편, 야곱의 하나님 [2] 정용섭 2010-12-16 755
94 113편, 여호와의 위엄과 긍휼 정용섭 2010-12-10 900
93 112편, 복과 견고한 마음 [2] 정용섭 2010-12-02 627
92 111편, 거룩하고 지존한 이름 정용섭 2010-11-20 633
91 110편, 다윗과 예수 [2] 정용섭 2010-11-12 1027
90 109편, 저주의 악순환을 넘어서 정용섭 2010-11-04 1115
89 108편, 여호와의 구원, 사람의 구원 정용섭 2010-10-28 919
88 107편,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기적 정용섭 2010-10-20 49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