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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발목 잡는 사람들!
지난 6월말, 신학강연 건으로 서울에 갔다가 옛날 신학대학교 친구 몇을 만났다. 모두들 서울과 인근에서 중대형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들이었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정치 부분에서는 서로가 매우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게 약간 씁쓸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한없이 추켜세웠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이 무얼 그리 잘못했냐?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봐라. 내 질문에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했다. 행정수도, 한미동맹, 공공기관 이전, 실업자 문제, 경제문제, 사회갈등, 등등.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8월15일, 남덕교회 청년회 수련회 특강 건으로 팔공산 산자락에 있는 전원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 및 몇몇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또 다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감이지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대신 박근혜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으로 발언했다. 그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거의 그런 범주에 속했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중에 대구의 아무개 국립대학교 공과대학장이라고 하는 아무개 장로의 발언이 압권이었다. 그는 탈북자 출신 교수가 장로회 모임에 와서 강연한 내용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달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공개처형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국립대학교의 학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름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데, 탈북자의 편향된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인 것처럼 믿는다는 게 좀 우스웠다. 어떤 점에서는 지식인이나 동네 미장원의 미용사나 자기의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에 관해서는 거의 똑같은 수준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8월 중순 어느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소개한다. 청와대 및 여당 쪽 패널과 야당 쪽 패널 사이의 토론이었다. 야당 쪽 패널로 나온 연세대학교 사회학부(?) 아무개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은 국민들보다 한 발자국만 앞서 가야하는데, 노 대통령은 열 발자국 앞서 가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만 앞서 가도 괜찮을 텐데, 노 대통령은 이쪽으로 열 발자국 갔다가 거꾸로 열 발자국 가기 때문에 국민들이 혼란스럽게 느낀다. 한미동맹 문제에서 노 대통령은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정작 미국에 가서는 ‘미국이 아니었으며 저는 포로수용소에 가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데서 국민들은 헷갈린다. 일본 문제에서도 처음에서는 과거 문제를 잊자고 하더라도, 요즘엔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왜 이렇게 오락가락 하냐? 마주 앉아 있던 조기숙 청와대 홍보 수석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국민들이 헷갈려 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대학 교수가 그렇다는 건 이상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문제에서도 한 번도 오락가락한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해서 한국이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쪽으로 일관되게 나가고 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일본을 향해서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으로 과거 문제를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발언한 것은 당연하지 않지 않느냐? 선의의 경쟁 대상인 일본을 향해서 그런 말을 한 건 일종의 외교적 전술, 전략이 아니냐? 그런데 그 후에 일본이 신사참배나, 역사왜곡 교과서, 독도 문제 등,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따끔하게 질책한 것이다. 조 수석의 발언 사이에 끼어든 연세대학교 교수는 ‘일본 문제는 그렇다 치고, 미국의 관계는 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고 질문했다. 그러자 조 수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서 미국 문제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만 말할 테니까 다른 건 똑같이 대입해서 학습하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구의 모 국립대학교 학장도 그렇고, 티브이 패널로 나온 연세대학교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역사를 동네 구멍가게 주인의 수준과 비슷하게 본다는 게 말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으려는 데에 힘을 쓰다가 결국 자신의 학문적 통찰력을 송두리 채 상실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지식인들이 신문에 칼럼을 쓰고, 이런 지식인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근거해서 신문 논설위원들이 사설을 쓴다면, 그걸 읽는 국민들의 판단이 어떠하리라는 건 불문가지이다. 거기다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정치인들은 이런 정보를 침소봉대하고, 국민들은 또한 그런 정치인들의 논리에 부화뇌동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원성을 사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이 무엇일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칭찬받을 일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걸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적시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건 대통령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니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이제 명실상부하게 탈권위주의 시대가 열린 게 아닐까? 정경유착, 정언유착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건 말해도 나는 대통령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대통령은 이제 결코 권위적인 체제로, 정경유착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 두자. 내가 지금 청와대 홍보를 맡은 사람도 아니니까.
대개의 사람들이 노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가 망가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만큼 큰 오해도 없다. 이미 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그런 조짐들이 팽배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무분별하게 발행된 신용카드 문제, 주식시장의 침체, 북핵과 미국의 공화당 집권 등으로 인해서 국내외 환경이 열악했다.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길게 하는 건 무의미할지 모르겠다.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몇 가지만 짚어보자. 강남 집값의 폭등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일까? 무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통령이니까 물론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는 한국 전체 사회의 구조적인 것이다. 부동산 정책을 기발하게 추진한다거나 세제정책, 교육정책을 기발하게 추진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모두가 자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올려본 경험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결국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의식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실업자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업자는 어느 사회나 있다. 통계 수치만 본다면 다른 OECD 나라에 비해서 우리의 실업 상황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 우리의 경우에는 주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처럼 80% 이상이 대학교를 나온 실정에 이에 준하는 일자리를 어느 수로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중소기업에서는 노동인력이 부족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산업연수 명목으로 불러들여야 할 판인데,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 나라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문제가 노 대통령의 책임일까?
더 근본적으로 볼 때 우리는 지금 나름으로 잘 살고 있다. 여전히 수출이 잘 되고, 슈퍼마켓에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청소년들도 핸드폰과 엠피 쓰리를 갖고 다니며, 어린이들이 두 세군데 학원을 다닌다. 여기서 우리가 무얼 더 원하는가? 물론 노숙자도 있고, 극빈자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한 모든 나라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수출은 잘 되지만 내수가 안 되는 게 문제라는 논리가 내게는 정당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가정이 건강하려면 돈을 많이 벌고, 가능한 대로 절약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국가 경제는 한 가정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원리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수출도 잘 되고 내수도 늘어나서 모든 경기가 활성화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국가 발전인지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내 영역이 아니니까 접어두자.
어떤 사람은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30% 지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오늘 한국이라는 사회의 지형을 놓고 볼 때 말이다. 한국사회의 지역구도는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안정된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정치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정치에는 늘 양면성이 있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일편단심 한나라당과 박근혜에 쏠려 있는 경상도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택도 없다!” 여전히 김대중 전대통령을 중심으로 쉽게 움직이는 전라도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겠는가? 만약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그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우익에 속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진보에 속한 사람들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라크 파병은 진보의 지지를 잃는 것이며, 북한과의 민족 공조 정책은 보수의 지지를 잃는 것이다. 거의 보수적인 노선에 치우쳐 있는 기독교 인사들도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처럼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상태에서도 30% 지지면 괜찮은 점수가 아닐까?
당신은 ‘노빠’인가? 당신은 노 대통령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나는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둘 뿐이지 그가 절대적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큰 틀에서 바른 길을 가고 있으면, 비록 구체적인 사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좀 참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대통령에게서 성직자의 모습을 찾으려거나 교수의 모습, 또는 혁명가의 모습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어제(8월25일) 밤 KBS 티브이에서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10시-11시40분까지 방영되었다. 어제가 바로 5년 임기에서 딱 반으로 접어든 때라고 한다. 원래 나는 비판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지만, 어제 노 대통령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정책이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라 옳은 것을 향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너무 순진한 것 같애.”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염려는 지우셔도 될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도 큰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 사심 없이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의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며, 만약 그의 정책이 실패했다면 다음 대선 때 정권을 바꾸면 된다.
그래도 비판이 필요한 거 아닌가? 옳은 말이다. 언론도 비판해야 하고, 야당도 비판해야하고, 시민단체도 비판해야하고, 특히 종교인들도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 다만 그 비판이 실증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대통령 못해 먹겠어요.’ 같은 말은 놓고 대통령 자격이 없다느니, 하고 신문이 대서특필 한다거나, 설문조사에서 경제 살리기가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해서 대통령이 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지 않고 정치적인 발언만 하는가, 하고 야당이 국민들을 선동하는 건 실증적인 비판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나? 중증이 들었던 환자가 그 위기를 넘겼으며, 이제 천천히 기초 체력을 확보하면 됐지, 당장 심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닦달할 수 있나?
오늘, 내가 공연히 정치적인 문제로 흥분한 것 같다. 여전히 세상 일에 대한 관심이 쓸데 없이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이렇게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을 때, 그가 결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예언자로서 종교 지도자들이 힘을 보태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을 때가 바로 우리가 나서야 할 순간은 아닐는지. 그런 게 싫다면 지금은 침묵하는 게 좋다.
지난 6월말, 신학강연 건으로 서울에 갔다가 옛날 신학대학교 친구 몇을 만났다. 모두들 서울과 인근에서 중대형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들이었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정치 부분에서는 서로가 매우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게 약간 씁쓸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한없이 추켜세웠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이 무얼 그리 잘못했냐?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봐라. 내 질문에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했다. 행정수도, 한미동맹, 공공기관 이전, 실업자 문제, 경제문제, 사회갈등, 등등.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8월15일, 남덕교회 청년회 수련회 특강 건으로 팔공산 산자락에 있는 전원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 및 몇몇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또 다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감이지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대신 박근혜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으로 발언했다. 그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거의 그런 범주에 속했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중에 대구의 아무개 국립대학교 공과대학장이라고 하는 아무개 장로의 발언이 압권이었다. 그는 탈북자 출신 교수가 장로회 모임에 와서 강연한 내용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달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공개처형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국립대학교의 학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름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데, 탈북자의 편향된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인 것처럼 믿는다는 게 좀 우스웠다. 어떤 점에서는 지식인이나 동네 미장원의 미용사나 자기의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에 관해서는 거의 똑같은 수준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8월 중순 어느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소개한다. 청와대 및 여당 쪽 패널과 야당 쪽 패널 사이의 토론이었다. 야당 쪽 패널로 나온 연세대학교 사회학부(?) 아무개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은 국민들보다 한 발자국만 앞서 가야하는데, 노 대통령은 열 발자국 앞서 가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만 앞서 가도 괜찮을 텐데, 노 대통령은 이쪽으로 열 발자국 갔다가 거꾸로 열 발자국 가기 때문에 국민들이 혼란스럽게 느낀다. 한미동맹 문제에서 노 대통령은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정작 미국에 가서는 ‘미국이 아니었으며 저는 포로수용소에 가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데서 국민들은 헷갈린다. 일본 문제에서도 처음에서는 과거 문제를 잊자고 하더라도, 요즘엔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왜 이렇게 오락가락 하냐? 마주 앉아 있던 조기숙 청와대 홍보 수석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국민들이 헷갈려 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대학 교수가 그렇다는 건 이상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문제에서도 한 번도 오락가락한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해서 한국이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쪽으로 일관되게 나가고 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일본을 향해서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으로 과거 문제를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발언한 것은 당연하지 않지 않느냐? 선의의 경쟁 대상인 일본을 향해서 그런 말을 한 건 일종의 외교적 전술, 전략이 아니냐? 그런데 그 후에 일본이 신사참배나, 역사왜곡 교과서, 독도 문제 등,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따끔하게 질책한 것이다. 조 수석의 발언 사이에 끼어든 연세대학교 교수는 ‘일본 문제는 그렇다 치고, 미국의 관계는 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고 질문했다. 그러자 조 수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서 미국 문제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만 말할 테니까 다른 건 똑같이 대입해서 학습하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구의 모 국립대학교 학장도 그렇고, 티브이 패널로 나온 연세대학교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역사를 동네 구멍가게 주인의 수준과 비슷하게 본다는 게 말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으려는 데에 힘을 쓰다가 결국 자신의 학문적 통찰력을 송두리 채 상실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지식인들이 신문에 칼럼을 쓰고, 이런 지식인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근거해서 신문 논설위원들이 사설을 쓴다면, 그걸 읽는 국민들의 판단이 어떠하리라는 건 불문가지이다. 거기다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정치인들은 이런 정보를 침소봉대하고, 국민들은 또한 그런 정치인들의 논리에 부화뇌동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원성을 사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이 무엇일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칭찬받을 일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걸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적시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건 대통령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니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이제 명실상부하게 탈권위주의 시대가 열린 게 아닐까? 정경유착, 정언유착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건 말해도 나는 대통령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대통령은 이제 결코 권위적인 체제로, 정경유착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 두자. 내가 지금 청와대 홍보를 맡은 사람도 아니니까.
대개의 사람들이 노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가 망가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만큼 큰 오해도 없다. 이미 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그런 조짐들이 팽배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무분별하게 발행된 신용카드 문제, 주식시장의 침체, 북핵과 미국의 공화당 집권 등으로 인해서 국내외 환경이 열악했다.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길게 하는 건 무의미할지 모르겠다.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몇 가지만 짚어보자. 강남 집값의 폭등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일까? 무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통령이니까 물론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는 한국 전체 사회의 구조적인 것이다. 부동산 정책을 기발하게 추진한다거나 세제정책, 교육정책을 기발하게 추진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모두가 자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올려본 경험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결국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의식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실업자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업자는 어느 사회나 있다. 통계 수치만 본다면 다른 OECD 나라에 비해서 우리의 실업 상황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 우리의 경우에는 주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처럼 80% 이상이 대학교를 나온 실정에 이에 준하는 일자리를 어느 수로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중소기업에서는 노동인력이 부족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산업연수 명목으로 불러들여야 할 판인데,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 나라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문제가 노 대통령의 책임일까?
더 근본적으로 볼 때 우리는 지금 나름으로 잘 살고 있다. 여전히 수출이 잘 되고, 슈퍼마켓에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청소년들도 핸드폰과 엠피 쓰리를 갖고 다니며, 어린이들이 두 세군데 학원을 다닌다. 여기서 우리가 무얼 더 원하는가? 물론 노숙자도 있고, 극빈자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한 모든 나라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수출은 잘 되지만 내수가 안 되는 게 문제라는 논리가 내게는 정당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가정이 건강하려면 돈을 많이 벌고, 가능한 대로 절약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국가 경제는 한 가정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원리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수출도 잘 되고 내수도 늘어나서 모든 경기가 활성화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국가 발전인지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내 영역이 아니니까 접어두자.
어떤 사람은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30% 지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오늘 한국이라는 사회의 지형을 놓고 볼 때 말이다. 한국사회의 지역구도는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안정된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정치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정치에는 늘 양면성이 있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일편단심 한나라당과 박근혜에 쏠려 있는 경상도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택도 없다!” 여전히 김대중 전대통령을 중심으로 쉽게 움직이는 전라도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겠는가? 만약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그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우익에 속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진보에 속한 사람들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라크 파병은 진보의 지지를 잃는 것이며, 북한과의 민족 공조 정책은 보수의 지지를 잃는 것이다. 거의 보수적인 노선에 치우쳐 있는 기독교 인사들도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처럼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상태에서도 30% 지지면 괜찮은 점수가 아닐까?
당신은 ‘노빠’인가? 당신은 노 대통령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나는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둘 뿐이지 그가 절대적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큰 틀에서 바른 길을 가고 있으면, 비록 구체적인 사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좀 참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대통령에게서 성직자의 모습을 찾으려거나 교수의 모습, 또는 혁명가의 모습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어제(8월25일) 밤 KBS 티브이에서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10시-11시40분까지 방영되었다. 어제가 바로 5년 임기에서 딱 반으로 접어든 때라고 한다. 원래 나는 비판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지만, 어제 노 대통령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정책이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라 옳은 것을 향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너무 순진한 것 같애.”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염려는 지우셔도 될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도 큰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 사심 없이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의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며, 만약 그의 정책이 실패했다면 다음 대선 때 정권을 바꾸면 된다.
그래도 비판이 필요한 거 아닌가? 옳은 말이다. 언론도 비판해야 하고, 야당도 비판해야하고, 시민단체도 비판해야하고, 특히 종교인들도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 다만 그 비판이 실증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대통령 못해 먹겠어요.’ 같은 말은 놓고 대통령 자격이 없다느니, 하고 신문이 대서특필 한다거나, 설문조사에서 경제 살리기가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해서 대통령이 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지 않고 정치적인 발언만 하는가, 하고 야당이 국민들을 선동하는 건 실증적인 비판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나? 중증이 들었던 환자가 그 위기를 넘겼으며, 이제 천천히 기초 체력을 확보하면 됐지, 당장 심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닦달할 수 있나?
오늘, 내가 공연히 정치적인 문제로 흥분한 것 같다. 여전히 세상 일에 대한 관심이 쓸데 없이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이렇게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을 때, 그가 결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예언자로서 종교 지도자들이 힘을 보태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을 때가 바로 우리가 나서야 할 순간은 아닐는지. 그런 게 싫다면 지금은 침묵하는 게 좋다.
2005.08.28 23:47:02
조기성 씨,
잘 지내고 있으신지.
선교단체 간부들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거나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조 선생은 좀 다른 것 같소이다.
주의 은총이.
잘 지내고 있으신지.
선교단체 간부들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거나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조 선생은 좀 다른 것 같소이다.
주의 은총이.
2005.08.30 12:52:58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교단체 간부(?)라고 하니
무슨 간첩 비스무리한게 연상되어서
희안하게 들리네요..ㅋㅋ
혹시 선교단체 간사를 잘못 쓰신 것인지......
선교단체 간사들 가운데도
건강하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정치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
몸부림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입니다만
대구,경북에 있기에
선거철이나 대선이후에 개표방송이 나간 후
전국에 있는 간사들이 모이면
대구, 경북지역 간사들이 성토 당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간사들이 어떻게 사역하길래
딴나라당 몰표가 나올 수 있냐고.......
2학기 인문학적 성서공부 개강이
오는 9월 5일(월)에 있군요...
월요일로 옮기는 바람에
참석할 가능성이 많이 생겼습니다.
개강하는 날(9월 5일)은 일이 있어 찾아뵙지 못하지만
그 다음주 부터는 가능할지도.....
성서공부 식구들을 뵈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선교단체 간부(?)라고 하니
무슨 간첩 비스무리한게 연상되어서
희안하게 들리네요..ㅋㅋ
혹시 선교단체 간사를 잘못 쓰신 것인지......
선교단체 간사들 가운데도
건강하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정치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
몸부림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입니다만
대구,경북에 있기에
선거철이나 대선이후에 개표방송이 나간 후
전국에 있는 간사들이 모이면
대구, 경북지역 간사들이 성토 당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간사들이 어떻게 사역하길래
딴나라당 몰표가 나올 수 있냐고.......
2학기 인문학적 성서공부 개강이
오는 9월 5일(월)에 있군요...
월요일로 옮기는 바람에
참석할 가능성이 많이 생겼습니다.
개강하는 날(9월 5일)은 일이 있어 찾아뵙지 못하지만
그 다음주 부터는 가능할지도.....
성서공부 식구들을 뵈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평소 목사님 답지 않으시게
진짜로 흥분하셨나 보내요.
남덕교회 청년부 강연가셨다
함께 식사하셨던 장로님과
몇 몇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하시는 동안의 목사님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무지 궁금하네요... ^^;;;;
저도 비슷한 경우를 몇 번이나 당했으니까요!!
한나라당을 어떤 누리꾼들은 비아냥거리며
딴나라당이라고 하는데
우리고 발 딛고 살고 있는 대구 경북 땅이
딴나라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목사님의 윗글을 조목조목 편들 글재주가 없어서
조금 거칠긴 하지만--저는 하나도 거칠다 생각지 않습니다만
혹시 이곳에 드나드는 분들 중에 그렇게 느낄 분을 위해-- 어떤
누리꾼의 글을 퍼다 놓습니다.
이 글은 목사님의 윗글에 대한
저의 지지를 담아 퍼다 날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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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21세기형 대통령인가?
-----누구 아니라고 할 <자> 있을까? / I.D : 명덕 (aristotal)
야단이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뛰는 꼴이다. 조기숙 홍보수석이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고,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문화와 지도자에 빠져 있다.”고 하자, 누리꾼들이 “국민을 무시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기다렸다는 듯이 핫바지 입은 야당은 “조수석 잘났다. 그만 물러나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 댄다.
그래 하긴 너희들 말도 그리 틀리지 않다. 조중동 아찌는 누리꾼의 말을 빌붙어 “조선시대 궁녀수준”이라고 원색적 풀무질을 해댄다. 원체 체질이 남의 뒤에 숨어 힘없는 놈들을 조져대는 습성으로 태어난 자들이니 그러려니 한다. 아니, 늦여름에 웬 망둥이들은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내가 여기서 노무현을 옹호하는 발언은 하면 “그래, 이놈아, 실컷 <빨아보라> 노빠야” 라고 비난하겠지. 욕먹는 일쯤이야 두렵지 않지만, 그것 많이 먹다간 토할 것 같기도 하고, 원체 약골인지라 그걸 보약 삼아 넙죽 받아 먹으면 오래 살려나. 그랬으면 좋으련만.
허나, 기대하지 마시라. 난 그런 시시껄렁한 정치 한량들과 그렇게 비아냥대는 작자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고백하자면, 버릇없는 정치 타령에 놀아나는 것은 내 주특기(MOS)가 아니다.
경제 마인드로 무장한 교육부 장관이란 분이 - <교육>이 뭔지 제대로 아는 지는 모르겠으나 - 학교에서 <논술>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자,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 요즘 관심은 자식들에게 <논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라 한다. 논술 능력은 학교에서 그 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가르쳐서> 배양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정작 자신은 <논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논술 교육>을 말한다. 그 아줌마들에게 왜 논술이 인생에 필요한 지, 또 정보화 사회에서 논술이 어떤 면에서 필요한 지를 물으면, 아마도 기껏해야 ‘논술 잘해야 대학 간대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논술의 목적>이 아니다. 오직 자식에게 가장 확실한 <노후보험>을 들기 위해서 학원가의 잘 나가는 논술 강좌를 팔아먹는 놈팽이 선생들에게 온갖 애정을 보내면서 연정(戀情)을 뿌려대는 데 있을 뿐이다.
논술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교육 받은 사람>이란 말의 의미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정리된 지식체계의 수용자로부터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그 의미의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지식의 조건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학은 왜 논술을 통해서 원하는 학생들을 뽑으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한 지식을 암기시키는 주입식 교육만 가지고는 21세기에 필요한 <창조적 사고력의 능력>을 측정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대학은 입학시험뿐만 아니라, 인문적 교양과 소양을 갖춘 대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읽기와 쓰기, 비판적 사고 능력,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하려고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어 내는데 골머릴 썩이고 있다.
이를 위하여 <교양 교육원> 혹은 <기초 학부 교육원>이라는 대학기관까지 만들어가면서 <논리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단언하건대, 해방 후 오늘까지 이것 제대로 배운 놈 <한국 국민> 중에 없다. 또 이것 제대로 가르칠 놈도 없다. 왜. 결코 배운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 능력이 왜 필요한지도 모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나에게도 네가 뭔데 국민을 졸(卒)로 아느냐고 <조선스럽게> 대들 놈들도 있겠다. 훈장질하지 말라고 욕하는 자들도 벌떼같이 생겨날 것이다. 그래봤자. 나도 국민이니, 내 스스로 내가 <졸>이라는 것을 고백한 죄 밖에 더 있겠냐.
그렇게 몇 십 년을 살아왔으니, 언필칭 <민주공화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문화, 언론 문화, 그 어떤 대중적인 문화적 삶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저능아들만을 길러냈을 뿐이다. 지금 그 후예들이 여기저기에다 더러운 잡글들을 남기고 온통 썩은 냄새만을 피워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이 땅의 여러 분야에서 주도적 지배세력을 형성해온 작자들이다. 그들이 독재 시대를 살아온 놈들이다. 독재에 아부하면서 따뜻한 안방의 구들장에 머리 쳐 박고 삼삼하게 살아 온 자들이다.
그러니 노무현이 어떤 정치적 주장을 - 그의 정치논리가 옳든 그르든, 혹은 그의 정치적 시각과 관점이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이점은 내 주된 관심이 아니다. - 차분히 설득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면, 즉각적으로 일어나 동물적 수준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끝내는 <하야하라>고 두 번째 탄핵을 부르짖는 놈들도 생겨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언제 제대로 공화국의 국민 노릇 해 본 적이 있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박정희 독재 하의 유신 시대에 유신 헌법 찬반 투표라는 것을 두 번인가 했다. 그때 이 땅의 그 잘난 언론인을 포함하여 대학교수라는 놈들은 뭐라고 했던가?
이것은 구국의 결단이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확립함으로써 우리의 몸에 맞지도 않는 서양 양복을 걸치는 것이라고 멋진 비유를 들면서 민중을 세뇌하고 현혹시키지 않았나? 우린 당시를 시퍼렇게 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누가 뭔 소리를 하고, 뭔 짓을 했는지를.
그 때 누구 한 사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천박한 논리에 반박하면서, 토론하고 합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펼친 놈이 있긴 있었단 말인가? 90%이상이 투표해서 90% 찬성하던 국민이 누군가? 그 <잘난> 우리 아닌가? 기억에서 멀어질 만큼 오래 전의 얘기가 아니다.
이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부하고, 제대로 말하고 글 쓰고 비판하는 민주시민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정상적으로 있어 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대들은 정녕 믿는가? 따지고 보면 그 시절의 부끄러움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것이 또한 우리 아닌가?
그러니 조기숙 수석 말마따나 우린 아직 <독재시대의 문화와 지도자에 빠져> 있다는 것을 누가 과감히 손들어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둡고, 불의하고, 무섭던 시절의 시대적 상황논리를 들이대면서, 그때 누가 그 시대의 사회 분위기에 거슬려 반발하며 일어나 <아니오> 할 수 있겠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난, 그래 당신 말도 맞아>라고 수긍하겠다.
나도 할 말은 없다. 여전히 나도 하루를 이어가야만 했던 소시민이었고, 남의 눈치 보면서 살아가던 허약한 국민의 일원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직도 획일적으로 사고하고, 전체주의적 지배 체제에 <마스터베이션>하듯이 비비고 사는 향수에 젖은 자들이 날뛰고 있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다.
공중(公衆)에게, 대중의 시야에, 어둠을 벗어나 밝은 태양 빛 아래에서 모든 것을 깨놓고 말하는 지도자를 향하여, 그들은 오히려 <너는 21세기 독재자이고,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고 우격다짐 격으로 몰아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노무현만큼 솔직한 지도자를 본 적이 없다. 오해하지 마시라. 솔직하다고 했지, 완벽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내 놓을 만한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주어진 것까지 다 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정치가이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약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음험하고 구중심처의 궁궐에 갇혀서 세상을 재단하고 정보를 독점하면서 언론을 움직여 가며 정치하던 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찌 생각하면, 그도 우리 정치사에서 하나의 과도기적 인물일 수 있다.
이건희를 받들며 <삼성> 참주정 밑에 살아가는 착한(?) 백성들의 눈에서 보면, <왜 이리도 나라가 시끄럽나, 삼시 삼 때 주는 밥 먹고나 살면 되지> 하겠지만 말이다. 지도자 하나 잘못 뽑으니 우리가 이 고생이지라고 신세 한탄하겠지.
그래 너희들은 이건희를 <빨고> 살아라. 그렇게 살다 버림받던 날, 후회하는 놈들 간혹 봤다 만은.
그래도 그건 아니다. 유능한 독재자, 참주가 백성의 배를 쉬이 불릴 수는 있다.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는 일은 어느 일보다 더 쉽다. 배부르고, 등 따스운데 귀찮게 살 필요가 있겠나? 순하게 길들인 개처럼 주인이 주는 밥이나 얌전하게 받아 먹으면 되지.
박정희의 개발 독재형의 모델이 그것이다. 박정희는 <재벌형 독재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삶의 목표와 좌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배고픔이란 욕망을 해결한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비젼을 내놓지 못했다. 이게 그의 한계였고, 우리 정치사의 정의롭지 못한 비극의 싹을 심어 놓았다.
육체적 배고픔의 해결만이 정치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경제>는 통치의 수단일 뿐이다. 최고의 삶의 지표와 제일의 <인간 개발지수>를 갖는 노르웨이, 캐나다를 비롯한 몇몇 나라가 경제적 안락(安樂) 만으로 그런 위치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정신적 행복과 <인간 삶>의 다른 방편을 채워주는 다른 결정적 변수가 들어가 있다.
오늘의 정치적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 빈곤함과 배고픔은, <말과 언어와 비판적 정치행위>를 통한 삶의 질을 요구한다. 21세기는 양적으로 사유하는 시대가 아니다. 질적으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시대이어야 한다.
한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오늘은 잘못된 권위가 깨지는 시대고, 새로운 권위가 등장하는 시대이다. 그 권위를 국민의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토론을 통한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시대이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진정 바라는 공화국의 시대이다.
돈과 권력, 언론의 지배세력이 합작하던 세력을 몰아 내는 것이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이다. 지난 세기의 혈족주의적 정치 유산으로 남아, 이기주의적 발상에 편승한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치제도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해 내는 것이 오늘의 정치 이념이고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아직도 그 쓰레기와 같은 정치 유산에 사로잡혀, 독재의 향수에 젖은 개들이 짖어대는 그곳에 우리는 살고 싶지도 않고, 또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정치는 엄숙주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흥겨움으로 가득 찬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져야만 하고, 끝없이 새로운 대안을 찾아 흘러가야만 한다. 막힌 자락이 있다면 용기 있게 결단 내리면서 그 골짜기를 벗어나야만 한다.
정부는 끝없이 무너져야 하고, 한정 없는 불안정 위에서 휘둘러져야만 한다. 훌륭한 조타수는 거친 물살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겪어봐야 노련한 조타수가 될 수 있다.
대중의 눈으로 <이쁜> 것만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개성 있는 얼굴들이 서로를 뽐내는 그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돋아나는 법이다. 정치는 개성이다. 우린 개성이 강한 지도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비판을 하고 또 비판을 받는 것이고, 노무현은 그 비판을 넘어 자신의 주장을 내놓으면서 올곧은 조타수 노릇을 해보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 정치에도 하나의 길만이 예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에둘러 가야하고, 때론 반듯한 직선으로 나가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알고, 인내할 줄 아는 국민들만이 진정한 민주정 아래에서 살아갈 자격과 권리를 가진다.
단세포적으로 반응하면서 정치하려는 정치인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인간은 외부 반응에 대해 다른 동물에 비해 <더디게> 반응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외부 반응에 대한 <지체 현상>이 인간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외부의 자극이 왔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그건 짐승에 불과하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자들은 지난 세기의 절대적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면서 살아온, 군주의 불쌍한 시녀들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정치 문화는 앞뒤를 가리면서 따지지 못하고, 계산하지 못하면서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좀 따지자.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반응하자. 같은 한강 물 마시며 살아가는 인간들 가운데 동물에 가까운 변태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