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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우리가 아무리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투적인 것으로 들릴 겁니다. 그 상투성을 벗어나는 것이 살아있는 영성입니다. 상투성을 벗어나려면 십자가 사건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겠지요. 음악 경험도 그렇습니다. 매일 똑같은 수준에서 들으면 상투적인 데로 떨어집니다. 음악에 대한 인식이 더 깊어지면 그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서 신학공부가 필수입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에게 그것이 인류 구원이라는 확신이 그렇게 명백하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이며,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결국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어떤 생각, 판단, 사연들이 개입되었을까요? 십자가는 곧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절망도 우리는 그 사랑에서 끊어내지 못합니다. 바울의 고백이며, 바로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다니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자가 없음을 믿습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아멘.
저희를 먼저 사랑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