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마종기의 시(1)- 기적 [2]

  • 2017-08-01
  • 조회 수 2006

8월1일, 화 마종기 시(1) 제목: 기적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지난날 나를 지켜준 마지막 별자리, 환해오는 하늘 향해 먼 길 떠날 때 누구는 하고 싶었던 말 다 하고 가리 또 보세, 그래, 이런 거야, 잠시 만나고--- 길든 개울물 소리 흐려지는 방향에서 안개의 혼들이 기지개 켜며 깨어나고 작고 여린 무지개 몇 개씩 골라 이 아침의 두 손을 씻어주고 있다. *감상: 일전에 영천 시립도서관에서 몇 권 시집을 대...

기적 이야기 [4]

  • 2017-06-21
  • 조회 수 1446

6월21일, 수 기적 이야기 어제 쓴 매일묵상에서 아브라함이 그두라와 재혼할 당시의 나이가 140세 내외였다고 말했다. 이삭을 얻을 때 이미 사라와 아브라함 모두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났었다. 기적적인 사건이라는 암시를 천사들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두라와의 사이에 태어난 여섯 명의 아들들에 대해서 말할 때는 아무런 그런 암시가 없다. 보통의 방식으로 아들을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100세에도 자녀 생산 능력이 없었던 아브라함이 140세 이후에 다시 그런 ...

유기적 지식인(3) [2]

  • 2016-11-08
  • 조회 수 1555

11월8일 유기적 지식인(3)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 의미는 명료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달달 외우고 마는 지식인이 아니라 전체 진리와 연결해서 생각할 줄 아는 지식인이라는 뜻이다. 지식을 정보로만 아는 게 아니라 기독교 신앙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해내는 사람이다. 케빈 밴후저의 말을 더 들어보자. 목회자-신학자는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며, 그들은 성서가 그들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이것을 안다. 성서의 학교에서 성령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랬듯이 “예수...

유기적 지식인(2) [2]

  • 2016-11-03
  • 조회 수 1241

11월3일 유기적 지식인(2) 케빈은 목회자가 기본적으로 신학자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호칭 자체를 목회자-신학자라고 부른다. 이를 다른 말로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천재(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있는, 자신만의 독창적 사상을 지닌 사상가)나 지식인 엘리트가 아니다. 오히려 유기적 지식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의 필요와 신념, 갈망을 명확히 표현해낸다. 유기적 지식인은 공동체의 가르침과 바람을 말로 표현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아이비리그가 아니라 말하자면 고향에 있는 농장의 ...

유기적 지식인 [3]

  • 2016-11-01
  • 조회 수 1200

11월1일 유기적 지식인 나의 고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교사인 스탠리 우드워스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가르침의 기쁨은 학생들에 대한 열정, 심지어는 주제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학생에게 주제를 소개하고자 하는 열정을 통해서 누릴 수 있다.” 이 말이 프랑스어나 화학, 역사에 적용된다면 목회자의 열정에는 얼마나 더 잘 적용되겠는가? 목회자의 열정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

기적(6) [8]

  • 2016-07-09
  • 조회 수 2132

7월9일 기적(6) 우리의 ‘현대적’ 기적 이해와 성경이 증언하는 기적 사이에 가로놓인 격절 골짜기를 건너는 다리는 다음의 세 가지 통찰이다. 1) 우리는 기적 자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기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성경 본문만을 언제나 대한다는 통찰 2) 성경의 기적사화는 첫째로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데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의거해서, 현재와 미래에도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에 눈뜨게 하고 그럼으로써 직접 거기에 동참케 하려 한다는 통찰 3) 성경의 기적사화는 자연과학...

기적(5) [14]

  • 2016-07-08
  • 조회 수 1511

7월8일 기적(5) 1969년 나는 ‘Bibel heute’(오늘의 성서)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사로 사화를 예로 들어 예수께서 죽은 자를 소생시킨 사건의 의미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거기에 어떤 독자가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했다. ‘나사로 소생에서는 역사상의 실제 사건이냐 아니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양자택일이거나 기껏해야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는 한 가지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건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된 의미만이 중요하다는 식의 그런 표현방법은 짐작컨대, 순진한...

기적(4) [2]

  • 2016-07-07
  • 조회 수 1214

7월7일 기적(4) 성경은 주변세계이 이교적 통념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에 어긋나느냐?’ 따위의 문제는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근대적인 자연법칙성에 관한 개념을 몰랐으니 그런 문제는 아예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성경은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활동 및 보살핌의 접근과 관련시켜서 관찰한다. 물론 많건 적건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뚜렷한 표징이 있기 마련이다. 성경의 기적신앙은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확신으로 정립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을 바라시고, 실제로 그...

기적(3) [4]

  • 2016-07-06
  • 조회 수 1460

7월6일 기적(3) 마태복음 기자는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 보고로 알고 ‘그래, 예수께서 그 당시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지.’ 하고 맞장구를 치며 만족하기를 기대하였을까? 성경의 기적 설화들은 오랜 세월 이렇게 이해되어 왔다. 그 설화들은 우선 어느 때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관해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하려는 글로 생각되었다. 그것을 듣거나 읽는 사람은 거의 외곬으로 동의하거나 아니면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런 이해방법이 얼마나 불충분하가는 조금만 숙고해도 알 수 있다. 마가와 마태는 ...

기적(2) [4]

  • 2016-07-05
  • 조회 수 1409

7월5일 기적(2) 기적 설화와 귀신축출 설화에 대한 최근의 사회학적 해석이 유익하다. 기적 설화들은 인간의 비참에 대한 항의의 표현으로 파악되었다. 이 항의는 계시를 내세워 제기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집단적인 귀신들림은 다양한 사회적 위협과 불안을 신화적 언어로 표현한 사회적 현상으로 평가되었다. 귀신 세계상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기적설화들은 전인(全人)을 그의 심리적-신체적 곤궁에서 구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알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런 해방행위에 참여하도록 그리스도인을 촉구한다는 ...

기적(1) [1]

  • 2016-07-04
  • 조회 수 1401

7월4일 기적(1) 지난 3월30일부터 대구샘터교회에서는 수요일 저녁마다 마태복음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수요일까지 9장을 마쳤다. 산상수훈인 5-7장 이후로 예수님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나온다. 8,9장에 기적으로 불릴만한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나온다. 8장- 나병환자 치료, 백부장 하인 치료, 베드로의 장모 치료, 풍랑 제어, 축귀/ 9장- 중풍병자 치료, 야이로의 죽은 딸 살림, 12년 혈루증 여인 치료, 시각장애인 치료, 말 못하는 이 치료 등등이다. 다른 복음서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구약에도 적지 않다. 구약...

성탄절의 기적

  • 2013-12-24
  • 조회 수 2368

아래 글은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에 나옵니다. 오래 전 다른 세 분 신학자들과 함께 제가 공역한 책입니다. 금년 성탄 전후에 다비안들과 함께 읽어보려고 여기에 싣습니다. 성탄절의 기적 12월24일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눅 2:11). <너희에게> 오늘 구주가 나셨다고 주님의 천사가 말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높이려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자신과 하나 ...

모든 것은 기적이다, 7월18일, 수 [1]

  • 2012-07-19
  • 조회 수 1407

주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또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앞에서 크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셨는데도 우리는 더 놀라운 다른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미숙합니까?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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