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겸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딱 한 평짜리 옷방이 있다.

문은 미닫이다.

작은 옷장 하나와 더 작은 수납장 두 개가 있고

기억 자로 듬직한 책장이 하나 놓여있다.

옷장에는  개량 한복이 걸려 있고,

작은 수납장에는 계절별 테니스복과 양말 등이 있다.

책장에는 책만이 아니라 소소한 물품도 놓여 있다.

그중의 하나가 아래 사진으로 브듯이 원형 반짇고리다.

반지고리1.jpg   

바늘과 실이 필요할 때마다 아내에게 부탁하다가 귀찮아서 아예 반짇고리를 들여다 놓았다.

반짇고리 안에 들어 있는 소품들을 펼쳤다. 보시라. 기가 막히게 귀엽다. 그리고 인간 문명의 최상층 집합이다.

반지고리2.jpg바늘귀에 실 끼우기 도구가 매우 실용적이다. 

어릴 때 바느질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어머니 옆에서 실을 바늘귀에 끼우는 일을 종종 도왔다.

양말은 정말 많이 기워서 신었다.

크게 헤졌으면 헝겊을 대고 깁고

조금 헤쳤으면 실로 이어주기만 하면 된다.

바느질을 이렇게 기가 막히게 하는 동물이

지구에서 인간 외에 누가 있겠는가.

첨단 인공 지능을 탑재한 섬세한 로봇도

반짇고리를 주면서 단추를 달아보라고 명령하면

허둥대면서 속수무책일 것이다.

반짇고리 뚜껑을 열고 바늘을 찾아낸 뒤에

실을 바늘귀에 끼우고 단추를 제 자리에 놓고

단추 구멍 앞뒤를 오가면서 실을 넣고 빼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난도 예술이다.

바느질하기만이 아니라 인간 문명과 관계된 모든 행위는

인간만의 독보적인 생물학적 행위이다.

인간처럼 진화 과정을 거칠 때만 가능한 행위라는 뜻이다.

나는 단추를 달 줄 안다. 따라서 인간으로 존재한다.’

며칠 전에 잠옷 단추를 달았다.

반지고리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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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2024.07.31 22:37:01

놀랍습니다. 바느질을 직접 하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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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24.08.01 20:35:22

아마 최용우 님도 바느질은 좀 해봤을 걸요.

직접 바느질을 하지 않는 수도자는 없으니까요.

승려들은 헤진 자기 옷도 직접 기워서 입는다는 거 아닙니까.

아마 신부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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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관

2024.08.01 14:18:46

목사님, 저도 양말 정도는 제가 직접 바느질합니다. 

어느 옷수선 장인께서 바느질로 모든 옷을 리폼 하시는 걸 봤는 데, 참 부럽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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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24.08.01 20:38:00

요즘도 양말을 기워서 입기도 하나요? 

요즘은 뭐 대충 신다가 버리는 세월이니까요.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요즘처럼 카톡으로 주고받지 않고 

손편지를 쓰던 지난 세월의 연인들이 더 행복했을지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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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

2024.08.03 15:13:29

ㅎㅎ 목사님이 바느질 하시는 모습 상상하니 재밌습니다.

사모님깨서 좋아하시겠어요.

저도 바느질을 자주 하는데 

그런 철학적인 생각을 못해봤어요.

그저 바느질에 한번 빠지면 밤을 새는 게 문제죠.

profile

정용섭

2024.08.03 19:37:00

이번 기회에 웃겨 님이 손바느질로 

손주 옷 한번 만들어보세요.

한복 스타일로요.

아기가 빨리 자라니까 옷은 안 되겠고,

인형 하나 만들어 선물로 주는 게 더 낫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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