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겸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딱 한 평짜리 옷방이 있다.
문은 미닫이다.
작은 옷장 하나와 더 작은 수납장 두 개가 있고
기억 자로 듬직한 책장이 하나 놓여있다.
옷장에는 개량 한복이 걸려 있고,
작은 수납장에는 계절별 테니스복과 양말 등이 있다.
책장에는 책만이 아니라 소소한 물품도 놓여 있다.
그중의 하나가 아래 사진으로 브듯이 원형 반짇고리다.
바늘과 실이 필요할 때마다 아내에게 부탁하다가 귀찮아서 아예 반짇고리를 들여다 놓았다.
반짇고리 안에 들어 있는 소품들을 펼쳤다. 보시라. 기가 막히게 귀엽다. 그리고 인간 문명의 최상층 집합이다.
바늘귀에 실 끼우기 도구가 매우 실용적이다.
어릴 때 바느질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어머니 옆에서 실을 바늘귀에 끼우는 일을 종종 도왔다.
양말은 정말 많이 기워서 신었다.
크게 헤졌으면 헝겊을 대고 깁고
조금 헤쳤으면 실로 이어주기만 하면 된다.
바느질을 이렇게 기가 막히게 하는 동물이
지구에서 인간 외에 누가 있겠는가.
첨단 인공 지능을 탑재한 섬세한 로봇도
반짇고리를 주면서 단추를 달아보라고 명령하면
허둥대면서 속수무책일 것이다.
반짇고리 뚜껑을 열고 바늘을 찾아낸 뒤에
실을 바늘귀에 끼우고 단추를 제 자리에 놓고
단추 구멍 앞뒤를 오가면서 실을 넣고 빼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난도 예술이다.
바느질하기만이 아니라 인간 문명과 관계된 모든 행위는
인간만의 독보적인 생물학적 행위이다.
인간처럼 진화 과정을 거칠 때만 가능한 행위라는 뜻이다.
‘나는 단추를 달 줄 안다. 따라서 인간으로 존재한다.’
며칠 전에 잠옷 단추를 달았다.
놀랍습니다. 바느질을 직접 하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