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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Hans Küng)의 「나는 무엇을 믿는가」(WAS ICH GLAUBE, 이종한 역, 분도출판사, 2021년)를 정용섭 목사가 강독한다. 장별 차례는 아래와 같다. 1 삶에 대한 신뢰, 2 삶의 기쁨, 3 삶의 여정, 4 삶의 의미, 5 삶의 바탕, 6 삶의 힘, 7 삶의 모델, 8 삶의 고통, 9 삶의 기술, 10 삶의 비전
요약과 녹취입니다.
오탈자 다수 있습니다.
청취 도우미입니다.
벨트 에토스와 PH 에토스, 세계 종교 의회 선언문을 이 스킹이 했다는 거 아닙니까? 활동을 대단히 적극적으로 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매달도 받고, 그런 업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정표, 거기의 핵심은 인간성이었습니다.
이 부상 프로젝트라고 하는 겁니다.
가톨릭을 대표하는 출판사가 제가 알기로는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분대 출판사, 또 하나는 성 바오로 출판사. 뭐 그 외에도 몇 가지도 있겠죠.
근데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가톨릭 출판사입니다. 신학대학에 속한 출판사도 있겠죠. 서울, 그 신학 가톨릭 신학대학에 있는 출판사, 디고, 거기서 나온 책도 제가 한두 건 본 기억이 납니다.
스킹 프로젝트 벨트 에토스 이 영어로 발음한다면 프로젝트죠. 근데 제가 독일어로는 무음입니다. 프로젝트, 프로젝트 벨트,
예, 앞면이고 요게 이제 뒷면이에요. 이 책이 메헨 리이음이 두 지역을 근거로 하는 출판사 피퍼에서 나왔습니다. 1990년에 나왔네요.
이 책에 번역은 교적 빨리 나왔습니다. 원서가 1990년에 나왔는데, 이 책은 잠깐요, 여기 1992년에 나왔습니다. 2년 만에 나왔으니까 굉장히 빨리 나온 겁니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
아, 뭐 카인 리벤 오네 아인 벨트 헤토스, 그냥 지역을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상식이 잘못됐을 때는 그 책들이 그 상식을 뒤엎어 버리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비슷하게 갑니다. 상식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부정한다, 그보다 상식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 상식의 기피로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바이고요.
지금 부주제가 바로 윤리 문제이기 때문에 스킹의 그 책을 조금 소개하는 겁니다.
사람은 동물처럼 살아갑니다. 먹고 번식하고, 뭐 잘난 척 하기도 하고, 뭐 그런 거 다 동물 세계 있는 거잖아요. 그러나 인간만의 고유한 삶이 있는 겁니다.
그게 수만 년, 수십만 년을 통해서 형성된 거거든요. 그거를 한 인격체가 출생한 다음에 인식하고 배워야 되는 거죠. 그 살아가는 과정에
그
비어 아 글로발 토스 브라, 뭐 맞습니다. 글로벌, 그렇죠? 글로벌이라는 그대로 우리가 쓰기도 하죠.
여기 일부에도 몇 장까지 있나, 굉장히 길게 한 6장까지 이러 자세하게 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장까지 우리가 보지 말고만 살펴보겠어요. 이분은 "종교 평화 없이
종교 평화 없이
음, 좀 특이한 제목이 특이한 책인데, 음, 1부 그렇게 됐고요. 2부 카인 벨트 프리데
무신론자들은 뭐 이걸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어, 세계가 저런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봐야 되겠죠. 부제가 이렇습니다.
삼부
그러니까 인류가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3부의 부제는 이렇습니다: 종교적 시대 상황에 분석, 서서 복잡하니까 지나가고, 근데 2부에 부제가 재밌어요:
태극기 부대를 견인에 가는 사람들이 주로 극우 경향에 기독교인이라고 하네요.
냉소주의인 거예요.
이 마는이 세계는
진요게 바하이 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좀 복잡해요. 그래서 우리 일상에서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가 있습니다. 자, 요 삶의 여정이라고 하는 음 항목에서, 어, 리
오늘 [음악] 우리가요 3장 삶의 여정을 마치게 돼요. 근데 어, 짧은 항목이라서 시간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107쪽이에요.
나의 길가이, 좀 간증 비슷한 이야기예요. 간증 비슷한 이야기이,
그래도 자기가 이 길을 간다, 그런 고백, 친한 고백적인 이야기가 여기 나와요. 107쪽, 밑에서 셋째 줄, 공의회 이전 7년 동안 받은 지독히 로마적 교육은, 그 이탈리아 로마에서 신학 공부한 시절을 가르킵니다. 오히려 교회의 자들에게도 주들지 말고, 언제나 내 교회와의 비판적 연대 안에서 비판적 연대, 나 자신의 삶의 길을 걸어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교수직을 박탈 당하는데, 그렇게 저항하도록 저기가 로마 신학대학, 그 과정에서 배웠다, 그 얘기입니다. 나는 온갖 충돌에서 신실한 길 동무들이 가까이 했었다는 멀리서 항상 나와 함께 해 준 것에 대해, 지금까지도 감사한다. 나의 길을 가련다, 이 기억자, 바로 기억자, 아 부호로요.
문장이 이렇게 들어 있는데, 이 책 이름인가, 책은 아닌 것 같은데, 나의 길을 가련다. 로마 유학 시절 보았던 당시 매우 인기 있던 배우, 미국 배우 빙 크로스비 주연의 영화 제목이다. 영화 제목이네요, 나의 길을 가라.
그 영화에서 빈 크로스비는 보수적인 본능 주임 신부의 반대를 거슬러,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적응 안 된 싱싱한 보자 신부 역을 맡았다. 무조 신부, 우리를 말하자면 부목사 인생이죠. 그러나 우리의 부목사와 가톨릭의 보좌 신부는 격이 다릅니다.
거기는 완전히 사제로서의 모든 권위가 인정돼, 그리고 목, 목이라 그러죠. 거기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본당 신부가 우리는 말하자면 담임 목사, 당회장이라고 또 부르기도 하는데, 위임목사, 단임 목사, 예배당과 본당 그 책임 신부에게 예속돼 있지 않아요.
그들은 뭐 계속 이렇게 순해 하니까, 그런 제도적으로 예속될 필요가 없는 거죠. 우리나라의 부목사들은, 하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단임 목사가 쉽게 이제 쫓아낼 수도 있는 거죠.
그러나 나의 충돌들은 그 영화 회사처럼 무난히 해결되지 않았다. 삶에 대한 크나큰 신뢰와 기쁨을 지니고도, 젊었을 때 그랬거든요. 검증된 삶의 가치들과 규범들을 가지고서도, 나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거듭 절박한 결단을 내리고,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가 지금 있는 그대로 있어, 다른 사람들이 너를 규정하지 않도록 해. 너의 역할을 스스로 결정해. 그러나 또한 너 자신을 돌지도 마, 피하지 말라는 건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지 마, 물러나지 마, 앞으로 나가라는 그런 소리들을 들은 거예요.
그래서 그 홀다운 표로 썼습니다. 칼 바르트가 다시 거론됩니다. 우리 개신교 신학의 20세기 신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죠, 칼 바르트.
그 밑에서 칼 바르트의 칭 이론으로 한스킨이 박사이 받았어요. 고매한 칼 바르트가 의인, 레이트 궁, 독일어 의인, 의라는 뜻이에요. 관한 나의 박사 아기 논문에 대한 운명 같은 그의 통과 인증서에 첨부한 명암의 친필로, "앞으로 동지 이렇게 서명해"라고 하네요.
라틴어로 썼죠, "아반티 사보이아" 앞으로 동지 가라. 근데 동지여, 나이 차이 많이 나죠, 선생이지. 칼바르트 어이 구호는, "아벤티 사보이는 19세기 이탈리아 해방 투사들이 만든 거라고 하네요."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많은 결정, 직업, 파트너, 장소 등의 선택을 꽤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처럼 모인다.
자기는 어려웠다고 하는 거야. 개인적인 자유 공간이 넓어졌고, 대중 매체 시대인 덕에 온갖 종류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보의 과잉 보의가, 이게 편리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눈 가리게도 만듭니다.
너무 많은 [음악] 정보, 정보의 과용이 이 방향 상시를 완화해 주기는 거 더 심화시키고 있다.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은 부족하지 않지만, 생성 AI 나온 뒤에는 더하죠. 그 지식은 부족하지 않지만 방향 설정에 대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
많은 경우, 필생의 결단은 반대를 거슬러서 관철된다. 반대 없이 편하게 되는 중요한 결정은 없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도 그런 거스름을 저항하는 결단이지만, 머리로 뚫고 나가려는 것은 물론 머리만 깨지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비도 미비, 결코 강직한 성품의 상징이 아니다. 나는 꿋꿋함과 적응력을 결합시키는 교조적 완고함과 수능적 유약함 사이의 길을 찾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예, 강할 땐 강하고, 약할 땐 약하.
강약 이거를 잘 균형을 맞춘, 그런 방식으로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하는 거죠. 근데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사람의 학문적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게 아니라 로마 가톨릭 안에서의 자리가지 않았거죠.
그도 뭐 정확한 건 아니죠, 로마 가톨릭 신학자로서 책을 만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게 다 부정된 것은 아니나, 그래도 공적인 기구 로마 교회의 공적인 기구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겁니다. 사람에게 어렵고 중대한 필생의 결단을 요구하는 위기 상황들이 있다. 일주의 사람들은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에 관해 말했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 그 젊은 영웅은 어떤 고적한 지역으로 물러나, 쓸쓸한 곳으로 물러나 어떤 인생 행로를 걸어갈지 숙고했다. 그때 서로 다른 두 여성의 모습이 그에게 나타났다. 먼저 방종이 헤라클레스에게 애인으로서 세상에 온 것, 즐거움과 안락을 약속했다.
그다음에는 덕이 힘겨운 길을 제시하면서, 헤라클레스가 그 길을 가면 모든 선과 위대함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우 여성은 그에게 자신의 이점과 상대 결정 을 상세하고 생생히 묘사했다. 그렇죠,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고, 줄 잘 타고, 좀 능력 보이고, 안락한 사제로서의 혹은 목사로서의 길이 보장되는 [음악] 겁니다.
헤라클레스는 삶의 향락이라는 쉬운 길과, 뭐 세상 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쉬운 길을 얘기하는 겁니다, 자기 명예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길을 얘기하는 거죠. 길과 덕이라는 수고스러운 길 중에서 덕을 자신의 길로 선택했다.
마지막 헤라 그래프입니다.
그래도 이제 부모들은 아이에게 험악한 세월에 다치지 말고, 그냥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뭐 그런 거죠. 저 친구들이 정말 의미 있게 사나, 안 그니까 그걸 돌아볼 길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의미와 관련하여 물음이 제기된다.
삶에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바로 다음 장이 다룬다. 삶의 신뢰, 삶의 기쁨, 삶의 여정을 거쳐서 이제 4장, 삶의 의미로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