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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Hans Küng)의 「나는 무엇을 믿는가」(WAS ICH GLAUBE, 이종한 역, 분도출판사, 2021년)를 정용섭 목사가 강독한다. 장별 차례는 아래와 같다. 1 삶에 대한 신뢰, 2 삶의 기쁨, 3 삶의 여정, 4 삶의 의미, 5 삶의 바탕, 6 삶의 힘, 7 삶의 모델, 8 삶의 고통, 9 삶의 기술, 10 삶의 비전
녹취입니다.
한스 큉, 나는 무엇을 믿는가 강독 36번째입니다. 제 1장은 삶에 대한 신뢰였고, 한번 그 앞서 있는 장에 키워드를 뽑아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삶의 기쁨이었고, 세 번째는 삶의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삶의 의미를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서 전통적으로 삶의 의미는 별로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그게 삶의 의미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답변이에요.
근데 그것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하면서, 더 세속적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 그 행복이잖아요.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들을 직접적으로 질문해보겠다고 합니다.
115조 밑에서 두 번째 줄입니다. "학문과 경제에서의 의미 문제"라는 소제목이 그렇게 달려 있습니다.
학문과 경제에서의 의미 문제, 종교 개혁과 교파 전쟁에 끝난 후, 한스 큉의 책을 읽다 보면 교리사와 교회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제2자 바티칸 공의회에는 여러 번 나왔고요, 지금 종교 개혁과 교파 전쟁이란 말이 나왔어요. 이거도 교회 역사입니다.
종교 개혁과 교파 전쟁, 종교 개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이고요, 굳이 횟수를 따지자면 1517년 비텐베르크에서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개혁 운동입니다. 이 프로테스탄트가 독일 사회에 자리를 잡으면서 로마 가톨릭과 신교 간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특히 그 영주들이 갈등 싸움에 깊이 관여되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당시 기독교가 거의 영주 국가 종교 마찬가지였으니, 이걸 이제 간단하게 얘기하면, 30년 전쟁도 있었고, 여러모로 심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어요. 그 결론이 어떻게 났냐면, 이제 영주가 어떤 종교를 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 가톨릭을 선택할 수도 있고 신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겁니다.
그 전에는 명주가 신교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 즉 '란트'(Land)라 합니다, 다 따라가지 않았어요. 아, 그런 건가? 제가 지금 반대 얘기를 하나요? 영주가 어떤 종교를 택하든지 가톨릭을 하든지 개신교로 하든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개인에 따라서 개인의 선택에 따라 종교 자유가 주어졌다, 그 같습니다. 제가 순간적으로 또 다른 착각을 한 것 같아요.
종교 자유라는 단어까지 나오다 보니까, 그럼 영주 말을 다 따라가면 그럼 자유가 보장되는 게 아니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제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때 베스트팔렌 무슨 무슨 조약이 있어요. 내가 그 조약에 관한 상세한 수라든가 개신교회와가 싸웠다, 그런 시점에 대해서 그 정확한 시점을 제가 지금 머릿속에 떠올릴 수가 없어요.
잊어버렸어요. 가물가물합니다. 그 어느 베스트팔렌 무슨 무슨 조약이 있는데, 그 조약이 끝난 다음에.
이제 종전 교전이 끝나게 된 거죠.
그래서 그 땅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좀 로서는, 흑역사라고 할 수 있죠. 기독교가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는데, 가톨릭과 신교가 그렇게 피 흘리며 싸웠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어쨌든 그런 전쟁이 끝난 후 계몽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릴 것입니다.
저는 몇 가지 핵심 단어만 알아두자고 합니다. 계몽, 말 그대로 이제 밝힌다는 얘기입니다. 미몽에서 밝은 세계로 나온다는 거죠.
뭐, 계몽시킨다, 그런 말이지 않습니까? 계몽주의는 17세기에 영국에서 종교적 교조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 사상가들과 함께 시작되었고, 영국에서 계몽주의 하면 주로 프랑스를 많이 생각했는데, 사실 영국에서 시작됐군요. 그 자유 사상가들을 가르쳐서 프리 스(Philosopher)라고 부르는군요. 18세기에는 프랑스에서 자유 사상가들, 즉 백과사전파 사람들과 함께 무신론적 방향으로 전환을 했으며, 무신론은 이제 종교 교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종교적 조건에 종속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미몽에 빠지는 거다, 그래서 벗어나야 된다, 밝은 세계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면서 무신론적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는 거죠. 19세기에는 독일에서도 차례차례 영향을 받게 되었고, 17세기 영국, 그다음에 18세기 프랑스, 19세기 독일 이렇게 확장됐습니다. 독일이 아무래도 가장 보수적인 것 같아요.
가장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있는 나라는 프랑스인들인데, 영국도 그렇더군요. 17세기 영국, 18세기 프랑스, 19세기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이렇게 확장됐고, 종교 교권으로부터 벗어나서 무신론적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적 시민층에서 유물론적 자연과학의 영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층에서 칼 마르크스와 변증법적 유물론의 영향으로 자유 사상가들의 수가 현재에 증가했습니다.
지금은 더 심하죠. 여기 두 가지 흐름이 나옵니다. 한쪽에서는 자유주의적 시민층에서 유물론적 자연과학의 영향, 뭐 그 당시에 자연과학이 말할 수 없이 발전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자에 비해서 거의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유물론, 유물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층에서 칼 마르크스와 변증법적 유물론, 물질을 세계를 이해하는 토대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이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하거든요. 근데 그냥 유물론이라고 하지, 왜 변증법적이라고 하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변증법은 정반합을 얘기합니다.
물질이 정반합의 흐름을 통해서 어떤 방향을 찾아간다는 겁니다. 20세기 초에는 걸출한 사상가들인 한스 큉이, 왜 이런 사람들을... 얘기하냐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그 전통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자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갑자에 나온 게 아니라, 이런 계몽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상가들의 생각이 그 밑받침이 되는 거죠. 그게 뭐 갑작스럽게 된 건 아니고, 상당한 과정을 통해서 되는데, 거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마틴 루터의 영향이 큽니다. 20세기 초에 걸출한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인 사회학자 막스 웨버는 1918년에서 1919년 겨울 학기에 "힘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잘릴 위기였으나, 막스 웨버는 1918년에서 1919년 겨울 학기에 독일에서는 학기가 여름 학기와 겨울 학기로 나뉘어져서, 여름 학기가 3월부터 8월까지, 겨울 학기가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다고 하죠. 그렇게 하는데, 그쪽에서는 겨울 학기가 11월부터 시작해서 겨울 쭉 지나서 3, 4월까지 계속되고, 여름 학기는 5월부터 언제까지 그렇게 진행됩니다. 매년 대학교에서 한 강연인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힘든 겨울 학기"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힘든 게 아니라 추운 학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918년에 1919년으로 넘어가는데, 무슨 힘든 일이 있었을까, 약간 제가 속사정을 잘 모르겠습니다. 막스 웨버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학문은 그래서 나온 이야기예요. 이 시대의 특유의 합리화 및 지성화, 더불어 특히 세상의 마법에서 풀면서, 바로 지극히 순수한 궁극적 가치들이 공공생활에서 퇴각하여 신비주의적 삶이라는 세상 뒤편의 영역 속으로 물러났습니다. 아니면 우리 개인 간의 직접적 관계들 속으로 물러난 것은 우리 시대의 숙명입니다.
그러므로 마법에서 풀려난 마법 주술적인 세계관에서 풀려난 것이죠.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전염병 같은 것이 다 마귀, 귀신의 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과학적으로 해명이 되니까 마법에서 풀려나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모든 세계를 완전히 그 마법에서 풀려난 것처럼 소상하게 아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전에 잘못된 곳에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간 거죠. 지도 끝은 보지 못했어요.
사실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다 신비한 겁니다. 그 마법이라고, 지금이 막스 웨버가 표현한 것을 한스 큉이 인용했는데, 그렇죠. 마법에서 풀려나는 것은 다 그러나, 사실은 이 세상은 마법과 같습니다.
한 게 아니에요. 그 자체가 마법과 같습니다. 배추 씨앗 하나 뿌리면 얼마나 큰 배추로 자라는지, 그 마법이 없이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거 같습니다. 물론 자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씨가 며칠 지나면 발아가 되고, 물과 과 뭐 그런 것들이 작용해서, 싹이 나오고, 태양과 뭐 이런저런 것들이 광합성 작용을 일으킴으로써 그 배추 씨가 점점 큰 배추로 자란다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래야만 되는지는 모르는 거죠. 꼭 그래야만 되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냥 그렇게 돼 있는 것을 현상적으로 설명할 뿐이지, 왜 꼭 그래야 되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왜 이 세상에는 고체와 기체와 액체만 있는가? 고체와 액체 중간쯤 되는 건 없는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다 모릅니다. 마법에서 풀려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모두 하나같이 의미를 창출하는 최고 권위라고 자처하는 온 철학과 신, 잘난 거죠. 세계관과 종교들 안에서 사람들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법에서 풀려났다고 하긴 하는데, 방향 잡기 힘들다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으니, 새로운 상황에서는 자신의 종교 또는 비종교적인 입장이 근본적으로 상대와 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라는 사람들은 막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청중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하거나, 오히려 예언자, 선동가, 메시아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교수들도 선동가 예언자 노릇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정치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오히려 지적 정직성, 지적 정직성이란 청중의 명료함에 이르도록 애어 도와줘야 한다. 그는 다시 또 인용합니다. 각 사람에게 자기 행위의 궁극적 의미를 스스로 해명하라고 권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 일을 도움으로써 그 사람이 삶에 대한 최종적이고 가능한 입장들 사이에서 결단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행동하지 말고 자기 예언자처럼 행동하지 말고, 그 사람이 청중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다른 삶의 의미를 찾고 결단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하는 거야.
삶에 대한 근본적 결단은, 만적 결단, 이렇게 살 거야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이렇다고 생각해. 뭐, 그게 있잖아요. 삶의 결단, 삶에 대한 근본적 결단은 앞에서 보았듯이, 많은 경우에는 그런 결단을 하지 않고 그냥 끌려가는 거죠.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그건 참 불행한 일입니다. 점수가 좋은 아이들은 조건 의대 가려고 하잖아요. 그건 의술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자기 삶의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돈벌이가 잘되기 때문인 거거든요.
돈벌이를 삶의 의미로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게 어디겠습니까. 이 근본적 결단을 앞에서 보았듯이, 근본적 신뢰 또는 근본적 불신 안에서가 아니라, 실제 전반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 안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전반,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실질적인 이런 상황을 가르치는 거죠. 일상을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학문에 있어서도, 안거는 막스 베버가 당시에 생각했던 것처럼 대학 교수들이 언제 어디서나 유념해야 하는 가치가 중립적, 객관성만이 아니다, 중간에 서서 무조건 어떤 사실을 나열하는 거로 끊어 만드는 거죠.
자연과학과 경제학에서조차 또 거듭 제기되어야 하는 의미에 대한 물음이 중요한 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의미에 대한 물음, 제가 독일 책이 없어서 독일로 뭐라고 되는지 모르지만, 그냥 얕은 독일어 실력으로 생각하면 이게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라겐 이게 아, 프라가, 이게 질문이란 뜻입니다.
"프라는"이 전치사 나아 따라다녀요. 뭘, 무엇에 대한 질문이야, 나 의미에 대한 물음이죠. "배도 이통" 해도, "이통 아니면" 안 진네요.
뭐 조금 더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 철학적인 토대에서 보는 의미라는 뜻이고, "배도 이통" 바로 위에 있는 단어는 그냥 보통, 이게 뭘 의미하지 할 때, 그 빨간 불이, 이제 신호등 앞에 있을 때, 저 빨간 불이 뭘 의미하죠? 이렇게 물을 때 "베도 이통", "베도 이텐"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땐 "진"이라고 아네요, 그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 그럴 때 이제 "진"이라고 얘기하는데, 여기서는 어떤 단어를 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계 경제 위기는 의미를 묻지 않는 맹목적인 경제와 과학 기술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 당시 경제학자, 은행과 증권 전문가, 언론인, 정치인은 경제의 정확하고 과학적인 예측 가능성과 조종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널리 유포하며, 이렇게 하면 경제가 어떻게 좋아지고, 어떻게 흘러갑니다. 뭐 그렇게 계산을 낸 거죠.
근데 대공황이 오잖아요.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경제가 물러가는 겁니다. 이 믿음은 비합리적 요소들과 도처에 잠복해 있는 위험과 부작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모든 수적 추정 계산하는 술이죠, 뭐 컴퓨터 계산들은 술이죠, 계산을 내는 거죠. 추정과 경제 사회적 모델들은 경제 발전을 확실하게 예측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모든 예측이 특정한 가정들, 실제로는 대부분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이고 진보 신앙적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런 학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뭐 이렇게 하면, 뭐 주식 시장도 살고, 부동산 시장도 살고, 뭐 수출, 뭐 수입, 이런 데서도 모든 일들이 잘 돌아간다, 이런 계산서가 있는 거잖아요. 그게 다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역사학자 토머스 카일라일이 경제학을 무한 학문이라고 지칭했는데, 이 말을 2008년에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자 스티븐 마글리의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공동체 기반을 파괴하는가" 부제를 붙인 책에서 적었습니다. 경제에 대해서 안다고 얘기하잖아요, 그게 공동체 기반을 파괴한다는 겁니다. 앞서 카일라잉ㄹ이 말한 아무라 학문이 그걸 의미하는 거죠.
모든 경제적 사고 방식이 하나같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건 지나치다고 하겠다. 그러나 세계 경제 위기에서 자극을 받은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적인 수리 수리 신앙을 따르지 않고, 그 계산 표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걸 수리 신앙이라고 여기 표현했네요.
수리 신앙을 따르지 않고, 숫자와 통계 안에서 사고하기보다는 규칙과 가치, 그리고 사회적인 전체 맥락 안에서 사고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개인당 연 1인당 수입이 4천만 원, 3천만 원 이라든지, 국가 GDP가 얼마냐, 이게 다 수치로 그런 걸로 우리가 발전했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게 세계를 보는 데 있어서 꼭 맞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실패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그 수치를 절대화하는, 절대화하는 수리 신앙이라고 하거예요. 그게 아니라 규칙과 가치,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사고한다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과 넉넉한 사람들이 어떻게 어울려서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인간다운 삶이 확보되는지, 거기에 초점을 놓는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시장 경제의 의미는 개별적인 시장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의 균형, 인간에게 마땅한 자유로운 질서, 그리고 윤리에 근거한 생태적 사회적 시장 경제다. 개인의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그러므로 사회, 자연, 인류의 의미와 연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삶의 의미를 얼마든지 확보된다고 생각하는 이런 걸로는 안 되는 거죠.
사회, 자연, 인류의 의미와 연결돼서 고찰도 된다, 이렇게 학문과 경제의 의미 문제를 수고했으니, 이제는 바로 개인의 삶, 개인적인 삶, 나의 삶의 의미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개인적인 삶의 의미가 뭔가, 어디에 둬야 되는가. 내가 연봉 5천만 원 받는 사람이 되면 되나, 아니면 연봉 천만 원, 1억 원 돼야 되나, 아니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내 삶의 의미인가, 뭐 등등이요.
이로서 우리는 영적 산악 여행에서 신맥 기슭에서부터 고산지대에 이르렀다. 그거는 이제 문학적인 수사네, 정말 중요한 문제에 도달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까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