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현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현실성과, 세계의 현실성에 대한 몰이해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알만한 사람이 왜 교회안에만 들어오면, 되려 덜 깨인 사람이 되어 가는가 무척 궁금했답니다.
스스로 성장하는 것(혹은 진화)것을 포기하는 사람들 처럼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는, 아니 포기하게 만드는 현교회 시스템이
우리네를 모두 집단 소시민화 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집단 소시민화, 또는 집단 우민화겠지요.
단지 순종이라는 명분 아래서요.
성서가 말하는 순종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교회 질서와 더 나아가서 담임 목사의 말을 따르는 게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아니 유일한 순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만 순종했지요.
인간, 체제와의 극단 투쟁과 분열을 넘어서
창조와 종말의 하나님에게만 절대적인 신뢰를 바친
그 예수님의 순종말입니다.
이런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면
'현실성'에 대한 심층적 인식이 필수적일 겁니다.
좋은 하루.
13강에선 현실성(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헷갈립니다) 때문에 뇌 근육이 아주 기냥 액티브하게 움직이네요.
목사님, 맨 마지막에 말씀하신 하나님 현실성의 "현실성"과 세계 현실성의 "현실성"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 건가요?
13강에서 어마무지하게 현실성이란 단어가 나오는데요, 이게 제가 잘 못 따라잡은 탓이겠지만
현실성의 일반적 의미와 하나님의 현실성이라고 할 때 현실성은 다른 의미인데 말씀하시면서
다소 혼용해서 사용하신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더라고요. 되게 죄송한데 좀 한가하실 때 13강 녹취록(132~143) 보시고 확인해 주시면 더할 수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귀찮으시면 말고요. 뭐 "현실성"만 제대로 알면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안다해도 과언이 아닐 건데.. 귀찮으시면 그냥 제가 모르고 넘어가지요, 뭐. 아주 기냥 깜깜하게 기냥 복이나 주십사 기도하고 뭐 기냥 그렇게 신앙생활 하지요, 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현실성과
신학에서 하나님이나 세계 등에 사용하는 현실성은,
뭐라 해야 하나,
다르면 다르고 같으면 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지요.
일반적인 의미의 현실성은 아주 단순하게 비현실적이지 않는 거를 가리킨다면,
신학에서의 현실성은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인 진리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현실성을 다른 말로 진리, 또는 과정이라고 해도 좋아요.
음, 또 어려워지지요?
그런 거를 일일이 설명하면서 강의를 할 수는 없어요.
경우에 따라서 하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합니다.
은빛이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봐
급히 답글을 답니다.
급히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적 의미의 현실성과 하나님의 현실성이라고 할 때의 현실성을 모르지는 않습니다.(일단 부인하고!!!ㅎㅎㅎ)
하나님이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해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 형상 등등등을 통칭하는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으셨잖아요.ㅎㅎㅎ
뭐 제가 우둔한 탓이겠습니다만 유난히 13강에 현실성의 의미가 막 혼재돼서 사용된 듯한 느낌을 받아서요.
이러면 저같은 사람은 상당히 헷갈립니다. 책을 다시 낸다고 하셨으니 그때 일반적 의미의 현실성으로 사용된 부분에만
이탤릭체를 해주신다거나 뭐.. 그런 것을 기대하면 안 되겠지요?ㅎㅎㅎ
최강으로 난해한 강의였습니다. 저에겐. 으흠.
고맙습니다.
오늘은 서울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하네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는 한낮에는 초가을 날씨였는데 말여요.
갑자기 날이 추워지니, 저 같은 약골은 벌써 감기네요..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