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구원(15)
지금 한국교회가 제자의 길을 제대로 걷는지에 관한 하나의 일반적인 대답을 찾기는 어렵다. 교회 사이에 차이도 크다. 세상에서 빛으로 드러나는 교회도 있고, 빛을 가리키는 교회도 있다. 다만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다면 전체적으로 제자의 길을 가지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설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개신교회가 불교나 로마가톨릭 교회보다 턱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불교와 가톨릭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50%라고 한다면 개신교회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20%도 채 못...
교회 구원(14)
제자들은 부활 경험 이후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예수의 제자도(弟子道)에서, 즉 ‘제자의 길’에서 찾았다. 당연하다.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 안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생명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영혼을 온전히 기울이듯이 말이다. 교회는 바로 제자도에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인 셈이다. 우리 글쓰기의 전체 주제와 연관해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제자도가 실현되거나 거기에 가까이 갈 때 교회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거꾸로 제자도가 유명무실해지거나 거기...
교회 구원(13)
혹시 이렇게 의심을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예수는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으나 예수를 향한 제자들의 그리움이 그런 환영을 불러일으킨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냐, 하고 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소문은 많았다. 빈 무덤 전승에는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빼돌리고 부활했다고 떠벌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의 꿈에 그가 나타나고, 그런 심리가 더 강렬해지면 죽은 자가 늘 자기와 함께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긴 하다. 이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
교회 구원(12)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해보겠다. 제자들의 예수 부활 경험은 십자가 처형 삼 일 후에, 아니면 한 달쯤 후에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약성경에도 부활 현현과 그 경험에 관한 일목요연한 시간표는 없다. 유랑 랍비였던 예수와 함께 지내다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의 영혼 안에서 언제부터인가 강력한 스파크와 같은 어떤 영적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와 그에 관한 비유, 그의 여러 설교, 그의 ...
교회 구원(11) [4]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도 인생은 한 번이면 충분하지 두세 번 반복이면 지루하지 않겠는가. 신구약 성경에서 시간과 역사는 환원이 아니라 종말을 향한 직진이다. 영원회귀가 아니라 열린 종말을 향한 동력이다. 우리 개인도 앞으로 나아갈 뿐이지 뒷걸음치지 않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기는 한다. 그들은 실제로 죽은 게 아니다. 일종의 임사체험이다. 임사체험과는 다른 특별한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다시 죽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하나님...
교회 구원(10) [1]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 예수의 십자가 처형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로 여성 제자들이 유월절 축제가 낀 안식일이 지난 이른 새벽에 예수 시신이 묻힌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 묘지에 갔다가 예수의 시신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반응이 복음서에 따라서 다르다.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 16:8) 마가복음이 전하는 부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막 16:9절 이하에 나오는 몇몇 보도는 ...
교회 구원(9)
제자들과 예수와의 관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은 예수의 부활을 왜 제자들만 경험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부활의 예수가 제자들이 모인 방에 나타났듯이 산헤드린 공회에 나타났다면,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 광장에 나타났다면 많은 사람이 부활을 경험했을 텐데 말이다. 복음서와 서신이 이에 관해서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기에 우리는 당시에 예수 부활과 연관해서 어떤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는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전에 예수와 특별히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부활...
교회 구원(8)
예수께서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으나 제자들이 교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필연적인 사태에 직면했기에 교회가 역사에 등장했다. 아무도 교회 설립을 의도하지 않았으나 필연의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 필연적인 사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각종 서신에 나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그 하늘나라가, 또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가르침과 운명에서 현실이 되었다는 깨달음이다. 이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간단한 말로 바꾸면 예수에게서 발생한 구원을 제자들이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에...
교회 구원(7)
일상에 은폐된 하늘나라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만이 아니라 우주론적 차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태양의 나이는 줄잡아 45억 년이다. 빅뱅은 138억 년 전 사건이다. 태양을 도는 행성인 지구는 태양에서 대략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속 30만 킬로미터 속도인 태양 빛은 8분여 후에 지구에 닿는다. 그 태양 빛은 지구의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이다. 이 모든 물리적 현상이 우리가 다 파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말은 곧 태양 에너지를 먹는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 태양 에너지...
교회 구원(6)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그분의 등에 관한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과 비슷한 어떤 것에 대한 일상에서의 경험이다. 칠십이 넘은 지금도 나는 사시사철 일주일에 격일로 세 번씩 테니스장에 나간다. 시니어 동호회원들과 함께 뛰고 라켓을 휘두르면서 공을 따라다니다 보면 한겨울철에도 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흐른다. 몸의 균형을 잡고 뛰면서 공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사람과 가장 닮았다는 침팬지도 비슷한 몸동작을 ...
교회 구원(5)
하늘나라가 여기 우리의 일상에 은폐되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폐성을 가리킨다. 성경은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게 곧 은폐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것처럼 유추되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기는 한다. 천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메타포(은유)다. 하나님은 창조와 종말 전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기에 한순간을 사는 인간은 그분을 직접 대면할 수가 없다. 우리의 손바닥에 있는 박테리아가 우리를 직접 경험할 수 없듯이 말이다. 특히 사람은 시간과 공간에 지배당하기에 시...
교회 구원(4)
한국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천국이 더 익숙하다. 죽어서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국, 즉 하늘나라는 하나님 나라이기에 천국은 곧 하나님 나라다. 우리말 성경 번역자들이 똑같은 개념인 하늘나라(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와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를 각각 한자인 천국과 순수 우리말인 하나님 나라로 번역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 하나님 나라를 한자로 번역하면 신국이 된다. 한자로 통일하든지 우리말로 통일하든지 일치시켜야만 했다. 이런 불일...
교회 구원(3) [2]
예수와 하나님 나라 기원후 40-60년대에 바울이 쓴 여러 편지에, 예를 들어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등등에 나오는 에클레시아가 이보다 훨씬 뒷날 기록된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아니라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공생애에서 선포한 첫 말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후 전개되는 예수 활동과 ...
교회 구원(2) [4]
에클레시아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의 서신에는 종종 나오나 복음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에만 두 번 언급되었다. 16:18절과 18:17절이다. 16:18절이 잘 알려진 구절이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로마가톨릭 교회는 이 구절을 근거로 베드로는 1대 교황이며 그 이후의 교황이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정교회와 개신교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우리가...
교회 구원(1) [9]
2천년대에 들어서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줄었으며, 지금도 줄어드는 중이다. 각 교단 총회 보고서 통계에도 나타나고 실제 교회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줄어드는 속도가 가파르다. 인구절벽 현상이 우리나라 전반에 나타나고 있으니까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그리스도인 숫자가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나라 교회도 어쩔 수 없긴 하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삶의 재미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까 굳이 종교 생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과학 기술의...
원당일기(377)- 바르트 신학묵상(9) 외 [6]
오늘은 2024년 마지막 날이다. 원당으로 이사와서 12년을 살았다. 여기가 내 고향처럼 느껴진다.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아마 여기서 죽지 않겠는가. 한해의 마지막 날 오전에는 음식쓰레기 처리를 비롯한 소소한 집안일을 처리하고 다비아 사이트와 유튜브 채널과 단톡방 업무를 잠깐씩 보고, 집안에서 테니스 스윙 연습을 한 다음,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한 후, 내년부터 집필하게 될 <교회 구원>에 관한 자료를 들춰보았다. 오후에는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영천에 나가서 아내가 헬쓰장에서 트레이너에게 도움을 받는 동안 ...
원당일기(376)- 바르트 신학묵상(8)
원당일기(375)- 바르트 신학묵상(7)
원당일기(374)- 바르트 신학묵상(6)
여러 사람의 교정을 거쳐서 출판된 책에서 12월28일 내용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쌀밥을 천천히 씹을 때 느낄 수 있는 달콤한 맛을 바르트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번 읽어서 감이 잡히지 않을 때는 두번, 세번 읽으면 좋을 겁니다. 한해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 어울리는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당일기(373)- 바르트의 신학묵상(5)
12월27일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눅 2:18) 만약 오늘 우리가 실제로 목자들의 말을 전해 듣는다면 우리 중의 대다수는 이 말을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실제적인 놀라운 일인데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무한자와 일치하는 일을, 또한 우리의 하나님을 무언가 무한하게 많은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우리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겁니다. 우리의 자유가 뿌리를 둔 가장 내면적인 토대가 위협당하기 때문입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