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
---|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는
아주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작고 하찮은'이라고 표현해서 좀 미안한 감이 있지만
볼품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 해를 봐왔는데 몸통이 어째 더 얇아지는 느낌이고
가지들은 정말이지 부실하기 짝이 없어요.
원래 나무는 저렇게까지 변화가 없나, 싶을 만큼
늘 그렇게 작고 하찮게 뭐랄까 버티듯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실은 그래서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동생과 집앞 작은 산에 올라갔다 오는 길에
그 단풍나무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얀 꽃뭉치 같은 것이 두 군데서 나부끼고 있더라고요.
순간 꽃인가, 했지만 한두 해 단풍나무를 본 게 아닌데
하얀 꽃은 처음입니다.
그래 참 이상도 하구나 싶어 다가갔더니
얼핏 보기에 비둘기 깃털 같더라고요?
비둘기 놈이 우리 단풍나무에 깃털을 꽂아두고 갔다고,
아주 깜빡 속았다고 혼자 크게 웃었어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깃털이 바람이 부는데도 의연해요.
깃털은 훅 날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손을 뻗쳐서 스마트폰으로 건드려 봤는데
날아가기는커녕 이리저리 대롱대롱 약올리듯 흔들리는 겁니다.
무.서.워.
뭐지? 뭘까?
사진을 몇 장 찍어두고 계속 고민해봐도 답이 안나왔습니다.
숲 해설가인 서울샘터 이 집사님께 여쭤보고 기다렸지요.
저녁 때쯤 나가는 길에 다시 봐도 역시 아까 모습 그대로입니다.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에 뭐가 저렇게 붙어있는 걸까,
아주 궁금하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집사님이 답을 알려줬어요.
일종의 균사체라고 합니다.
버섯 같은 것인가 봐요.
날이 건조해지면 날아간다고 하니 지켜보기로 합니다.
혹시 저 솜뭉치 같은 것이 단풍나무의 영양분을 죄다 빨아들여
어느 날 단풍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래도 며칠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균사체 놈을 떼어내야겠습니다.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야,
작고 하찮아도 괜찮아.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ps. 단풍나무 왈, 나는 작고 하찮지 않아.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살아. 이럴 수도 있겠네요.^^
집사님을 반기며 흔드는 손사래(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집사님도 반기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시기를...!
재미있는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