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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시인의 시집 "붉은 밭"에 실린 시 '붉은 밭'와 '황일' 읽기, 2021년 3월21일 주일 밤,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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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시인의 시집 "붉은 밭"에 실린 시 '붉은 밭'와 '황일' 읽기, 2021년 3월21일 주일 밤, 정용섭 목사
개천은 용의 홈 타운
내자의 친구 최정례 시인이 희귀 혈액암으로 인한 뇌출혈로 갑자기 졸(卒)했다. 아직 평균 나이도 한참 못 살았는데, 아직 쓸 시가 많은데 하늘의 시샘으로 갔다. 70이 종심(從心)이니 이제부터 좀 더 원숙한 시의 세계에 들어갈 텐데 참 하늘도 무심하다.
시인의 시 중에 이 시가 참 좋다.
개천은 용의 홈 타운-최정례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 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 대 놓치고, 그 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세상사 대하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야?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을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 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들이 창궐하여 다시 사해는 해충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 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니?
시인이 산문시를 즐겨 썼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 쓰기 모험이다. 시인은 “산문이 어떻게 시가 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시와 산문 사이에 누구도 낸 적 없는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을 내고 있다.
이 시에서도 산문의 직진성과 그것을 창조적으로 방해하는 시의 우회성이 특유의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상의 예기치 않은 변화뿐 아니라, 감정 상태 역시 단순치 않다. 수많은 쉼표와 물음표가 보여주듯, 시적 화자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불공정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 타운”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기다림 사이에서 뒤척이고 있다.
시인이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자기는 개천에 속해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천이 용의 홈 타운이지만 실제로 개천에서 용이 날까?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4대 해악이 지금 같은 세상에서 용이 될 수 있을까?
시인은 속에 부글거리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 말들은 자기연민을 훌쩍 넘어 세상이라는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주역 건괘(乾卦)의 구오(九五)는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다.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4대 해악으로 개천 같은 이 세상을 살았지만 이제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였으니 하늘에서 대인(大人)을 만나 안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