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9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여섯 날개가 있고 눈들이 가득한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ἅγιος’(하기오스)를 외친다고 합니다. 이사야도(사 6:3) 성전에서 천사들의 이런 합창 소리를 들었습니다. 중세기 미사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가 바로 라틴어 ‘상투스’입니다. 하나님께만 붙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이 상투스입니다. 그분이 거룩한 이유는 ‘전능하신 이’(Παντοκράτωρ, 판토크라토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느 황제는 십중팔구 자기 이름에 저 단어를 붙였거나 붙이고 싶어 했을 겁니다. 요한은 오직 하나님만이 판토크라토르이기에 이사야 선지자와 똑같은 심정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노래합니다.
이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미 계 1:4절과 8절에도 나온 표현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일상에서 상상하기가 어렵긴 합니다. 45억 년이 된 태양과 지구도 지금 있을 뿐이지 45억 년 그 이전이나 앞으로 45억 년 후에는 없습니다. 태양과 지구가 아니라 빅뱅보다 더 오래된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나님을 존재의 신비라고 말합니다. 그 존재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거룩하다’라고 노래할 뿐이지 시시비비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존재의 신비라고 말하면 교회 밖의 사람들은 ‘당신들은 할 말이 궁색할 때 늘 신비라는 핑계를 댄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리스도교가 무턱대고 신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주가 시작하는 순간이 있었다는 게 분명하다면 그 이전을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 이전은 우리의 인식 범주에서 벗어나기에 신비라고 하는 겁니다. 우주의 마지막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는 요한의 표현이 우리가 따라가기에 너무 사변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는 하나 인간을 둘러싼 세상과 우주에 대한 심층적 통찰에서 나온 고백이라는 사실만은 알아두는 게 좋겠습니다.
공동번역 [4:8 그 네 생물은 각각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고, 그 몸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이로다!"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새번역 [4:8 이 네 생물은 각각 날개가 여섯 개씩 달려 있었는데, 날개 둘레와 그 안쪽에는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성공회 예전예배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은 전에도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신다'는 믿음의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