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19일 아, 예루살렘!(2)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11:1)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고 갈릴리와 사마리아 등지에서만 활동하셨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에서 ‘만약’은 없습니다. 역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사건이기에 우리는 그런 가정법으로 역사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다는 사실만 분명한 역사가 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그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고, 부활이 이어지고, 초기 기독교 운동에 불이 붙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어제 언급했듯이 여러 종교의 성지입니다. 거룩한 땅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생명이 발현된다는 뜻입니다. 생명 말고 거룩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한 분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분이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완성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지인 예루살렘은 오히려 예수님에게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은 예언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성지로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하마스가 지배하고 있는 팔레스틴의 가자지구를 폭격해서 벌써 천여 명의 사상자와 오천 여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자칭 하나님이 선택한 거룩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이 왜 이처럼 반생명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걸까요? 이는 곧 예수님의 십자가에 처형한 그런 전통의 연장선일까요?
그 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체제는 그것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싸움을 성전이라고 미화합니다. 독재자들도 자기를 절대화하는 탓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무자비한 숙청을 정의의 실현으로 포장합니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어느 때에야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을 흘리신 장면이 기억나는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