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Articles 7,958
관련링크 : |
---|
옮긴이의 말
종교의 핵심은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과 연민이지만, 그리스도교 특히 근본주의/복음주의의 고질적인 병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회적 특수계시에 입각한 제국주의적인 배타주의와 성/인종차별주의만이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의 본래적 가치에 대한 멸시와 무책임이다. 예배에 자주 출석하는 사람일수록 환경 파괴에 무관심하다는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대부분의 교회가 하느님과 예수, 죄와 구원에 대해 전혀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자손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점점 더 파괴시키고 있다. 최근 곡물 가격과 원유 가격이 급등하는 현실은 결국 인간경제(human economy)의 토대가 되는 지구경제(Earth economy)가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는 증거이며, 기후변화의 위기는 매년 더욱 극심해지는 무더위와 태풍, 특히 북극해의 얼음이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데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National Geographic지 2008년 4월호에 따르면, 1979년 9월에는 북극해의 얼음이 278만 km2였는데, 2007년에는 165만 km2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2030년 여름에는 북극해에서 전혀 얼음을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 해류(海流) 컨베어벨트에 이상이 생기면, 엄청난 대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경고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 [기후변화 대책위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던 샐리 맥페이그 교수의 책을 원서가 나온 지 넉 달만에 서둘러 번역 출판하는 것을 오늘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절박감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이 점차 더욱 심해질 뿐 아니라 환경 파괴 역시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구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이미 영국과 비슷하고 세계 평균보다는 곱절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업, 교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입각해서 개발과 성장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한 촛불시위가 보수 신문과 공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새만금 공사에서 드러나듯 무분별한 갯벌 매립과 골프장 건설로 인해 죽어 가는 이 땅에 또다시 토건세력들을 위한 대운하 건설 계획과 제주 군사기지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핵발전소 건설이 녹색성장이라는 수사학으로 둔갑하고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역사적 반동세력에서 벗어나 문명전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철저한 신학적 재구성이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죽어 가는 생명체들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태만으로 인해 죽어 가는 생명체들이 더욱 많으며, "하느님의 몸"인 세계가 병들어 대재앙의 가능성이 점차 가깝게 다가오는데, "나는 미처 몰랐었다"고 자손들과 하느님 앞에서 핑계를 대는 신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민족의 상처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민족의 죄악과 죽임의 문명 전체, 특히 지배층의 어리석음을 자신의 온몸으로 씻어내려는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고행길을 떠나시면서 하신 참회의 말씀들(2008년 9월 2일)을 자주 읽어가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 참된 변화와 희망의 바람은 우리 자신에게서 불어옵니다. 우리 현실을 짓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우리 자신의 태만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왜곡된 형상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내면과 생활을 바꿔갈 때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 감사와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서로에게 빛이 되고 거친 바람 막는 병풍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믿음과 희망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인내와 끈기로 영혼을 단련시키십시오. 각자의 자리와 모양새는 다르나 영혼을 나누고 마음으로 연대하며, 더불어 즐겁게 진리를 구하는 순례의 길을 함께 갑시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요한 8,32)."
"... 나(我)는 '땅'과 '물'과 '태양' 그리고 바람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만물은 '한몸'입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이웃과 자연을 내 몸처럼 여기고 부처님으로 공경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습니다. 이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옳은 줄 알지만 기꺼이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참회'와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나의 '오체투지'는 참회와 기도입니다....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 대지의 품에 온몸과 마음을 던지고 또 던져 번뇌의 한가운데서 평화로워질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찾고자 합니다.... 어쩌면 위기를 위기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인식의 부재가 더 큰 위기인지도 모릅니다. 타성적인 위기 인식으로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길이 무엇인지를 다 압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입니다.... 다만 아는 대로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오체투지'를 합니다."
종교의 핵심은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과 연민이지만, 그리스도교 특히 근본주의/복음주의의 고질적인 병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회적 특수계시에 입각한 제국주의적인 배타주의와 성/인종차별주의만이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의 본래적 가치에 대한 멸시와 무책임이다. 예배에 자주 출석하는 사람일수록 환경 파괴에 무관심하다는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대부분의 교회가 하느님과 예수, 죄와 구원에 대해 전혀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자손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점점 더 파괴시키고 있다. 최근 곡물 가격과 원유 가격이 급등하는 현실은 결국 인간경제(human economy)의 토대가 되는 지구경제(Earth economy)가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는 증거이며, 기후변화의 위기는 매년 더욱 극심해지는 무더위와 태풍, 특히 북극해의 얼음이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데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National Geographic지 2008년 4월호에 따르면, 1979년 9월에는 북극해의 얼음이 278만 km2였는데, 2007년에는 165만 km2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2030년 여름에는 북극해에서 전혀 얼음을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 해류(海流) 컨베어벨트에 이상이 생기면, 엄청난 대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경고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 [기후변화 대책위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던 샐리 맥페이그 교수의 책을 원서가 나온 지 넉 달만에 서둘러 번역 출판하는 것을 오늘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절박감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이 점차 더욱 심해질 뿐 아니라 환경 파괴 역시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구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이미 영국과 비슷하고 세계 평균보다는 곱절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업, 교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입각해서 개발과 성장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한 촛불시위가 보수 신문과 공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새만금 공사에서 드러나듯 무분별한 갯벌 매립과 골프장 건설로 인해 죽어 가는 이 땅에 또다시 토건세력들을 위한 대운하 건설 계획과 제주 군사기지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핵발전소 건설이 녹색성장이라는 수사학으로 둔갑하고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역사적 반동세력에서 벗어나 문명전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철저한 신학적 재구성이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죽어 가는 생명체들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태만으로 인해 죽어 가는 생명체들이 더욱 많으며, "하느님의 몸"인 세계가 병들어 대재앙의 가능성이 점차 가깝게 다가오는데, "나는 미처 몰랐었다"고 자손들과 하느님 앞에서 핑계를 대는 신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민족의 상처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민족의 죄악과 죽임의 문명 전체, 특히 지배층의 어리석음을 자신의 온몸으로 씻어내려는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고행길을 떠나시면서 하신 참회의 말씀들(2008년 9월 2일)을 자주 읽어가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 참된 변화와 희망의 바람은 우리 자신에게서 불어옵니다. 우리 현실을 짓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우리 자신의 태만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왜곡된 형상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내면과 생활을 바꿔갈 때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 감사와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서로에게 빛이 되고 거친 바람 막는 병풍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믿음과 희망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인내와 끈기로 영혼을 단련시키십시오. 각자의 자리와 모양새는 다르나 영혼을 나누고 마음으로 연대하며, 더불어 즐겁게 진리를 구하는 순례의 길을 함께 갑시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요한 8,32)."
"... 나(我)는 '땅'과 '물'과 '태양' 그리고 바람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만물은 '한몸'입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이웃과 자연을 내 몸처럼 여기고 부처님으로 공경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습니다. 이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옳은 줄 알지만 기꺼이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참회'와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나의 '오체투지'는 참회와 기도입니다....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 대지의 품에 온몸과 마음을 던지고 또 던져 번뇌의 한가운데서 평화로워질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찾고자 합니다.... 어쩌면 위기를 위기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인식의 부재가 더 큰 위기인지도 모릅니다. 타성적인 위기 인식으로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길이 무엇인지를 다 압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입니다.... 다만 아는 대로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오체투지'를 합니다."
저는 환경파괴와 기독교의 관련성을
첫째로는
천지만물은 인간을 위한 소모품과 사용품이라는
근거가 성서에있다고 믿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창세기의 아담과 노아에게
번성하고 다스리라는 여호와의 령이 있었는데
기독교가 그것을 이기적인 왜곡으로 가열차게 밀고 왔죠.
양심에 거리끼지않을 말씀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안심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그 번성의 주도세력들이 일찌기 기독교국가였다는 것.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것을 파괴하지않고는 더 나은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 혹은,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는 파괴가 전제된다는 것이
원리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독교국가와 세계경찰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2000년 초반인가에 교토의정서에서도 탈퇴를 했는데,
지구환경에 대한 엄청난 폐해를 주는 것에
가장 큰 몫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했죠.
흰구름님께서 올리신 글과 상통하는 대목입니다.
첫째로는
천지만물은 인간을 위한 소모품과 사용품이라는
근거가 성서에있다고 믿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창세기의 아담과 노아에게
번성하고 다스리라는 여호와의 령이 있었는데
기독교가 그것을 이기적인 왜곡으로 가열차게 밀고 왔죠.
양심에 거리끼지않을 말씀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안심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그 번성의 주도세력들이 일찌기 기독교국가였다는 것.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것을 파괴하지않고는 더 나은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 혹은,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는 파괴가 전제된다는 것이
원리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독교국가와 세계경찰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2000년 초반인가에 교토의정서에서도 탈퇴를 했는데,
지구환경에 대한 엄청난 폐해를 주는 것에
가장 큰 몫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했죠.
흰구름님께서 올리신 글과 상통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문구 "사실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길이 무엇인지를 다 압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입니다.... 다만 아는 대로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 는 이 시대의 크나 큰 예언자적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노아의 전설에서 보듯이 "아무리 외처도 동시대 사람들이 비웃기만 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이 시대에 "신학적인 재구성" 을 하지 않는 한 먼 훗날 지구 역사에서 "지구의 생명체" 를 멸절시키는데 일조를 한 종교로 기억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구원한다"는 -구세 주- 핵심적인 구호(?) 와는 정 반대로 ...
특히 기독교 인들의 "생태적 회심(?)"이 없는 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이 사이트만 보아도 기독교 초보적(?)적 이고 반복적인 교리논쟁 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토론이 벌어지지만 이런 글에 대해서는 댓글을 다는 분이 없다는 것이 그런것 아닐가? 생각 해 봅니다. 나름대로 세상의 "먹물'을 묻히신 분들인데 지구 환경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것인지 아니면
내 전공이나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외면 하는지 혹은 잘 몰라서(어려워서) 그렇다는 핑개는 아니겟지요.
너무나 먼 훗 날(?)이라 나와는 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방관적이진 않겟지요
도데체 기독교의 "세상 구원" 이란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 심각하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지구상 생명체가 없는 상황에 "복음" 이 무슨 필요가 있을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