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제가 이해한 '인문학적 성서읽기'

Views 2838 Votes 225 2008.10.07 21: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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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
어젯밤에 읽은 시 한편입니다. 함민복의 시집 '우울씨의 일일'이란 수록된 작품이고요.
이 시를 읽으면서 다비아에서 말하는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무슨 뜻인지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나누고자 합니다.

분명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읽었다면
자장면 : 시적화자와 젊은 부부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
슬픔 : 시인의 현재 상황이지만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감정 상태
등으로 분석해 가며 읽었을 겁니다. 언어영역을 대비하여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시를 읽는 것은 시를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에요.

저는 어제밤 이 시를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왜 공감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함민복 시인이 살아온 역사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발전소에서 근무하다가 정신병을 가지게 되어 계속 치료를 받았고,
이후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 시인이 되었고, 상계동에서 살다가 철거민
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다가 지금은 저 멀리 강화도에서 혼자 살고
있는 사람.

이렇게 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이 시가 공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비슷한 삶의 경험을 겪었던 사람은
시인의 마음이 전달되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을까요? 이 두가지가
같이 있으면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더 좋았을 거고요.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서읽기도 마찬가지 인것 같아요.

성서는 그당시 상황속에서 그당시 언어로 쓰여진 것이기에

* 이스라엘의 역사
* 히브리어, 헬라어(언어에는 문화와 사상이 녹아 들어있을테니까)
등을 잘안다면 바르게 성서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될테고
* 그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현실인식
* 2000년 신학사
등을 또 안다면 성서와 지금의 저자신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겠지요.

이것이 함민복이 살아온 인생을 아는 것이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해당할 것 같고요.

그리고
* 인문학 공부
를 한다는 것이 시인과 비슷한 삶의 경험을 한것이 그의 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라는 말에 해당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문학적 성서읽기'라는 말은 특별한 성서읽기 방식이라기 보다
평상시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 삶의 경험을 넓히는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시켜 옴으로써 성서가 자신을 계시할 때 적절히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삶의 이해 지평을 최대한 확대하여 놓는 것을 중요시하고 이런
방식이 성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믿는 성서읽기방식.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시인의 살아온 인생을 아는 사람과 시인과 비슷한 삶의 경험을 겪은 사람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듯이, 이스라엘의 역사나 신학사등 배경 지식을 알고 또 평상시 삶의
경험(인문학 서적을 통한 간접적 경험)을 넓히는 것이 성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 같아요.
즉. '인문학적 성서읽기'에서 '인문학'은 문자적의미로서 특정 학문을 가르키기 보다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삶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제가 제대로 이해를 한건지 모르겠네요.
사실 '인문학적 성서읽기' 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무슨 뜻인지 잘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좋은 밤!  








profile

클라라

2008.10.07 22:51:12
*.216.132.238

요즘, 찬선청년의 등장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는데,
빈손으로 오는 벱이 없군요^^
감사!

첫날처럼

2008.10.07 23:23:48
*.237.225.42

와... 맘에 꼭 와닿네요... "인문학"이라는 말에 지레 겁먹고, 성경과 인문학이 어떻게 서로 같이 갈 수 있느냐고 이야기하던 어떤 분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 글을 보여드렸으면 정말 제대로된 이해를 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글을 읽고나니 "인문학적 성서읽기" 란 말은 오롯이 "삶의 깊이로 성서를 읽어내기" 라는 말과도 통한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삶의 깊이는 또한 오롯이 우리의 영성과 바로 통하는 것일 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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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08.10.07 23:25:45
*.181.51.93

옳소.
찬선 군의 위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바로 그 말이오.
시를 읽듯이 성서를 읽자, 이거요.
그렇게 읽기 위한 공부를 하자, 이거요.
그런 준비가 된다면 시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걸
경험하게 될 거요.
그렇게 말을 거는 걸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령의 조명이라고 할 수 있소.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향해, 가자!
profile

모래알

2008.10.08 00:14:23
*.250.81.160

정 목사님께서 옳소!를 너무 크게 하셔서 토씨 달기가 겁나네요. ㅎㅎ
헌데 말이죠..
함민복 시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데
그분과 같은 삶의 경험이 전혀 없는데
그 시가 내게 와 닿고 이해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그것도 배제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글에 감사드리며..
profile

정성훈

2008.10.08 00:32:34
*.55.137.106

멋진 한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

사띠아

2008.10.08 07:44:00
*.162.164.108

모래알님.
그건 아마 모래알님께서 지내오신 삶의 여로에서
위의 시에 등장하는 이들의 낮은자의 자리에 처해 보셨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래알님께서 순수토종 한국인이시며
그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지내오셨기에 (맞나요?)
위의 시가 와닿고 이해될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주제넘게 토달았죠?

위 시를 읽으며 소년시절 읽었던 문학작품의 두장면이 오버랩됩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의 서글픔..
간장하나만으로도 풍성한 행복..
profile

유목민

2008.10.08 08:14:20
*.247.81.6

신학대학 다닐 때 성서배경사나, 아카드어 문법 혹은 고등비평 같은 시간에 간혹 엉뚱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수님. 구원받으셨어요?'
이런 과목은 성서와 너무 관계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요.
이런 학생은 소위 '불파'라 불리는 학생들이며,
졸업 후에도 학문은 뒷전이고 쉰 목소리로 걸걸한게 특징이고,
성서를 마스터했다는 자만심이 있죠.
실은 성서를 모르면서 말입니다.
지성적이 아니더라도 조금 생각이 있는 신자라고 하면 적응하기 힘들겠죠.
인문학 성서 읽기가 신앙의 좋은 길라잡이가 될꺼라 '믿쒸미다'
profile

정용섭

2008.10.08 09:37:31
*.181.51.93

함민복 시인에 대한 전이해가 없어도,
그런 삶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어도
그 시가 모래알 님에게 닿는 것은
사티아 님의 말대로 모래알 님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함 시인과의 동일한 삶의 경험이 내재해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신학공부를 하지 않아도 어떤 분들은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더군요.
그런데요,
약간 다른 차원이 있어요.
횔덜린이나 트라클 같은 시인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성서 텍스트에도 함 시인의 시와 같은 것이 있고,
횔덜린 같은 시인의 시도 있을 거에요.
내가 신학 패권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하루.
profile

모래알

2008.10.08 09:46:18
*.250.81.160

ㅎㅎ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이 표현이 맞나요?
혹 떼려다 혹 붙인다.. 뭐 그런..
저도 순수토종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와서는 우리 조상님들이 순수 조선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어요.
제가 박찬선 님의 글에 부친 내용 보다 더 확대 해석해 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입니다. *^^*
profile

모래알

2008.10.08 09:50:30
*.250.81.160

내재성! 예.. 그것에 동의합니다.
헌데 전 횔덜린이나 트라클 같은 시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니
목사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닙니다! 입니다.
성서 텍스트에 함 시인 같은 것도 있고 다른 분의 것과 같은 세계도 있다는 것 ..
그래서 늘 제게는 아리까리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인다면 목사님들께서 시나 소설들을 좀 많이 읽으셨으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날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profile

모래알

2008.10.08 10:26:43
*.250.81.160

예수와 원효 / 황동규

마사치오*의 나뭇잎으로 아랫도리 가리고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그림을 보며
원효가 예수에게 말했다.
"선생의 낙원은 빨래가 없는 곳이군요."
"그렇다, 지옥은 비누가 없는 곳이다."

*Masaccio : 15세기 초 이탈리아 화가.

어제 읽은 시 하나 옮겼습니다..

평민

2008.10.08 11:46:24
*.90.53.97

잘 아시겟지만 성서는 "읽기"위한 책은 아니지요. "삶"을 위한 책이지요
우리가 성서를 나름대로 솔직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살아보려는 노력이겟지요

사실 성서가 사람들의 "탐욕"에 의해서 얼마나 많이 왜곡되게 읽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읽기"만 집중한다면 일기에 흥미를 가지고 빠져드는 수가 많습니다
성서를 "삶의 근본"으로 삼기 보다는 얄팍한 지적 놀음의 도구로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는" 것이 "살기"위해 진지하게 앍어야 할 것입니다

profile

유니스

2008.10.08 11:50:57
*.104.194.160

아..기본적으로 시들을 많이 읽으시는군요..ㅠㅠ
저는 시심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요..
그러나 박찬선님의 '인문학적 성서읽기'설명은
눈에 쏙 들어오네요.
감사~~

신완식

2008.10.08 21:40:30
*.111.144.56

박찬선 님은 벌써 하산 하실 때가 되었군요^^.
인문학적으로 성서를 읽는 게 뭔지를 잘 이해 못하는 분들이
부지기 수인데요.
계속 진도 잘 나가소서~~~
profile

달팽이

2008.10.08 22:16:43
*.83.93.191

와, 박찬선님이 인문학적 성서 읽기에 대하여 명쾌하게 쓰주셨네요.
저도 다비아를 통해 인문학과 성서읽기와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했는데...
우리가 성서와 신학과 2천년 기독교를 역사를 어우러지 못하면 기독교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 보네요.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내가 성서를 좁고 편협하게 읽고 공부했다는 생각이 많이듭니다.
지금은 성서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바로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무거운 짐을 벗어준 것 같네요~~
글을 쓰시는 솜씨를 보니 이해력과 표현력이 대단하시네요.
제가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시원하게 풀어주어서 감사해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 많이 부탁해요~~

박찬선

2008.10.09 12:45:01
*.109.153.233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격려와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요.
감사드립니다^^
제가 짐작한 방향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흔히 '~에 대해 아는 것'과 '~를 아는 것'은 다르다고 합니다.
앞의 것이 정보 차원의 앎이라면 뒤의 것은 정보 너머의 그 무엇.
그러니까 대상과 저자신이 연결되는 경험으로서의 앎?
하나가 되는 경험을 수반하는 앎? 깨달았다고 할 때의 앎?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날마다 정보를 넘어서는 앎까지 나아가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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