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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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원래 생겨먹은 것이 체제 순응적, 더 나아가서는 체제 지향적일까요? 지금 한국 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처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사역, 십자가, 부활 이 모든 것이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성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 사건" 이 바울에 의해서는 유대 종교적 제의 개념으로만 주로 해석이 되오 왔는데, 사실은 십자가 사건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 는 “복음의 근본적인 혁명성" 을 여실히 나타내준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 당시 로마 정치 세력들과 유대 종교 세력들은 예수에게서 위협감을 느꼈음에 틀림이 없으니까요... 예수는 항상 "하나님의 통치"를 이야기 했죠...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는 그 당시 절대적인 카이사르의 철권도 완전히 상대화되어버리고, 또한 모든 부조리한 권력들도 다 상대화 무력화 되어버리죠...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엎으려는 목적으로, 선동을 통하여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는 혁명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불필요한 소요로 인해서 로마에게 찍히는 것도 싫었을 것이구요... 그래서 결국 로마와 야합해서는 예수를 처형하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는 그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선동가나 혁명가가 아니었죠... 아니 그 이상이었죠... 그 이상의 가치를 구현하는, 하늘의 가치를 구현하는 분이었죠...
예수의 마지막 선택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궁지에 몰리면 한 번 물고 늘어지기라도 해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성공을 해서 권력을 잡아봤자 그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 - 구 소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도 보이듯이 세속적인 권력은 그냥 권력을 잡은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자리바꿈일 뿐, 권력의 폭력적인 속성은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 또 다른 가이사의 권력일 뿐, 하나님의 통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예수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바랬기 때문에, 정말 이상한 길...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내어놓는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예수의 신비를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땅에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이루려던 "천년왕국운동"은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루터에 신학적으로 대항했던 토마스 뮌처의 농민전쟁에서도 보이듯이 결국은 완전히 살육 당하면서 끝이 나거나, 잠시간 "신정정치"의 또 다른 억압구조가 만들어지다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농민전쟁에 반대하고 제후들의 편을 들던 루터 - 루터는 첨에는 농민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 와 선을 긋고 제후들과의 전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토마스 뮌처도 그 속에서 엄청난 고뇌를 했었습니다... 큰 틀에서, 대의에서는 맞는 것이었으나, 그 속에 나타난 농민들의 극한적 이기성과 잔인함까지도 동의를 해야하는 것인가 갈등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런 상태로 제후들을 이기고 농민들의 세상이 와서 뮌처를 중심으로 "신정정치" 를 구현한다고 한들, 어쩌면 피의 보복의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을도 무조건 체제 순응적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로마서의 "권력에 대한 복종" 으로 유명한 13장의 경우도 복종 이전에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는 원론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말씀이 지겹도록 계속 반복이 되거든요... 결국 그 말씀의 행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경고" 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 당시의 노예제도, 남성우월주의와 여성비하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묵인한 것처럼 보이는데,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을 그리스도에게 하듯 섬기고, 또한 주인 또한 종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듯 하라고 합니다... 남성은 여성의 머리라고 하는데 이것도 권위를 부리라는 의미가 아닌, 예를 들면 위험한 상황 속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에 서라는 의미로, 그리고 그런 남성의 노고를 여성들은 인정해주라는 말로 들립니다, 또한 남성은 여성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바울에게서 "근본적이고 내용적인 혁명성"을 느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딜레마이자 역설적 진실은 바로 궁극적인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을 굳게 믿으면서도, 이 땅, 이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는 그 이중성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발전하고,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민의를 대변하는 그런 장치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민주주의 공화주의라는 것인데요... 저는 이런 제도들이 예전의 어느 제도들보다도 가장 "하나님의 통치"를 그래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민심은 천심이고, 어쩌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저는 지난 번 촛불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는 형이랑 서울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 참석을 해본 적이 있는데, 물론 앞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지만, 촛불을 든 70만이란 상식적이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대한 물결을 만들면서 보여준 그 혁명적 잠재력은 그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에 박혔습니다... 감격스럽더군요... 거기다가 성숙한 시민의식까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과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가 결코 서로 이질적인 것만은 아님을 느낍니다...
횡설수설이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사역, 십자가, 부활 이 모든 것이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성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 사건" 이 바울에 의해서는 유대 종교적 제의 개념으로만 주로 해석이 되오 왔는데, 사실은 십자가 사건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 는 “복음의 근본적인 혁명성" 을 여실히 나타내준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 당시 로마 정치 세력들과 유대 종교 세력들은 예수에게서 위협감을 느꼈음에 틀림이 없으니까요... 예수는 항상 "하나님의 통치"를 이야기 했죠...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는 그 당시 절대적인 카이사르의 철권도 완전히 상대화되어버리고, 또한 모든 부조리한 권력들도 다 상대화 무력화 되어버리죠...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엎으려는 목적으로, 선동을 통하여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는 혁명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불필요한 소요로 인해서 로마에게 찍히는 것도 싫었을 것이구요... 그래서 결국 로마와 야합해서는 예수를 처형하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는 그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선동가나 혁명가가 아니었죠... 아니 그 이상이었죠... 그 이상의 가치를 구현하는, 하늘의 가치를 구현하는 분이었죠...
예수의 마지막 선택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궁지에 몰리면 한 번 물고 늘어지기라도 해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성공을 해서 권력을 잡아봤자 그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 - 구 소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도 보이듯이 세속적인 권력은 그냥 권력을 잡은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자리바꿈일 뿐, 권력의 폭력적인 속성은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 또 다른 가이사의 권력일 뿐, 하나님의 통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예수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바랬기 때문에, 정말 이상한 길...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내어놓는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예수의 신비를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땅에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이루려던 "천년왕국운동"은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루터에 신학적으로 대항했던 토마스 뮌처의 농민전쟁에서도 보이듯이 결국은 완전히 살육 당하면서 끝이 나거나, 잠시간 "신정정치"의 또 다른 억압구조가 만들어지다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농민전쟁에 반대하고 제후들의 편을 들던 루터 - 루터는 첨에는 농민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 와 선을 긋고 제후들과의 전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토마스 뮌처도 그 속에서 엄청난 고뇌를 했었습니다... 큰 틀에서, 대의에서는 맞는 것이었으나, 그 속에 나타난 농민들의 극한적 이기성과 잔인함까지도 동의를 해야하는 것인가 갈등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런 상태로 제후들을 이기고 농민들의 세상이 와서 뮌처를 중심으로 "신정정치" 를 구현한다고 한들, 어쩌면 피의 보복의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을도 무조건 체제 순응적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로마서의 "권력에 대한 복종" 으로 유명한 13장의 경우도 복종 이전에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는 원론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말씀이 지겹도록 계속 반복이 되거든요... 결국 그 말씀의 행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경고" 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 당시의 노예제도, 남성우월주의와 여성비하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묵인한 것처럼 보이는데,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을 그리스도에게 하듯 섬기고, 또한 주인 또한 종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듯 하라고 합니다... 남성은 여성의 머리라고 하는데 이것도 권위를 부리라는 의미가 아닌, 예를 들면 위험한 상황 속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에 서라는 의미로, 그리고 그런 남성의 노고를 여성들은 인정해주라는 말로 들립니다, 또한 남성은 여성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바울에게서 "근본적이고 내용적인 혁명성"을 느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딜레마이자 역설적 진실은 바로 궁극적인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을 굳게 믿으면서도, 이 땅, 이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는 그 이중성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발전하고,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민의를 대변하는 그런 장치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민주주의 공화주의라는 것인데요... 저는 이런 제도들이 예전의 어느 제도들보다도 가장 "하나님의 통치"를 그래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민심은 천심이고, 어쩌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저는 지난 번 촛불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는 형이랑 서울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 참석을 해본 적이 있는데, 물론 앞에서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지만, 촛불을 든 70만이란 상식적이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대한 물결을 만들면서 보여준 그 혁명적 잠재력은 그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에 박혔습니다... 감격스럽더군요... 거기다가 성숙한 시민의식까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과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가 결코 서로 이질적인 것만은 아님을 느낍니다...
횡설수설이었습니다...
"로마시대"에 살아 보았드라면 저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해보곤 합니다
그 당시 바울 사도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겨울 얼음을 소리없이 녹이는 봄 바람" 같은
근본적인 "혁명 수단" 을 말 한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