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Articles 7,958
관련링크 : |
---|
||0||0여기에 댓글 아닌 글을 올려보네요..
눈팅으로 시작해서 댓글을 달더니 이제는 글까지 올리다니 장족의 발전이지요?? 자화자찬 이에요.
지난 주에 오프모임 다녀왔더니 다비아가 더 내 집같고 좋아서 평소보다 더 자주 손걸음을 하게되네요.
다비아를 처음 접하게 된건 서울신대에 이신건 교수님 복직하시던 학기.. 그러니깐 2006년 9월경이던가요
그 때 이신건 교수님 소개로 다비아를 알게 된 것 같구요..
한참 눈팅을 하다가 아마 2007년 4월인가에 회원가입을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구체적인 시기는 기억은 사실 잘 기억이 안나요
^^;;
평소에 쓸데없는 고민이 많은지라 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늘 수많은 고민 속에 살았고
아마 가장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던 바가 신앙과 신학의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더랬어요. 신학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너무 유익하고 좋았지만 점점 교회와의 괴리감은 커져만 갔더랬거든요. 그래도 신학공부가 좋은 나머지 처음에는 성서신학에 빠져서 살았더랬어요. 특히 구약신학이 그랬구요. 그러다 이신건 교수님 만나고 조직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교수님 왈-"조직신학이 조진신학이 되었어" 하시는 말에 피식 했거든요) 그 때쯤 이신건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아마 다비아를 소개하셨을거에요. 정확히 시점은 기억이 안나지만요.
그렇게 정 목사님의 글과 설교를 통해서 점점 더 조직신학적인 사고가 뭘 말하는지 아주 조금씩 손에 잡히게 되었어요. 사실 신학교 수업 커리가 신학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지 못해요. 더 근본적으로는 신학생들이 신학에 관심이 없다는데 있지만요.(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이진 않아요. 어디에든 남은자는 있기 마련이라 남아는 있어서 종종 이바구좀 떨지요ㅋ)
이후로 정 목사님의 설교비평 뿐만 아니라 설교까지 저는 스폰지 흡수하듯 흡수해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실은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바로 목사님의 설교와 글에 늘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목사님께 빠져든 이유일거에요. 그렇게 목사님의 글은 제게 좀 오버해서 표현하면 제 안에 있던 것을 고스란히 표현해주시는 분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다비아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네요..
이처럼 다비아가 너무 좋긴 하지만 반대로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한국교회는 제가 자라온 터전이고 그 터전이 여러가지 이유로 아파하고 있는 모습을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못난 부모님이라도 아픈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저를 키워줬는데 말이죠.
그래서 어쩌면 다비아에서 기쁨과 희망을 발견한다면 그렇게 겪는 큰 기쁨과 희망때문에 교회에서는 더 큰 절망을 겪을 때가 많아요. 그 절망 속에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다시 다비아에 와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지요. 절망과 희망의 관계가 이런걸까요?ㅋㅋ 청승맞게 목사님 설교를 읽으면서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마침 어제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그런 말이 있더군요. Dum spiro-spero!! 숨을 쉬고 있는 한 나는 희망한다!!
날마다 희망의 끈을 놓지않도록 도와주시는 여러분들께 모두 감사합니다.
분명 근원적인 제 희망은 늘 하나님이시지만 희망의 현실성이 제게는 다비아인 셈이네요.
처음 올린다는 글이 삶의 넋두리가 되어 버렸네요. 죄송~
눈팅으로 시작해서 댓글을 달더니 이제는 글까지 올리다니 장족의 발전이지요?? 자화자찬 이에요.
지난 주에 오프모임 다녀왔더니 다비아가 더 내 집같고 좋아서 평소보다 더 자주 손걸음을 하게되네요.
다비아를 처음 접하게 된건 서울신대에 이신건 교수님 복직하시던 학기.. 그러니깐 2006년 9월경이던가요
그 때 이신건 교수님 소개로 다비아를 알게 된 것 같구요..
한참 눈팅을 하다가 아마 2007년 4월인가에 회원가입을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구체적인 시기는 기억은 사실 잘 기억이 안나요
^^;;
평소에 쓸데없는 고민이 많은지라 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늘 수많은 고민 속에 살았고
아마 가장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던 바가 신앙과 신학의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더랬어요. 신학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너무 유익하고 좋았지만 점점 교회와의 괴리감은 커져만 갔더랬거든요. 그래도 신학공부가 좋은 나머지 처음에는 성서신학에 빠져서 살았더랬어요. 특히 구약신학이 그랬구요. 그러다 이신건 교수님 만나고 조직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교수님 왈-"조직신학이 조진신학이 되었어" 하시는 말에 피식 했거든요) 그 때쯤 이신건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아마 다비아를 소개하셨을거에요. 정확히 시점은 기억이 안나지만요.
그렇게 정 목사님의 글과 설교를 통해서 점점 더 조직신학적인 사고가 뭘 말하는지 아주 조금씩 손에 잡히게 되었어요. 사실 신학교 수업 커리가 신학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지 못해요. 더 근본적으로는 신학생들이 신학에 관심이 없다는데 있지만요.(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이진 않아요. 어디에든 남은자는 있기 마련이라 남아는 있어서 종종 이바구좀 떨지요ㅋ)
이후로 정 목사님의 설교비평 뿐만 아니라 설교까지 저는 스폰지 흡수하듯 흡수해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실은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바로 목사님의 설교와 글에 늘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목사님께 빠져든 이유일거에요. 그렇게 목사님의 글은 제게 좀 오버해서 표현하면 제 안에 있던 것을 고스란히 표현해주시는 분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다비아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네요..
이처럼 다비아가 너무 좋긴 하지만 반대로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한국교회는 제가 자라온 터전이고 그 터전이 여러가지 이유로 아파하고 있는 모습을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못난 부모님이라도 아픈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저를 키워줬는데 말이죠.
그래서 어쩌면 다비아에서 기쁨과 희망을 발견한다면 그렇게 겪는 큰 기쁨과 희망때문에 교회에서는 더 큰 절망을 겪을 때가 많아요. 그 절망 속에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다시 다비아에 와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지요. 절망과 희망의 관계가 이런걸까요?ㅋㅋ 청승맞게 목사님 설교를 읽으면서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마침 어제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그런 말이 있더군요. Dum spiro-spero!! 숨을 쉬고 있는 한 나는 희망한다!!
날마다 희망의 끈을 놓지않도록 도와주시는 여러분들께 모두 감사합니다.
분명 근원적인 제 희망은 늘 하나님이시지만 희망의 현실성이 제게는 다비아인 셈이네요.
처음 올린다는 글이 삶의 넋두리가 되어 버렸네요. 죄송~
예전에 신학교는 군인양성소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사실 신학교 뿐만 아니겠지만요)
공부라는 것이 자신이 배워온 것들이 송두리채 날아가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하는 것일텐데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반복해서 학습하는데 치중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였어요. 물론 처음에는 모방으로 시작을 해야겠지만 결국엔 창조로 나가야 되지 않겠어요?
다비아가 좋고 정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비평적인 자세를 견지한채 결국 목사님을 넘어서는 생각과 신학들이 많이 나와야 될 것 같아요.
그 작업은 삶에서님이 하시고요 ㅋ
저는 돈을 벌테니.
공부라는 것이 자신이 배워온 것들이 송두리채 날아가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하는 것일텐데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반복해서 학습하는데 치중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였어요. 물론 처음에는 모방으로 시작을 해야겠지만 결국엔 창조로 나가야 되지 않겠어요?
다비아가 좋고 정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비평적인 자세를 견지한채 결국 목사님을 넘어서는 생각과 신학들이 많이 나와야 될 것 같아요.
그 작업은 삶에서님이 하시고요 ㅋ
저는 돈을 벌테니.
이렇게 불러 드려도 되는 거지요?
우리 오프에서 뵈었었지요?
목사님께서도 당근 청년들을 무지 좋아하시지만,
저 또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랍니다.
마구 챙근하고 싶어져서요.^^
나미 형제님도, 삶에서 형제님도..
참 진중한 청년들이겠다..느껴지더군요.
쓰신 글을 읽어 보니 아항.. 이해가 되네요^^
정말 감사드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