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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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Homer Faber.
인간은 도구의 동물이지요. 인간은 그 도구를 이용하여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강력한 힘도, 하늘을 나는 날개도, 온몸을 보호할 피부나 털도 없이 먹이 사슬의 최첨단을 차지 하였습니다.
도구는 또한 권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권력자는 도구 (무기)를 사용하여 더 큰 권력과 부를 독점했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구를 만든자는 그 도구를 스스로 사용하여 권력을 잡기보다는 장인으로써 그 권력자의 도구로 전략하게 되었죠.
위험한 도구
전통적으로 과학자에 있어서 발명이란 지적 호기심의 탐구에 있죠. 물론 부와 명성이 그에 따라 오지만. 하이드가 어떤 괴물로 나올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하이드를 만드는 것이 과학자의 최대 목표이지요.
핵무기는 누구나 인정하는 인류를 파멸로 몰고갈 가공할 위험을 알면서 또한 그 사용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권력자라면 누구나 같고 싶어하는 강력한 무기이지요. 검, 총, 폭탄, 핵. 모두 인간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위험한 도구이지만 누구나 자기 방어라는 변명하에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칼은 여러가지 유용한 용도로도 쓰이지만 또한 사람을 해치는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과학자는 단지 여러 도구를 발명, 공급할 뿐입니다.
누구나 더욱 강력한 무기를 찾습니다 -- 자신을 방어한다는 변명하에 남에게서 권력을 뺏을 수 도 있는 강력한 무기를. 인간의 무기에 대한 욕심이 끊이기 전에는 그 수요를 만족할 공급은 끊임 없이 공급됩니다.
과학 기술의 금지 -- 순진한 발상.
생명에 관한 기술은 그 말 자체로 생명을 다루는 것이므로 윤리적 도덕적 규제가 필요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 나는 한 도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음성적으로도 개발이 불가피합니다.
미국이나 핵 강대국이 핵을 쉽게 포기 못하는 것이 상대방도 핵을 같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빤히 총을 같고 있는데 먼저 총을 내려 놀 자가 있을까요?
물론 생명에 관한 기술은 굉장히 위험한 기술이므로 강력한 통제와 규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 자체를 포히한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입니다. 어차피 양심적으로 내가 연구를 안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 개발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연구를 안할 과학자가 어디 있을까요?
부자만을 위한 발명품
인간복제. 참으로 달콤하고 먹음직 스럽죠. 또한 그 위험과 윤리적 부작용은 너무도 가공스럽고요. 부자만이 인간복제를 한다고 했는데 어느 것 하나 권력자 또는 부자가 최우선이지 않은 것이 있나요? 심장이식 수술은 너무 비싸서 오로지 부자만 할 수 있으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연구를 안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모든 세상이 부자와 권력자가 먼저입니다. 굳이 새삼스레 빈자와 부자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닐까요?
인간복제 -- 먹음직 스런 사과. 그러나 아직은 설익은 사과.
또한 복제 기술이 마치 생명창조 또는 생명연장 처럼 불리는 데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고 멉니다.
첫째, 복제는 내가 아닙니다. 여러 SF 영화나 소설에서 나왔듯이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그것은 "나"일까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고 산다면 죽은 것과 무슨 차이일까요?
둘째, 이미 우리에게는 복제 기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신비로운 그러나 가장 안벽한 그리고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 일부 못 가진 사람들도 있죠 -- 생명복제 기술. 바로 출산이죠. 생명 복제는 기껏해야 내 아이를 갖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내 아이는 될 망정 나는 될 수 없죠. 물론 그나마 자식을 가지고 싶어하는 불임 부부에게는 굉장한 선물이겠지만요.
셋째. 아인스타인의 자식은 아인스타인이 아닙니다. 히틀러의 자식도 히틀러가 아니구요. 대를 물려 성공한 천재가 있나요? 또한 똑똑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인스타인이 정말 머리만 좋아서 그런 업적을 남겼을까요?
네째. 부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 시켜 장기를 추출해 생명을 연장한다고 두려워 하는데 이는 현재에도 가능한 불법 기술입니다. 장기이식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인류에 큰 공헌을 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장기매매는 불법입니다. 물론 부자는 음성적으로 장기매매를 통해서 손 쉽게 장기이식을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장기이식을 불법시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핵무기 -- 안 갖는건가 못 갖는건가?
생명복제가 핵무기 만큼이나 위험하고 또한 윤리적 도덕적 문제점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가급적 위험하지 않게 이끌어 나가야 겠죠. 강력한 통제와 규제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연구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핵무기가 위험하니 우리는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것 만큼이나 순진한 발상입니다. -- 물론 모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지 몰라도 어차피 못 갖는것 안갖는 척이라도 해보자와는 다른 발상이겠죠.
인간은 도구의 동물이지요. 인간은 그 도구를 이용하여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강력한 힘도, 하늘을 나는 날개도, 온몸을 보호할 피부나 털도 없이 먹이 사슬의 최첨단을 차지 하였습니다.
도구는 또한 권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권력자는 도구 (무기)를 사용하여 더 큰 권력과 부를 독점했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구를 만든자는 그 도구를 스스로 사용하여 권력을 잡기보다는 장인으로써 그 권력자의 도구로 전략하게 되었죠.
위험한 도구
전통적으로 과학자에 있어서 발명이란 지적 호기심의 탐구에 있죠. 물론 부와 명성이 그에 따라 오지만. 하이드가 어떤 괴물로 나올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하이드를 만드는 것이 과학자의 최대 목표이지요.
핵무기는 누구나 인정하는 인류를 파멸로 몰고갈 가공할 위험을 알면서 또한 그 사용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권력자라면 누구나 같고 싶어하는 강력한 무기이지요. 검, 총, 폭탄, 핵. 모두 인간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위험한 도구이지만 누구나 자기 방어라는 변명하에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칼은 여러가지 유용한 용도로도 쓰이지만 또한 사람을 해치는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과학자는 단지 여러 도구를 발명, 공급할 뿐입니다.
누구나 더욱 강력한 무기를 찾습니다 -- 자신을 방어한다는 변명하에 남에게서 권력을 뺏을 수 도 있는 강력한 무기를. 인간의 무기에 대한 욕심이 끊이기 전에는 그 수요를 만족할 공급은 끊임 없이 공급됩니다.
과학 기술의 금지 -- 순진한 발상.
생명에 관한 기술은 그 말 자체로 생명을 다루는 것이므로 윤리적 도덕적 규제가 필요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 나는 한 도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음성적으로도 개발이 불가피합니다.
미국이나 핵 강대국이 핵을 쉽게 포기 못하는 것이 상대방도 핵을 같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빤히 총을 같고 있는데 먼저 총을 내려 놀 자가 있을까요?
물론 생명에 관한 기술은 굉장히 위험한 기술이므로 강력한 통제와 규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 자체를 포히한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입니다. 어차피 양심적으로 내가 연구를 안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 개발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연구를 안할 과학자가 어디 있을까요?
부자만을 위한 발명품
인간복제. 참으로 달콤하고 먹음직 스럽죠. 또한 그 위험과 윤리적 부작용은 너무도 가공스럽고요. 부자만이 인간복제를 한다고 했는데 어느 것 하나 권력자 또는 부자가 최우선이지 않은 것이 있나요? 심장이식 수술은 너무 비싸서 오로지 부자만 할 수 있으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연구를 안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모든 세상이 부자와 권력자가 먼저입니다. 굳이 새삼스레 빈자와 부자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닐까요?
인간복제 -- 먹음직 스런 사과. 그러나 아직은 설익은 사과.
또한 복제 기술이 마치 생명창조 또는 생명연장 처럼 불리는 데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고 멉니다.
첫째, 복제는 내가 아닙니다. 여러 SF 영화나 소설에서 나왔듯이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그것은 "나"일까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고 산다면 죽은 것과 무슨 차이일까요?
둘째, 이미 우리에게는 복제 기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신비로운 그러나 가장 안벽한 그리고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 일부 못 가진 사람들도 있죠 -- 생명복제 기술. 바로 출산이죠. 생명 복제는 기껏해야 내 아이를 갖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내 아이는 될 망정 나는 될 수 없죠. 물론 그나마 자식을 가지고 싶어하는 불임 부부에게는 굉장한 선물이겠지만요.
셋째. 아인스타인의 자식은 아인스타인이 아닙니다. 히틀러의 자식도 히틀러가 아니구요. 대를 물려 성공한 천재가 있나요? 또한 똑똑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인스타인이 정말 머리만 좋아서 그런 업적을 남겼을까요?
네째. 부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 시켜 장기를 추출해 생명을 연장한다고 두려워 하는데 이는 현재에도 가능한 불법 기술입니다. 장기이식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인류에 큰 공헌을 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장기매매는 불법입니다. 물론 부자는 음성적으로 장기매매를 통해서 손 쉽게 장기이식을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장기이식을 불법시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핵무기 -- 안 갖는건가 못 갖는건가?
생명복제가 핵무기 만큼이나 위험하고 또한 윤리적 도덕적 문제점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가급적 위험하지 않게 이끌어 나가야 겠죠. 강력한 통제와 규제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연구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핵무기가 위험하니 우리는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것 만큼이나 순진한 발상입니다. -- 물론 모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지 몰라도 어차피 못 갖는것 안갖는 척이라도 해보자와는 다른 발상이겠죠.
현대 문명이 결국은 "도구"(연장):를 사용하는 동물들(Homer Faber.?)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 겠지요
잘 아시다싶이 "지나친 도구의 사용으로 지구 생명체에 멸절의 위기를 가져 온 것이지요
지나침은 아니간만 못하다 ((過猶不及) 는 말 처럼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어느 방송에서 "기후변화 위기" 프로를 자주 하는데 지구 환경을 이해 하는데는 좋은 것 같은데
그 이면에는 한국에 원자력 발전소를 말썽 없이 증축하려는 여론몰이 속샘이 있는 것 같더군요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고요 ...위험 천만한 도구의 하나지요 후손들에게는요 ...
잘 아시다싶이 "지나친 도구의 사용으로 지구 생명체에 멸절의 위기를 가져 온 것이지요
지나침은 아니간만 못하다 ((過猶不及) 는 말 처럼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어느 방송에서 "기후변화 위기" 프로를 자주 하는데 지구 환경을 이해 하는데는 좋은 것 같은데
그 이면에는 한국에 원자력 발전소를 말썽 없이 증축하려는 여론몰이 속샘이 있는 것 같더군요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고요 ...위험 천만한 도구의 하나지요 후손들에게는요 ...
인간 복제에 대해 얼마전 열라게 토론하던 게 생각이 나네요. 한 카이스트 학생이 자신있게 말하더군요. 이미 기술적으로는 인간 복제는 가능하다, 다만 법 때문에 못할 뿐이라고. 과연 인간이 얼마나 자기 통제를 할 수 있을까요?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서와 같이 이미 TV의 존재 자체가 TV가 가지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내재하고 실제로 발휘하는 것처럼(TV가 생산되서 실제로 사용되기도 이전에 말이죠) 인간 복제라는 말 자체가 나왔고 기술적으로 하니 마니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교회와 신학) 이에 대해 대답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미 인간복제라는 말 만으로도 인간의 가치 척도는 매우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신목사님 글에서처럼, 인간이란 "기억"하는 존재로서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이 과연 인간인가, 나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는 복제된 나는 과연 나인가 하는 질문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복제기술이 단지 부자만을 위한 "상품"이라는 데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과연 복제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차라리 이미 인간이 완전히(혹은 기억마저!)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금지되어야 하는지, 온 인류의 지성에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예가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태클 걸린 축구선수, 넘어졌다 일어나서 또 뛰면 그만입니다. 태클이 아니라 저 선수는 우리 운동장에서 더 이상 뛰지 못한다고 규정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 한번) 하지만, 왠지 제 느낌에는 영국이 인간 복제의 첫빠따를 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도킨스 아자씨 때문인가? 누군가 먼저 치고 나가면 결국 인간복제의 NPT가 필요하게 되겠군요.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서와 같이 이미 TV의 존재 자체가 TV가 가지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내재하고 실제로 발휘하는 것처럼(TV가 생산되서 실제로 사용되기도 이전에 말이죠) 인간 복제라는 말 자체가 나왔고 기술적으로 하니 마니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교회와 신학) 이에 대해 대답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미 인간복제라는 말 만으로도 인간의 가치 척도는 매우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신목사님 글에서처럼, 인간이란 "기억"하는 존재로서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이 과연 인간인가, 나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는 복제된 나는 과연 나인가 하는 질문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복제기술이 단지 부자만을 위한 "상품"이라는 데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과연 복제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차라리 이미 인간이 완전히(혹은 기억마저!)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금지되어야 하는지, 온 인류의 지성에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예가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태클 걸린 축구선수, 넘어졌다 일어나서 또 뛰면 그만입니다. 태클이 아니라 저 선수는 우리 운동장에서 더 이상 뛰지 못한다고 규정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 한번) 하지만, 왠지 제 느낌에는 영국이 인간 복제의 첫빠따를 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도킨스 아자씨 때문인가? 누군가 먼저 치고 나가면 결국 인간복제의 NPT가 필요하게 되겠군요.
이러다가 원 글은 안읽는 버릇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ㅋㅋㅋ
폴 님의 일목요연한 정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