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Views 1808 Votes 2 2008.11.28 13: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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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수업 들어 간 사이.
부재 중 전화  한 통과 문자가 동일인에게서 와 있었다.

*** 부친상 내일 발인.
** 장례식장.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인다.
같은 또래라고는 해도 개인적인 관계가 전혀 없는 사이.
그 친구의 얼굴을 떠 올려 본다.
마침 장례식장이 학원 근처이기도 하고,
입고 온 옷이 크게 튀지도 않는다면서
속으로 가야할 이유를 늘어놔 본다.

장례식장.
장례식장이 위치한 곳은 그야말로 생뚱맞은 곳이다.
삶과 죽음이 천 리 만 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해도,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화려하다 못해 부담스러운 네온싸인.
부킹 100% 보장. ** 성인 나이트클럽.
피식 웃음이 샌다.
그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론 대형 입시 학원이 시대의 상징물처럼 버티고 섰다.
나이트클럽과 입시 학원 사이에 끼어 앉은 장례식장이라니.
죽은 사람은 죽었다는 의식을 반드시 치러내야 죽는 걸까.

입구에 들어서니 아는 얼굴이 있다.
슬몃 눈인사를 건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그 친구와 인사를 나눈다.
어쩌면 진심이 담기지 않아 더 가벼운 봉투를 내밀고
긴 부츠를 있는 힘껏 끌어당겨 벗는다.
양말이 쭈욱.. 늘어난다.
꿀꺽 웃음을 삼킨다.

망자의 얼굴을 처음으로 영정 사진을 통해 대면하고,
아.. 이 친구 아버지가 이렇게 생기셨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딱히 무어라 할 말이 없는데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순서라면 순서일텐데 바보같이 그 다음 순서를 잊어서 잠시 멈칫한다.
간단한 목례 정도로 상주와 인사를 나눴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보다 못한 상주가 빙그레 웃으며 서로 맞절을 하면 된다고 가르쳐 준다.
아.. 민망해서 새어나온 탄식이 상주를 또 웃게 만든다.

졸업 후 처음 보는,
그래서,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얼굴들이 도통 이해되지 않는 중학교 동창들과
수선스레 인사를 나누고, 아는 얼굴이 있는 곳에 가 자리를 잡는다.
이십 년도 훨씬 넘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누구의 것이 맞는지 보장할 수 없는 기억들을,
어색한 분위기의 희생양 삼아 두런두런 나누고 나니 자정이 훌쩍 지나간다.

"난, 이제 내 삶은 없어. 그저 우리 애들 잘 키우는 거.. 그거 하나만 생각한다."
"맞아. 우리 아들 이번에 고등학교 올라가잖아. 너, 초등학교 보낼 때 다르고 중학교 보낼 때 다르고
고등학교 보낼 때 또 다르다. 기분이 정말 이상한 거 있지."

결혼을 일찍한 친구는 아들을 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면서 걱정을 늘어 놓았고,
십분 공감한다는 또 다른 친구는 벌써부터 입시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식들 장래를 걱정한다는 친구들 속에서
나는 아직도 내 미래를 염려하고 무언가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인식하며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잠시 생각했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삶의 절반쯤은 살아왔다는 사실에 헛헛함을 느꼈다.

아버지를 잃은 그 친구는 무슨 이야기엔가 깔깔대고 웃었고,
둘러앉은 우리는 화들짝 놀라 "얘. 얘~"를 연발하며 식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도 까르르~ 여중생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웃음 소리를 흘려댔을 것이다.

누군가를 영원히 잃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망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빠와 엄마가 없는 삶은 어떤 것일까?

늘 그렇듯이 두렵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이대로 나이가 들면
혼자서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혼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세상의 모든 일이 이렇게 마음 먹은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는지 몰랐다며
얼마쯤은 억울한 마음을 품었던 것도 같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아니 점심인가.
벌떡 일어나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퉁퉁 부었고,
늙었다.

습관처럼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
나 얼굴 좀 봐.
늙었어, 늙었어.

엄마~~ 엄마~~
아~~ 엄마~~ 어딨어??
나 배고파.

서른 여섯.
아침에 일어나 하루 만큼 늙어버린 얼굴에 탄식하고
그 만큼 또 늙어버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삶은...
영원히 반복되는 여행.
죽음 이후에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profile

병훈

2008.11.28 15:10:55
*.223.90.153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전 얼마전 고등학교때 친구의 장례식을 갔다왔는데 그 친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요..잘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 장소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반가워했다는게 죽은 녀석에겐 미안했지만 .. 결론은 여튼 살아야 아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그런다는 거였습니다.. 이왕이면 잘 살아야죠.. 사람답게..
profile

시와그림

2008.11.28 20:00:15
*.109.76.9

은빛님의 생활 속 묵상들이 진솔하네요...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가족의 죽음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없는 슬픔입니다
창자가 끊어진다고 하면 그 슬픔을 표현하는 근사치가 될까요
눈물이 가늘어지고 마음을 추수릴 때 까지
하늘나라의 위로도 소용이 없더군요, 제 경우에는...
슬픈 만큼 다 슬퍼한 후에야 겨우
죽음도 삶의 부분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은빛님 말씀처럼 배우자는
큰 슬픔 앞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만으로 결혼할 수는 없지만
결혼의 장점 중의 하나는 될 수 있겠지요!
그치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는 거~^^

은빛님만의 왕자가 나타날 때 까지
엄마 품 속에서 실컷 떼부리며 어리광부리세요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이 너무 귀합니다
profile

유니스

2008.11.28 21:42:22
*.139.166.144

은빛 그림자님~~
저는 읽으면서 어디서 꽁트 하나 퍼오신 줄 알았습니다.
무겁기도하고 일상이기도 하고...글을 잘 쓰시는군요.

서른 여섯살은 조~~은 나이십니다.
여기 더 묵은 동류가 하나 있습니다..ㅋㅋ
웬만하면 결혼하지않으려구요.
위에 시그림님도 단점 만만치 않다잖어요.

주님의 재림의 임박감을 느끼면서
재림의 지연에 묻히지말고
슬기로운 다섯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제가 지금 뭐라고 하는건지..ㅋㅋㅋㅋㅋ
은빛님, 우리 잘 살아보세~~
주님의 은총이..^^

나이스윤

2008.11.28 21:54:49
*.11.120.81

댓글로 다는 부고장
*** 부침상(두부부침,파전..) 내일 서울오프에서 시식할지 모름
** 장(jjang) 예식장...동대문에 위치한 서울복음교회
3시까지 오셔요~~^^
profile

정용섭

2008.11.28 23:29:39
*.139.165.38

은빛 님,
내 말 잘 들어봐요.
몇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신춘 문예 시도해보세요.
이미 등단한 여성 작가들의 단편 소설도
위의 저 짧은 글보다 더 나을 게 없답니다.
구성과 표현력도 그렇지만
'시각'이 뛰어난 거에요.
박완서 선생님은 마흔에 데뷔작을 냈다네요.
신춘 문예 습작 겸
다비아에 소설 한번 연재해 볼래요?
좋은 주말.

겨우살이

2008.11.29 00:53:57
*.173.60.3

와우~~ 단편의 글을 이렇게 재치있고 맛갈나게
쓸 수 있다니!! 은빛님의 글솜씨가 정말 보통이 아니군요.
목사님 조언처럼 다비아를 무대삼아
멋진 달란트를 열심히 갈고 닦아 보셔요.
은빛님의 등단의 그날을 기대하며 애독자가 될 것을 미리 신고합니다.^^
profile

클라라

2008.11.29 01:07:08
*.216.132.150

그렇지요. 겨우살이 님?
저도 울 은빛님, 데뷔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겠어요.
아,그런데..글쓰기엔 겨울살이님도 한 몫 한다는거 아직 모르시고 계심껴?^^
profile

희망봉

2008.11.29 01:27:55
*.109.76.146

은빛 님의 글쓰기가 대단 하십니다
어휘 선택도 훌륭하구요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됩니다
정 목사님 말씀대로 실천해 보세요
그 분이 그냥 하시는 이야기가 아닐 거예요

29일은 복음교회 30일은 서울샘터교회로~
샬롬~^^*
profile

눈사람

2008.11.29 09:24:05
*.136.37.162

글을 읽으며 너무 맛있다는 생각이 들어
댓글로 저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벌써 많은 분들이 달아부러서
여러 발 늦었음을 통탄하며 물러갑니다.
다음 글엔 젤 먼저 댓글 달아야쥐~~

파란혜성

2008.11.29 09:43:56
*.111.130.41

커허. 저도 소설가 지망생인데... 은빛 그림자 누님에게만 각광이^^
저 같은 경우... 6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룬 적이 있는데요.
그때 보상 문제로 1주일이나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일을 겪었어요.
대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가 첫 번째로 달려와서 문상을 하는 등등.
기회가 되면 그때 얘기를 쓰고 싶지만. 은빛그림자누님의 필력을 당할 수 없는지라.
걍 묵혀 놓고 있겠습니다~ 이따 봬요 ㅎㅎㅎ

은빛그림자

2008.11.29 23:05:10
*.141.3.64

어릴 적에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 비난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단언하고는 했는데..
나이가 들어 보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고, 잘 죽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은빛그림자

2008.11.29 23:08:31
*.141.3.64

왜 소중한 것은 꼭 잃어버리고 나서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걸까요?
함께 할 수 있는 오늘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매일 새록새록 느끼며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엄마가 없는 세상이란 건,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있는 삶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은빛그림자

2008.11.29 23:10:36
*.141.3.64

저는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장례식장에 가면 긴장이 되곤 해요.
마치 죽음의 길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데,
장례식장을 나오면 산 자들의 세상이 펼쳐진 듯하여
또 긴장감이 풀리게 되죠.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나봐요, 전.

은빛그림자

2008.11.29 23:13:06
*.141.3.64

후훗.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있는 1인이지만,
그래도 결혼은 하고 싶습니다요.^^*
혹시, 저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유니스 님과 절친으로 남고 싶군요.^^*

은빛그림자

2008.11.29 23:13:39
*.141.3.64

못 갔습니다.
이. 죽. 시.
(이 죽일 놈의 시험)ㅋㅋ

은빛그림자

2008.11.29 23:14:19
*.141.3.64

에그.. 정 목사님.
과하십니다...-_-

은빛그림자

2008.11.29 23:15:09
*.141.3.64

겨우살이 님이 더 잘 쓰시잖아요..
다비안 님들 때문에 버릇만 없어집니다요.ㅎㅎ
감사.

은빛그림자

2008.11.29 23:16:48
*.141.3.64

크흐흐... 라라 집사님.
이런 소리.. 버릇 없다고 하실텐데..
귀여우세요...아니 사랑스럽다고 해야하나..??
(사실 얼굴도 예쁘시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은빛그림자

2008.11.29 23:17:50
*.141.3.64

오늘도 못 갔고,
내일도 못 가니,
참..ㅠ.ㅠ
희망봉 님, 아무쪼록 감기 조심하세요.^^*

은빛그림자

2008.11.29 23:19:59
*.141.3.64

크핫.
저기요... 글 올려놓고 말이죠..
하루에 한 오백 번쯤 들어와요, 저.ㅋㅋㅋ
덧글이 달렸나 안 달렸나 보는 거죠..
그리고, 속으로 크흐흐흐.. 막 웃습니다.

달렸다, 달렸어.
마~~니 달렸어.
ㅋㅋ
제가 이렇게 유치한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꼭 한 번 뵙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요.

은빛그림자

2008.11.29 23:22:52
*.141.3.64

아. 그랬군요.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사는 친구들 보면
그렇게 장해 보일 수가 없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와... 정말 어른이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른이 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요?
난.. 피터팬 증후군.ㅋㅋ

나이스윤

2008.11.29 23:27:11
*.11.120.81

우하하~ 다들 그럴꺼에요..^^
싸우젠리어(뽀인트1,000점 넘는 사람을 일컽는 신조어..ㅋㅋ)는
되야 글 써놓고 다음에 들어올때쯤 슬쩍 댓글을 훑어보겠지요~
갑자기 댓글이 늘어 뭘까 보았더니 은빛그림자님이 댓글밑에 굴비를 주렁주렁
다셨군여..아무래도 우리가 무플방지위원회를 만들거나
댓글활성화 운동을 해야 할까 싶어요~^^
profile

새하늘

2008.12.03 19:18:50
*.126.124.241

올 어느날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초중고을 같이 한 동창하나가 위암으로 죽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아직 우리 나이아 어린데, 암이라니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현재 사는 곳은 청주이고 장례식장은 인천 부평이라 가보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싸이클 타다가 친구 몇명이 죽었고, 졸업 후 한 친구는 물에 빠져서 물귀신 되버렸습니다.
서서히 병으로 죽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아직도 제 나이가 의심스럽습니다.
아직도 팔팔한 나이인데...

은빛그림자

2008.12.04 00:16:52
*.141.3.64

순서가 있겠습니까..
그저 주님 부르시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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