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겨울비

Views 1406 Votes 2 2008.12.01 08: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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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일요일 아침.

몸이 무거운 걸 보니 지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직인가 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발코니에 서니 바람 한 점 없는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너무도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병이 도진다. 이불 속의 온기가 벌써 그립다.
더 시간을 끌다간 안되겠다 싶어 바로 샤워를 한다.

끌려가듯 차를 몰아 교회를 향한다.
기도 시간과 함께
서서히 천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들릴듯 말듯, 이젠 온통 빗방울 소리뿐이다.
나는 나가야 하는데.

대림절 설교가 시작되었다.
기다림, 기다림----. 나는 나가야 하는데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 더한 기다림, 그래도 나는 나가야 하는데.
드디어 설교가 끝났다.
놀래서 쳐다보는 아내를 애써 무시하고 바로 빠져 나온다.

지하 식당에 들려 커피 한 잔을 채우고 교회 밖으로 나간다.
우산이 필요해 차를 뒤져보니 남은 건 빨간 우산 하나.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 그림이다.

느린 걸음으로 교회 주변을 산책한다.
모든 귀찮음을 벗어버린 나무들,
그래도 부끄러운지 빛 바랜 잎 몇 개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나무들,
잘난 척 예나 지금이나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
땅에 철썩 널부러저 있던 잔디는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날듯 빗물을 가득 머금고.

서서히 교회에 가까워지니 어렴풋이 찬송가가 새어 나온다.
그래. 아주 가끔은 예수님도 창 밖 빗소리에 슬쩍 예배당을 빠져 나올지도 몰라.
달콤한 양심의 거리낌은 동반자를 필요로 하는 법.
이제 교회 소식을 전하고 있나 보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오며 우산을 펴든다.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를 발견하고선 활짝 웃는다.
아내: “내 이럴 줄 알았어”
나: “그러는 넌?”
아내: “자기처럼 빗소리 듣고서 나왔지, 뭐”
약간 식은 커피를 나누면서 마주보고 웃는다.
14년을 같이 살더니 눈치만 늘어가지고.
아니면 혹시 전염병?

빨간 우산 아래 팔짱을 끼고선 다시 한 번 교회주변을 돈다.
아내의 분위기를 보건데 특별한 점심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한 비 내리는 대림절 주일이다.

오, 주여! 이 불경스러운 커플을 굽어 살피소서!!



솔나무

2008.12.01 09:24:06
*.234.224.233

중년의 두 부부가 비오는 날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신가 봅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교회주변?...두사람의 우산속 미소~~*^^*
그런데, 불경스런 커플을 굽어 살펴달라 하는데...괜히 부러버서..ㅋㅎㅎ
빗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서 두분이 그렇게 좋아라 하는 것은 비가 없는 동네에 사시나?...
내가 더불어 행복해지네요. 날씨 추워요?...몸 건강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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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08.12.01 09:24:37
*.185.154.168

부리부리 박사님,
너.모.너.모 .멋지셔요!!
그러니까..
빗소리에 흠뻑 취하셨다는 말씀이지요?^^
나란히 두분이서요.
아,아니군요. 세분이시군요^^
그런데, 사실 저 많이 헷갈려 있어요~~^^
브리즈 박사님 맞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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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석

2008.12.01 10:09:38
*.95.226.238

너무 멋있네요.
마음이 통하는 부부..
그리고 하나님 주시는 음성에 즉각 응답하시는 브리즈님..
그런데 저는 여전히 마음은 밖에 몸은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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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08.12.01 10:29:54
*.116.154.86

뉴욕에도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희 예배당에서는 빗소리가 안 들려요~~~

낙스빌 떠나서 요 근처 오시려나요?
그냥 한번 생각해 봤어요.

팔짱 끼고? ㅎㅎ
두분 좀더 나이드시면 손잡고 걸어보셔요. 저희처럼... ㅎㅎㅎㅎ
profile

눈사람

2008.12.01 10:59:23
*.136.37.162

예배가 끝나기 전에 나간 남편을 흘겨보는 아내들이 좀 더 많은 것 같은 이 나라에서는
따라 나와 " 내 이럴 줄 알았어 " 라고 말해주시는 사모님을 아내로 모시고(?) 사시는
브리즈님이 너무 좋아보입니다.

breeze

2008.12.01 13:43:47
*.114.76.75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비 오는날 필이 꽃히면 나타나는 고질병이 있어서요. ㅎㅎ

중년이라---. 저야 슬픈 마음 숨기며 애써 담담하지만, 아내는 분명 펄쩍 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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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08.12.01 13:44:15
*.104.195.35

브리즈님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두 분께서 비오는 주일날의 고즈늑함을 누리시는군요.
그 안식의 기쁨을 주님께서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breeze

2008.12.01 13:46:40
*.114.76.75

맞습니다. 맞고요~~
제 이미지와는 잘 안 어울리나요?
한 때 낭만에 죽고 낭만에 산 적도 있었는데 ----. ㅋㅋ

breeze

2008.12.01 13:49:25
*.114.76.75

홍종석 님,
좀 더 자유하셔서 "마음은 안에 몸은 밖에"의 경지에 빨리 도달하시길 바랍니다. 푸하하하!

breeze

2008.12.01 14:06:50
*.114.76.75

침례교회 다닐 때는 찬송도 앉아서 했지요.
지금은 장로교회라 찬송 때마다 일어섭니다.
주보에 "불편하지 않으시면 다같이 일어나서 찬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어서
하루는 남들 다 일어나는데 혼자 앉아서 찬송을 했습니다.
아내; "왜?"
나: "응, 오늘은 그냥 불편해 보고 싶어서"
아내; "으응"
재미없어서 그 뒤론 불편해 하지 않는답니다.

breeze

2008.12.01 14:13:23
*.114.76.75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즈늑함'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아내가 준비한 점심 메뉴는 수제비였습니다.
땀 흘려가면서 맛있게 먹었지요.
중간에 큰 아이가 수제비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바람에 잠시 당황했던 것만 빼고.
근데 혹시 수제비가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breeze

2008.12.01 14:41:34
*.114.76.75

모래알 님,
뉴욕 근처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은 저도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어요.
그간 제 삶이 그래왔듯이 어느날 갑자기 그 실체가 드러나겠지요 (계획없는 삶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ㅋㅋ).

profile

눈사람

2008.12.01 16:40:37
*.136.37.162

^^
역시 실험 정신이 투철하십니다.

버클리

2008.12.01 17:48:42
*.228.78.51

수제비는 수제비이고, 칼국수는 칼국수입니다. 굳이 수제비의 개념을 알아야 먹는 것은 아니랍니다. 맛있게 먹고 만들어주신 분에게 감사해 하면 되는 겁니다. 수제비 개념을 알 때까지 기다리면 수제비 식습니다. ㅡ,.ㅡ

신완식

2008.12.01 18:22:54
*.112.170.137

목사님 기도 바로 뒤가 헌금 시간이었는데
그 때 빠져 나오셨군요.
그래서 저는 예배당 입구에 헌금 주머니 설치해 놓고
입장할 때 헌금하도록 강요합니다.
도중에 빈손으로 못 빠져 나가게요...
다음엔 CCTV 설치한 뒤
빈손으로 몰래 빠져 나가는 교인들 체크하여
우편으로 헌금 청구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브리즈 박사님 교회 목사님께
제 아이디어를 좀 알려주시지요.

breeze

2008.12.02 00:55:46
*.36.169.128

ㅎㅎ, '돈 밝히시는' 신목사 님,
헌금은 아내가 했을걸로 굳게 믿

breeze

2008.12.02 01:11:05
*.36.169.128

역시 인터넷이 좋군요. 저야 음식 자체에 철저히 집중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아이들은 사소한 궁금증이라도 한 번 꽃히면 방법 없거든요.
이 기회에 수제비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한자어 '손 수(手)'에 '졉다(摺;접을 접)'의 어간이 결합하고,
명사파생접미사 '-이'가 붙어
'수졉이 > 수져비 > 수졔비 > 수제비'가 되었다네요.
예상대로 키워드는 손이었군요.
profile

소풍

2008.12.02 02:28:07
*.155.134.136

간만에 올려주신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서울샘터교회도 헌금함을 입구쪽에 놓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냈죠.
들어서는 입구에 눈에 잘 안 띄는 턱을 하나 만들어서
발이 걸려 넘어지면 정확히 눈 높이에 헌금함이 보이도록 하자고...
인생에는 코 깨질 일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하여
아낌없이 헌금을 낼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에서요.
채택되었냐구요?
욕만 먹었슴다 ㅜ,ㅜ;;

버클리

2008.12.02 04:49:09
*.237.79.175

다행입니다. (/ --)/

breeze

2008.12.02 10:11:43
*.114.76.75

(가을) 소풍님,
우리 소풍님의 진심을 몰라주다니 많이 섭섭했겠습니다.
아마도 육체적 충격을 동원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지 않았나 싶군요.

여기 샘터 교우들이라면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
헌금함을 큰 거울 앞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헌금봉투를 넣은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거지요.
"내가 헌금을 많이 한다"는 자만에 빠진 자에게는 겸손을
"뭐 아무도 안 보는데 대충하면 어때" 하는 자에게는 양심의 꺼리낌을---.
그 유명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한다는 전법입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月光

2008.12.02 10:22:19
*.179.231.4

지난 금욜에 수유리사랑방에 네남자가 모였습니다.
62년생으로부터 65년생까지 1년당 1명씩...
확실히 중년맞지요?
그런데 그들보다 좀 더 늙은(?) 아니 중후한 분이 브리즈란 이름으로 불리더군요.ㅋㅋㅋ
형님이 많이 생각난 하루였습니다.

breeze

2008.12.03 00:19:10
*.36.169.128

월광님,
40대 중년 년년생들께서 '고즈넉함'을 맛보셨군요.
다비아에 저 말고 61년생은 없나요? 61년생부터 65년생까지 쫘악 펼쳐지면 환상적일텐데.
혹시 60년생 어르신께서 나서시거든 절대 넘어가면 안됩니다.
서기는 0년이 아닌 1년부터 시작되었거든요. 60년생은 50년대의 마지막 자락임을 분명히 해주세요. ㅋㅋ

어디선가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왠지 겨울비 속에서 전혀 외롭지가 않더라니. 나는 예수님이 함께 하신 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profile

모래알

2008.12.03 02:30:06
*.15.174.9

수유리 사랑방 멤버 세 명은 아는데 한분 더 있었군요.
언젠가 말했지만 아래 위 십년은 친구다!! 아니던가요?
그 찻집에서 마셨던 국화차? 던가? 그리워요~~~~

솔나무

2008.12.03 09:34:51
*.234.224.233

다비안중에...
요나단님이 61년 생입니다.
얼마나 동안이던지...동생인줄 알았어요.ㅋㅋ 혼날뻔했지유...
요나단님께 "몇년생이신지?..." 했더니...대답이 "쇠띠...73년생이..."
이건 아닌듯...결국 48살이더라구요.
그리구, 수유리모임의 출발에 나이스윤이 노력을 많이 했는디...
현재 65에서 아래로 66멤버 없구...67이 나이스윤인데...또 이빨이 빠지구...그담이 소풍이 69인가?...
61에서 69까지...한줄로 쫙 세워볼까나...
브리즈님,
65까지는 짧아요. 69까지는 해야지...소풍 삐지면 다비아에 큰일난다니까요.

늘오늘

2008.12.03 10:25:27
*.239.101.211

연령 40대, 80년대 고졸(^^;), 60년대 출생자들.
이름하여 486세대. (업그레이드된 386) ㅋㅋ^^
하지만, 수유리 구역예배 모임에서,
나이에 따른 차별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당. ^^
아울러 자랑을 하자면, 우리 구역은 멋진 세미나실까지 확보된 상태임다. ㅍㅎㅎㅎ^^

profile

희망봉

2008.12.03 11:02:59
*.82.136.189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잔잔한 감동(?)이 몰려 옵니다
어서 비가 와야 할텐데...음
주일 저녁에~^^*

breeze

2008.12.03 13:53:07
*.114.76.75

이런 구역모임이 있었군요. 구역이라기보단 또래모임이 더 적당할 것 같기도 하고.
여성 다빈안들이 안 보이는게 섭하네요.
여성에겐 아래로 나이 제한 확 풀어버리세요. 위로 말고, ㅋㅋ

서울 샘터 교회 창립에 또래들끼리의 모임에,
그래도 부러우면 지는거다, 이를 악물고 ㅎㅎ흑!

breeze

2008.12.03 13:55:46
*.114.76.75

"위로 십년까진 무조건 친구다. 그러나 아래로는 알짤없다!" - 브리즈

breeze

2008.12.03 13:58:52
*.114.76.75

서울 샘터교회 창립으로 분주하신 희망봉 님,
먼 곳에서 마음으로나마 격려와 감사 인사 보냅니다.
이번 주일에 창립예배죠?
그날 절대 비 오면 안 되겠습니다.
목사님 설교 끝나자마자 모두들 분위기 잡는다고 밖으로 나가 버리면----.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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