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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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여기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들은 다소 단순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고
그냥 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또는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
마음에 이끌린 대로 믿는 사람 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과 예언들을 사실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렁이 와 같은 존재이며 죄인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자를 살린 능력을 믿고
인류를 구원 하고자 하는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믿고 예수의 살과 피 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는
하나님과의 화목제물이자, 속죄양이요,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을 믿습니다.
또한 이 죽음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 아니라 삼 일만에 부활 하여서
약속한 성령을 믿는 자들 에게 보내어 주시고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믿는 무리들과 영으로 서로 교통하며
가르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죽음 후에도 그 분의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면서
영원히 참된 인식을 누릴 것을 믿고 바라 봅니다
여기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과 지식, 또 자신들이 습득한 학문의 틀 안에서만 성경을 해석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였다는 것을 잘 믿질 않습니다.
또한 이들은 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 인가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개 하라는 설교는 일년이 가도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의 죽으심이 꼭 구약의 예언대로 되었다고 가르치질 않습니다.
그러니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가 구약 창세기부터 시작 되었다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예수가 행한 병고침, 죽은자를 살린 이적, 귀신을 쫓은 권능등
성경의 여러 예수의 이적과 가르침을 사실로 받아 들이질 않고
성서 기록자들이 왜 예수가 병을 고치고 죽은자를 살렸다고 기록해 놓았는지
그 시적 언어를 풀어 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령은 바람과 같은 존재라서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도의 개인 개인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여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가르치시고, 성령이 깨우쳐 주시고 인도 하심을 믿질 않는다고 할까요..
예수의 부활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질않습니다.
다만 어떤 교훈과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상징으로 해석 합니다.
이들은 죽음 후에의 내세를 잘 믿질 않습니다.
죽음 후에는 흙으로 돌아 간다고도 합니다.
또는 내세는 중요 한것이 아니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믿음과,신앙을 택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과연 하나님이 이 두 부류의 믿음과 신앙을 보고 계신다면
어느 편에 손을 들어 주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애타는)이 궁금 하지 않으셔요???
이 들은 다소 단순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고
그냥 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또는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
마음에 이끌린 대로 믿는 사람 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과 예언들을 사실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렁이 와 같은 존재이며 죄인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자를 살린 능력을 믿고
인류를 구원 하고자 하는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믿고 예수의 살과 피 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는
하나님과의 화목제물이자, 속죄양이요,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을 믿습니다.
또한 이 죽음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 아니라 삼 일만에 부활 하여서
약속한 성령을 믿는 자들 에게 보내어 주시고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믿는 무리들과 영으로 서로 교통하며
가르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죽음 후에도 그 분의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면서
영원히 참된 인식을 누릴 것을 믿고 바라 봅니다
여기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과 지식, 또 자신들이 습득한 학문의 틀 안에서만 성경을 해석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였다는 것을 잘 믿질 않습니다.
또한 이들은 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 인가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개 하라는 설교는 일년이 가도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의 죽으심이 꼭 구약의 예언대로 되었다고 가르치질 않습니다.
그러니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가 구약 창세기부터 시작 되었다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예수가 행한 병고침, 죽은자를 살린 이적, 귀신을 쫓은 권능등
성경의 여러 예수의 이적과 가르침을 사실로 받아 들이질 않고
성서 기록자들이 왜 예수가 병을 고치고 죽은자를 살렸다고 기록해 놓았는지
그 시적 언어를 풀어 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령은 바람과 같은 존재라서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도의 개인 개인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여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가르치시고, 성령이 깨우쳐 주시고 인도 하심을 믿질 않는다고 할까요..
예수의 부활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질않습니다.
다만 어떤 교훈과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상징으로 해석 합니다.
이들은 죽음 후에의 내세를 잘 믿질 않습니다.
죽음 후에는 흙으로 돌아 간다고도 합니다.
또는 내세는 중요 한것이 아니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믿음과,신앙을 택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과연 하나님이 이 두 부류의 믿음과 신앙을 보고 계신다면
어느 편에 손을 들어 주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애타는)이 궁금 하지 않으셔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길은 없고,
저라면 위에도(1번) 아래에도(2번) 손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1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사에 대한 무책임으로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우기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 식의 발언을 하면 형장으로 넘겼던,
또한 마녀사냥을 일삼았던 자들의 본보기네요.
최근에는 교회 안가서 쓰나미에 당했다고 말(설교)했다죠.
온갖 종교전쟁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고요.
자신들이 대단한 종교적 신앙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세계를 사랑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 무법자인 경우가 허다하고요.
참으로 무책임한 자들이지요.
2번도 별거 아니지요.
차라리 신앙을 버리고 타종교로 가던가 무종교로 가던가 하면 될 것이지
신앙 없이 신학 할 수 있다고 하는 지적 자만에 빠진 자들이지요.
한 개인 개인의 삶과 그들의 고뇌에는 귀기울이지 못하고
아는 채, 잰 채 하는 볼썽사나운 자들이고요,
마치 세계에 대하여 대단한 책임감을 가진 자들인 듯 보이지만
그들의 말과 글은 차갑운 기운, 냉기가 흐르지요.
도무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감흥이 없어요.
저는 내용 하나하나를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둘다 한국 교회가 가야할 길, 신앙의 길과는 참으로 멀어 보이네요.
무엇을 의도하고 쓰셨나요?
하나님의 마음이 궁금하신가요?
정말 그런 착한 의도로 글을 작성하셨다면, 조언 드릴께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영적, 지적 오만을 버리시길 바래요.
그러한 욕망을 버리고나서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영적 본성을 지적 본성과 겸비하여 그분을, 혹은 그분의 역사를 알아가시길 바래요.
아직 우리가 그렇게 제단하고 판단하고 손가락질하기에는
끝이 멀었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조금만 릴렉스, 천천히 가셔도 되요.
아직 칼을 들고 떡을 썰 때는 아닌 것 같네요.
저라면 위에도(1번) 아래에도(2번) 손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1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사에 대한 무책임으로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우기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 식의 발언을 하면 형장으로 넘겼던,
또한 마녀사냥을 일삼았던 자들의 본보기네요.
최근에는 교회 안가서 쓰나미에 당했다고 말(설교)했다죠.
온갖 종교전쟁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고요.
자신들이 대단한 종교적 신앙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세계를 사랑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 무법자인 경우가 허다하고요.
참으로 무책임한 자들이지요.
2번도 별거 아니지요.
차라리 신앙을 버리고 타종교로 가던가 무종교로 가던가 하면 될 것이지
신앙 없이 신학 할 수 있다고 하는 지적 자만에 빠진 자들이지요.
한 개인 개인의 삶과 그들의 고뇌에는 귀기울이지 못하고
아는 채, 잰 채 하는 볼썽사나운 자들이고요,
마치 세계에 대하여 대단한 책임감을 가진 자들인 듯 보이지만
그들의 말과 글은 차갑운 기운, 냉기가 흐르지요.
도무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감흥이 없어요.
저는 내용 하나하나를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둘다 한국 교회가 가야할 길, 신앙의 길과는 참으로 멀어 보이네요.
무엇을 의도하고 쓰셨나요?
하나님의 마음이 궁금하신가요?
정말 그런 착한 의도로 글을 작성하셨다면, 조언 드릴께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영적, 지적 오만을 버리시길 바래요.
그러한 욕망을 버리고나서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영적 본성을 지적 본성과 겸비하여 그분을, 혹은 그분의 역사를 알아가시길 바래요.
아직 우리가 그렇게 제단하고 판단하고 손가락질하기에는
끝이 멀었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조금만 릴렉스, 천천히 가셔도 되요.
아직 칼을 들고 떡을 썰 때는 아닌 것 같네요.
저별과 달님의 글이 다소 거칠게 보일지라도, 사실 저는 이 글이 아주 많은 한국 교인들의 고민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국 교인들의 90% 이상이 1번이나 2번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그 중간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헤메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비아에 오는 사람들 중의 많은 분들이(저를 포함하여서...) 가운데서 헤메다가 생수를 발견하는
심정으로 다비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새로운 것, 참다운 것을 찾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염려도 같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기도하고, 가끔은 삐딱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신음 소리입니다. 안타까운 도움의 요청이고, 구조의 부르짖음입니다.
무서움에 지르는 비명소리입니다.
뭔가 다른것, 진짜를 발견한 것 같은데, 거기에 다가가자니 너무 힘들고, 지금까지 젖어 있던 것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저사람들은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시원하게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지네들끼리,
아는 사람들끼리만 아는척하고 나는 소외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심정의 다비안이 꽤 될겁니다.
물론 정용섭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다비안들이 따뜻한 마음과 인내로 이들을 대하고, 되도록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시의 세계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 시를 이해시키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100% 동의합니다.
그리고 시간도 걸립니다. 기존의 교리교육처럼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서 알게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날 '시'라는 장르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시를 쓰고, 시를 이해하고, 시를 사랑합니다.
당연히 오늘날의 대중들의 성급함이 가벼움이 그들 자신을 시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것입니다.
그런데,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혀 책임이 없을까요? 시인들은 책임이 없을까요? 그 좋은 시의
세계를 대중화 시키지 못하고 자기들만 즐기는 것에 전혀 책임이 없을까요?
시의 세계를 소개하고, 그리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그 세계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닐까요?
사랑으로 참음으로, 기쁨으로 말입니다.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국 교인들의 90% 이상이 1번이나 2번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그 중간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헤메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비아에 오는 사람들 중의 많은 분들이(저를 포함하여서...) 가운데서 헤메다가 생수를 발견하는
심정으로 다비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새로운 것, 참다운 것을 찾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염려도 같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기도하고, 가끔은 삐딱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신음 소리입니다. 안타까운 도움의 요청이고, 구조의 부르짖음입니다.
무서움에 지르는 비명소리입니다.
뭔가 다른것, 진짜를 발견한 것 같은데, 거기에 다가가자니 너무 힘들고, 지금까지 젖어 있던 것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저사람들은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시원하게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지네들끼리,
아는 사람들끼리만 아는척하고 나는 소외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심정의 다비안이 꽤 될겁니다.
물론 정용섭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다비안들이 따뜻한 마음과 인내로 이들을 대하고, 되도록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시의 세계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 시를 이해시키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100% 동의합니다.
그리고 시간도 걸립니다. 기존의 교리교육처럼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서 알게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날 '시'라는 장르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시를 쓰고, 시를 이해하고, 시를 사랑합니다.
당연히 오늘날의 대중들의 성급함이 가벼움이 그들 자신을 시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것입니다.
그런데,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혀 책임이 없을까요? 시인들은 책임이 없을까요? 그 좋은 시의
세계를 대중화 시키지 못하고 자기들만 즐기는 것에 전혀 책임이 없을까요?
시의 세계를 소개하고, 그리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그 세계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닐까요?
사랑으로 참음으로, 기쁨으로 말입니다.
시드니님 말씀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회색인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다비아에 눈팅을 한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다비안이라는 정체성이 없습니다.
교회에 가도 외롭고 다비아에 와도 외롭습니다.
교회에서 질문하면 너무 이상한 자유주의자로 몰릴까 두렵구요 (실은 완전 보수주의자인데.....)
다비아에서는 너무 모르는게 많아 질문조차 할 수 가 없습니다.
(아..그렇다고 다비아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구요, 제가 겁이 많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가 제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시드니님 쁀만 아니라 위의 솔나무님이나 안희철 님 댓글에도 아주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저별과 달님의 심정도 이해하구요 위의 댓글 달아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회색인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다비아에 눈팅을 한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다비안이라는 정체성이 없습니다.
교회에 가도 외롭고 다비아에 와도 외롭습니다.
교회에서 질문하면 너무 이상한 자유주의자로 몰릴까 두렵구요 (실은 완전 보수주의자인데.....)
다비아에서는 너무 모르는게 많아 질문조차 할 수 가 없습니다.
(아..그렇다고 다비아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구요, 제가 겁이 많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가 제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시드니님 쁀만 아니라 위의 솔나무님이나 안희철 님 댓글에도 아주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저별과 달님의 심정도 이해하구요 위의 댓글 달아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별과 달님 샬롬!
둘중 하나를 택하라는 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리함을 숨기지 못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제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확답이나 즉답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신앙의 문제에서
어쩌면 모두들, 다비아내의 같은 글을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 다른 수준의 이해를 하고 있을겁니다
그것이 다비아의 자연스런 모습이지요
정갈하고 단단한 신앙의 해답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의 막다름으로 몰고 가진 마세요
신앙과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이 인간의 선택으로 규정되진 않을테니까요
우리 좀 하나님께 무관심하면 어떨까요
나를 만드신 그 분이 내 머리카락 수도 세신다하니
나는 안심하고 놀렵니다
그 분이 궁금할땐 기도도 하고 책도 읽겠지만
급하게 그 분을 설명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내 경직된 시각에 의한 관심이 세상을 더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별달님~
지난 가을에 올리신 코스모스 사진처럼
예쁘고 고운 일들이 올 한해 가득하시길...
둘중 하나를 택하라는 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리함을 숨기지 못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제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확답이나 즉답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신앙의 문제에서
어쩌면 모두들, 다비아내의 같은 글을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 다른 수준의 이해를 하고 있을겁니다
그것이 다비아의 자연스런 모습이지요
정갈하고 단단한 신앙의 해답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의 막다름으로 몰고 가진 마세요
신앙과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이 인간의 선택으로 규정되진 않을테니까요
우리 좀 하나님께 무관심하면 어떨까요
나를 만드신 그 분이 내 머리카락 수도 세신다하니
나는 안심하고 놀렵니다
그 분이 궁금할땐 기도도 하고 책도 읽겠지만
급하게 그 분을 설명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내 경직된 시각에 의한 관심이 세상을 더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별달님~
지난 가을에 올리신 코스모스 사진처럼
예쁘고 고운 일들이 올 한해 가득하시길...
유진님께서 스스로를 회색인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유진님의 고뇌가 보입니다. 일종의 혼란이겠지요?
저는 다비아를 통해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보게 되었다고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도 일종의 자뻑일 수 있
겠지만..) 그런데 저역시 혼란스럽답니다. 그 혼란은 안주를 포기했기 때문에 겪어야 할 일종의 홍역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짓궂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유진님이 저는 반갑답니다.
완전보수주의 조차도 자유주의로 매도되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신학적 구도에 기인하는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고 유지님이 겪는 혼란에 집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비아를 통해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보게 되었다고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도 일종의 자뻑일 수 있
겠지만..) 그런데 저역시 혼란스럽답니다. 그 혼란은 안주를 포기했기 때문에 겪어야 할 일종의 홍역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짓궂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유진님이 저는 반갑답니다.
완전보수주의 조차도 자유주의로 매도되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신학적 구도에 기인하는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고 유지님이 겪는 혼란에 집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콰미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혼란, 갈등, 질문.... 이런 것들을 불신과 동일시하는 신앙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해결되고 안정된 상태가 좋은 믿음으로 배워왔습니다.
제가 다비아에서 많은 분들에게 배운 것은, 이러한 몸부림의 과정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예수에 잡힌바된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서두르지 마시고, 굳건한 신뢰로(내가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마음 편히 천천히
걸어 갈 때에, 놀랍게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실겁니다.
우리는 혼란, 갈등, 질문.... 이런 것들을 불신과 동일시하는 신앙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해결되고 안정된 상태가 좋은 믿음으로 배워왔습니다.
제가 다비아에서 많은 분들에게 배운 것은, 이러한 몸부림의 과정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예수에 잡힌바된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서두르지 마시고, 굳건한 신뢰로(내가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마음 편히 천천히
걸어 갈 때에, 놀랍게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실겁니다.
하나님의 관전 포인트?...
철저하게 성경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다른 것이겠지요.
꼭 그렇게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믿어야만 신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창조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을 믿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성경은 역사(100%사실)나 과학교과서도 아니며 자체로 믿음의 대상도 아닐것이며
믿음의 대상인 주님을 신앙의 근거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주를 믿어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인데요.
저별과 달님...
이런글을 올리신 다른이유가 있나요?
이해를 구하며...
새해 바라는 모든것을 이루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