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29일 다시 베다니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11:11)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뒤 잠시 성전에 머물렀다가 날이 저물자 곧 예루살렘을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나귀새끼를 구하는 장면이나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 비해서 입성 후의 설명은 너무 간략합니다. 예수님은 왜 급히 예루살렘 밖으로 나오셨을까요?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예루살렘은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입니다. 예수님에게 숙식을 제공할 사람을 찾는다는 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낙인을 찍힌 상태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누가 그를 숨겨주겠습니까? 그러니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 베다니로 돌아가는 게 속이 편했겠지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자들과의 큰 싸움을 앞두고 예수님에게 휴식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예루살렘보다는 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는 베다니로 내려가는 게 좋았겠지요.
이런 문제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성서기자도 그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예루살렘 입성 후에 곧 성전 청결 사건을(막 11:15-19) 보도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아니 마태복음처럼 그렇게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는데, 다시 베다니로 돌아갔다고 하는 이유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전하려는 데에 있었을까요?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
어쨌든지 예수님이 다시 베다니로 나갔다는 말씀의 행간에서 저는 어떤 비장미를 느낍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권위에 눌려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나마 하신 건 아닐는지요.
너무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건진 몰라도
'예루살렘의 권위'라는 단어 앞에 예수의 살내나는 고뇌가 느껴집니다
스티글리츠의 <야망의 도시>라는 사진작품이 있습니다
백여년전 사진이지만
웅장한 마천루와 그 그늘과, 도시를 살아있는 무엇으로 보이게 만드는
연기와 회색빛 구름이
'이 곳은 도시적인 야망의 준비없인 접근불가'라는 톤 낮은 말을 거는 듯하는 사진이지요
이천년전, 종교적 권위와 업적으로 마천루를 쌓은 예루살렘성 앞에서
예수님이 느끼셨을지 모를 비장함이
여지껏 그가 예수라서 그냥 넘어갔던 예수의 속내를
오늘 내 방식으로 그려 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모든 것을 둘러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의 현실에 개입하지않은 채
찬찬히 그것을 먼저 목도하는 장면에서
예수님의 내면의 압축이 느껴지는군요.
첫 입성 이후 연이은 입성들에서
물리적 행동과 선포가 뒤따르는 것에
결정적인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활동의
베이스 캠프라고 여겨집니다.
아무래도 베다니 근처에서 빌린
나귀새끼도 돌려주어야 하구요....^^